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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없는 세상 공평하신 하나님 (마 20:1~16)2017년 3월 19일 세계기도주일 설교
이훈삼 목사 (성남 주민교회) | 승인 2017.03.20 11:30

1. 세계 기도일과 필리핀 여성
 
1) 세계기도일의 역사
 
영상에서 보았듯이, 세계기도일은 180여 나라 기독 여성들이 매년 사순절 시작하는 주간에 그 해 예배문 작성 국가로 정해진 나라 여성들의 기도 제목을 공유하면서 기도하는 날이다. 1887년에 미국에서 시작되었고, 우리나라는 1922년부터 참여한 것으로 보이고, 1967년 여러 교단의 여신도회가 연합하여 만든 한국교회여성연합회가 창립되어 1979년부터는 이 연합회 안에 세계기도일위원회가 생겨서 세계기도일 예배를 담당해 왔다. 원래는 사순절 시작하는 첫 금요일(올해는 3월 3일)에 교파를 초월하여 지역의 여러 교회들이 함께 예배드리는 것인데, 우리는 작년에 이어 주일 대예배를 세계기도일 예배로 드리고 있다.
 
우리는 작년에 쿠바 여성들이 만든 예식에 따라 예배를 드렸고 올해는 필리핀 여성들의 기도에 동참한다.
 
2) 필리핀의 역사와 현황
 
필리핀은 그리 낯설지 않은 이웃 국가다.
 
전체 면적은 한반도보다 1.3배 이상 크고 인구도 1억이 넘는다. 60년대까지는 우리보다 잘 살았던 나라다. 그러나 영상으로 지나온 역사를 보았듯이 필리핀은 오랫동안 슬픔과 아픔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나라다. 500년 전인, 1521년 탐험가 마젤란이 이 섬을 발견한 뒤로 스페인이 300년 이상을 식민지로 삼았고, 1898년부터는 스페인과 전쟁에서 이긴 미국이 지배했고, 1942년부터는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전쟁 후 독립하였지만, 외세의 침략과 식민지의 그늘이 아직도 사회 전체에 걸쳐 짙게 남아있다. 더욱이 몇몇 소수 가문들의 권력 독점과 폭력에 일반 서민들의 고통은 가중되어 왔다. 현재는 새로운 대통령이 사회 구석구석에 만연한 폭력, 낡은 관습과 전쟁을 선포하고 강력하게 개혁을 이루는 과정에 있다. 그 방법이 꽤나 거칠어서 화제가 되고 있지만, 방향은 맞는 것 같다.
 
3) 필리핀 여성들의 기도
 
올해 예배 자료를 만든 필리핀 여성들의 삶을 정리해서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포스터다.
 
현재 필리핀 사회는 전통적인 농경 사회와 새로운 개발 시스템이 혼재되어 있다. 포스터 오른쪽이 농경사회를, 왼쪽이 산업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
전통적인 농경사회는 밭농사 짓고 강과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다.
 
전통 사회에서 필리핀 여성은 농산물을 가지고 나와 행상을 한다. 과일과 채소, 생선과 육류 등 팔 수 있는 건 다 판다.
 
왼쪽은 아파트가 들어찬 도시다. 애들은 공부하고 어른들은 공사현장에서 일하고 짐도 나르면서 노동한다. 도시의 여성이라고 나을 것이 없다.
 
여성들은 대부분 가사 도우미로 일한다. 우리 옛날의 식모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여성 앞에는 뼈만 남은 생선이 있고, 여인의 옷 어깨부분은 낡아서 해졌다. 가난과 피곤이 겹쳐있다. 빈곤이 도시 여성의 삶을 옭아매고 있다.
 
필리핀 사회를 가장 밑바닥에서 떠받치고 있는 이들이 바로 여성들이다. 팔을 들어 세계를 지탱하고 있는 세 명의 여성이 힘겨워 보인다. 세상 곳곳에 빠지지 않고 배치되어 있는 필리핀 사람들은 하나 같이 얼굴이 없다. 애나 어른이나 남성이나 여성이나… 인간의 정체성이 지워지고 있다. 천하보다 존귀한 한 사람의 인격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인간의 얼굴을 잃은 사회는 건강할 수도 행복할 수도 없다.
 
세상이 이렇게 악화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공평해야 할 법과 사회 제도가 편파적이고 공평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법을 상징하는 가운데 여성은 한쪽 눈을 가려버렸다. 두 눈 똑바로 뜨고 관찰하고 분석하여 판단해도 시원치 않은데 눈을 가려버렸다. 그러니 정의의 저울이 기울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할 기준이 무너진 세상, 그 속에 남는 것은 억울함과 한(恨)이다.
 
