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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나따디 소년과의 약속을 이루고 싶다<이옥희 선교사 칼럼>
이옥희 선교사 | 승인 2017.05.28 15:20

약속은 서로에게 희망이다. 약속을 한 당사자와 약속을 받은 이들 모두에게 희망이 된다. 2005년 여름에 안드라푸라데쉬주 카다파 디스트릭에서 나무심기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약속을 하였다. 나무를 잘 키우면 상을 주겠다고. 그리고 6개월 후에 약속을 지키러 갔다.

데칸고원의 일부인 카다파디스트릭은 암석지대로 구릉과 광야가 많았고 그 광야에는 가시나무와 돌들이 많았다. 우기에는 풀들이 자라서 메마르고 거친 세상을 덮어주었지만 건기에는 풀들이 말라서 세상이 온통 노랗게 보였다. 황량한 땅에서 사는 사람들의 고달픈 삶을 엿보면서 나무를 심기를 시작하였다. 다양한 방문팀들과 함께 그늘을 만드는 나무, 과실수 등등 다양한 나무들을 심었으나 사람들이 돌보지 않아서 나무는 말라죽거나 소와 염소의 밥이 되거나 아니면 뽑혀서 되 팔리고 있었다.

사람도 마실 물이 없는 상황에서 나무에게 물을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가축으로부터 나무를 지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훔쳐가는 자로부터 나무를 보호하는 것도 애시 당초부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상황을 뻔히 알면서 계속 나무심기를 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속이는 일이었다. 나무심기를 그만 두던지 아니면 나무가 성장할 때 까지 보호할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나는 후자를 선택하여 나무심기를 계속하였고 코코넛나무심기를 하면서 주민들에게 6개월 또는 1년 후에 돌아와서 반드시 상을 주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약속을 지키러 나무를 심었던 마을들을 다시 찾아 갔다. 첫 번째 들린 마을에는 80호에 가까운 집들이 있었는데 나무가 살아있는 집이 딱 3집 뿐 이었다. 그나마도 염소가 뜯어 먹어서 나무 밑 둥만 남아 있었다. 첫 마을을 위해서 15마리의 염소를 가지고 갔는데 3마리밖에 줄 수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상을 주겠다고 약속까지 했는데 왜 나무를 키우지 못했느냐’고 물었더니 ‘내가 진짜로 약속을 지킬 줄 몰랐다.’고 대답을 하며 이구동성으로 한 번 더 나무를 심어달라고 간청하였다.

내가 ‘약속’을 지킨 사실이 널리 소문이 나서 그 후로 코코넛나무심기는 더욱 활기를 띠었고 나무들은 고사를 면하고 살아남아서 그늘을 만들기 시작하였다.나는 후원회를 조직하지 않고 무식하고 용감하게 인도로 들어갔고 가자마자 한국경제가 파탄이 나서 생활 자체가 불안하고 힘들었으므로 선교 현장의 소리나 요청에 자신 있게 ‘내가 도와주겠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아프고 슬픈 현장을 열심히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가슴에 담으면서도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기도에 응답하시도록 힘써 기도합시다.’ 뿐 이어서 마음이 무척 불편하였다.

사람들은 내 입에서 ‘해 주겠다’, ‘책임을 져준다‘,’도와주겠다‘는 말이 나오기를 바랐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일을 책임지겠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이 그렇기 때문이었다.이런 나의 어려운 상황과 형편 때문에 나는 인도에서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개념을 깊이 체험하며 배울 수 있었다. 

꼰나따디는 케랄라주 동북쪽에 위치한 고산 마을로 해발 1400m정도에 위치하고 있다. 주민들은 차 밭에서 차 잎을 따는 노동자들이 대부분이고 부업으로 집주변에 후추, 고무나무, 타피오카, 코코아등을 조금씩 가꾸며 어렵사리 산다.

