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평화의 디딤돌인가 걸림돌인가

‘장미의 이름’이라는 영화에서는 ‘진리라고 한다면 기꺼이 목숨을 내놓겠다고 하는 예언자들을 두려워해라.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많은 다른 사람들을 자기와 함께 죽게 만들고, 때로는 자기보다 먼저 죽게 만들고, 때로는 자기 대신 죽게 만든다.’는 대사가 나온다. 맹신과 광신의 위험을 조심하라는 말이다. 나는 이 문장이 종교의 아집, 폭력성을 잘 드러내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한스 큉 신부는 ‘종교 간의 평화 없이 세계의 평화는 없다. 종교 간의 대화 없이 종교 간의 평화는 없다’라는 표현을 한 적이 있는데, 이 구절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종교가 그동안 평화를 구축해왔던 것이 아니라 파괴해왔던 것은 아닌가 의심을 품게 된다.

일신교의 핵심은 양자택일

일신교의 핵심은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를 현대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정치현상이다. 칼 슈미트의 ‘정치신학’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서 말하길 정치는 적과 친구를 구분하는 것이라고 했다. 얀 아스만이라는 이집트 학자는 칼 슈미트가 친구냐 원수냐를 말하는 원료는 일신교 전통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일신교는 우리 종교를 믿느냐 마느냐 하는 편 가르기이므로 처음부터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하면 일신교뿐만이 아니다. 종교에서 평화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이 또한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일신교든 다신교든 종교 자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종교를 믿는 구체적인 사람 즉, 종교인만이 존재할 뿐이다. 종교 간의 대화도 불교와 기독교가 대화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과 불교인이 하는 것이다. 한 꺼풀 더 들어가면 일신교든 다신교든 어쨌든 핵심은 사람이다. 어느 종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신앙에도 발달 단계가 있다

종교의 갈등은 ‘믿음’이라는 단어의 어원에서 알 수 있다. 믿음을 라틴어로 creder라고 하는데, 이는 ‘마음’을 뜻하는 cor와 ‘어딘가에 놓다’라는 뜻을 가진 dere로 이루어져 있다. 즉,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마음을 어딘가에 놓는다는 것인데, 이것이 역사화, 제도화하면서 마음을 서로 다른 곳에 놓았다고 생각하는 종교들 간에 갈등이 발생하는 것이다. 

출처: http://cafe.naver.com/thinknet/496

제임스 파울러의 신앙 발달 단계를 보면, 처음에는 액면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단계를 거쳐, 다음에 반성하고 비판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다른 사람의 신앙을 생각하는 변증법적인 단계를 한 번 더 거친 후, 마지막으로 보편적 단계로 접어들면서 모든 종교는 결국 하나의 뿌리라고 생각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많은 종교의 지향점과 관련해 산이라는 비유를 많이 가져온다. 산에 올라가는 길은 여럿이지만 목표는 하나라는 것이다. 백색 광선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신앙을 과정으로 봐야지, 영원히 불변하는 것으로 보면 종교 간의 갈등이 심화될 뿐이다. 자기 신앙이 어제보단 오늘이, 오늘보단 내일이 더 발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대화가 더 잘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해석은 시대에 맞아야 한다

기독교의 성서는 2000년 전의 사람들이 각 시대와 상황에 따라 예수를 그린 것이다. 성서 내에서도 다양한 표현들이 있다. 예수의 다양한 표현에 관한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처음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었을 당시의 그림 중에는 로마의 재판을 받고 로마의 십자가형을 선고 받았던 예수가 로마의 갑옷을 입고 있는 그림이 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250여 년 동안 박해를 받았지만,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인정한 이후에는 다시 예수가 승리를 거머쥐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 당시의 상황을 표현하려던 그림이다. 기독교는 이런 식으로 역사적 환경에 어울리게 살아왔다. 오늘도 기독교는 물론 다양한 종교를 역시 현대에 맞게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많은 종교인들이 과학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만 나는 그 반대이다. 다윈의 진화론으로 인해 많은 학자들은 기독교를 다시 묻게 되었다. 기독교가 절대적, 유일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유럽 사회에서 기독교를 다시 물었다. 기독교 아닌 다른 종교들을 만나서 기독교의 위치를 묻고, 자연과학을 만나서 인간의 위치를 다시 물었다. 이러한 질문은 기독교뿐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에게도 꼭 필요한 물음이다. 다시 묻고 다시 시대정신에 맞게 대답해야 하는 것이다. 신이 있어서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진화의 과정 속에서 신을 만들어 낸 것이라는 진화론적 질문도 기독교를 오늘 다시 살아가게 해주는 중요한 질문이다.

우리는 혼종이다

일본인의 한 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불교인은 어떤 종교보다도 기독교를 충분히 연구해야 한다. 기독교를 아는 것은 자기를 아는 것이다. 다른 거울에 비추어서 자기를 보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나의 종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종교를 알아야 하고,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들의 문화적, 사회적 자아라는 것이 단일하기보다는 복합적이듯이, 우리들의 종교적 자아도 사실은 혼종적이다. ‘나는 순수한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는 그곳에 이미 불교, 유교 등이 한데 섞여있는 것이다. 내 자아는 혼합적으로 형성되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오히려 순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질의응답

신희윤(사회과학부): 종교들 간의 모순적인 내용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

김승철 교수: 기독교란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한 도구가 철학이었다. 오늘날은 철학은 물론 과학하고도 이야기해야 한다. 그리고 객관성이라는 것은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해당되어야 한다. 예전에 성서는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수용의 대상이었다. 그러다가 과학이 등장하면서 성서를 비평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성서를 역사의 산물로서 보면서, 경전이나 교리 등이 상대화되었다. 교리라는 것도 어떠한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그 맥락을 보면서 상대화해야 한다. 예수의 얼굴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그 시대를 통해 이야기되어야 한다. 

이찬수 교수: 언어는 인간의 내적 경험을 다 담아내지 못한다. 그것을 다 담아낸다는 착각이 종교를 독선으로 몰아간다. 어떤 세계를 담아내기에는 언어는 한계가 있는데, 그것을 놓치다보니 자기만이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서로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다 보니까 싸우게 된다.

소중혁(사회과학부): 대화 말고도 종교간 갈등을 해결하는 방안이 있을까

김승철 교수: 대화는 왜 해야 하나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나의 문제다. 

이찬수 교수: 과거 신분사회에서는 대화는 없었고 명령이 컸다. 오늘날은 전통적인 신분제는 사라졌다. 원칙적으로 수평적 사회로 바뀌었다. 무엇이든 명령이 아니라 대화로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노을(사회과학부): 신앙 발달 단계에서 종교가 주장한 내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다가 나중에는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하셨다. 비판적으로 접근하다 보면 믿음도 흔들리게 될우려는 없을까.

김승철 교수: 믿음이라는 것 자체가 단순한 답습이나 긍정이 아니라 비판을 요구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16장에서는 예수가 제자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물어보는 장면이 있다. 정말 자기의 언어로 말을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 이야기를 하려면 단순한 답습으로는 되지 않는다. 비판이 들어가야 한다. 답습은 나의 신앙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신앙이다. 

(정리 : 손영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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