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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의 늦게 가는 세상>
임정훈 | 승인 2017.05.22 11:27

한국으로 돌아 갈 날이 다가오고 있다. 통화 중에 언니는 한국에 돌아오면 맛있는 한우를 사주겠다고 하였다. 그 비싼 한우를 나에게 먹이고 싶어 하는 언니의 마음이 고마웠다. 사철 더운 나라에서 땀을 흘리며 지냈을 내가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우리가 자랄 때 소고기는 명절이나 생일날에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어머니는 명절에는 소고기무국을 끓여 주셨고, 생일날에는 소고기미역국을 끓여 주셨다. 그리고 겨울철에는 가끔씩 우거지를 넣은 소선지국을 끓여 주셨는데 우리가 어렸을 때 먹은 소고기에 대한 기억은 그 정도이다.

그렇게 자란 우리는 할머니가 된 지금도 소고기는 특별한 날 먹는 귀한 음식으로 생각한다. 나는 언니의 마음을 알기에 ‘이곳에서도 질 좋고 부드러운 소고기를 먹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다.

어릴 적, 시골 할아버지 집에는 ‘누렁이’라 불리던 소가 한 마리 있었다. 방학을 맞아 시골 집 대문에 들어서면 누렁이는 외양간에 비스듬히 누워 되새김질을 하고 있다가 착하게 생긴 큰 눈을 껌뻑이며 나에게 아는 체를 했다.

그 당시 우리 가족에게 누렁이는 또 다른 가족 이었다. 할아버지는 들녘에 나가 소꼴을 베어오시기도 하고, 좋은 풀이 있는 곳에 누렁이를 메어 놓았다가 해질 무렵에 누렁이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오셨다. 겨울이 되면 새벽 일찍 일어나셔서 가을 추수 후에 말려 둔 볏단을 작두로 싹둑싹둑 썰어 쌀겨 한 바가지와 쌀뜨물을 가마솥에 넣고 소여물을 쑤셨다.

이른 아침, 할아버지께서 소여물을 쑤기 위해 사랑채 아궁이에 불을 때시면 밤사이 식은 방구들은 다시 따끈따끈해지기 시작했고, 아침잠이 많은 우리들은 더 깊숙이 이불 속으로 들어가며 게으름을 피웠다. 누렁이는 막내고모가 도시에 나가 번 돈을 모아 할아버지에게 사드린 송아지로 우리 집에서는 보물과 같은 존재였다.

그 당시 농촌에서 소를 키우는 집은 부잣집 소리를 들었다. 막내 고모가 할아버지께 사드린 송아지 한 마리로 인하여 빈농인 우리 집도 시골 부자가 되는 꿈을 꾸게 되었다. 그렇게 누렁이는 할아버지의 꿈이었고 논이었고 밭이었다.

그 당시 소한마리가 일꾼 열 몫을 한다는 말처럼, 소는 하는 일이 많았다. 농사를 짓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꾼이었고, 기꺼이 자신의 등을 내어주며 어디든 함께 따라가 주는 든든한 동행자이었으며, 무거운 짐을 마다하지 않는 성실한 짐꾼이었다. 또한 어린 송아지는 키워서 밭을 사거나 결혼 자금이나 학자금처럼 집안의 큰일에 한 몫을 톡톡히 감당해줄 훌륭한 살림 밑천이었다.

수년 전 ‘워낭소리’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다. 농부 할아버지와 소와의 교감이 마음 짠하게 전해오던 영화였다. 소의 수명이 보통 15년에서 20년 이라는데 ‘워낭소리’에 나오는 소는 평균 수명의 갑절이 되는 40년을 살았다. 그중에 할아버지와 만나서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뀔 만한 세월을 함께 지냈다고 한다. 그 긴 세월동안 소가 할아버지와 함께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소에 대한 할아버지의 각별한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딜리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풀어 놓은 소들을 볼 수 있다.

바닷가 나무그늘 아래에서 평화롭게 놀고 있는 소,

드넓은 평야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어 먹고 있는 소,

학교 운동장에서 무리를 이루어 돌아다니고 있는 소를 보기도 한다.

동티모르 소들은 주인의 보살핌을 거의 받지 않는다. 자라는 동안 주인의 손길이 없이 스스로 이곳저곳 풀을 찾아다니며 성장을 한다. 자유와 방임의 중간쯤으로 보이는 방목이다. 동티모르 소들은 코뚜레를 하지 않았다. 코뚜레를 안 한 것은 물론, 대부분 고삐도 메여 있지 않고 목에 워낭조차 매달려 있지 않아 워낭소리도 들을 수 없다. 어떤 일에도 조바심을 내지 않고, 무슨 일이 생겨도 ‘No problem’ 이라며 씨익 웃는 그들답게 소도 그렇게 여유로운 마음으로 키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동티모르는 농사를 지을 때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다. 밭농사든 논농사든 과일나무에도 농약을 치는 일이 없으니 소들은 풀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마음껏 풀을 뜯어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가끔은 저렇게 소를 키우다가 누가 딴 맘을 먹고 끌고 가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을 때도 있다. 그런데 소들의 몸에는 주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동티모르 소들은, 한국의 소들이 코뚜레를 뚫을 때의 아픔과 같은 고통을 겪으며 주인의 이름을 몸에 새기고 나서야 비로소 자유를 얻는 것이다. 농사일은 하지 않고 육우로만 키워지기에 동티모르 소들은 이때부터 무리를 이루어 초원을 누비며 자유롭게 지낼 수 있으니 소들에게 이곳은 천국이 아닌가 싶다. 이곳에서도 소는 꿈이다.

아직도 이곳은 신랑이 장가를 갈 때 신부 집에 소를 주는 풍습이 남아있다. 지역마다 신부 집에 주는 소의 마리 수는 다르지만, 신랑 집에서 신부 집에 소를 주는 것은 그동안 신부를 곱게 키워 준 신부 부모님께 드리는 감사의 예물이라고 한다. 그러니 동티모르 총각들은 어린 송아지가 자라는 것을 보면서 새로운 가정을 이룰 행복한 꿈을 꿀 것이다. 한국에 돌아가면 언니들에게 한때 우리 할아버지의 꿈이었던 누렁이와 함께 살던 시골집에 가보자고 해야겠다.

식구들을 위해 눈을 껌벅이며 일을 하던 소는 기계화 되면서 사라진 것처럼 내가 찾은 시골은 세월의 흐름 속에 변한 것도 많고 잊혀 진 것도 많을 것이다. 그래도 어쩌면 황혼 빛을 받으며 할아버지를 따라 뚜벅뚜벅 걸어가는 누렁이 뒤를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팔랑거리며 따라가는 작은 소녀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까

 

 

임정훈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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