어느 4월로 기억한다. 심심산골에 위치한 꼰나따디교회는 건축으로 바쁜 와중에도 여름성경학교를 열고 있었다. 아이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 교회 마당에 모여 놀고 있었다. 내가 마당으로 들어서자 한 소년이 나에게 사탕 하나를 주면서 인사를 하였다. 뜻 밖에 나를 반겨주는 아이가 기특해서 이름을 물었다. ‘앤더슨’이라고 대답을 하였다. 옆에 있는 선생님이 그 아이가 ‘여름성경학교에 참석하려고 산길을 혼자 1시간 걸어서 온다.’ 고 하였다. 아이들을 만나면 늘 하던 대로 나는 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거침없이 “파스터(목회자)”라고 대답을 하였다. 나는 예상하지 않았던  아이의 대답에  ‘좋은 꿈’이 이루어지길 빈다고 축복해주었다. 아이들이 곁에서 물러나자 곁에 서있던 교사가 무슨 생각에서 인지 그 아이는 혼자 교회에 나오고 있고 가정이 어려우므로 신학교에 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을 해주었다.

그 뒤로 아이들의 예배에 참석해서 설교를 겸한 인사를 하였다. 설교가 끝나고 난 뒤에 아이들에게 꿈을 물었다. 교사, 공무원, 의사, 기술자, 간호사 등등의 다양한 대답이 나오는 중에 앤더슨이 목사가 되겠다고 대답을 하였다. 나는 모든 아이들의 꿈이 이루어지길 기도해주고 목사가 되기를 원하는 앤더슨을 앞으로 불러냈다. 얼떨결에 앞으로 나온 그에게 ‘왜 목사가 되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수줍은 목소리로 ‘착하게 살고 싶고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하였다. 나는 그 자리에 있는 교사들에게 앤더슨을 위해서 기도해주길 부탁하였다.

다음에 꼰나따디를 찾았을 때 그에게 다시 꿈을 물었다. 그는 ‘파스터’라고 주저함이 없이 대답을 하였다. 그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나의 동일한 질문에 그는 한결같이 ‘파스터’라고 대답을 하였다. 그가 꿈 이야기를 하면 교사들과 담임 목회자는 빙긋이 웃기만 할 뿐 그의 꿈에 대하여 격려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마지막 방문에서도 아이들 예배에 참석을 하였고 설교를 마친 후에 아이들에게 꿈을 물었다. 놀랍게도 60여 명의 아이들 중에 17명이 목사 또는 선교사가 되겠다고 손을 들었다. 나는 그 아이들 모두를 앞으로 불러서 담임목회자와 함께 친히 안수를 해주었다. 그리고 신학공부를 하겠다고 하는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약속을 하였다.

“여러분들이 신학교에 합격했는데 돈이 없어서 그만 두는 일이 없도록 장학금을 주겠습니다. 뜻을 세우고 열심히 공부하면 길이 반드시 열립니다.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기도하면서 꿈을 이루어 가십시오.”

교사들과 교우들에게도 아이들을 격려하며 기도해주길 간절히 부탁을 하였다. 2014년 봄, 마지막 방문을 한 이후로 다시 가지 못하고 있지만 ‘앤더슨’의 꿈을 위해서 기도하며 그가 신학교에 입학했다는 통지가 오길 기다린다. 꼰나따디 뿐만 아니라 비스와나스 뿌람, 두우르, 뉴그트레 마을을 비롯하여 몇 개의 마을에서 아이들의 꿈을 위하여 약속을 하였다. 가난한 아이들, 현실적으로 학업을 포기하고 생계노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 대학교에 들어가면 ‘장학금’를 주겠노라고 약속을 하였고 최선을 다하여 약속을 지키려고 한다.

정말로 절박한 상황 속에서 아이들을 격려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희망으로 약속을 한 것이 있다. 부모에게 수직 감염되어 에이즈에 걸린 아동들의 보금자리인 ‘샨띠홈’의 아이들과 ‘믿음의 집’ 아이들과의 약속이다.