사실 교회는 이처럼 악한 세상을 공평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바로잡아야 하건만 화가는 기울어진 저울 위에 십자가를 그려넣었다, 교회 너마저! 사순절기를 맞아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다시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리고 악으로 기울어진 세상을 바로 잡기 위한 거룩한 순례에 나서야 한다.

2. 포도원 주인의 경영법
 
1) 포도원 주인 이야기
 
오늘 예수님이 들려주신 포도원 주인의 이야기는 성경 중에서도 가장 논란이 많은 것 중의 하나다. 자산이나 뚜렷한 직장이 없는 이들은 하루하루 노동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것밖에 달리 길이 없다. 매일 아침마다 일용 노동시장에 나가지만 일할 기회를 얻어서 그 날의 생활비를 벌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운 좋게 선택될 수도 있고 아니면 하루 종일 기다려도 아무도 불러주지 않을 수도 있다.
 
오늘도 사람들은 노동시장에 나와 자신의 노동을 판다. 이들의 바람은 오직 오늘도 선택받아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뿐이다. 우리나라처럼 아마도 5시나 6시 이른 아침부터 노동시장이 형성될 것이다. 그래야 노동력을 사는 업주는 조금이라도 일을 더 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이미 한 차례 노동의 매매가 끝났지만 이 포도원 주인은 아침 9시에 다시 한번 나가본다. 아니나 다를까, 그 때까지 선택받지 못한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얼른 포도밭에 가서 일하라고 불러준다. 이 주인은 정오에도 나가보고 오후 3시에도 장터에 나가서는 일자리 없는 이들을 고용한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날의 노동 마감 시간이 다 된 저녁 5시에도 나가서 그 때까지도 선택받지 못하고 그렇다고 딱히 뭘 할 일도 없이 하루 종일 빈둥거린 이들을 불러서 포도밭으로 가서 일하라고 한다. 아침에 노동 시장이 한 순간 형성되었다가 짧은 시간에 고용이 끝나면 하루 일과가 결정되는 보통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2)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나님 나라
 
선택받은 이들은 포도밭에 가서 열심히 일한다.
 
드디어 포도밭 노동을 끝내고 주인은 오늘 고용한 노동자들에게 하루 품삯을 지급한다. 하루 임금은 한 데나리온이다. 요즘 우리로 치면 일당 6~7만원 되겠다. 주인은 늦게 온 사람부터 준다. 그런데 놀랍게도 마감 직전에 온 사람도, 정오에 온 사람도 온전한 하루 품삯을 주었다. 원래는 한 반만 줘도 크게 고마워할 일이다. 그러니 이른 아침부터 온종일 노동한 이들은 속으로 은근히 기대했다. 우린 적어도 2~3 데나리온은 주겠지. 우리가 저들보다 훨씬 일을 많이 했으니 그렇게 받을 자격이 있고 그것이 공평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웬걸, 이 이상한 포도밭 주인은 일찍 온 노동자들도 뒤늦게 온 이들과 똑같이 한 데나리온만 주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이들은 주인에게 항의했다, 이건 공평하지 않다고!
 
마치 줄 것을 다 주지 않아서 분노하며 억울해하는 이들에게 주인은 아주 간단명료하게 대답한다. 처음부터 당신들하고도 한 데나리온에 계약을 했고, 그대로 나는 지급했는데 뭐가 잘못이오? 뒤늦게 와서 몇 시간 일하지 않았는데도 하루 치 품삯을 준 것이 그렇게 공평하지 않다는 말이오? 나는 당신들과 처음 약속한 대로 일당을 지급하여 공평하게 처리했으니 받았으면 썩 물러가시오.
 
하나님 나라를 비유로 설명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은 명확하다. 그 사람이 살아가기에 필요한 것을 지급해 주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평한 세상이다. 이른 아침에 나갔지만 저녁 5시가 되도록 선택받지 못한 사람은 남들이 뙤약볕에서 일할 때 두 다리 쭉 뻗고 편하게 잤겠는가? 하루 생활비를 벌어 살기 위해서는 이 몸이 팔려야 하건만 아무도 일할 기회를 주지 않는 현실 앞에서 그는 얼마나 좌절했을까? 얼마나 포기하고 싶었을까? 얼마나 세상을 저주하고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면서 자학하며 그 자리를 떠나가고 싶었을까?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해가 저물기 시작하여 이제는 더 이상 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는 시간에도 그는 희망을 접지는 않았다.
 
