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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모교 감신을 자랑하는 때를 다시금 희구하며감리교신학대학 학내사태에 붙여
장효진(연세대학교) | 승인 2017.06.13 13:11

최근 필자의 모교인 감리교신학대학교(이하 감신대) 학내 사태에 대한 소식들을 들으면서, 글을 써서 내 자신의 생각과 의사를 표명하고 싶다는 생각과 욕망이 치밀어 올랐지만, 2주를 보냈다. 동문으로서 학내사태에 관한 글을 쓰기가 쉽지 않았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지낸 2주! 그새 한 학생이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하더니 이젠 교회 종탑에 올랐다. 그래도 이사회와 교수진으로부터 들리는 소식은 없다. 함흥차사라 했던가! 대통령이 국민의 심부름꾼이듯 이사회도 학생들의 심부름꾼이 되어야 마땅하건만 이 머슴들은 도대체 주제파악이 되어있지 않은 듯하다. 목사로서 제 분수도 모르는 모양이다. 주인들이 아무리 외쳐도 심부름 간 머슴들은 들은 체도 안한다. 갑갑한 감신의 현실이다.

하지만 여기에 심각한 딜레마가 있으니 그것은 이들도 역시 우리 감신의 동문들이라는 사실이다. 부끄러운 동문들일지언정 그들도 역시 우리 감신이 만들어낸 인물들이라는 것. 이러한 사실이 우리를 딜레마에 빠지게 만든다.

이미 오래전 우리는 하나의 선택을 했다. 이제 막 꽃피는 청춘의 시작 무렵, 우리가 감신에 입학하기로 결심했던 일, 하지만 그것은 지금 우리를 때로는 좌절하게 만든다. “내가 너무 순진했구나!” 씁쓸한 한숨을 쉬게 만든다. 처음 입학해서 20살 적 우리는 대부분 우리 학교가 작지만 참 매력적인 학교라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이는 순진한 믿음이었다. 우리 학교는 작지만 매력적인 곳이 아니라, 작지만 그 작은 곳에서도 온갖 비행들이 일삼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지극히 더러운 곳이었다. 대부분 교수들의 실력은 형편없었고, 그들이 받는 임금과 사회보장 수준은 그들의 수준에 비하면 형편없이 높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는 이 사람들이 과연 목사가 맞는 것인지 이제는 의심할 가치도 못 느낄만한 이사진들이 있다. 물론 20살에는 그 판단을 할 수 있을 만큼 우리가 크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학교를 졸업하고 어느 정도 세상 돌아가는 것을 함께 볼 수 있는 나이가 된 뒤에서야 그들의 수준과 악행이 나에게도 낱낱이 드러난다.

다른 대학의 국내 교수들 수준이 높아서 상대적으로 감신의 교수들 수준이 낮아 보이는 것은 아닌 듯하다. 다른 대학의 이사진들이 청렴해서 우리의 목사 이사진들이 부패해보이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감신대 교수들의 수준 자체가 낮은 거다. 감리교 신학대학교의 이사진 목사들이 부패한 것이다.

지금의 감리교신학대학교의 몇몇 교수들은 어떻게 그 실력으로 감신의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들은 그 정도의 수준으로 어떻게, 우리 모교의 질을 결정하는, 어쩌면 우리 중 가장 중요한 핵심 멤버인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 이러한 질문에 이번 학내사태의 핵심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한 학교의 수준이 학생들의 입학성적으로 결정되는 것은 참 웃긴 일이다. 먼저 중요한 것은 교수들의 수준이 그 학교의 질을 결정하는 것이 분명한 것인데도, 그래서 수준 높은 교수들의 강의를 듣기 위해 수준 높은 학생들이 몰려들어 경쟁력이 유지되는 것이 순리이니 말이다. 우리의 모교는 그 자명한 순리를 전도시키는 참으로 웃긴 학교다. 학생들이 수준이 낮아서 못 가르쳐먹겠다는 볼멘소리도 가끔씩 들리는데 이 얼마나 웃긴 한탄인가? 자신들에게 배우러 오는 학생들의 수준들이 낮다면 그것은 본인의 수준이 형편없기 때문이다. 감신에서 바르트가 강의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감신에서 물리학 특강을 아인슈타인이 한다고 해보자. 그래도 우리 학교에 교수들의 불만처럼 젊음으로 무장한 학생들의 눈이 빛을 잃고 있을까?

