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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묘한 하나님 타이밍<이옥희 선교사 칼럼>
이옥희 선교사 | 승인 2017.03.19 15:27

지난 1년은 하나님의 타이밍에 대하여 의심과 확신, 불평과 찬양 사이를 오가면서 많은 고뇌와 고통을 겪었다.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선교 현장을 찾는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였고 크리스천으로서는 지탄과 비난의 대상이 된 한국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침묵 때문이었고 국가적으로는 정치인들의 부정부패, 정경유착의 불법과 무법에 대하여 속수무책인 한국사회를 보면서 하나님의 심판과 타이밍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서는 하나님의 타이밍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출애굽과 예수님의 인카네이션 이야말로 하나님의 타이밍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나 또한 인도선교에 쓰임을 받으면서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꼭 그 시간이어야 되는 하나님의 타이밍을 수없이 체험하지 않았던가!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타이밍은 분명히 있다. 인류 구원을 위하는 타이밍, 각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타이밍, 한국의 역사를 변화시켜 한국을 하나님 백성의 나라, 예언자의 나라, 제사장의 나라로 사용하시는 타이밍, 우리 역사 속에서 신학과 규모가 다른 다양한 교단을 때에 맞게 불러 써주시는 타이밍, 개인과 교회를 부르시고 다방면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봉사하도록 골고루 써주시는 하나님의 타이밍이 분명히 있다.

평상시에는 용수철처럼 한 없이 눌림 받으면서도 묵묵히 참고 견디는 국민들이 자기들의 의지와 신념을 조용히 작은 목소리로 유연하게 담아내는 촛불의 행진을 보면서 나라와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타이밍을 깊이 깨달았다. 19년 넘도록 섬겨온 뉴델리 뿌렘담 고아원의 재판사건과 인도 정부의 화폐개혁이 가져온 사회혼란의 난기류 속으로 난디아카데미 3기생을 보내면서 나의 길과 선교에 대한 하나님의 타이밍을 다시 이해하게 되었다.

19년 전 나는 하나님의 타이밍 속에서 인도에 갔으며 달릿선교를 위해 쓰임을 받았다. 안드라푸라데쉬주 데칸고원 일대에서 달릿들과 함께 협력한 17년 사이에 이루어진 대부분의 사역들이 물이 아래로 흐르듯 자연스럽게 나를 찾아와 주었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필요한 사역이 눈앞에 오면 바로 물적 자원이 따라왔고 인적 자원도 동반해주었다. 그리하여 교회, 학교, 어린이집, 선교쎈타 등등의 건축도 수월하게 이루었고 장학금을 지원, 나무심기, 염소 나눔, 복돼지 나눔, 자매결연, 고아 섬김 사역도 큰 어려움 없이 잘 감당하였다. 그야말로 나는 하나님의 눈동자 속에 있었고 사역들이 도깨비 방망이를 두드리는 것처럼 기도하는 대로 응답이 되었다. 인도에서 지내는 17년 동안 어려움도 있었지만 심는 대로 열매를 거두는 순탄한 청지기로서 선교의 자유와 기쁨을 맛보았다.

하나님의 타이밍에 대한 절대 신뢰와 감사가 깨진 것은 2014년 9월 인도에서 쫓겨남으로 시작되었다. 이내 돌아갈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모든 시도가 수포로 돌아가면서 내 마음 속에 쓴 뿌리가 생겼고 분노와 원망이 깊어졌다. 함부로 던지는 사람들의 질문과 충고에 수치심과 의심이 주기적으로 발생하면서 믿음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공장에서 해고당한 노동자처럼 종을 마음껏 부려먹고 버리는 주인과 같은 하나님의 이미지가 형성되기 시작하여 하나님에 대한 불신에 휘둘리고 있을 때 남인도교단 카림나가르의 르우벤 비숍이 이메일로 면담을 요청하였다. 나는 그를 전혀 모르는데 그는 이미 인도의 목회자들과 교우들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소개를 받았다며 한국 방문 중이며 부산에 있다고 연락을 해오셨다.

르우벤 비숍의 첫 마디 인사가 가슴을 깨웠다.

“달릿을 사람으로 사랑한 당신을 만나게 되어서 기쁩니다.” “사람들에게 당신에 대한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뜨거워졌고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의 인사가 사람의 인사가 아니라 ‘이옥희 내가 너를 안다.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하며 너와 함께 하는 하나님이다. 이제 그만 너 자신을 괴롭히며 억지로 욱대기며 나와 씨름하는 일을 그만두라. 내가 너를 불렀고 파송했으며 나는 여전히 너와 함께 섬긴다.’ 라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다.

