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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말인가? (요한 16:16~20)2017년 5월 28일 부활절일곱째주일설교
이훈삼 목사 (성남 주민교회) | 승인 2017.05.29 12:28

1.소통이 중요해

1) 공동체 놀이에서 진부하지만 언제 해도 재미있는 것은 몸짓으로 단어를 설명하고 알아맞히는 놀이다. 

주변 사람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미 알고 있지만 게임 당사자는 알지 못하여 엉뚱한 대답을 하면 그 것이 답답하면서도 웃음을 자아낸다. 아주 고전적인 놀이다. 그렇지만 재미있다. 

중학교 때 사춘기에는 괜히 만사가 귀찮고 불만이 생긴다. 학교 끝나고 집에 왔을 때 엄마가 안 계시면 신경질 나고, 그렇다고 계신다고 해서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아니었다. TV, 인터넷, 스마트 폰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에 엄마는 심심하기도 하고,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이 어떻게 공부했는지 학교생활은 어땠는지 궁금하시니 자꾸 물어보신다. 엄마의 질문에 대한 아들의 대답은 너무 간단하다. Yes or No. 나중에 어머니에게 제일 미안한 것 중의 하나가 이것이었다. 그냥 몇 십분이라도 학교에 대해서 이야기해드릴 걸. 사실 어머니가 원하시는 것은 학교생활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사랑하는 자녀와 이야기하고 소통하는 것 자체가 기쁨이었다는 것을 아이를 키우면서야 알았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우리 외조카는 어렸을 때 학교 갔다 집에 오면 엄마에게 그날 학교에서 일어났던 일을 조근조근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다. 엄마도 아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주고 또 궁금한 건 묻기도 해서 어느 정도 지나니 엄마는 딸 반 아이들의 사정을 거의 다 알게 되었다. 딸은 오늘 이 사건을 집에 가서 엄마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줄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부모나 자식이나 서로 이렇게 대화하고 소통하는 관계를 만들기 위해 참고 차근차근 노력하면 좋겠다. 부모는 아이의 이야기를 잘 끄집어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고 자녀는 부모의 물음을 귀찮아하지 말고 함께 나누면 가정은 그만큼 행복해진다. 

2) 사람이 서로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은 최고의 은총이다. 대화 자체가 단절되어 있거나 대화를 하긴 하는데 서로 잘 통하지 않으면 참 답답하다. 한참 동안 집중해 들어도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를 때는 갑갑해서 차라리 안 듣는 것이 나을 때도 있다. 

결혼 상대자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고방식의 공통점이다. 외모, 직장, 재산 등은 변화가 심하다. 인간의 외모는 세월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기에 외모가 첫 번째 요소인 사랑은 세월 앞에서 시드는 정도가 더 빠르다. 직장은 잘 되는 수도 있지만 안 되는 경우도 많다. 사랑이 여기에 좌우된다면 슬픈 일이다. 재산을 보고 결혼한다면 그 재산이 사라지면 그 사랑도 수명을 다하는 경우가 많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사고방식 즉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부는 같은 곳을 바라보는 관계라고도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향하는 삶의 방향이 비슷해야 하고 기쁨과 슬픔을 느끼는 가치관이 너무 생소하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인생의 방향과 가치관을 형성하는 궁극적인 요소가 신앙이기 때문에 기독교인은 같은 신앙인을 배우자로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기독교인끼리 결혼했다고 다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더 많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오늘은 제자들과 대화 중에 좀 답답해 하셨을 예수님을 살펴보자.

2. 답답해하신 예수님

1) 요한복음은 13~17장까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 제자들과 나눈 긴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오늘 본문도 그 중의 한 부분이다. 

주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에게 고별의 말씀을 하신다. 그래서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볼 수 없고 또 조금 있으면 다시 나를 볼 것이라고 하신다. 그래서 너희는 슬프고 근심하지만 곧 그것 때문에 너희는 기뻐할 것이라고 하신다. 우리에게 주님이 이렇게 갑자기 말씀하시면 우리도 이게 무슨 말씀인지 몰랐을 것이다. 지금 이렇게 주님을 잘 보고 있는데 좀 있으면 못 볼 것이라니, 주님이 어딜 가시나? 또 좀 있으면 볼 것이라니, 일정 기간 동안 잠적하셨다가 다시 나타나신다는 것인가? 그것 때문에 슬퍼하고 근심할 것이고 또 그것 때문에 기뻐할 것이라니, 도대체 무슨 말씀인지! 답답하기는 주님이나 제자들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주님은 이미 곧이어 십자가에 달려 죽임 당할 것이고 그러나 곧 부활하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고 이러한 주님의 계획을 전혀 모르고 있는 제자들은 도대체 무슨 말씀인지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의 상황도 나중에 읽는 우리도 답답하다. 
제자들은 주님과 가까이 있으면서도 이제 곧 주님께 닥칠 두렵고 끔찍한 상황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십자가의 죽음을 넘어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주님의 계획도 전혀 상상도 못하고 있다. 그래서 대화는 하고 있으되 상호 소통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서 답답한 것이다. 

