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독교인이어야 하는가

지금 나의 위치를 먼저 말하며 시작하자. 첫째, 대학생. 이는 교양 지식과 합리성을 기초로 세상을 본다는 뜻이다. 나는 과학적으로,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과 주장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둘째, 기독교인. 이는 예수의 가르침을 삶의 신조로 삼는다는 것을 함축한다. 그 가르침은 내가 ‘성서에서 읽어 낸’ 예수의 가르침이다. 셋째, 급진적 자유주의자. 이는 많은 권위에 대항함을 의미한다. 전통은 어느 정도 중요하지만, 그것에 얽매이는 것은 따분하거나 (어떤 면에서는) 악한 처사로 보인다. 이 세 요소가 모여, 신학도(또는 인문학도)로서의 나를 드러낸다. 때로는 독립적으로, 때로는 긴밀하게 연결된 채로.

때로 마주하는 자기 모순은 있다. ‘교양인’과 (사회적인 측면에서)‘래디컬’은 기독교인이 되는 것을 거부해야 하지 않는 것일까? 한편에서는 기독교의 전제를 흔들어버린다. 형이상학적인 가정―’하느님’이라고 불리는―을 토대로 한 기독교는 과학의 틀에서 진지한 존재론적 태도로 이해되기 어렵다. 다른 편에서는 기독교의 체계를 위협한다. 전승과 조직이 중요한 교회의 체계는 나 같은 급진파에게 때로 부담스럽다. 나는 분명 기독교인이고, 기독교인으로 자랐다. 하지만 나의 다른 취향들은 기독교를 선호하는 것을 강하게 거부한다. 그렇다면 난 대체 왜 기독교인이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변명을 대기 전에 솔직히 털어놓겠다. 적절한 답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21세기 신학생’이라는 모순된 위치에서 이 질문은 지금도 던져지고 있다. 이 길에 선 것이 아직 채 3 년도 안 됐고 말이다.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의 글과 책을 읽었지만 여전히 적절한 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난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 기독교 신앙은 내가 선택한 것이라기보단 내게 주어진 것에 가까웠다. 오히려 ‘왜 기독교인이 되어야 하는가’로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기독교인이 될 것인가’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 ‘어떻게 기독교인이 된 것인가’에서 시작해서 ‘왜 기독교인이 될 것인가’로 나아가는 과정으로만 나는 신앙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어떻게 기독교인이 되었는가

이제 질문은 달라졌다. ‘나는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목회자 가정에서 자란 나는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성장해 왔다. 기독교의 설화와 전통, 언어는 내게 매우 친숙하다. 성장하며 무신론자가 되기도, 반(反)-기독교인이 되기도, 삐딱한 기독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기독교의 언어, 기독교의 체계는 습관으로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기독교가 하나의 축으로 자리잡아있던 나였기에, 종교의 필요성을 느낀 순간 그리스도인의 자리로 곧장 돌아올 수 있었다. 학문적이고 급진적인 생각들은 기독교 언어를 매개로 번역될 수 있었다. 이렇게 세 개의 축은 공존한다. 세 모순되어 보이는 속성을 가진 채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이런 연유다.

나의 종교 경험이란 이렇듯 전통에로의 회귀를 통해 이루어졌다. 종교 간의 병존과 대화가 가능하리라고 믿게 된 것은 그 후의 일이다. 종교에 대한 태도를 여러 방향으로 돌리며 기존 신앙의 약점을 보았다. 또한, 신의 이름으로 요구되던 삶의 방식 중 일부를 수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념과 행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내 모습을 기독교 신앙으로 정당화할 수 있었고, 예수의 가르침을 통해 내 모습을 반성할 수도 있었다. 기독교로 돌아온 나에게 종교는 비어있는 항이었다. 종교는 ‘하느님 나라’의 실현을 위해 질문을 제기하고, 그로부터 나온 답을 실천할 때 필요한 상자로서 의미를 가졌다. 이 점에 있어서는 모든 종교인들이 같은 목표를 갖고 있는 듯 보였다.

문제는 이것이다. 실제로 어떤 종교의 가르침에 새롭게 들어가는 이들이 존재한다. 왜 그것이 가능할까? ‘기적’이 있는지를 묻는다면, 이러한 일들이야 말로 참된 기적이라고 답할 것이다. 윤리적 목표를 갖는다면 그저 성찰하고 실천하면 된다. 윤리적 공동체를 원한다면 종교 밖에서도 그것은 가능하다. 그런데 굳이 ‘기독교 공동체’의 일원이 되려는 이들이 있다. 단지 문법적 익숙함을 통해 기독교로 돌아왔다는 나의 답은 이러한 사실 앞에서 부끄러운 것이 되고 말았다.