좋은 학교란 서당개도 3년을 들으면 풍월을 읊게 하는 학교다. 그런 훈장이 제자들을 키워내는 곳이다. 이는 자명한 대학의 목적이다. 그 제자들이 학계에서 그리고 교계에서, 또는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그 찬란한 영향력을 발휘하게끔 하는 것이 우리 학교의 존재 이유이다. 하지만 우리의 모교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우리의 모교는 무언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미 오랫동안 흘러왔다.

학생들을 속이는 것은 참 쉽다. 학생들에게 좋은 교수란 나에게 친근한 교수, 성적을 잘 주는 교수이다. 가끔 한 교수의 실력이 의심될 때에도 개인적 친분이 있으면 그 교수를 비판하기 쉽지 않다. 더군다나 그 교수가 좋은 성적을 주었다면 대부분의 학생은 자신이 똑똑해서 그 성적을 받았고, 자신의 똑똑함을 알아본 그 교수도 똑똑하다고 착각을 한다. 전형적인 무식한 이들의 자화자찬 향연이 벌어지는 곳, 그곳이 감신이다. 교수가 형편없는 학교에서 학생 스스로 자신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은 처참한 수준의 나쁜 성적들로 가득한 성적표일 것이다. 반항함으로서 똑똑함을 증명해야만 하는 서글픈 역설! 형편없는 교수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하는 대학의 성적 체계에서 교수보다 뛰어난 학생이 좋은 성적을 받기란 꾀나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보통 형편없는 수준의 교수는 자기 수준을 파악 못하는데, 그래서 분수도 모르고 자기가 퍽이나 훌륭한 교수라고 착각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자기 머리 위에서 놀고 있는 학생의 수준을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면 그 학생에게 좋은 성적을 줄 수 있겠는가? 그래서 학교는 역설로 가득 차게 된다. 뛰어난 학생들의 성적은 나쁘고, 평범한 학생들의 성적은 지나치게 뛰어난 그 웃지 못 할 역설들! 그래서 덩달아 모든 성적이 안 좋은 학생들이 서로서로 천재나 된 듯 한 기분을 주는 이상한 역설이 가득한 학교! 성적이 좋은 학생은 성적이 좋아서, 성적이 나쁜 학생은 성적이 나빠서 영재인 이 곳! 감신에서는 다들 천재다. 말 그대로 규칙도 상식도 없는 무정부적인 혼돈이 가득한 곳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학문적 생태계가 파괴된 학교에서는 이제 파리가 낀다. 학교가 내질러 싸내는 똥을 탐닉하는 똥파리들! 그들은 이제 더러움이고 모고 인지를 못한다. 세상천지가 다 똥인데 무엇이 더러우랴! 자기 이익에 탐닉하는 자들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판별하는 일 자체가 무너져 불가능해진 이 똥천지에서 날개를 활짝 편다. 내가 이사장이요, 내가 이사요, 내가 교수요, 떵떵거리고 싶어서 안달 난 이들 천지가 된다. 모두가 천재가 되어버린 이 학교에서는 그 누구도 기회만 되면 이사장이, 이사가, 교수가 될 수 있다. 서글픈 현실! 여기에 2년 전 감신사태의 핵심이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단 한번도 2년 전에 감신에 가득 찬 똥 자체를 제거했다고 믿지 않았다. 다만 파리 한 마리만 쫓았을 뿐! 감신에 가득 쌓인 똥들을 근래에 우리는 치워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우리가 2년 전 쫓아낸 파리가 다시 끼는 것을 이렇게 바라 보야만 하는 것일까?

우리의 딜레마! 저 파리들이 감신 출신이라는 딜레마! 우리 역시 감신 동문으로서 글을 쓰고 읽고 있다는 딜레마! 우리도 역시 똥파리라는 딜레마! 그래서 그토록 오래 그 똥천지에서 우리의 젊음을 뭉개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딜레마! 그 냄새에 너무 익숙해져 우리에게도 이미 그 냄새가 온통 배어버린 것을 인지조차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그 서글픈 모교의 딜레마! 지금 학교에 그 무거운 엉덩이를 깔고 뭉개고 있는 이들을 보면서 드는 우리 동문들의 서글픈 씁쓸함이다.

