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아시아 각 지역은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 갈등과 반목이 이어지기도 하지만, 오랜 역사적 과정 속에서 공유하는 부분도 적지 않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은 같은 한자문화권에서 속해 있으면서 종교, 사상, 문화적으로 많은 내용을 공유해왔다. 이에 대한 연구도 다양하게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전문적 연구들을 시민과 함께 소통하고 공유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러한 때에 성공회대학교에서 처음으로 동아시아의 공동가치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켜 갈등을 극복하고 평화로 나아가려는 목적의 강좌를 개설했다. 종교, 사상, 문화, 정치, 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동아시아의 비슷한 세계관과 공동의 가치를 의식하면서 ‘아시아 공동체’의 가능성과 의미에 대해 지속적으로 탐구하는 강좌다. 강좌명은 <아시아공동체론> (책임교수: 이찬수) 이다.  이 강좌에서는 강사진의 절반 이상을 중국, 일본 등 해외 학자로 구성하고 있다. <에큐메니안>은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이 강좌의 요지를 매주 한 차례씩 소개함으로써 동아시아적 공동 가치를 탐색하는 다양한 안목을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아시아 공동체론> 강의에 김준 교수(중국, 절강공상대학)가 참여해 “아시아 담론의 해체와 재구축 2”를 주제로 강의하고 학생들과 토론했다. 다음은 김준 교수의 강의를 정리한 내용이다.

정체성과 공동체

나는 가끔 내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할 때가 많다. 아내와 아이는 일본에 살고, 나는 중국에 살면서, 강의 차 한국과 일본 출장을 자주 다니다 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아마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은 주류이기보다는 주변인일 것이다. 정체성을 분석하게 되면, 공동체와 관련이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동체라 하면 흔히 ‘비슷함’, ‘공동’의 개념을 먼저 떠올린다. 이 때문에 공동체는 응집성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공동체는 그 이름과는 달리 실제로는 사람들을 분산시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EU 공동체는 기독교 문화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모였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기독교 아닌 이슬람이나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에게서 차별을 받는 경우가 생겼고, 그들의 불만과 욕구가 테러라는 형식으로 나타나곤 한다. 그렇다면 EU에 공동체라는 단어를 사용해도 되는지 의심스러워진다.

공동체는 나의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진다. 나에게 이익이 되어야만 공동체가 쓸모가 있다. 나의 이익을 위한, 나한테 도움이 되는 공동체가 나에게 쓸 데 있는 공동체이다.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이 세계도 존재가 무슨 의미인가. 그래서 공동체는 나의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다. 

다양한 아시아

그렇다면 우리가 아시아에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아시아에 사는 우리에게는 아시아가 얼마나 유용한지를 보아야 한다. 아시아적 맥락에서 나는 누구냐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 ‘나’가 아시아의 다른 구성원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보아야 한다. 이런 것을 잘 보아야 아시아공동체에 대한 담론이 확산되어 나간다. 만일 언어, 민족, 기후, 문화 등에서 다양성이 두드러지는 아시아에서 공동체 논의가 가능하다면 전 세계를 맥락으로 하는 공동체 논의도 가능할 것이다.

이 때 생각해야 할 것 중의 하나는 민족 개념이다. 근대적 민족 개념은 같은 피 즉, 같은 조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우리가 단군의 후손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주변국과 어울리며, 피도 섞어 왔다. 근대에 들어서서 피, 혈연의 개념으로 민족을 규정지었기 때문에 단군이라는 존재를 끌어들이게 되었을 뿐이다.

지도로 보는 다양성

위의 지도를 보게 되면 낯선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지도의 중심에 아시아가 아닌 유럽이 있기 때문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만든 세계지도를 찾아보게 되면 오스트레일리아가 중심에 서있다. 지도는 굉장히 객관적인 것 같지만 다양한 화법과 시각에 따라 전혀 달라질 수 있다. 아무리 객관적인 것 같아도, 인간의 두뇌를 거쳐 다시 인간의 입, 손으로 쓰인 것은 주관성을 피해갈 수 없다. 