왜 기독교인이 되어야 하는가

기독교에 돌아온 나의 경험은 ‘왜’가 없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왜’ 질문으로부터 기독교에 ‘새롭게 들어오는’ 이들이 있고, 때로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누군가를 우리의 가르침 안으로 데려 오길 요청 받는다. 나의 ‘왜’는 그 때 등장한다. ‘왜 이 사람들은 기독교를 찾았을까?’ ‘왜 나는 이 사람에게 예수의 가르침을 전해야 할까?’ 기독교라는 것이 힘 없는 기호에 불과하다는 변명은 소박한 것에 불과했다. 다른 종교들과 기독교가 구분되는 지점이 분명히 있던 것이다. ‘어떻게’ 질문이 끝나면서, ‘왜’의 질문은 나의 신앙이 다른 종교의 신앙과 구분되는 지점에 대한 질문으로 등장했다.

만약 그러한 분기점이 있다면, 그것은 필히 ‘예수의 삶’에 있을 것이다. 하느님과 세계에 관한 형이상학적인 해석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분명 복음서를 통해 전해지는 예수의 가르침이 존재한다. 성서의 권위를 인정하는 바, 이 가르침의 객관성(그것이 비록 해석의 대상일지언정)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기독교 신앙은 그러한 가르침 위에 놓인다. 굳이 예수를 찾는 비그리스도인이 있다면 그런 이유에서나 예수를 찾을 것이다. 사후세계에 대한 이상한 전승들과, 신학적 궤변들 대신 예수의 모습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도는 그 모습을 말하면서만 바르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답은 예수가 ‘무엇’을 가르쳤는지의 질문으로 넘어간다. 물론 그것은 단지 문자적이고 고정된 것은 아니다. 예수가 실제로 한 말이 있더라도, 그것을 우리 삶에 해석하는 것을 우리의 몫이기 때문이다. 나는 복음서에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읽어낸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예수의 가르침을 통해 하느님 나라가 임하리라 믿는 것이다. 예수는 이렇게 주장한다. 약자를 돌보고, 차별받는 이들을 껴안아야 한다. 통속적인 삶에서 더 나아가 정의의 실현에 이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 신앙의 행동은 시대에 맞추어 가변적이어야 한다. 기독교인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이 가르침들에 동의한다는 뜻이다.

성찰: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세상의 요구에 응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불신지옥 예수천국’이라는 구호로 기독교를 한낱 내세에 미혹된 염세주의자들의 모임이 되게 하는 선교 양태가 거부되어야 할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진지하게 내세를 믿는 비종교인은 거의 없다. 죽은 뒤의 삶에만 집착하는 종교는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가르침을 전하지 못하는 종교는 하나의 생명도 구원하지 못하는 죽은 종교다. 폭력과 협박으로만 그 정신을 전할 수 있다면, 난 그 종교를 참된 것으로 여기지 못하겠다. 종교 공동체는 저 너머의 세상이 아닌 바로 이 세상을 이야기해야 한다.

기성교회는 여전히 내세를 신앙의 중심에 둔다. 부당한 권력 구조를 옹호하고 약자의 편에 서기를 거부한다. 생전에 예수가 보였다고 알려진 모습과 교회의 모습은 너무나도 다르다. 예배당에서 낭독되는 귀절들과 달리 ‘그리스도의 몸’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는 단호한 선언은 이제 안과 밖이 뒤집혔다. 구원자 예수와 닮지 못한 교회가 구원의 힘을 갖지 못할 것은 당연하다. 구원하지 못하는 교회가 어떻게 “불신자”를 ‘구원’할 수 있겠는가. 이대로 간다면 교회는 곧 생명을 잃어버릴 것이다. 교회가 ‘생령’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의 삶을 실천해서 그 가르침이 옳았음을 증명해야 한다. 그래야 하느님의 통치가 실현되고, 구원이 이루어진다.

나는 왜 아직도 기독교인인가? 우선은 내가 기독교 공동체의 일원으로 태어났고, 그들의 언어로 사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예수의 가르침을 통해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할 수 있을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아직도’ 그 안에 있다. 왜 기독교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할 것인가? 같은 공동체에서 같은 목표로 세상에 나아가기 위해서이다. 왜 기독교의 목표를 따라야 하는가? 예수를 따라 살며 나타나는 결과들을 통해,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신학적 변증을 통해 그 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아직도 그리스도인이며,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독교를 성찰한다.

“그러니 그저 듣기만 하여 자기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말고 말씀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야고보 1:21

하원재(연세대)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