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황사가 불었다. 바로 색깔론이다. 퇴행적인 종북몰이가 이번 선거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차기 대통령이 풀어야 할 숙제 속에 한반도 위기관리가 있다. 북한핵문제를 국제사회 공조로 풀어나가고,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드배치 문제를 합리적으로 풀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후보의 안보관 검증은 필요하지만 색깔론 공세는 무책임하다. 

색깔론 공세로 볼 수밖에 없는 건 모든 후보를 공통적으로 검증하지 않고 유독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만 집중되기 때문이다. ‘주적(主敵)’ 개념은 <국방백서>에도 없다. 그런데 문 후보에게 북한이 주적이냐 아니냐 묻는 건 무리다. 주적 개념만으로 안보관을 검증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각 후보들이 제시한 통일‧안보‧외교정책이 실효성이 있는지, 실현할 의지가 있는지를 따지는 게 올바른 검증이다.

안보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남북분단 상황에서 미‧중‧일‧러 4대 강국의 이해관계가 한반도에서 첨예하게 부딪쳐 왔다. 북한의 핵개발로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졌다. ‘미국국익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섰다. 아베 정부는 평화헌법의 포기와 군사대국화를 노골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미-중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안보정책 공방은 필요하지만 종북몰이에 떠밀려 가는 건 좋지 않다.

주적 개념 논란에 이어 ‘송민순 회고록 공방’이 다시 벌어졌다. 지난 해 10월,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이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를 펴냈다. 회고록은 출간되자마자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새누리당이 2007년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기권을 문재인 후보가 북한의 결재를 받았다고 몰아붙였다. 최순실 사태를 덮으려는 것이었으나 북한인권결의안 기권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이들의 증언으로 논란은 이내 가라앉았다.

회고록이 다시 문제가 되자 문재인 후보 측이 검찰에 고발했다. 이제 진실공방은 검찰의 몫이 되었지만 논란을 정리하면 이렇다.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해 2006년에 찬성했으니 2007년에도 찬성하자는 외교부의 주장과 남북정상회담이 열렸고, 남북총리회담이 진행되고 있으니 기권하자는 통일부의 주장이 맞섰다. 회의 주재자는 안보실장이었다. 그런데 회고록에서는 배석했던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웠다.

때마침 ‘4월 위기설’과 맞물려 ‘북한 주적’ 논란과 ‘송민순 회고록’ 논란이 5.9 대선의 최대 변수가 될 거라는 분석까지 나왔다. 선거 때마다 이른바 ‘북풍’이 논란이 되었고, 2012년 대선에서는 선거 막판까지 ‘NLL 논란’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주적 논란과 송민순 회고록 논란은 말 그대로 논란으로 끝날 것으로 보인다. 논란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를 보면 문재인 후보의 지지도가 더 상승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안보 이슈가 유권자에게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한 건 시민의 정치적 성숙 때문이다. 또 선거 직전에 안보 위기가 고조되어야 북풍이 효과가 나타나는데, 북한인권결의안, 대북송금(홍준표 후보의 70억 달러 지원 주장은 거짓) 등은 과거의 일이라 유권자들의 위기의식을 자극하지 못했다. 게다가 송민순 회고록은 이미 지난해에도 논란이 한 차례 있었기 때문에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물론 보수적 유권자들은 안보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이들은 애당초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거나, 문 후보 지지에서 돌아섰더라도 그 지지가 안철수 후보와 홍준표 후보, 유승민 후보에게 분산되어 판세를 뒤집기에는 미흡했다. 오히려 이 문제를 계속 제기했던 유 후보가 합리적 보수 이미지에서 강경보수 이미지로 바뀌면서 홍 후보와의 차별성이 사라져 손해를 보는 형국이 되었다.

박근혜 파면으로 치러지는 이번 대선은 개혁과 미래가 중심이어야 한다. 안보에 관련해선 북한핵문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드배치문제 이외에도 한미동맹과 주변 4강과의 관계, 군위안부 문제와 독도 문제 등 일본과의 관계 등 숙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안보라는 명분 뒤에 숨어 퇴행적 색깔론을 주도하거나 편승하는 정치세력에게 시민은 엄중한 심판을 내릴 것이다.

손혁재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