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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은 비어 있었다! (요한 20:1~10)2017년 4월 16일 부활주일설교
이훈삼 목사 (성남 주민교회) | 승인 2017.04.17 12:04

■ 주간 단상 : 세월호 3주기

지난 3년 동안의 내 설교 자료를 훑어보면 그동안 세월호에 대해서 참 많이 이야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느 한 사건에 대해서 이렇게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언급하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 지금도 뚜렷한 기억 - 성가대원들 점심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가 TV 긴급 뉴스에 세월호가 바다 한 가운데에서 쓰러져 있는 장면이 나왔다.
 
그러나 곧 2~3명 사망하고 전원 구조했다는 속보에 그러면 그렇지 이렇게 온 국민이 두 눈 뜨고 바라보고 있고 우리나라의 전 경찰력과 군사력을 동원하면 대부분 구출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그리 큰 걱정 안하고 밥을 먹었었다. 그러나 이런 낙관은 얼마 안 가서 산산이 부서졌고 전 국민은 그로부터 며칠 동안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온 마음과 두 눈을 TV에 고정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304명의 사람들이 아우성치며 갇힌 세월호가 우리 눈앞에서 고스란히 가라앉는 모습을 그냥 지켜보았다. 대한민국 전체의 집단적 무기력함이 그대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사고 3주기를 맞는 올해는 공교롭게도 부활주일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리고 그 전에 그토록 온 국민이 염원하던 세월호 인양과 진상 규명이 흐지부지될 것 같았는데, 촛불 혁명과 대통령 탄핵·구속을 거치면서 거짓말처럼 빠르게 진행되어 드디어 3년 동안 바닷물 속에 잠겨 있던 세월호 본체가 뭍으로 올라왔다. 그 처참한 몰골에 아직도 가족을 저 배안에 두고 뼛조각 하나 수습하지 못한 9명의 미수습자 가족과 295명의 유족들의 참담함은 극에 달했다. 그럼에도 세월호 3주기와 부활주일이 일치하면서 우리는 더욱 기대감을 갖고 부활을 맞이하고 있다.
 
전혀 불가능했던 부활의 현실이 놀랍게도 제자들 눈앞에 펼쳐졌듯이 바로 오늘 여기서 세월호의 어둠이 걷히고 새로운 전환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면서 우리는 부활주일을 맞이하고 있다. 이제는 그만하자고, 3년 내내 온 나라가 그 문제로 시끄러워서 이제는 지겹다는 말들도 있다. 그러나 그냥 딱 한 가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자식이 저렇게 억울하고 고통스럽게 죽었는데 그 원인이 무엇인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그 누구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 상황을 인정할 수 있는지 되묻는 것 하나로 정리하고 싶다.
 
예수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성 금요일 저녁에 성남 시민단체들은 세월호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상영했다. 우선 성남시민들이 그 동안 활동했던 영상들을 편집해서 만든 작품을 통해 성남시민들의 공감과 열정을 같이 보았다. 그리고 세월호에서 마지막까지 구조하다가 맨 나중에 탈출한 시민이 그 후에 어떤 트라우마를 겪으며 살고 있는지 그 일상을 담은 ‘승선’, 어느 한 순간 동생을 잃었지만 일상을 견디고 살아가야 하는 가족들의 소소한 상처를 말하는 ‘오늘은 여기까지’, 단원고 희생자들과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한 추모 공원을 그들이 태어나고 자라고 공부하면서 추억이 쌓인 안산 시내 공간에 만들면 좋겠다는 유족들의 바람과 그러면 지역이 일종의 묘지처럼 이미지가 훼손되어 재산상으로 큰 불이익을 당하기에 먼 곳에 설치했으면 좋겠다는 안산 일부 주민들과의 갈등과 그 과정에서 유족들이 당하는 아픔을 그린 ‘기억의 손길’을 보았다. 모두 가슴 멍한 내용들이어서 성 금요일의 의미를 더 짙게 해주었다.
 