지도도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은 모든 문제에, 특히 인문학적 관점에서는 어떤 사태에 여러 가지 답안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꼭 어느 것이 틀리고 맞는지 말할 수 없다. 여러 가지 해석과 여러 가지 답이 있을 수 있다. 

영토의 구분과 공동체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등의 주는 누가 어떻게 구분한 것일까? 유럽은 하나의 주이고 중국은 아시아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유럽과 중국의 면적은 비슷하고, 심지어 인구는 중국이 더 많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한 개의 주가 될 수 없던 것일까? 

이는 유럽 사람들이 생각하는 문명의 개념 때문이다. 유럽은 기독교를 공유하는 자들만이 문명인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유교, 불교, 이슬람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생각하기에 야만인처럼 보인 것이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가 나누어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그저 상식으로만 생각했지, 질문을 가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우리가 해야 될 일들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질문을 하고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삶, 특히 학문에 가장 중요하다.

낯섦에 대한 배척과 호기심

내가 있는 절강공상대학교 학생들과 한국의 학생들이 서로 교류한 적이 있다. 한번은 식사를 같이 하는데 이런 일이 있었다. 중국인 여학생이 밥을 먹으면서 교수에게 담배를 주고 자기도 같이 담배를 피웠다. 그것을 본 한국 학생들은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는 뜻인 냥 동시에 머리를 숙였다. 한국 문화에서는 예의범절에 어긋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인간은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한다. 우리는 항상 자기가 보아왔던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다른 것들을 배척한다. 하지만 나중에는 익숙하지 못한 것이 배척이 아닌 흥취로 다가오게 되고 재밌는 것으로 바뀌는 경험을 한다. 그것이 더 익숙해지면 나의 새로운 상식이 되고 나의 삶에 영향을 주게 된다. 다른 것을 볼 때 배척하지 말고, 흥취와 호기심을 갖고 다가가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다음은 학생들과 김준 교수가 나눈 질의 응답이다. 

김예빈 : 서양 사람들이 아시아를 야만인이라고 했는데, 아시아인으로서 어떤 노력을 해야 그러한 인식을 주체적으로 바꿀 수 있을까?

김준교수 :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를 기준으로 하되, 아시아인으로서 아시아에 대한 새로운 의미 부여와 적극적인 무언가를 모색하는 작업이 가장 중요하다. 그것이 이 강좌의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최미지 : 현실적으로 아시아공동체가 실현되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시아에도 여러 국가가 있고 각자가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정치적 이념, 종교, 영토분쟁, 역사 분쟁 등 어려운 일이 많다. 아시아공동체론을 어떻게 다루고, 아시아공동체 논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알겠지만, 실제로 실행하기 위해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무슨 노력을 해야 하는가?

김준교수 : 아시아 전체는 물론 동아시아 공동체 이야기하기도 힘들다는 푸념이 많이 나온다. 동아시아에 미국도 끼어들면서 관계가 악화되는 시기가 되었다. 어떻게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까. 국가 간에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일단 나라와 나라간 연합으로서의 국가공동체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나 민족의 차별성, 개별성을 떠나서 인간이 살아가는 중요한 가치, 타자 이해의 마음가짐으로 일상을 살면서, 내 옆에 앉은 사람과 다르지만 대화를 하고 소통을 하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그리면서 이념보다는 경제 공동체를 먼저 구성해야 한다. 그것이 아시아공동체 문화를 확장시키는 첫 단계이다. 

이찬수교수: 베트남에 제일 많이 투자하는 외국이 한국이다. 경제적 투자는 서로를 제일 친밀하게 한다. 베트남은 사회주의지만 한국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이념적인 차이보다 경제적 차원에서 실질적으로 사람이 오고갈 수 있는 기초를 확보해왔기 때문이다. 경제적 교류를 활성화하되, 가능한 서로를 침해하지 않도록 보완장치를 갖고 개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명진 : 공동체는 나에게 이익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아시아는 다양한 언어, 문화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다양성이 도리어 갈등이 더 크게 부르지 않을까.

