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이훈삼 설교
야속한 하나님께 감사하자!2017년 5월 21일 부활절여섯째주일설교
이훈삼 목사 (성남 주민교회) | 승인 2017.05.24 11:17

■ 주간 단상 : 5.18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

5.18민주화운동은 우리 현대사에 우뚝 솟은 이정표요 속 깊이 흐르는 지하수와 같다. 역사의 중요한 시기마다 5.18 정신과 희생자들은 이기주의와 무관심에 갇히고 싶어 하는 시대를 다시 일깨우는 종소리와 같았다. 1년에 한번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유족들을 위로하며 그 속에 담긴 뜻을 역사적으로 기리는 기념식이 지난 9년 동안 무시당하고 폄하되었다. 그것은 우리 역사에 대한 왜곡의 출발점이었고, 민족정기에 대한 부정이었다. 그러다가 이번 새로운 대통령이 처음 맞이하는 기념식은 여러 가지로 감회를 새롭게 했다. 유족과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시민들뿐 아니라 이를 방송으로 지켜보는 국민에게도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하는지를 되새겨주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5.18 때 아버지를 잃은 유족 김소형 씨의 편지 낭독이었다. 80년 5월 18일에 태어난 이 여성은 엄마가 자신을 출산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좋아서 완도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광주 집으로 와서는 계엄군 총 소리에 딸이 놀랄까봐 솜이불로 창문을 막는 중에 날아온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그녀는 자신이 태어난 것 때문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이제까지 살아왔다. 지난 9년 동안은 이 마저도 쉽게 말하거나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37년 만에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쏟으며 아버지께 쓴 편지를 읽었다. 모두가 눈물을 흘렸으며 본인도 쏟아져 내리는 눈물 때문에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더욱 감동적인 장면은 낭독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는 이 여성을 향해 대통령이 갑자기 일어나 그를 뒤쫓아 가서 안아주고 위로해 준 것이다. 
이것은 예정에 없던 일이라 이 유족은 그냥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대통령이 뒤를 따라가 위로해 준 것이다. 청각장애인들에게 수화로 전달하던 통역사까지도 눈물을 흘렸다. 이제야 뭔가 되어가는 것 같지 않은가! 어려운 일도 아니고 힘든 일도 아니지만 역사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감동받을 수 있고, 희망을 만들 수 있다. 

김종태열사 광주 MBC 2016년 뉴스 영상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번에 처음으로 5.18민주화운동 이후 이와 관련되어 목숨을 잃은 사람들 중 4명의 이름을 대통령이 불렀는데 우리 교회 청년으로서 80년 6월 9일 이화여대 사거리에서 5.18의 진실을 알리는 전단지를 뿌리다가 스스로 몸에 불을 사른 김종태 열사의 이름이 빠진 것이었다. 여러 희생자 중에 올해는 4명만 대표적으로 불렀나보다. 

어제 우리 청년들과 청장년들은 예년과 같이 광주 망월돌 국립묘지를 찾아가서 김종태 열사를 추모했고, 돌아오는 길에는 목포까지 가서 세월호까지 돌아보고 왔다. 우리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역사의 불의에 항거하며 자신의 생명을 헌신한 이들에게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린다. 

1. 고지가 바로 저긴데 

고지가 바로 저긴데 (이은상 작)

고지가 바로 저긴데 고난의 운명을 지고 역사의 능선을 타고 이 밤도 허우적거리며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 
넘어지고 깨어지고라도 한 조각 심장만 남거들랑 부둥켜안고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새는 날 피 속에 웃는 모습 다시 한번 보고 싶다. 

민족상잔의 끔찍한 전쟁을 치르고 폐허가 된 조국 강산을 보면서 1954년 마지막 날 밤에 쓴 송년시라고 한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다시 일어나 부흥하고픈 열망에 단호하고 처절한 다짐이 들어있어서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시다. 그래서 국어교과서에도, 전철역에도 게시되어 있다. 

끝까지 완결하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강한 메시지가 들어있다. 그래서 ‘가다가 중단하면 안 가는 것보다 못하다’(김천택)는 시조와 함께 어떡하든지 내가 완결하는 것이 선이라는 가치관을 담고 있다. 이런 정신은 매우 소중하다. 이런 완결에의 책임감이 위기를 극복하고 성취하도록 독려하는 소중한 동기가 된다. 

무엇이든지 중간에 포기한다든지 중단하지 말고 끝까지 잘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2. 야속한 하나님 

1) 모세의 마지막 목표

모세만큼 인생이 파란만장하고 굴곡이 많고 개인을 넘어 역사적이었던 인물이 있을까? 

구스타프 도레, 십계명을 들고 있는 모세

120년의 짧지 않을 삶이었지만 내용과 의미상으로는 1200년에 필적할만한 삶이었다. 모세가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광야 40년의 기간을 통과하면서도 끝까지 추구했던 지점은 그토록 염원하던 땅, 조상 아브라함-이삭-야곱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땅에 발을 딛고 눈을 감는 것이었다. 아마 그는 매일 이 기도를 드렸을 것이다. 그리고 정말 어렵게 눈으로 볼 수 있는 곳까지 왔다. 그의 망막 속으로 파란만장했던 인생의 위기와 감동적인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을 것이다. 모세는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자기 인생 최대의 목표를 드디어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여기서 말 수는 없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마지막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나는 기필코 가나안 땅을 밟아야 한다고 얼마나 다짐하고 기도하고 또 빌었을까!

2) 하나님은 느보 산으로 모세를 데리고 올라가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펼쳐 보여주셨다. 

감격과 흥분의 눈으로 가나안을 바라보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진정 청천벽력과 같은 말씀을 내리셨다.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얼마나 잔인한 말씀인가? 평생 이 순간만을 기다려온 모세에게 이 얼마나 야속한 말씀인가? 