세월호 3주기를 맞이하여 여러 곳에서 추모의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모두 우리의 무뎌진 영성을 깨우는 음성들인데 그 중에서도 원로 소설가 김훈 선생이 신문에 기고한 글 ‘세월호는 한국의 괴로운 자화상이다’가 특히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그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한겨레신문 2017.4.13)
 
“숨진 단원고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갈 때 받은 용돈은 5만~10만원 정도였다. 나와 말을 나누었던 여러 학부모들이 그렇게 말했다. 이 학부모들은 대체로 시화공단을 중심으로 일하는 근로소득자들이거나 소규모 자영업자들인데, 살림 형편이 “다들 고만고만하다”고 말했다. 수학여행 용돈 5만~10만원은 그 ‘고만고만’한 살림 규모에서 자연스럽게 정해지는 액수일 것이다. 이 액수에는 생활의 고난과 소망의 무게가 실려 있다. 고난과 소망이 교차하면서, 생활은 영원하다. 이 5만~10만원은 삶을 통과해 나온 숫자로 거품이나 과장 없는 생활의 지표다. 나는 정부가 발표하는 물가동향이나 거시경제지표보다도 이 5만~10만원의 지표를 더욱 신뢰한다. 
 
막내로 태어난 한 학생은 15만원을 받았는데 아버지가 10만원을 주었고 취직한 형이 3만원, 누나가 2만원을 주었다. 갓 취업해 받은 월급으로 수학여행 가는 막내에게 용돈 2만~3만원을 주는 큰 자식들의 성취감과 자부심, 그 돈을 받는 막내의 기쁨(용돈은 아버지한테서 받을 때보다 형한테 받을 때 더 신난다. 이때 형과 동생은 혈맹이 된다), 그 돈을 주고받는 자식들의 모습을 보는 부모의 뿌듯한 - 이 작은 행복을 위해 부모는 평생의 노동을 바쳐서 자식을 기르고 가르쳤던 것인데, 이 소중한 행복은 지금 바다 밑에 잠겨서 돌이킬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는 사소한 것들이 부모들의 슬픔에 불을 지른다.
 
죽은 아이의 목소리, 웃음소리, 노랫소리, 빛의 폭포처럼 흘러내리던 딸아이의 검은 머리채, 처음으로 립스틱 바르고 깔깔 웃던 입술, 아들이 동네에서 축구 하고 돌아온 저녁의 땀 냄새, 학교 가는 아이를 먹이려고 아침 밥상을 준비할 때 찌개가 끓으면서 달달거리는 소리…. 이것들은 모두 하찮은 것인가. 이 사소한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그것을 잃고 슬퍼하는 엄마들을 보면서 비로소 안다. ”
 
부활의 기쁜 소식이 오늘 여기에서는 9명의 미수습자 수습, 유족 위로, 진상 규명의 복음으로 들려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1. 새벽에 일어난 사건
 
1) 미드 CSI는 한 회를 마치면 등장한 캐릭터들을 따로 보여준다.
 
델 카라바조(Cecco del Caravaggio), 그리스도의 부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은 3명이다. 마리아, 베드로, 그리고 요한으로 보이는 애제자. 이들은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가장 먼저 예수님의 무덤을 찾은 제자들이다.
 

제일 먼저 마리아가 아직 새벽이라 어두울 때에 무덤을 찾아왔더니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이 옆으로 치워져있는 것을 보고 너무 놀랍고 두려워서 그대로 다시 달려와서는 베드로와 애제자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유진 버난드(1850~1921) 무덤으로 달려가는 베드로와 요한
그러자 베드로와 애제자가 즉시로 막 달려갔는데 아무래도 젊은 제자가 먼저 도착했지만 밖에서 무덤 안을 들여다보기는 했지만 감히 무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 서 있었는데, 뒤늦게 달려온 베드로가 도착하자 바로 무덤 안으로 들어갔다. 놀랍게도 무덤 안에 주님의 시신은 없었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추모관 짓는 것도 주민들은 반대하는 형편인데 2천 년 전에 무덤을 찾아가고 싶어 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것도 아직 어두운 새벽에, 여성 혼자서 말이다.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 아니고서는 실행할 수 없는 행동이다. 참 신앙은 모두 하기 싫어하는 것을 실천하고 모두 가기 싫어하는 곳에 가는 것이다.
 
