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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진 삶의 전환 (누가 24:28~35)2017년 4월 23일 부활절둘째주일설교
이훈삼 목사 (성남 주민교회) | 승인 2017.04.24 11:18

■ 주간 단상 : 날아가는 시간

대학교 3학년이었던 1984년 4월 22일 부활주일 밤 10시, 어머님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6개월 전, 자꾸만 머리가 아파서 입원했더니 병원에서는 신경성이라고 해서 그리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었는데 갈수록 증상이 깊어져서 나중에는 뇌종양 진단을 받았고, 수술 직전에 폐암이 전이된 것으로 최종 밝혀져서 결국 수술을 받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당시에도 너무 일찍 돌아가신 것이 아쉬움이었는데, 어느덧 내가 지금 어머님 돌아가신 나이에 이르렀다.
 
시간은 정말 빠르게 지나간다. 똑같은 시간인데 청소년 시절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서 더디 가고 중년이 지나서는 내 시간에 가속도가 붙은 것처럼 느껴진다. 나이에 따라 시속이 다르다는 말이 실감난다. 20대는 20km, 30대는 30km, 40대는 40km로 가고 50대는 50km로 세월이 지나간다는 말이 절로 느껴진다. 그러니 모세가 시편 90편에서 ‘우리가 날아갑니다.’라는 고백이 과한 고백이 아닌 것 같다.
  
미국의 코넬대학교 교수가 2004년부터 65세 이상 노인 1,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그 중 하나의 질문이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가장 많은 노인들의 대답은 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하지 못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시간은 곧 생명이다!
 

1. 처진 달팽이의 추억

1) 무한도전 2011년 여름 특집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
 

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MoaOlHFfm-c

지금도 이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한 여름 저녁의 시청자들 가슴을 적신 사건이었다. 특히 여러 무도 멤버들이 기존 가수들과 함께 준비하여 벌인 경연을 모두 마치고 어찌 보면 후기처럼 끼워놓은 노래, 유재석의 자전적인 고백을 담은 가사에 가수 이적이 곡을 만들고 둘이 ‘처진 달팽이’라는 팀 이름으로 같이 부른 노래 ‘말하는 대로’는 두고두고 젊은이들을 감동시켰다. 

스무 살,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그리운 나이인지…,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갈 수 있다면 파우스트처럼 영혼을 파는 것도 고려해 볼 것 같다. 그 정도로 너무 소중한 청춘이다. 그 스무 살이 좌절과 무기력함 속에 빠져 있다면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에서 청춘이 이렇게 아프다. 그 수많은 스무 살 중에 현재 방송인 중 오랫동안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유재석씨도 속해 있었다는 것이다. 하루하루 간신히 견디는 생활, 딱히 오늘 무엇을 했는지 적을 것도 없고, 내일도 막상 해가 뜨면 뭘 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답답하고 불안한 생의 20대! 무엇을 해보려고 해도 학력, 재능, 배경, 기초 자산 등이 별로 없는 이 시대의 청춘은 정말 희망을 발견하고 힘차게 살아갈 수 있을까?

2) 이 노래가, 말하는 대로 생각한 대로 인생을 만들 수 있으니 지금부터 생각을 바꾸자, 인생은 마음먹기 달렸지, 지금 네가 무기력증에 빠지고 성공하지 못한 것은 모두 네 탓이야 라고 아주 쉽게 판단하는 근거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노래가 들려주고 싶은 것은 현재 아주 성공한 한 방송인, 매일 TV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저 연예인도 20대, 그 무쇠도 소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겁 없는 20대에 깊은 좌절과 두려움의 시기를 거쳤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특별한 희망을 발견하기 어려워 그냥 하루하루 살아가는 청년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그는 그 상황을 극복하고 새로운 인생을 펼쳤을까? 물론 마음먹은 대로,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그래서 생각, 마음, 말은 우리 행동을 불러일으키고, 행동의 내용을 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그 전에 정말 중요한 지점이 하나 있다.
 
“사실은 한 번도 미친 듯 그렇게 달려든 적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해봤지”
그리고는 그 뒤로 생각한 대로,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 우리 시대 최고 방송인 중의 한 사람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위로요 격려요 도전이었다.
 