2) 사마리아 여인 

요한 4장에 나오는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도 사실은 이해가 엇갈리고 있다.

안젤리카 카우프만, 그리스도와 사마리아 여인, 1796년

멀리 그리심 산이 보이는 사마리아 지방 수가 성의 야곱 우물가에서 주님이 물 길러 온 어떤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신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에 여인은 전혀 다른 대답을 한다. 그 물을 내게 주셔서 다시 목마르지도 않고 여기 우물까지 힘들게 물 길러 오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주님은 오른손은 가슴을, 왼손은 하늘을 가리킴으로써,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가슴속 영혼의 이야기를 하고 계신데 여인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물질로서의 물로 대답하고 있다. 여인은 열심히 듣기는 하지만 무슨 말씀인지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서 주님은 이 여인의 현재 삶을 꿰뚫어 말씀하셨다. 그제야 여인은 주님을 제대로 이해하고 동네로 들어가 예수님을 증언한다. 온전한 이해(인식)는 주님으로부터 온다. 거기서부터 참 대화와 소통이 가능해진다. 주님은 담담하게 이 여인에게 말씀하신다 ; 내가 메시아다!

3. 행복한 가정을 위하여

1) 외국인을 만나면 입이 딱 얼어붙는다. 그리고 겁이 난다. 그러나 언어가 다르다고 해서 전혀 소통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오늘 인도 선교사 이화랑목사님의 안내로 마드라스 크리스찬 칼리지 교수님 1분과 학생 7명 등 8분이  손님들이 오셨다. 이들 중 4명은 기독교인, 3명은 힌두교인, 1명은 불교인이고, 인도는 땅이 넓어서 지역에 따라 인종도 다르다. 그러나 우리가 인도어나 영어를 잘 못해도 어느 정도는 소통할 수 있다. 

2016.8 독일 바인가르텐교회와 주민교회 청소년들

2016년 독일 바인가르텐 교회에 갔을 때 우리도 독일어 잘 모르고 독일 교인들도 한국어 거의 몰랐지만 그래도 웬만큼 소통하며 지냈다. 우리가 굳이 처음 만났을 때, 천천히 그리고 쉬운 말로 해주세요! 라고 부탁하지 않아도 이미 그들은 우리에게 그렇게 쉽고 천천히 말하려 하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고! 이것은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말이란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막힌 담을 헐고 하나가 될 수 있다.

2) 5월은 가정의 달인데 어찌하다 보니 5월에 대통령선거, 어린이/어버이주일, 스승의 주일 등이 몰려서 부부의 행복에 대해서 말할 기회가 없었다. 가정의 행복은 부부의 대화와 소통에 달려 있다. 부부가 잘 통하면 가정이 화목하고 부부 간 대화가 잘 안되면 가정이 어두워진다. 우리나라 남자다움의 대표는 경상도다. 그래서 경상도 싸나이라고 한다. 그 경상도 싸나이들은 집에서 별로 말을 안 한다. 겨우 밥 먹자, 자자 정도라고 한다. 진짜 경상도 남자들이 말이 그렇게 없겠는가마는 하여간 우리는 오랫동안 말 없는 과묵함을 남성성으로 받아들였다. 요즘은 저렇게 하는 남자는 소외당하여 외로워서 죽을 것이다. 

여자와 대화하는 방법에 대한 강연이 있는데 두고두고 되새길 만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yHfJXxfK5ko

오래 전에 나온 강연 영상이지만 남자와 여자는 대화의 관심이 같지 않다는 것을 수용할 때 좀 더 이해하는 소통이 이루어질 것이다. 남성은 여성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훈련을 해야 하고, 여성은 남성들의 관심에 맞춰주려는 노력을 할 때 상호 이해가 성립된다. 

3) 상대방 헤아리기 

주님과 동고동락하던 제자들이지만 주님이 죽음을 앞두고 하시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오죽하면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공포 가운데 기도하시는데 제자들은 피곤해서 잠을 자고 있었다. 주님은 서운함을 숨기지 않으셨다. 너희는 한 시도 깨어있을 수 없더냐? 제자들은 주님이 무엇을 고민하고 있으며 어떤 계획을 실행하려 하고, 지금 어떤 상황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인지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화와 소통을 통한 이해는 상대방을 얼마나 헤아리느냐에 달려있다.

가정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가정은 하나님 나라의 축소판이다. 서로 사랑하고 위해주고 기도하면서 살아가는 최고의 관계가 가정이다. 나에게 주신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살아가는 관계가 가정인데, 이 가정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지난번 설교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가족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주님이 함께 계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기에 남편이 서운하면 먼저 주님께 호소하고 아내가 무심하면 먼저 주님께 하소연하라. 아이들이 속 썩여도 먼저 주님께 상담해야 한다. 해결의 열쇠는 가족들 사이에 계신 주님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말씀처럼 부모와 자녀 사이, 남편과 아내 사이에 서로 대화하는 법을 공부하고 훈련해서 행복한 부부, 행복한 부모와 자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이훈삼 목사 (성남 주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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