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뀌 뿡, 똥이 뿌직’
소리내어 읽기에도 민망한 위의 여섯글자는 이제 막 항문기에 접어든 유아들을 위한 그림책의 제목이다. 성장기의 아이들에겐 먹는 것 만큼이나 '싸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 삶의 기초를 몸으로 체득하는 시기, '똥', '방귀'는 가장 친숙한 단어다. 어린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캐릭터 이름도 방귀대장 '뿡뿡이'니, 말 다했다. 

그런데 언제인가 부터 '똥', '방귀'는 우리 삶에서 감춰야 하는 것이 됐다. 8일(월) 열린 민중신학회 월례 세미나에서 정혜영 박사(이화여대 기독교학과)는 "'똥'이야 말로 인간의 현실을 추상화 하거나 이상화하지 않고 바라보게 하는 키워드"라고 했다. 이날 민중신학회 주제는 ‘똥 속의 하늘’. 정혜영 박사(이화여대 기독교학과)가 권정생의 ‘똥 이야기’를 중심으로 문학과 신학이 어떻게 대화할 수 있는지 풀어냈다. 

민중신학회 월례 세미나 '똥속의 하늘'이 8일(월) 서대문 이제홀에서 열렸다 ⓒ에큐메니안

아동문학가이자 기독인인 권정생 작가의 동화에는 유독 '똥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정혜영 박사가 소개한 '밥데기 죽데기'이야기도 그렇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늑대할머니'는 남편과 자식을 잡아간 사람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달걀 두개를 '똥통에 한 달 담갔다가', 또 한달 씩 맑은 개울물과 꽃나무  밑에, 열흘을 씨앗기름에 담근 뒤 그 알들에서 밥데기, 죽데기를 탄생시킨다. 그리고 밥데기 죽데기가 싼 똥을 향기 나는 색색의 가루로 만들어 하늘을 날며 골고루 뿌리자, 집집마다 알을 깨고 병아리들이 나오고 모든 전쟁무기와 휴전선 철조망, 군인들의 철모가 녹아 내린다.  

정 박사는 권정생 작가의 등장하는 '똥'의 상징성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권정생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똥’은 생산과 창조의 매개체이자 반드시 성장과 탄생을 위해 치러내야 할 통과 의례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다. 그 의미는 늑대할머니의 말에 잘 나타난다. 밥데기 죽데기가 자신들을 왜 똥통에 담가두었는지 늑대할머니에게 묻자 할머니는 "모든 목숨은 모름지기 가장 밑바닥에서 엉망진창으로 견뎌봐야 한다. 그래야 세상을 바로 알게 된단다. 똥통에 들어가 보지 못하면 똥통 같은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겠니?"라고 대답한다. 

이러한 '똥'의 창조성과 생산성은 전승 신화인 '마고할미'이야기에서도 나타난다. 제주도 지역에서는 '설문대 할망'이라는 이름으로 전승되고 있는데, 설문대 할망은 수수범벅을 먹고 설사를 해서 설사로 제주도 오름 360개를 만들어 낸다. 똥을 통해 인간의 물질과 정신의 자원이며 수많은 목숨을 키워내는 오름이 창조되는 것이다. 

한편, 신화는 현실이 됐다. 김진숙의 ‘똥 이야기’가 그렇다. 노동운동가인 김진숙은 부당해고에 맞서 2011년 크레인에 올라 고공농성을 309일간 이어갔다. 그가 309일간의 농성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똥’이었다. 정혜영 박사는 김진숙의 ‘똥 이야기’를 소개하며 권정생, 설문대 할망의 ‘똥 이야기’와 연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309일 동안 끊임없이 그녀를 끌어내리기 위해 공격해오는 용역과 경찰들을 그녀는 어떻게 막았을까? 똥이었단다. 직접 만든 똥. 타워크레인에 고립된 한명의 여자를 공격하다 똥을 얻어맞고 후퇴하는 건장한 용역들을 상상해보라. 그야말로 완벽한 농성에 대책없는 공성이다. 연약한 여자의 몸에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제조되는 무기생산을 막기 위해 타워크레인에 식사공급을 중단 시켰다니....실로 웃기는 일이다. 그러나 그녀는 떡대같은 용역과 경찰들의 공성작전을 혼자 몸으로 막아내고 훌륭하게 농성을 성공시켰다.  (정부권, ‘김진숙, 그녀의 무기는 직접 만든 똥이었다’)

정혜영 박사 ⓒ에큐메니안

세 이야기를 통해 정혜영 박사는 “똥을 싸는 일상적 행위야 말로 가장 신성한 행위”라고 설명했다. 김진숙의 똥을 싸는 행위는 물신화의 한 가운데서 자본주의에 균열을 냈다. 죽데기 밥데기의 똥가루도 전쟁의 표상인 철조망과 철모를 녹였다. 하찮게 여겨져 버려지는 똥의 일상성, 창조성이 새로운 구원을 이끌어 냈다. 

정혜영 박사는 예수 또한 체제에서 스스로 똥이 되어 밀려나갈 자들 곧 쓰레기가 된 사람들의 친구가 됨으로써 경계를 해체하려 했다고 전했다. 성서에서 예수가 ‘먹기를 탐하는 자, 포도주를 즐기는 자,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비난을 받는 이유다. 예수는 버려진 자들이 함께 평화와 사랑의 나라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쓰레기와 똥이 된 것들에 하느님 나라가 있다는 선포가 그렇다. 

이처럼 권정생, 설문대 할망, 김진숙의 똥이야기는 ‘똥 속의 하늘’을 드러내며 ‘더러운’ 똥의 이미지를 전복시켰다. 정혜영 박사는 자본주의 체제가 끊임없이 생산해 내는 쓰레기, 똥의 삶은 곧 ‘나’의 삶이며 ‘우리들’의 삶이라고 했다. 학회에 참석한 한 참가자는 “우리 몸의 일부이자 가장 일상적인 똥으로 상징되는 모든 것들을 우리가 지금까지 피해오진 않았는지, 민중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되돌아 봐야 할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민중신학회 월례 세미나는 매월 첫째주 월요일 6시, 서대문 이제홀에서 진행된다. 민중신학회 회원을 비롯해 민중신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올 수 있다. 

김령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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