샨띠홈을 처음 개원했을 때 아이들은 먹고 입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으로 만족하였고 늘 감사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면서 주변의 시선과 차별, 자기들의 앞날에 대한 고민으로 아이들은 점점 우울해 져갔고 웃음을 잃었다. 내가 그 아이들 입장에서 봐도 세상은 너무 어둡고 난폭하며 불친절하고 미래는 출구가 없는 절망이었다. 나는 ‘샨띠홈’을 세우고 오픈한 날부터 계속 아이들에게 주목하며 한 달에 2회 정도 방문하는 것으로 아들에게 힘과 용기를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최선을 다하여 꾸준히 아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물으며 칭찬하고 격려를 하였다. 그리고 아이들의 좌절과 고통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 ‘일기 쓰기’, ‘자전거 타기’를 권하였고 ‘드럼반’을 만들어서 강사까지 붙여 주었다. 그러나 그것도 별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없었다.

어느 날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다’고, ‘아이들에게 잃어버린 웃음을 찾아주고 싶다’고, ‘아이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사람답게 사는 것을 보고 싶다’고 간절히 울부짖었다. 하나님께서 아이들을 더욱 사랑하며, 신뢰하며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울 마음을 나에게 넘치도록 부어주셨다. 그 것은 내가 하나님을 대신해서 그들의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대학교에 입학하는 경우 장학금을 주겠으며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서는 직업훈련을 시키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리고 모두가 자립을 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돕겠다고 하였다.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하였고 그 뒤로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다니엘 목사님께서 원장으로 섬기고 있는 ‘믿음의 집’ 아이들에게도 같은 약속을 하였다.

드디어 2015년에 대학교에 입학한 아이들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처음으로 장학금을 보내면서 행복하였다. 내가 한 약속을 아이들이 성취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과 우리의 약속도 이와 같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을 주실 때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해놓으셨다. 그 약속을 믿고 고난을 헤치며 믿고 따라가는 자는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볼 것이요, 아닌 자는 보지 못할 것이다. 약속은 하나님 편에서 시작하였고 약속에 응답하기 위한 모든 것들 또한 하나님께서 준비를 하시지만 약속의 응답의 완성은 사람이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고아와 과부들에게 한 약속이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사실도 깊이 체험을 하였다.2016년에는 더 많은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보내면서 약속을 성취해준 그들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믿고 열심히 공부한 것이 고마워서 울었다.2016년에는 10명의 우리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보내야 했다. 작년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사랑만이 가슴에 남는다⌟는 제목의 책을 써서 판매 수익금으로 장학금을 보냈다.

올해는 몇 명이 더 추가될지 모르지만 나는 약속을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고아의 아버지인 하나님께서 내 입에 둔 약속을 이루시려고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감동 감화시키며 일하고 계심을 믿는다.

꼰나따디, 뉴그트레 등등의 아이들과 맺은 약속을 나는 성취하고 싶다. 샨띠홈과 믿음의 집 아이들에게 선포한 약속도 지키고 싶다. 약속은 내가 하였지만 그 성취는 아이들 손에 달려 있다. 나는 모든 아이들이 약속을 기억하고 성취하길 간절히 바란다.

2017년 7월 전까지 최소한 작년에 장학금을 지급한 50 여명의 학생들의 숫자만큼의 장학금을 준비해야 한다. 절반 정도는 장학금 결연을 해주신 분들의 후원으로 채워질 것으로 예상한다. 나머지 장학금 마련은 내 몫이다. 내가 직접 모금을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다. 현재 한국에 거주하지도 않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사연을 알리며 도움을 요청할 것인가를 묵상하며 기도 중에 있다. 고아의 아버지인 하나님께서 일을 감당하시도록 인도하시라 믿고 기다린다.

나는 오늘도 내게 위탁된 아이들의 장학금 마련을 위해서 주님 앞에 엎드려 있다. 그 분의 기적을 기대하며 내가 아이들과 한 그 약속이 나의 약속이 아니라 그 분의 약속임을 깨닫는다. 신실하게 약속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며 약속을 맺은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이 힘써 노력하여 약속을 성취하기를 응원한다.

 

이옥희 선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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