김준교수 : 공동체가 먼저 있고 그 다음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과 살게 되어 있다. 처음에는 싸우고 갈등을 겪어도 시간이 흐르면 반성을 하든지 하게 된다. 그러다가 점차 공동체가 되어간다. 갈등, 분쟁들은 공동체를 방해하는 걸림돌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이해하게 해주는 디딤돌도 된다. 살아가다 보면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가족도 그런 식으로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이찬수교수 : 지난 2월, 한일대학생평화인권캠프 참석차 일본 나가사키 지역에 다녀왔다. 1920년대에 나가사키 사세보에 엄청난 크기의 무선송신시설이 세워졌다. 하리오 송신소라고 한다. 136미터 높이의 원뿔형 거대 송신탑 세 개가 300미터 간격으로 삼각형으로 세워졌다. 이 송신소 때문에 1920년대에 이미 한국은 물론 대만까지 군함들이 무선으로 전파를 주고 받을 수 있었다. 백년 전에 일본의 해군 수준이 이미 동아시아 전체를 커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현장을 둘러보고 한국 대학생들은 일본이 제국주의적 동아시아 침략의 근거를 이미 가지고 있었다고 보고, 일본 학생들은 앞선 기술의 능력일 가지고 있었다고 해석했다. 하나의 사물이지만 보는 눈이 너무 달랐다. 두 나라 학생들 간 토론을 통해 역사를 보는 관점의 차이를 교정하고, 서로 이해하고 공감해가는 과정이 있었다. 갈등이 있지만 대화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겼다.

손영채 : 예전에는 문명을 통해 사람을 나누었는데, 근대에는 인종을 통해 사람을 구분했다. 시간을 역행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근대에 무슨 일이 있어서 이런 현상이 발행한 것인가?

김준교수 : 근대에 오면 나라가 하나의 기본적인 활동 단위가 된다. 개개인이 도덕적 소양과 학문으로 인간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가 하나의 기본적인 행위의 주체가 된다. 개개인은 소외된다. 다만 내가 이 나라에 살기 때문에 내가 하기 싫어도 선뜻 해야 한다. 나라가 못살게 된 것은 외부의 탓이라고 교육을 시킨다. 근대는 개성의 시대, 자유의 시대라고 교육하면서도,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내가 이 나라를 통해 나라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 교육도 시킨다. 사랑에도 차별을 둔다. 근대국가가 역사 교육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준 것은 나라를 위해서 죽기를 각오하고 충성하라는 것이다. 국가의 지배자는 국민들로 하여금 자기 말을 듣게 하려고 노력한다. 근대가 만들어낸 공동체의 특성은 이렇게 타자를 억압하고 차별하는 구조를 한다. 내가 우월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근대의 공동체 구조다. 이러한 것을 극복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하성민 : 아시아 공동체는 소통과 이해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다른 국가를 배척하게 되면 공동체의 취지에 안 맞고, 또 다른 차별을 하는 것이 아닌가?

김준교수 : 같음을 전제로 해서만 공동체를 형성하면 또 다른 폭력을 가할 수도 있다. 아시아공동체를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가 공동체를 만들어서 세계를 지배하자는 뭐 그런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 받을 수 있는 열린 공동체를 이루어보자는 것이다. 호수에 물이 흘러들어오고 나가지 않으면 바로 썩는다. 공동체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고민하고 앞으로 만들어야 할 공동체는 열린 공동체다. 그래서 이러한 강좌를 열고 부단히 생각해보 것 이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까는 모두가 고민해야 한다. 아시아공동체라는 연합체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전 세계 인간이 잘 살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아시아에만 한정짓고, 어느 특정 국가를 이겨 세계를 제패하려는 생각을 한다면 지금의 부정적인 근대 국민국가의 문제점과 다를 것이 없다.

엄재연 : 열려진 공동체라고 하셨는데, 안중근은 <동양평화론>에서 아시아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군대를 만들어서 저항을 하자는 이야기도 한다. 이런 식이라면 어떻게 열린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는가?