누구의 하루가 더 길고 고통스러웠을까? 아침 일찍 선택받아 포도원에서 일한 사람일까, 아니면 선택받지 못하고 하루 종일 시장에서 할 일 없이 기다린 사람일까? 겉으로 보면 땀 흘려 일한 사람이 아무 일 없이 기다린 사람보다 훨씬 노동을 많이 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일찍 고용되지 못한 사람이 노동한 사람보다 평안했다고 할 수는 없다. 힘 들기는 모두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주님이 이루려고 하는 하나님 나라는 모두가 감사하면서 행복한 삶을 사는 세상이다. 좀 연약하고 무능력하고 모자라는 사람도 그에게 한 데나리온이 꼭 필요하다면 하나님은 주저 없이 채워주신다. 하나님의 자녀 모두가 함께 행복한 세상, 이런 세상이 하나님 주관하시는 나라다. 거기에 기쁨이 있고 사는 재미가 있다. 주님은 이렇게 사셨기에 마니아들은 자신의 인생과 가족을 다 버리고 쫓아다녔고 적대자들은 거짓과 음모를 꾸미면서까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다. 우린 어느 편에 서 있는가?

3. 공평하신 하나님을 증언하는 교회
 
1) 굳어진 사회 체계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경쟁이 기본 체계다. 대학에서도 절대 평가는 사라졌고 이제는 대부분 상대평가다. 아무리 잘 해도 25%만 A학점을 줄 수 있다. 옛날에 방 하나에 온 식구가 같이 살던 때는 작아도 내 방 갖는 것이 소원이었다. 지금은 얼마나 크고 인테리어는 어떤 지에 따라 아이들의 만족도가 달라진다. 왜냐하면 다른 친구들과 비교해 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비교해서 더욱 성과를 내라고 자극하는 사회, 그 속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누가 비교하지 않아도 이제는 스스로 비교해서 으쓱하기도 하고 자책하기도 한다. 이런 사회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최상층의 소수일 뿐이다.
 
주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이 체계를 와해시킨다. 내가 뒤늦게 합류한 이보다 더 많이 일했지만 원래 처음부터 약속한 것에 만족하여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람, 뒤늦게 온 사람이 일은 별로 안 했지만 일 못한 동안에 그가 얼마나 불안하고 힘 들었을 지를 헤아릴 줄 아는 사람, 또 그가 받는 임금이 하루를 먹고 살기 위해서 그만큼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인정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다. 
 
2) 십자가 : 죽음으로 저항하다!
 
평생 남들보다 더 우위에 있는 삶을 누려야만 만족하는 삶, 객관적으로 보아 만족해도 되지만 다른 사람보다 더 낫기 위해 쉬지 않고 상승욕구를 가진 사람은 이러한 주님의 계산법이 부 당해 보인다. 그리고는 못마땅해 한다. 예수님의 셈법은 비교와 경쟁을 기본 원리로 삼고 있는 사회 구조에는 적당하지 않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의 기득권자들은 계속해서 주님을 공격하고 협박했다. 협박이 참 무서운 거다. 이번 헌재 판결 과정에서 공개적으로 헌재 위원들의 신상을 밝히고 협박한 이들이야말로 테러방지법으로 무겁게 다스려야 한다.
 
지난 목요일 한국교회 인권센터가 주최한 박용철씨(박근혜 5촌) 살인 사건(SBS와 JTBC 방송 참조)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기도회가 열렸다. 이 사건을 조사한 시사 IN의 주진우 기자와 김용민 변호사는 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칠수록 정말로 자신들도 이렇게 될지 모른다는 신변의 위협을 느꼈고 공포에 휩싸이기도 했다고 한다. 정말 그럴 것 같다. 이 공포가 무섭다.
 
예수님도 얼마나 협박을 당했을까! 온갖 회유와 협박이 통하지 않으니까 마지막 방법을 동원한 것이 십자가 처형이었다.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포기하라는 기득권자들의 폭력과 위협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한 결과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좀 연약한 사람이나 모자란 사람도 최소한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원하신다. 주님은 힘의 논리에 이미 굳어져버린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가치를 선언하다가 십자가에 달려 죽임당하셨다. 오늘이야말로 예수님의 이 선언이 절실한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3) 예수를 따르는 이들 
 
우리는 바로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다가 십자가에 달려 처형당하신 주님에게만 이 각박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를 믿는 사람들로서 주님이 선언하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줄기차게 증언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교회는 바로 그런 모임이다. 그것은 모두가 막판까지 자유롭게 경쟁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끝까지 지켜야 할 가치라는 주장에 대해서 하나님 이름으로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경쟁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주신 최소한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요 하나님의 공평함이다.
 
오늘 필리핀 여성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공평이 가장 절실한 이들에 속하고 있다. 필리핀에 살면서 고난당하는 여성들과 세계 각지에 흩어져 일하면서 어려움 당하는 필리핀 여성들과 함께 기도하고 나아가 우리들 사회에서도 하나님의 공평이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의 뜻을 선언하는 교회가 되자.

이훈삼 목사 (성남 주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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