한 주간 오늘의 성경 본문을 읽고 묵상하면서 자연스럽게 떠 오른 것은 바로 처진 달팽이, 이 시대에서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이름 붙인 유재석과 이적이 부른 이 노래였다.

2. 엠마오로 가는 제자
 
1)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돌아가는 이들의 걸음이야말로 한껏 처져있었을 것이다. 엠마오는 예루살렘에서 약 1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도시의 크기나 거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엠마오로 향하는 두 제자에게 이곳은 모든 희망을 접고 가는 것이다. 요즘 도시 싫어서 귀농하는 이들도 많다. 귀농이 낭만적인 것은 아니고 매우 힘든 현실임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귀농을 결심한 이들의 발걸음은 나름의 희망으로 채워져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귀농할 수가 없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의 모습은 귀농도 아니다. 그저 희망의 밑바닥까지 소진해버린 삶, 이젠 꿈도 미래도 박탈당한 삶이다.
 
영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중
이들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를 만나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새롭게 동터 오는 것을 확신하면서 이들의 삶은 뜨거운 희망으로 채워졌을 것이다. 이 새로운 희망은 이들이 그 전에 가지고 있었던 꿈을 모두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릴 만큼 강렬하고 손에 잡힐 듯 구체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과 그가 꾸는 꿈에 동참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제대로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돌아가시자 그야말로 모든 것은 한바탕 꿈이었다. 온 마음과 기대와 삶을 바쳤지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시간, 정열, 젊음, 고난 등 모든 것이 무효로 변했고,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었다. 정말로 노래 가사처럼 하루를 견디고 불안한 잠자리에 눕고 내일은 뭐하지 걱정하고 두 눈을 감아도 통 잠이 오지 않는 나날이 이어졌을 것이다. 내 이리는 못산다!
결국 그들은 그토록 부푼 꿈을 안고 떠나왔던 엠마오로 다시 터벅터벅 내려가기로 한다, 어찌할 수 없는 처진 삶으로!

2) 엠마오로 가는 길
 
자넷 브룩스 게를로프, 엠마오로 가는 길, 1992년, 독일 뮌스터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의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었다. 꿈을 상실한 걸음, 더 이상 새로운 꿈을 잉태할 수 없는 사람의 발걸음이 가벼울 수는 없다. 이들이 고향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할 때도 아무 것도 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가슴 한가득 꿈을 담고 있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인생을 투여할 만한 꿈! 예수님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 이들의 꿈도 산산이 부서졌다. 끝장나버린 꿈의 빈자리에 남는 것은 회환과 희미한 미래뿐이다. 그래서 이들의 마음은 입고 있는 옷만큼이나 어두웠으며 고개를 들고 미래를 힘차게 응시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들의 처진 삶속에 주님이 동행하고 계셨다. 본인들은 미처 몰랐지만 부활의 주님은 이들과 나란히 그 길을 걸어가셨다. 한참을 같이 가면서 이야기 나누고 식사도 같이하면서도 몰랐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들의 눈이 떠지고 주님을 알아보았을 때, 이들은 더 이상 처진 사람들이 아니었다. 가던 방향을 바꾸어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3) 인생이나 역사나 경제나 민주주의나 모두 고저를 반복한다. 사이클/부침이 있다.
 
높이 치솟을 때가 있고 땅으로 꺼질 때도 있다. 그 고저의 차이를 적게 하는 것, 가능하면 고점에서 오래 머물고 저점은 빨리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지혜지 아예 내리막길 없이 계속해서 성공가도를 달릴 수는 없다. 내 인생이 처져있을 때, 나도 모르게 어깨가 내려가고, 고개를 들 힘도 없고,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 열심히 투신하던 목적이 갑자기 사라져버렸을 때, 꼭 쳐진 달팽이 같을 때, 어찌하나? 이 때 전환점이 필수다!

3. 눈을 떠라 눈을 떠!
 
1) 그냥 평범한 처진 인생이었을 두 제자가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만난 것은 눈을 떠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이다. 우리 인생의 근본적인 전환점은 바로 우리의 눈을 떠서 지금 내 곁에 계신 부활하신 주님을 인식하는 것이다. 어떻게 주님을 알 수 있는가?
 