김준교수 : 일본에서는 아시아가 서구의 침입을 받아왔기 때문에 서구의 침입에 대항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생각을 했다. 거기에 대항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시아주의이다. 여기에서 일본 침략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또 하나의 배타적 국가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타자를 배척하고 방어하는 것이 옳으냐 틀리냐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사상이 어떤 시대적 배경에서 어떻게 나왔는지, 지금의 시대에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학생 : 그러면 안중근의사는 일본의 아시아침략을 반대하면서 일본의 총독을 처단했다. 이 두 입장 간에 상충되는 부분은 없는가?

김준교수 : 안중근은 테러범이라는 입장도 있었고 안중근은 애국지사라는 입장도 있었다. 처음에는 이들이 부딪힌다.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 당시의 상황에 대해 고민하고 안중근을 들여다 보면 또 다른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같은 것들은 우리가 새롭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안중근을 애국주의자라고민 하면 한국에만 국한된다. 안중근을 평화주의자로 보아야 한다. 

학생 : 안중근은 동양평화론에서 공동의 화폐를 발행하자고 하였다. 이것이 아시아공동체에도 적용이 될 수 있나?

이찬수교수 : 안중근은 한국인에게 영웅과 같지만 당시 안중근은 일본의 천황을 존경했다. 천황의 이상적 아시아 건설에 동의했다.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의 총독으로 부임하면서 조선의 식민지정책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자, 안중근은 작은 폭력을 통해 더 큰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보고 이토를 제거했다.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다 애국주의자다라는 프레임 안에 둘 것이 아니라, 더 큰 평화를 상상하는 보편적 가치 구현자로 봐야 한다. 화폐공동발행은 당시로서도 상당한 혜안이다. 아직도 현실화된 적은 없지만 EU에서 보듯이 실제로 소통, 교류할 수 있는 계기를 줄 수 있다. 폐쇄적, 근대국가를 확장시켜 평화를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물론 그로 인한 폐해도 최소화해야 한다.

김준교수 : 안중근에게서 권력자에게 저항하는 이미지를 보아야 한다. 단순히 한 사람을 죽여서 구조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안중근이 도전하고 노력한 것에 가치를 두어야 한다. 테러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시원 : 아시아 공동체라는 용어 자체가 배타적인 이미지를 풍긴다. 내가 속한 공동체에 소속감을 느끼고 이 공동체가 나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국가라는 틀 때문에 한계는 있지만, 연대감과 소속감은 가질 수 있다. 나는 일단은 한국인으로서의 소속감을 가지게 되었는데, 여기서 굳이 왜 아시아인까지 생각해야 하는 것인가. 국가라는 틀이 좁아서 그런 것인가. 국가보다 더 넓은 차원에서 교류를 하며 넓혀나가자는 것인가.

김준교수 : 애국심을 갖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의 마음을 더 넓혀라. 아시아를 넓히고 인간의 보편적인 인종, 국가를 넘어서서 봐야 한다. 왜 우리가 애국주의에 비판적인가? 국가라는 이름으로 우리한테 주입한 것이 더 크고 많고, 지배자의 지배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정책이 많기 때문이다. 국가는 누구에 의해 운영되는가. 국가가 우리를 위해 해야지 우리가 국가를 위해 하는 것은 아니다. 공동체라고 하는 것이 벽이 있어서는 안 된다. 벽이 있기는 하되, 느슨해야 한다. 개방적이어야 한다. 벽을 실선 말고 점선으로 하자.

박정우 : 강의 중에 당나라의 사례를 긍정적으로 이야기하셨는데, 그 당시에도 많은 침략, 전쟁이 있었다. 주변국이 조공을 하기도 했다.  

김준교수 : 당나라를 우리가 그대로 모방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당나라를 돌아보면서 내가 하는 구상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이상적인 공동체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잘 먹고 잘 사는 이상적인 공동체는 천당에나 있을 것이다. 

장진하 : 공동체는 자신의 이익이 있기 때문에 참여한다. 그게 보장되지 않으면 참여하지 않는다. 공동체에 대해 어떤 논의가 가장 우선적으로 있어야 하나.