2) 중요한 것은 시신을 안치해 놓은 무덤, 거기에 죽임 당한 예수님이 당연히 차갑게 누워 계셔야하건만, 주님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어쩌다가 죽은 줄 알고 장례를 치렀는데 나중에 깨어나는 경우가 드물지만 있다고 한다. 그런 경우 대개 육체에 너무 큰 상처가 나지 않는 교수형이나 약물, 또는 일시적 심장마비로 죽는 경우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손과 발에는 커다란 대못이 박혀서 6시간 동안 살이 찢기고 뼈가 뒤틀렸다. 게다가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옆구리는 창으로 찔렀다. 물리적으로 일시적 죽음일 수가 없는 사형 방법이다. 그러기에 주님이 잠시 기절했다가 일어나 도망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추론이다. 당연히 바로 이 어둡고 음침한 무덤 안에 주님의 시신이 놓여 있어야만 했다. 그런데 없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처참한 몰골이 머물러야 할 무덤이 아무 것도 없이 비어 있었다. 오늘 복음서는 이 놀라운 사건을 전하고 있다.

2. 빈 무덤 이야기를 기록한 요한복음의 목적
 
1) 말과 글
 
인간의 탁월한 능력 중 하나인 언어는 말과 글로 구분한다. 말과 글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똑같은 것은 아니고 각 자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말은 본질상 지금 여기의 성격이 강하다. 요즘은 녹음기가 있어서 녹음하면 오래 보관할 수 있지만 본래 말이란 입 밖으로 발설되는 순간 흩어지는 것이지 보관용이 아니다. 그리고 말은 그 자리에서만 들을 수 있는 것이지 다른 곳에서는 들을 수가 없다. 이것이 말의 특성이었다.
 
헬라어 요한복음
반면에 글은 파피루스나 양가죽이나 종이에 문자로 기록하는 것은 여러 곳에서 돌려 볼 수 있고 시간을 두고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말에 머물지 않고 문자인 글로 보관되었다는 것은 인류 역사의 흐름을 결정지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복음서는 초대교회에서 실행되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을 문서로 정리한 것이다. 말로만 해도 되었을 것을 굳이 어렵게 글로 문자화시킨 것은 그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어느 한곳에서만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그리고 특정한 때만이 아니라 시대를 이어서 꼭 전해져야 한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도 그렇다.
 
2) 소문에 대한 증언
 
특별히 오늘 요한복음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은 예수님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떤 모습으로 부활하신 것인지 밝히고 있지는 않다. 그냥 당연히 차가운 시신으로 누워 계셔야 할 예수님이 무덤 안에 계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님 사형 당하시고 부활하신 후 초대교회는 이제 예수님 없이 예수 공동체를 유지해야 했는데 사방으로 공격을 당하고 있었고 그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변호하고 증언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사명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의 부활은 거짓이라고 세차게 공격했다. 일면 이런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누가 전무후무한 부활을 쉽게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 나름대로 예수 부활에 대한 합리적인 해석을 내놓았다. 그것은 누군가 아마도 제자들이 몰래 예수님 시신을 무덤에서 빼내어 다른 곳에 두고는 부활했다고 거짓말 한다는 주장이었다.
 
오늘 본문 1~3절에서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라고 적은 것은 이러한 세상의 의혹과 억측이 설득력 있게 확산되고 있었고 요한복음은 바로 이런 비신앙인들의 주장에 대항하는 문서였다 : 우리는 주님의 시신을 훔치거나 빼돌리지 않았으며 우리가 갔을 때 이미 무덤 문은 열려있었고 무덤 안은 비어 있었다.
 
