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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민족을 어떻게 사랑할까<이병두 칼럼>
이병두 | 승인 2017.03.13 13:23

나, 그리고 당신은 어떤 종류의 충성을 하고 있는가?

쉬즈위안許知遠이 쓰고 김영문이 우리말로 옮긴 《독재의 유혹》을 읽다가 류빈옌劉賓雁이란 탁월한 인물을 발견하였다.

류빈옌은 1925년에 태어나 1944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여 중국 민중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지만, 1957년 마오쩌둥毛澤東이 ‘극우파’로 지목하면서 22년 동안 질곡의 삶을 살았다. 복권 이후에도 젊은 시절의 열정과 민중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변치 않았고, 발로 뛰며 취재한 내용을 예리하게 분석하여 뛰어난 필치로 써낸 그의 르포 기사들로 해서 그는 ‘중국 사회의 양심’이라는 칭호를 받기까지 했다. 1980년대에 그는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기자였으며, 심지어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지만,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사정으로 1988년 중국을 떠난 뒤 불과 17년 사이에 중국인들을 그를 깨끗하게 잊었고, 2005년 말 미국의 뉴저지에서 고독하게 세상을 떠났다.

1979년에 다시 빛을 보게 된 류빈옌은 펜을 잡고 그가 본 세계를 묘사하기 시작하여, 중국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비극의 근원을 탐구하고자 했다. 특히 그의 두 작품 「인간과 요괴 사이人妖之間」 ‧ 「두 번째 종류의 충성第二種忠誠」은 어느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예리한 분석과 뛰어난 문장을 보여주었다.

쉬즈위안에 따르면, 「인간과 요괴 사이」가 묘사하고 있는 것이 ‘감독받지 않는 권력의 필연적인 부패와 인간의 소외’라면 「두 번째 종류의 충성第二種忠誠」은 ‘소외에 저항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

「두 번째 종류의 충성」의 주인공은 하얼빈의 노동자평생대학 교수 천스중陳世忠과 상하이해운대학 도서관 직원인 니위셴倪育賢, 이 두 사람이다. 그들은 모두 가장 잔혹한 현실이 눈앞에 있더라도 독립적인 사상과 판단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처지에 류빈옌은 강렬한 공감을 표했다. 이 책의 말미에서 그는 온 중국 사회를 격동시킨 세 종류의 충성을 새롭게 정의했다.

“근면 성실하고 겸허 신중하며, 정직하게 말을 잘 듣고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 것, 이것이 첫 번째 부류의 충성이다. 이러한 충성심을 품고 있는 사람은 개인적인 이익에서도 크건 작건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그러나 비교적 안전하고 순조로운 삶을 살면서 대개 재난이나 참화를 초래하지 않는다. 상급자의 눈에도 사랑스럽게 보이므로 벼슬길에서도 쉽게 승진할 수 있다.

두 번째 종류의 충성은 천스중이나 니위셴처럼 자기가 몸소 힘써 실천하는 부류다. 이런 부류는 다른 사람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는 흔히 자유와 행복, 심지어 생명까지 빼앗기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여러 해 동안 전자의 충성은 특별히 애호 ‧ 양육되면서 끊임없이 물과 비료를 주었기 때문에 아주 튼실하고 무성하게 자랐다. 이에 비해 우리 정치의 전답에는 후자의 충성이 매우 빈약하고 희소하다. 메마르고 척박한 토지에 생존의 뿌리를 내리고 멸종되지 않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출처 : YTN

위험한 것은 또 세 번째 종류의 충성이 첫 번째 종류 충성의 변종으로 생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상관의 지시만 있으면 그것이 잘못되고 유해한 것임을 분명하게 알면서도 성실하게 그 지시를 집행하고, 심지어 솔선수범하여 상관의 칭찬을 받으려고 한다. 그러다가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중대한 논쟁이 맞닥뜨리면 아주 겸손하고 신중하게 처신하며 가타부타 판단을 내리지 않고 명철보신의 입장으로 그 책임을 상관이나 부하에게 떠넘긴다. 또 이들은 정치의 풍향을 잘 관찰하여 형세에 따라 기회를 엿본 뒤 수시로 배신을 거듭하며 자신이 충성할 대상을 바꾼다. 이러한 충성은 애교가 넘치고 자태가 고와서 그 사랑스러움이 첫 번째 종류의 충성을 훨씬 능가한다. 그러나 그것이 초래한 결과는 쓰디쓰면서 유독하기까지 하다”