김준교수 : 아시아공동체를 만들면 무슨 이익이 있나? 평화롭다. 그게 제일 큰 이익이다. 눈에 띄지 않지만 우리 삶을 바꿀 수 있다. 공동체를 나라의 연합체로 생각하면 안 된다. 유엔 비슷한 것이 아니다. 공동체는 나라가 주체가 되어서 안 되고, 사람과 사람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인 공동체여야 한다. 나라를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면 엄청난 문제가 있을 것이다. 개개인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만이 우리가 상상한 공동체가 될 것이다. 

윤예원 : 열려진 공동체를 형성하려면 벽이 없어야 한다. 더 큰 공동체를 형성하려 한다면 차별적, 폭력적인 인종차별을 넘어야 한다. 이런 이데올로기를 바꿔야 한다. 어떤 방식 어떤 방향으로 바꾸어야 하는지 궁금하다.

김준교수 : 우리는 지금 다민족, 다문화를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들이 공존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획일성이 없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벽을 만들면 내부에서는 평등할 수 있지만 타자에 대해서는 억압할 수 있다. 그래서 항상 열려져야 한다. 공동체를 깨뜨리기 위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게 이상적인 공동체다.

박인혜 : 아시아라는 것은 애초에 서구중심적인 사상으로 묶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상식으로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서구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정의를 다시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김준교수 : 아시아공동체니까 아시아의 이미지를 통해 다시 생각하는 것이다. 아시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해 보면 아시아가 굳이 한 개의 주가 아니고 여러 개로 나뉘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동아시아는 사람마다 나누는 방법이 다 다르다. 인위적으로 나누어진 가치판단에 대해 우리가 다시 성찰하고 비판적인 생각을 가져야 한다. 아시아가 유럽보다 낫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유럽중심주의 아시아판 정도에 머문다. 

김현수 : 공동체라는 것을 보면 리더가 생기는데 리더는 힘, 경제 논리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 리더가 중국, 한국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아시아공동체가 원하는 방향이 한국과 중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베트남, 필리핀 등은 끌려가게 되는 것 아닌가.

김준교수 : 나라라는 개념을 자꾸 생각하면 결국 공동체가 커져버린 자기중심적 국가밖에 되지 못한다. 나라를 기본으로 공동체를 만들면 힘의 논리가 생기고 문제가 많이 생겨난다. 반드시 뛰어넘어야 할 것이다. 나라를 단위로 하는 공동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현옥 : 공동체를 위해서 나와 다른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한데 상대를 포용, 이해하려는 것을 하기 보다 나의 정체성을 고집하는 사람과 강요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자세로 다가가야 하는가.

김준교수 : 자기가 좋다고 해서 남한테 강요해서는 안 된다. 내 생각에는 옳지만 다른 사람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근대에 와서는 이게 심해지고 있다. 지금 풀 수 있는 방법은 소통하면서 합의점을 찾는 수밖에 없다. 내가 맹신하는 것에 대해서 경계를 가져야 한다. 소통을 통해 풀어야 한다. 대등한 입장에서 논의를 해야 한다. 공통점을 찾아야 하고 서로 납득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신희윤 : 지리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과거 지도는 정치적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쓰였다. 지도가 현대의 공동체 의미를 부여하는데 방해요소가 될 수 있는지?

김준교수 : ‘지도의 정치학’이라는 부제를 붙이고 싶다. 자기나라 지도는 시각적으로 원래보다 더 커져 보이는 색을 사용한다. 자신과 사이가 안 좋은 나라에게는 조그맣게 보이는 색을 칠한다. 너무도 많은 주관이 부여된다. 인간이 인간을 속이는 방법은 많다. 지도는 객관적으로 보이지만 그 뒤에는 기만이 있다. 

마지막으로, 다르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면 안 된다. 겁을 내지 말고, 다르다는 것에 호기심을 갖고, 모두 인간이고 착한 심성을 가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간에게 착한 본성이 있다고 가정하고 접근하는 것이 타자와 어울려 잘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정리: 손영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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