3) 글의 체험
 
정말 중요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사건,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어떤 객관적 물증도 제시하지 못한 소수의 주장이 그냥 수그러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믿을 수 없는 죽은 자의 부활, 이것을 몇 사람이, 얼마 동안 주장할 수는 있으나, 그러다가 스스로 소멸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이 동화같은 이야기가 현재 전 세계 20억 명 이상에게 2천년 동안이나 타당성을 지닐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카라바조, 다메섹에서 바울의 회심, 1600년
그것은 비록 복음서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로도 세계 곳곳에서 시대를 달리하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음성을 듣는 경험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즉 2천 년 전에 쓰인 복음서의 문자가 단순한 문자를 넘어 지금도 우리의 삶에서 경험되어지기 때문에 살아있는 문자요 구체적 체험이 되는 것이다. 예수를 핍박하러 가던 바울을 예수를 증언하는 사명자로 바꾼 동기, 부활하신 예수님의 만남이 세계 곳곳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3. 오늘 우리를 부르심은!
 
1) 오늘 주님이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시고 우리를 주민교회로 부르신 것은 바로 이 사실을 증언하기 위함이다. 400년 전 이탈리아의 델 카라바조는 그림으로 부활을 증언하고 있다.
 
르네상스 이후 매너리즘의 터널을 지나 바로크 미술의 문을 활짝 연 카라바조(본명 미켈란젤로 메르시)를 열렬히 추종하는 제자들 중에 이름까지도 스승을 따라 바꾼 델 카라바조가 대작 그리스도의 부활을 그렸다. 바로크 미술답게 강렬한 명암 대조가 화면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분명히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기에 처참하고 싸늘하게 누워있어야 할 예수의 시신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무덤을 지키는 이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입을 벌리고 미간을 찌푸린다. 너무 늙어 보이는 왼쪽 군인은 방패를 들고는 두려움에 도망치려 하고 있다.
 
화려한 부조가 조각되어 있지만 안에는 시신을 담는 석관에 기대앉은 갑옷 입은 군인과 천사 날개 아래 한 명은 이 역사적 순간에도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칼자루를 손에 쥔 채 잠든 것이지만 아무 소용없이 무력하기만 하다. 순백색의 화려하고 날렵해 보이는 천사는 어둡고 무거운 무덤 돌을 오른손으로 가볍게 열어젖힌 후 잡고 있고 왼손은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왼손에는 십자가 깃발을 들고 구름 위에 왼쪽 무릎을 꿇고 있다. 40일 후 주님은 저 구름을 타고 승천하시리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오른 손은 힘차게 앞을 향해 들어 올려 승리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저 자세는 카라바조가 대결하고 싶어 했던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가 바티칸 시스티나 소 성당 벽에 그린 최후의 심판에서 심판자 그리스도가 앞으로 걸어 나오면서 취했던 절대적 권능의 손짓이다.
 
이제 더 이상 절망은 없다. 눈물도 없다. 억울함도 없다. 죽음도 없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받아들이는 삶과 사회에게는 새로운 인생과 세계가 약속되어 있다. 주님의 부활은 그렇게 우리에게 최고의 은총이다.
 
이 바람으로 교회 외벽에 현수막 걸었다, 부활을 기다리며!
 
2) 주님은 더 이상 죽음의 현장에 갇혀 있을 수 없었다.
 
주님은 더 이상 불의와 모순의 현실에 침묵하지 않으심을 소리 높여 외치자. 주님은 부활하셔서 지금 우리들의 삶과 역사의 현장에 동참하고 있음을 증언하자. 그곳에 진정한 혁명이 있다. 근래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혁명은 바로 그리스도 부활의 한 부분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해명하고 증언하기 위해서 부름 받은 사람들이다. 죽임의 현장, 절망과 탄식과 눈물의 현장은 이제 끝났다. 새 인생과 새 역사가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사람과 사회에 새로운 세계가 약속되어 있다. 우리 모두 부활의 증인이 되자.
 

이훈삼 목사 (성남 주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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