“마오쩌둥 시대의 무소불위의 개인숭배와 허위도덕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 세 번째 종류의 충성이 당시 중국 사회에 얼마나 큰 충격을 가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람들은 ‘충성’이란 명목 아래 저질러진 온갖 종류의 재난을 직접 보고 듣고 겪었다. 그러나 이러한 잘못의 근원이 도대체 무엇인지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장기간 중국은 도덕사회를 표방했다. ‘사私’는 늘 ‘공公’의 면전에서 낯빛을 잃었다.”1) 쉬즈위안의 말이다.

그러나 이게 마오쩌둥 시대의 중국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도 이 세 번째 종류의 ‘충성’ 꾼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음을 특히 박근혜 정권 4년 동안 분명하게 드러냈다. 첫 번째 종류가 아주 쉽게 세 번째 종류로 바뀌어갈 수 있음도 확인하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류빈옌이 ‘충성의 모범’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천스중陳世忠 ‧ 니위셴倪育賢과 같은 ‘두 번째 종류의 충성’을 다한 인사들이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박근혜와 김기춘 앞에서 “아닙니다”라고 했다가 파면당한 장관이 있었고, 박근혜의 비호를 받는 최순실의 압력에 굽히지 않았다가 박근혜의 입에서 “나쁜 사람들이더군요”라는 욕이 나오게 하고 그 뒤 몇 년 동안 고통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공직자의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던 중앙부처 국장과 과장이 있었다.

박근혜 ‧ 김기춘의 기세에 눌려 “예”로만 일관하던 장차관과 국회의원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들, ‘최순실에 의한 최순실을 위한 예산’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막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그 예산을 반영하여 큰 피해를 가져온 예산 담당 부처의 공직자와 국회의원들, 이처럼 잘못된 일이 쌓여가고 있는 데에도 모른 척 했던 정보 ‧ 사정 기관 책임자들, 세상이 떠들썩해지기 전까지 이 모든 일에서 애써 고개를 돌리며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자세가 아쉽다”는 엉터리 글을 써댔던 언론인들, 아들에게 대형 교회를 세습하는 목사를 막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종교인들 ……. 과연 이들은 류빈옌이 말하는 세 번째 종류의 충성을 하면서 자신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산다”고 믿었을까.

수많은 공직자와 언론인 ‧ 종교기관 종사자들은 아마 “내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면서 책임을 피하고 싶을 것이다. 아마 류빈옌이 말하는 ‘첫 번째 종류의 충성’은 하고 있으니, 자신들에게 돌은 던지지 말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첫 번째 종류 충성의 변종으로 ‘매우 위험한 세 번째 종류의 충성’이 태어난다는 점을 결코 놓치면 안 된다. “상관의 지시만 있으면 그것이 잘못되고 유해한 것임을 분명하게 알면서도 성실하게 그 지시를 집행하고, 심지어 솔선수범하여 상관의 칭찬을 받으려고 한다. 그러다가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중대한 논쟁이 맞닥뜨리면 아주 겸손하고 신중하게 처신하며 가타부타 판단을 내리지 않고 명철보신의 입장으로 그 책임을 상관이나 부하에게 떠넘긴다. 또 이들은 정치의 풍향을 잘 관찰하여 형세에 따라 기회를 엿본 뒤 수시로 배신을 거듭하며 자신이 충성할 대상을 바꾼다.”는 류빈옌의 분석을 가볍게 여기면 안 된다.

공직자 ‧ 언론인 ‧ 종교기관 종사자[신도와 宗務員]들 스스로 점검해보자. “국가와 민족을 어떻게 사랑할까? 나는 지금 어떤 종류의 충성을 하고 있는가?”

1) 쉬즈위안許知遠 지음, 김영문 옮김, 《독재의 유혹》, 글항아리. 284 & 285쪽)

이병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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