비숍과 만남 이후로 큰 변화와 기적은 없었지만 하나님의 타이밍 속에 있으면 무에서 유가 나오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지는 은총을 누린다는 사실을 알므로 나는 무슨 일이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지 주시하였다.

뜻밖에도 교회 건축 건으로 하나님의 타이밍이 선포되었다.

르우벤 비숍은 미전도 종족이 사는 산골 지역에 개척한 바딤빠믈라, 수르야탄다, 골라빨리, 샤푸람빌리지 교회 건축 도움을 청하였다. 옛날 같으면 봉헌예배에 참석하고 감동받은 성도님들이 자발적으로 건축후원 의사를 타진해오므로 기도하며 가만히 기다리면 되었으나 한국에 머무는 상황에서는 그런 기대를 할 수가 없어서 난감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절묘한 타이밍에 전부를 공급해주셨다.

연이어서 비숍은 교회가 새로 개척되고 기성의 교회들이 부흥하여 목회자 수가 턱없이 부족한 것을 타개하기 위하여 자문을 구하였다. 다양한 청년집회를 통하여 소명감을 받은 청년들을 발굴하고 그 지망생들에게 소정의 장학금 지원을 하여 신학교육을 시키는 것에 공감하면서 박사과정 학생을 포함하여 6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 지원을 약속하였다. 장학금으로 준비된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필요를 아시고 다양한 방법으로 공급하셨다.

교회 건축 후원금과 장학금을 보내고 난 뒤 하나님께서 나를 여전히 써주신다는 자신감과 감사를 회복하면서 하나님의 타이밍에 대한 묵상으로 감격하고 있는데 비숍이 급하게 메일과 카톡을 보내왔다. 가뭄으로 식수가 모자라 고통을 당하는 30개 마을 천여 주민들의 스토리를 알려온 것이다. 목이 타는 고통이 느껴졌지만 나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기도하자는 메시지만 보냈다. 3천만 원을 모금할 자신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선교지를 답사하러 떠나야 한다는 조바심이 있어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준비하며 공급하는데 내가 인간적인 생각으로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고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는 것은 촌각을 다투는 문제인데 내가 타이밍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 그들을 주님의 양으로, 형제로 생각하지 않고 구호의 대상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생각이 떠올라서 용서를 구하였다. 그리고 곧 바로 비숍에게 30개 우물개발비를 3회에 걸쳐서 보내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하나님은 두 번의 선교보고를 통해서 20개의 우물개발비를 한 달 사이에 공급하셨고 나머지도 이내 공급해주셨다. 예상보다 빠른 시간에 조용히 은혜롭게 우물개발비가 공급되는 것에 나 자신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2월이 되자 인도정부가 시행을 하고 있는 화폐개혁이 선교사는 물론이고 선교의 목을 조르고 있는 인도의 현실과 촛불 민심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는 한국의 정치경제 유착과 부패, 불의와 죄악, 다수의 국민을 소수계층의 들러리로 만드는 제국주의 지식인 집단과 그들이 만든 병든 사회 구조가 나를 내리눌렀다. 인도나 한국의 거대한 사회 구조에서 먼지 같은 내가 ‘하나님 나라의 사랑과 정의, 생명과 평화’를 외치고 구현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맥이 탁 풀렸다.

선교의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고 내가 참여한다고 곧 바로 달라질 세상도 아니고 게다가 내 사랑하는 조국이 황금만능주의, 권력지상주의의 고지혈증, 영양부조화와 사지마비로 신음하고 있는데 굳이 선교하러 갈 필요가 있겠느냐는 회의가 강하게 밀려왔다. 나라꼴이 이런데 어디 가서 무엇을 하랴 하는 절망감과 주님의 종으로서 주인의 말에 순종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 사이에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한국에서 일하고자 하는 강한 욕구에 사로잡히기도 하면서 사람을통해서든지 사건을 통해서든지 내가 하나님의 부름과 타이밍 속에 있는 건지 아니면 내 생각과 의지 속에 있는 것인지를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그 때 비숍에게서 카톡이 왔다. 고아원 아동들의 성탄 선물비로 3천 달러가 필요하니 기도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카톡을 읽는 순간 마음이 불편해졌다. 모금할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과 운영비가 부족해서 아이들이 굶주리는 것도 아니고 고아들의 성탄 선물비를 요청하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기도하자는 대답을 띄우고 잊어버렸다. 그러나 우리 샨띠홈 고아들의 성탄 선물과 기뻐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생각하고 있노라니 마음 한 구석에서 그 아이들이 떠올랐고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모금을 하지도 못했지만 아이들과 성탄의 기쁨을 나누기로 결정하고 바로 비숍에게 선물비를 보내겠다는 카톡을 보냈다. ‘돈을 빌려서 아이들의 선물을 사주면 1월 증에 한국인 편으로 3천 달러를 보내겠다’ 는 내용의. 