우리가 처음 이야기를 시작했던 그 딜레마로 우리는 다시 돌아왔다. 우리가 대적하고 있는 세력이 결국 우리와 같은 동문이라는 그 딜레마! 그 딜레마를 풀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단 하나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이 단순히 파리를 쫓아내는 일은 아닐 것이다. 파리는 똥이 있는 한 다시 낀다. 더군다나 어쩌면 우리들도 파리들이다. 그래서 감신사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감신의 똥 자체를 치우는 일인데, 그것은 바로 교수진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아닐까? 문제가 되고 있는 곳이 바로 교육의 현장인 이상, 감신 사태의 답은 다른 것에 있을 수가 없는 것은 아닐까? 우리 모교의 질을 결정하는 교수들의 수준을 높이는 것 외에 다른 방도는 없는 것 같다. 그것이 우리들 스스로가 싸질러 논 똥을 치우는 유일한 길인 듯하다. 교수진의 수준이 높아져야만 학생들의 수준도 높아질 수 있고, 그래야만 우리 모교는 정상화되어 학교 본연의 목적인, 사회에 예언자의 소리를 낼 것이라는 그 찬란한 이상을 실현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똥파리들이 지능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후각기관은 살아있다. 그래서 그들은 냄새의 근원을 그렇게도 잘 파악한다. 그 냄새의 출처가 무능한 교수직에 있음을 알고 그들은 필사적으로 무능한 교수진을 원했던 것인가 보다. 자신들과 그 생각, 수준을 같이 하여 한 편이 될 수 있는 무능한 교수들! 자신들을 쫓아낸다고 해도 자신들은 그 곳에 똥이 있는 한, 그 똥을 끊임없이 생산할 수 있는 자신들과 한 편인 교수진들이 있는 한, 시간을 두어 조금 날아다니다가 다시 오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똥이 사라진다면 자신들의 생태계 자체가 파괴된다. 그래서 그들은 똥을 싸질러 대는 교수들을 기필코 끌어들어야만 했던 것이다. 우리가 일전에 이사진에게 교수 임용권을 넘겨주었을 때 우리는 이미 이러한 사태가 벌어질 것을 예상했어야만 했다. 2년 전 그토록 말도 안 되는 교수임용에 그들이 목을 맬 때, 이러한 사태가 다시 올 것이라는 것을 예상했어야만 했다.

이제 이러한 문제를 반복하지 말자. 제발 자랑스러운 우리의 모교를 다시 일구자. 그 출발은 교수 임용권을 학생들과 깨어 있는 교수진들이(만일 그런 교수진이 아직도 남아있다면) 다시 찾아오는 일부터 시작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 감신 출신은 다 파리들일 수 있다는 딜레마에서 과감히 빠져나와, 우리 중에도 이름 모를 훌륭한 인재들이 있다는 믿음으로, 그 인들을 찾아내고, 또 등용해야만 한다. 혹 우리 중에 인재가 부족하다면 외부에서 초청이라도 해야만 한다. 생각보다 우리 대한민국에 인재가 많다는 것은 정권이 교체되면서 다들 실감하고 있던 사실 아니던가? 생각보다도 우리 감신 출신들 중에도 인재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우리들은 믿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학생들이 목숨 걸고 외치는 이사장 대행의 퇴진은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한다. 일단 쫓아내고 똥 치울 시간을 벌어야만 한다. 이 후에 총장은 반드시, 반드시 학교를 생각하는 이로 뽑아야만 한다. 그래서 이사진에 의함이 아닌, 직선제로서 우리 모두가 참여하는 선거에 의해 선출되어야만 한다. 총장의 어깨가 무겁다. 이번에 선출되는 총장은 우리 감신에서 똥을 걷어내야만 하는 역사의 심부름꾼이기 때문이다.

최순실 사건이 터져나오면서 대한민국이 똥천지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 뒤 우리는 우리에게 가득 배어 있던 냄새의 출처가 바로 비선실세에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우리는 정권을 교체해서 그들이 싸질러 놓은 똥을 새 정부 중심으로 모두 함께 치우고 있는 중이다. 이것이 감신에서는 불가능한 일인 것인가? 우리는 더욱 더 작은 모임이다. 그리고 우리는 유대 지배층이 싸질러 놓은 똥을 치우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운 예수의 후예가 아니던가? 우리의 모교! 자랑스러운 감신! 우리가 함께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우리 동문들은 우리의 모교 감신을 자랑 좀 하고 싶다!

<필자 소개>

필자 장효진

 

 

감리교신학대학교/대학원에서 신학과 종교철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종교철학 전공으로 박사과정 중에 있습니다. 범신론적 일원론과 초월론적 이원론을 연구하며 최종적으로는 이 두 이론 틀 내에서 성립하는 각자의 신론-우주론-인간론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장효진(연세대학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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