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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김지영의 아빠와 오빠와 남동생 그리고 아들에게<소소한 남자의 소소한 독서>
정주현 (예사랑교회) | 승인 2017.05.26 13:25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다.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

『82년생 김지영』의 마지막 두 문장이다. 독자들은 이 문장들 앞에서 자신의 현재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그럼, 당연하지’ 또는 ‘역시 그렇지’ 라고 할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는 솟아오르는 눈물을 어찌 하지 못할 것이다. 

필자에게도 이 문장들은 걸림돌이 되었다. 쉽지 않은 문제였다. 이 문장을 대할 때 두 가지 기억이 떠올랐는데 그 이야기를 먼저 해보고자 한다. 먼저 하나는 나름 진보 신학을 추구한다는 신학대학원 재학시절 초창기의 일화다. 사람들과 두런두런 나누던 이야기의 화두가 ‘누가 어쨌다더라 누구는 그랬다더라’ 등의 가십으로 넘어가있었다.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민음사

『82년생 김지영』은 교회 안에도 있다

그때의 주제는 어느 교회의 어떤 ‘여성’전도사에 관한 것이었다. 당사자의 변은 없었고 타인들의 말이 넘쳐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나왔다. 그 결론은 ‘역시 여자는 자기 밖에 몰라, 역시 여자는 교회 사역에 안 맞아’ 였다. 당시 그 대화가 오고가는 자리에 여성이 있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입담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슬그머니 꼬리를 말고 침묵하던 필자의 부끄러운 자화상은 지워지지 않고 생생히 기억난다. 

다른 기억은 교육전도사로 몸을 담고 있던 교회에서의 일화다. 당시 교육목사님은 여성이었다. 어느 토요일 아침 회의 때 목사님의 임신소식을 들었고 동료들과 함께 축하했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머리를 스친 생각은 ‘마냥 축하할 일인가?’였다. 이건 학습효과에서 나온 생각이었다. 먼저 언제든 부품 교체하듯 갈아치워질 수 있는 부교역자의 삶을 짧은 경험에서도 이미 수차례 봐왔다. 게다가 여성 목회자가 성도들과 동료교역자들에게 받고 있는 차별적 대우와 시선이 어떠한지도 이미 신학대학원 시절부터 경험해오고 있었다. 

때문에 필자는 그날 분명 기쁜 소식을 들었지만 동시에 ‘목사님이 곧 사임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아마 이것도 경험적 판단이라 말했지만 이미 내제된 차별적 시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필자의 우려와 달리 당회는 목사님의 3개월 육아휴직을 결의했고, 목사님은 출산 예정일이 매우 가까워 오도록 까지 자리를 지키다가 출산과 휴직기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무사히 복귀했었다. 불행하게도 필자의 경우 그 이전과 그 이후에도 여성 목회자의 3개월 육아휴직과 복귀에 관해서 들어본 경우가 흔치 않다. 

필자가 기억하는 두 사건은 『82년생 김지영』에서 이미 충분히 이야기된다. 그리고 독자들도 각자의 환경은 조금 다를 순 있지만 그리 어색하지 않은 이야기이자 익숙한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조남주 작가는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너무나도 익숙한 이야기이다 못해 뻔한 이야기 담아 『82년생 김지영』이란 소설로 묶어 냈다. 그래서 『82년생 김지영』은 처음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독자의 예측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런 점을 여성학자 김고연주는 “특수성이 아니라 보편성을 추구하는 것이 이 소설의 특수성이다.”라는 말로 설명한다. 그렇다. 이 소설은 모두가 아는 이야기, 모두가 경험한 이야기, 모두가 보았으나 못 본척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82년생 김지영』이란 책에 대해 말하면 그 말을 듣는 사람이 이렇게 반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슴 아픈 이야기인거 압니다.’ ‘고쳐야지요.’ ‘바꿔야지요.’ ‘책을 보지 않아도 이미 압니다.’ 

반성문을 쓰는 마음으로

소설의 마지막 두 문장의 주인공도 이와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김지영씨와 정대현씨 부부를 상담했던 그는 자신을 이렇게 규정한다. “내가 평범한 40대 남자였다면 끝내 알지 못했을 것이다. 대학 동기이자 나보다 공부도 잘하고, 욕심도 많던 안과 전문의 아내가 교수를 포기하고, (중략) 일을 그만두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특히 아이가 있는 여자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이 말을 한 그는 임신으로 퇴사하는 동료 상담사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다.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 이 대사가 필자에게 걸림돌이 되었던 이유는 자아의 민낯을 발견케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의 마지막 대사를 읽고도 한동안 책을 덮지 못했고, 이 상담사의 상황이 심정적으로 이해됨과 동시에 ‘그러면 안 되잖아’라는 생각이 중첩되며 고민이 깊어졌었다.

정말 이 대목은 곱씹을수록 작가에게 한 대 얻어맞는 순간이었다. 작가가 필자의 한계를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김지영의 인생을 둘러싼 수많은 남자들을 바라보며 조금이나마 도덕적 우위를 점유하는 느낌을 유지하던 중 마지막에 가서 ‘너도 결국 이런 놈이지!’하며 치고 들어오는 작가의 통찰에 정곡을 찔린 것이다. 덕분에 별반 다를 것 없는 주제에 감히 김지영을 이해하려고 위로하려고 또는 도우려고 했던 오만이 사라져 버렸고, 누추한 자아만을 확인하게 되었다. 

때문에 필자는 반성문을 쓰는 마음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마음으로 ‘김지영’을 이미 아는 이야기라고 착각하는 세상 모든 김지영의 아빠, 오빠, 남동생, 아들에게 바로 나와 같은 ‘우리들’에게 『82년생 김지영』을 권하고자 한다. 

조남주 작가가 써내려간 김지영의 삶은 불안에 시달리며, 고통스럽고, 숨 막힌다. 그리고 이는 마치 ‘우리들’을 향한 고발장으로도 읽힌다. 이 고발장을 마주하는 ‘우리들’은 우리가 김지영의 가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지영의 삶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고, 외면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때문에 얼마나 많은 김지영이 숨죽여 울고 있었는지를 생각하며 탄식하게 될 것이다.

결국엔 김지영의 아빠, 오빠, 남동생 그리고 아들이면서 동시에 김지영에게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였고 방관자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미 그런 불행을 저지르고 있는 ‘우리들’이 김지영과 우리를 더 깊은 수렁으로 끌고 들어가지 않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 마음으로 필자와 같은 ‘우리들’에게 이 시대의 비망록 『82년생 김지영』을 권한다. 

<필자 소개>

 

정주현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예사랑교회 청소년부 전도사

정주현 (예사랑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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