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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라파 רָפָא>에 관하여<일점일획 말씀 묵상>
이영재 박사(성경과설교연구원) | 승인 2017.05.04 17:31

요즈음 ‘힐링/healing’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교회에서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일반사회에서 더 많이 유행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네 사회가 병들어 있고 사회의 구성원인 사람들이 질병을 앓고 있음을 의미한다. 암은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앓고 있다는 믿기 어려운 통계도 나와 있다. 사람의 식재료가 온통 오염되어 있어 식탁이 안전하지 않다고 한다. 특히 외식이 대세인 도시생활에서 식당에서 사 먹는 음식의 안전성도 의문시되고 있다. 사람이 채식을 위주로 먹어야 되는데(창1:29), 육식을 너무 자주 하고 있어서 그것도 병의 원인이 된다. 게다가 환경의 기본이 되는 대기와 물이 오염되어 있는 데다가 사람들의 관계를 규정하는 문명사회도 병들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도 사회적 오염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성경은 사람과 사회를 ‘치유’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오염된 환경과 죄 많은 세상 속에서 병든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건강한 상태로 치유함으로써 불행한 삶에서부터 죄인들을 구원하시기를 원한다. 교회는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일꾼이다.

히브리어로 ‘치유하다’를 의미하는 동사는 <라파 רָפָא>이다. 그 명사형으로서 ‘치유/healing’를 의미하는 단어는 <마르페 מַרְפֵא>인데(렘8:15), ‘건강/health’이란 뜻도 된다(잠4:22). <라파>는 히브리어 성경에 60회 넘게 나온다. 창20:17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아비멜렉 집안의 질병을 고쳐주셨다는 이야기에 이 동사가 처음으로 언급된다.

아비멜렉에게 무슨 화가 닥쳤는가? 아비멜렉의 아내와 하녀들이 아기를 낳지 못하는 불임의 질병에 걸렸다가 나았다.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힌 폭력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질병으로 벌하셨다. 아비멜렉은 폭력을 휘둘러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자신의 후궁으로 삼았던 것이다. 일개 도시국가의 왕이 폭력을 휘두르는 그 도시국가에 사는 모든 시민이 폭력을 휘두르고 있었다(창26:7). 도시국가 전체가 폭력이라는 죄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도시의 권력자 아비멜렉의 집에 질병을 내리신 것이다. 이와 같이 질병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수단으로도 사용되고 있음을 성경은 보여준다.

나중에 애굽의 파라오에게도 질병을 내리셨다. 모세가 노예살이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히브리인들을 해방시킬 때 야훼 하나님께서 파라오와 애굽인들에게 열 가지 재앙을 내려서 파라오의 고집을 꺾었다. 애굽에도 많은 “의사들"이 존재하고 있었지만(창50:2, <하로퍼임 הָרֹפְאִים >) 야훼께서 내리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의사는 없었다. 말씀을 청종하는 사람들에게는 애굽인에게 내린 어떠한 질병도 내리지 않겠다고 야훼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

"너희가, 주 너희 하나님인 나의 말을 잘 듣고 내가 보기에 옳은 일을 하며 나의 명령에 순종하고 나의 규례를 모두 지키면 내가 이집트 사람에게 내린 어떤 질병도 너희에게는 내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주, 곧 너희를 치료하는 하나님이다"(출15:26).

이사야서에는 이방인들을 치유하고 용서하는 것을 의미하여 <라파>란 동사를 사용한다(사19:22; 57:14). 무너진 재단을 수축할 때에도 이 동사를 사용한다. 하지만 대개는 사람의 질병이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을 가리켜서 사용된다(출21:19).

바닷물처럼 짠 소금물이 민물처럼 신선한 물로 변하는 것에 빗대어서 출애굽기 15장에는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변하게 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교훈에서 이스라엘의 병든 성품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백성으로 치료받아야 함을 역설한다. 이 때 이 동사가 사용되었다(출15:22). 특히 예레미야서에는 개인의 성품이나 사람의 질병이 치료받는 경우에 빗대어서 이 동사가 언급된 모든 구절에서 폭력으로 물든 죄악의 사회나 민족 전체가 치료받아야 하는 사회구원을 가리키고 있다(렘3:22; 6:14; 8:11, 22; 15:18; 17:14; 19:11; 30:17; 33:6; 51:8, 9). 이사야서에서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써 우리가 치료를 받았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것을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이 치유를 위한 것임을 가르치고 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제자된 교회는 자기가 속한 사회의 잘못된 불의를 고쳐야 할 사명을 안고 있으며 그 사회 속에서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중보기도도 치유해야 하는 사역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반드시 수행해야 할 사역은 마태복음에서 치유의 사역으로 규정되어 있다.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라"(마10:8). 히브리어 <라파 רָפָא>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로서 여기서는 <테라퓨오 θεραπεύω>가 사용되었다. 오늘의 목회자들은 이 치유의 사역을 온전히 감당하고 있는가?

이영재 박사(성경과설교연구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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