렘브란트, 엠마오의 만찬, 1628년, 37.4*42.3cm, 파리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주님이 축사하시고 나눠 주시는 떡을 먹었을 때 그들의 어두운 눈이 밝아졌다. 공부나 수련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떡을 먹자 눈이 밝아졌다. 주님이 주시는 양식을 잘 먹기 바란다. 세상에 알아야할 것도 많고 보고 듣고 읽어야 할 것도 많지만 도대체 주님이 어떤 분인지 그의 삶을 생각하고 연구하고 먹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청년들이 다음 주 토요일부터 매월 독서모임을 시작한다. 그 첫 번째 책이 올해 98세의 노 철학자 김형석 교수가 쓴 ‘예수’라는 책이다. 나는 고등학교 3년 동안 김형석 전집(10권)만 읽었다. 특히 그 중 한 권에 수록된 ‘그의 이름은 예수였다,라는 장이 감동적이었는데, 나중에 저자가 이 부분을 확대하여 단행본으로 낸 것이 이 책이다. 대학교 입학해서까지 내가 너무 좋아하던 글이다. 읽기 쉽게 쓴 예수님 전기라 한 번에 끝내고 다음 책을 할 수도 있지만 이거 하나 가지고 한 번에 한 장씩 1년 해볼까 한다.
 
2) 우리의 인생을 전환할 수 있는 분기점은 바로 예수님을 발견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더 잘 알 수 있기를 바란다. 주님은 무엇을 꿈꾸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무엇을 했으며, 무엇에 목숨을 걸었고, 무엇을 기뻐하셨고, 무엇에 진노하시면 투쟁했는지… 알았으면 좋겠다. 그 주님을 손으로 잡을 수 없지만,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함께 걷듯이 내 인생과 우리들의 이 험난한 역사에 동행하고 계심을 느꼈으면 좋겠다. 이것이 처진 삶에서 답답해하는 오늘 우리들을 새로운 희망과 용기로 전환시키는 길이다.
 
눈을 뜨자. 차가워진 가슴을 뜨겁게 달구도록 눈을 뜨자. 맥없이 늘어진 팔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도록 눈을 뜨자. 고개를 떨구고 걷던 우리의 눈을 들어 힘찬 햇살로 비추시는 주님을 보자. 거기가 바로 다시 우리 인생의 방향을 돌려세우는 지점이다.

4. 다시 예루살렘으로!
 
1) 눈을 떠 부활하신 주님을 발견한 이들은 방향을 돌이켜 떠나왔던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예루살렘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곳에는 이 제자들처럼 절망과 회의 속에서 처진 인생을 살 수밖에 없던 사람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다시 인생을 전환하여 새로운 비전과 용기를 갖게 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이들이 발걸음을 돌이켜 떠나왔던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갔을 때, 거기에는 주님의 제자들이 모여 있었다. 거기서 이들은 자기들에게 주님이 어떻게 나타나셨는지 그 때의 마음과 체험들을 나누면서 주님을 찬양하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였다.
 
2) 교회는 또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이들의 모임이다.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이미 만난 이들이 모임에서 증언하는 고백을 통해 간접적으로 주님을 경험하고 또 모인 이들과 더불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간절히 원하는 이들의 모임이 교회다. 여기가 교회다. 교회는 과학적 지식을 추구하는 모임이 아니다. 세속적으로 출세하기 위해 모이는 것이 아니다. 사회에서 생활하는 이들이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여 좀 더 행복하고 원활환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모임이 아니다. 교회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들의 모임, 그리고 만나고 싶어 하는 이들의 모임이다.
 
3) 주님의 십자가 처형을 목도하면서 실의에 빠져 엠마오로 내려가던 처진 인생의 두 제자는 완전히 터닝 포인트를 경험하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방향을 바꿨다.
 
자넷 브룩스 게를로프, 엠마오로 가는 길, 1992년, 독일 뮌스터
처진 인생을 새로운 희망으로 바꾸는 전환점에 부활하신 주님이 계신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이들은 그대로 처져있거나 멈춰서 정체되어 있지 않는다.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서 다시 주님께로 나아간다. 그리고 떠나왔던 곳으로 다들 모여 들었을 때 교회가 형성되었다. 그 교회에서는 부활하신 주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이것이 초대교회다. 우리교회가 이랬으면 좋겠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다시 모이는 곳,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 간절히 원하여 만사를 제쳐놓고 모이는 곳, 그 곳에 주민교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부활의 주님과 함께!

이훈삼 목사 (성남 주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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