3) 시뇨렐리, 모세의 죽음, 350×572cm, 프레스코, 1482년, 바티칸 시스티나성당

르네상스 미술가 시뇨렐리가 모세의 일생을 한 장에 그렸다. 

왼쪽 맨 위에 그토록 염원하던 가나안 땅을 코앞에 두고도 결국 들어가지 못하고 숨을 거둔 모세의 장례식 장면이 그려져 있다. 

민족의 지도자, 이집트의 노예를 자유케 한 해방자, 홍해를 가른 능력자, 숱한 위험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여기까지 인도한 탁월한 영도자 모세, 그가 죽었다. 모세의 머리 위 인물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시신을 바라보면서 얼굴을 감싸고 있다. 어떤 이는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반대편 하늘을 바라보며, 또 다른 이는 눈물을 훔치고, 무릎을 꿇고 사자를 애도하며 배웅하는 이도 있다. 모두가 비통하며 슬픔에 잠겨 있다. 

누워있는 모세의 시신은 대체로 그리스도의 시신과 같은 형태를 보여줌으로써 옛 계약의 당사자 모세와 새 계약의 당사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은연중에 일치시키고 있다. 모세는 죽었음에도 아직 머리에는 빛나는 뿔(빛)이 살아있지만,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끝내 가나안에 이르지 못한 아쉬움의 표현일까, 평생 약속만 믿고 살았던 모세에게 가나안을 허락하지 않은 하나님에 대한 서운함의 발로일까!

3. 전체를 보시는 은총의 하나님 

1) 신앙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 중의 하나는 진심으로 믿음으로 살았고 또 약속을 믿었고 그 성취를 눈앞에 두었으나 결국 마지막 목표지점에 도달하지 못할 때이다. 기왕이면 여기까지 왔는데 마지막 은총의 햇빛을 비춰주셔서 결실까지 하고 죽는다면 여한이 없을 것이었다. 

신명기는 모세에 대하여 인간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보낸다.

“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신 34:10) 

사실 이 정도면 가나안 땅에 발이라도 밟아보게 하고 숨을 거두게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정도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주 냉철하게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가나안을 보여주기만 하고 너는 들어가지 못하리라 선언하신다. 그리고 모세는 진한 아쉬움 속에서 숨을 거뒀고 가나안 땅이 아닌 가나안이 보이는 광야 어느 곳에서 묻혔다. 당사자 아닌 제 3 자가 보아도 아쉽다. 

2) 사도 바울은 주의 일을 하면서 온전히 주님만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그런 그에게도 쉽게 밝히지 못할 고민(가시)이 있었다. 바울은 환자들을 치유하는 놀라운 능력도 발휘했는데 정작 자기 자신의 질병은 치유하지 못해서 주님께 세 번이나 간구했다고 한다. 그런데 주님을 위해서 목숨 걸고 일하는 바울에게 돌아온 주님의 응답은 매우 차가웠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후 12:9)

인간관계도 그렇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내가 이정도 했으니 이 만큼 정도의 대우는 받아야 할 것으로 기대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 우리는 서운하고 야속하다. 성실한 신앙인일수록 때로 하나님이 야속한 경우가 있다. 내가 처한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을 아시는 데 그러면 이 정도의 축복과 은총은 좀 내려 주실 만도 하건만….

3) 시뇨렐리의 그림 왼편 아래에는 새로운 역사의 한 장면이 등장한다.

모세가 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지도자의 책임과 권한을 이양하고 있다. 평생 그에게 함께하셨던 하나님의 권능을 상징하는 지팡이를 여호수아에게 건네주고 있다. 새로운 시대는 미리 준비해야 한다. 가나안에 들어갈 새 세대의 새 역사는 광야를 떠나 가나안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는 광야의 과정에서부터 이미 새로운 지도력이 필요한 것이다. 모세 개인의 입장에서는 너무 아쉽고 하나님이 야속하게도 보이지만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에서 가나안에 정착시키고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야 하는 절대적 카이로스의 순간에는 개인이 아니라 전체를 보아야 하며, 하나님은 모세 개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보고 모세 시대의 종언과 여호수아 시대의 출발을 선언하셨다. 결국 이것이 축복이었다. 만약에 모세가 바라는 것을 채우기 위해 여호수아에게 지도력을 늦게 넘겨주었다면 모세 개인은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그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을 가나안에 정착시키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야 할 여호수아는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 점을 보신 것이다. 믿음은 개인의 아쉬움을 넘어 공동체의 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4) 인간은 욕망은 끝이 없고 능력은 유한하다. 

느보 산에서 가나안을 바라보는 모세

부분밖에 인식할 수 없는 인간이 때로 하나님의 섭리가 야속할 때도 있지만, 그것은 우리가 주님의 거룩하고 온전하신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쉬울 때, 속상할 때, 모세를 기억하며 주님의 뜻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자. 내 간구가 하나님 앞에서 수용되지 않아서 서운할 때 바울의 심정으로 주님의 말씀을 듣자,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은총은 바로 여기에 놓여 있는 비밀이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에게 야속하신 분이 아니다. 내게 꼭 필요한 부분을 베푸시고 인도하시면서 동시에 개인보다도 전체의 유익을 위해 더 중요한 것을 선택해 가시는 분이다. 그러니 내게 주신 은총이 때로 좀 만족스럽지 못하고 내가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아쉬워하거나 서운해 하지 말자. 주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계시며 우리에게 적절한 은총을 베푸신다. 그 은혜를 믿고 감사하는 이에게 행복과 평안이 있다. 

이훈삼 목사 (성남 주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및 편집인 : 이해학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해학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19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