카톡을 보내고 어디서 선물비를 마련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는데 인근 교회에 시무하시는 박목사님께서 전화로 선교헌금으로 모여진 400만원 정도의 후원금을 인도에 헌금하기로 결정했다고 알려오셨다. 할렐루야! 목사님의 말을 듣는 순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전기가 자르르 흐르며 몸이 떨려왔다. 그 금액은 비숍이 요청한 액수보다 조금 많았고 무지정헌금이었다. 하나님께서 카림나가 고아들을 위한 선물비로 준비해두신 것이었다. 그 전화는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었다. 아무에게도 말 한 적이 없고 마음에 묻어두고 나 혼자 생각하며 불편하게 여겼을 뿐인데 고아들을 향해서 마음의 문을 여는 순간 주님께서 박목사님을 통하여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고 내가 공급할 것이며 내가 새 길을 열어준다.’ 고 말씀을 해오신 것이었다.

거짓말 같은 기적을 날마다 상기하며 혼자 웃고 감동하였다. 하나님의 타이밍 속에 있음이 분명하였다. 계속되는 촛불의 노래와 목회자들과의 만남으로 나라에 대한 부담과 선교에 대한 두려움이 말끔히 걷혔다.

“주님 종을 보내면서 종의 나라가 망하지 않도록 바로 잡아주시고 하나님 백성의 나라로 세계를 섬기는 예언자, 제사장의 나라로 세워주심을 믿습니다. 예전처럼 종을 당신의 타이밍 속에 있게 하시고 써주심을 믿습니다. 저는 역시 국내용이 아니고 땅 끝에서 떠돌이 하며 일해야 하는 외국용입니다. 인정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난디아카데미 청강생 13명을 인도로 보내면서 직면한 문제는 최소한 650만 원 정도의 돈을 입국과 동시에 인도 돈으로 환전하는 것이었다. 어디에 문의를 해도 단기간에 그런 큰돈을 바꿀 수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돈이 루피로 확보되지 않으면 난디아카데미 프로그램을 취소해야 한다는 판단이 섰다. 주님께서 상황을 다 아뢰고 신권이 유통되지 않아서 역시 노회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르우벤 비숍에게 35만 루피 환전을 부탁하였다. 그는 머뭇거리는 기색도 없이 바로 “Yes" 라고 대답을 하였다. 그는 약속대로 그 돈을 마련하여 우리 팀이 인도에 도착하는 날, 하이데라바드공항으로 나왔다. 그는 환영 플랜카드와 아름다운 숄과 인도 전통 환영 목걸이로 우리 일행 전원을 정성껏 환영을 해주었다.

환영 사진에 담긴 비숍의 사랑과 관심에 감격하여 돈을 준비해준 것과 우리 아이들을 예우하고 따뜻한 환영을 해준 것에 대하여 감사의 인사를 카톡으로 전하였다.

그는 35만 루피를 마련하기 위해서 거의 한 달 동안 날마다 은행에 출근하다시피 하였으며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은행 직원인 친구에게 큰 신세를 졌다고 하였다. 그가 한 달 동안 불편을 감수하며 내가 부탁한 루피를 힘써 마련한 이유가 내 가슴을 울렸다. 첫째는 인도에서 쫓겨난 나의 고통과 슬픔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싶어서였고 둘째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시간에 하시고자하는 일이 인도화폐개혁으로 도중하차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였다고 하였다. 비록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일이 인간의 방해와 훼방으로 중단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하였다. 

그의 담담한 고백이 나의 가슴에 활활 불을 지폈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자기들이 어려운 타이밍에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 기장교회와 한 국 교회를 통해서 문제를 풀어주셨으며 한국교회와 인도교회가 달릿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타이밍 속에서 함께 쓰임을 받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하였다.

그는 특별히 나의 신실성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내가 인도에 있는 17년 동안 그를 만난 적이 한 번도 없고 그의 노회를 방문한 적도 없는데 내가 자기들의 어떤 요청에도 최선을 다해서 돕는 모습이 자기에게 최고의 감동이고 선물이었다고 하였다.

그렇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타이밍 속에 있으며 그 시간 속에서 쓰임을 받고 있다. 사람들이 그 사실을 인정하든지 거부하든지 간에.

 

이옥희 선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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