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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터필라)에 관하여<일점일획 말씀묵상>
이영재 박사(성경과설교연구원) | 승인 2017.04.14 11:17

‘말씀’과 ‘기도’는 기독교 신앙생활의 두 중심축이다. 오늘은 ‘기도’에 대해서 좀 더 깊이 묵상해보자. 기도는 히브리어로 <터필라 תְּפִלָּה>라고 하는데 이 명사는 동사 <팔랄 פָּלָל>에서 파생하였다. 성경 히브리어에서 ‘기도하다’란 뜻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동사는 매우 다양하다. 예컨대 ‘말하다’란 동사 <아마르 אָמַר>는 하나님께 아뢰고 또 하나님께서 응답하는 대화의 동작을 묘사하는데 종종 ‘기도하다’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요구하다’란 뜻의 동사 <샤알שָׁאַל >도 종종 ‘간구하다’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또 ‘간구’<터힌나 תְּחִנָּה>란 명사는 ‘기도’<터힐라>란 명사와 나란히 병렬되어 나오기도 한다. ‘기도’<터필라 תְּפִלָּה>를 더욱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사 <팔랄 פָּלָל>의 의미를 더 연구해 보아야 한다.

<팔랄>이란 동사가 본디 무슨 뜻으로 쓰였는지 알기는 매우 어려워서 학설도 여러가지이다. 백여 년 전에 독일의 벨하우젠(J. Wellhausen)이라는 학자가 ‘칼날’과 관련된 아랍어 동사 <팔라>과 연관이 있어서 히브리어 <팔랄>은 ‘자상을 내다/상처를 내다’란 뜻으로 사용되었다고 보았다. 이것은 이방인들이 제의 중에 광란하면서 자기 몸에 칼로 자상을 내는 관행을 가리킨다. 성경의 율법은 그러한 우상숭배의 관행을 금지한다(신14:1).

벨하우젠의 주장과는 달리 아랍어 <팔라>와의 연관성은 인정하지만 그 의미는 ‘자르다’라고 보는학자들이 있다. 이 의미에서 ‘구별하다’란 뜻으로 확장되고 나중에는 ‘판결하다’란 뜻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동사에서 파생한 명사 중에 <펄릴라>는 ‘재판관’이란 뜻인데 이러한 확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어떤 학자들은 동사 <팔랄>이 본디 ‘넘어지다’란 뜻이었는데 이것이 발전하여서 엎드려 절하는 동작과 연결되면서 ‘기도하다’란 의미로 발전하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 스파이저(Speiser) 같은 학자는 이들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서 <팔랄>은 ‘평가하다/고려하다’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창48:11; 삼상2:25; 겔16:52; 시106:30같은 구절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동사가 피엘로 쓰이면 ‘생각하다/고려하다’란 뜻이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성경에서 히브리어 <팔랄> 동사는 84회 나오는데 대부분 히트파엘(재귀형)로 사용되고 있다. 이동사가 히트파엘(재귀형)로 쓰이는 경우에 ‘기도하다’라고 번역한다. 본디 ‘자르다/구별하다/고려하다’란 뜻의 이 동사가 히트파엘(재귀형)로 사용되면 그 뜻이 변하여 ‘기도하다’란 뜻이 되는지 그 이유를 알기가 쉽지 않다.

동사 <팔랄>의 의미 중에 ‘구별하다’란 의미가 ‘재판하다’란 뜻으로 확장되었는데 이것이 히트파엘로 쓰이면서 ‘하나님을 재판관으로 삼다’란 뜻으로 의미가 더욱 확장되었다고 보는 주장이 있다. 또 골드만(Goldman) 같은 분들은 <팔랄>에 ‘자르다/깨뜨리다’란 뜻이 있음에 주목하여 이것이 히트파엘(재귀형)으로 되면 ‘자기 자신을 깨뜨리다’란 뜻이 되어서 ‘통한하며 뉘우치다’란 뜻이 되고, 이것이 ‘기도하다’란 뜻으로 정착되었다고 본다.

이와는 달리 토마스(A. Thomas)란 학자는 ‘결정하다/해결하다’란 뜻이 재귀형이 되어서 ‘중재자로 활동하다’란 뜻이 되는데 여기서 ‘기도하다’란 의미로 발전했다고 본다. 또 어떤 분들은 ‘평가하다’란 동사에서 히트파엘(재귀형)이 되어 ‘자신을 되돌아보다’란 뜻이 되면서 기도하는 행위를 가리키게 되었다고 본다. 이처럼 ‘기도’<터필라>란 단어에 관한 어원을 따져보는 학설은 매우 다양하다.

이러한 주장들을 종합해 보면 일정한 공통성이 발견된다. ‘기도’는 자신을 돌이켜 보면서 자신의 행위를 평가하고 반성하는 행위가 기본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을 돌아보면서 반성의 기준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에 세우는 행위가 기도이다. 그러므로 ‘말씀’은 ‘기도’에 없어서는 안될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말씀’이 없이는 성경이 가르치는 ‘기도’가 될 수 없다.

무릇 종교라고 하면서 기도하지 않는 종교는 없다. 모든 종교는 기도를 강조한다. 기도 없는 종교는 없다. 그러나 다른 종교들의 기도와 기독교의 기도가 다른 점은 무엇인가? 기독교의 기도는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은 기도를 말씀에 입각해서 드리도록 가르치고 있다. 바알종교는 기도자 자신의 여망을 이루기 위해서 바알 신에게 자신의 존재를 바치는 표현으로서 자기 몸에 상처를 내는 광란의 기도를 가르쳤다. 그러나 야훼종교는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움으로써 늘 말씀의 실존으로 자신을 변화시켜가는 기도를 가르친다.

오늘 한국교회는 바알종교의 기도를 드리는가, 아니면 야훼종교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가? “사람이 귀를 둘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잠28:9).

이영재 박사(성경과설교연구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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