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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멜라우 정상에서 안녕을 고하다<말리의 늦게 가는 세상>
임정훈 | 승인 2017.06.15 10:58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 한지 15년이 되던 그날은 4대 대통령 취임식이 함께 있었다. 온 나라가 독립기념일을 축하하며 축제를 열었다. 나는 그날을 기다려 이 나라에서 제일 높다는 라멜라우 산을 가기위에 집을 나섰다. 동티모르 사람들은 평소에는 무심한 듯 보이지만 나라에 큰일이나 행사에는 발 벗고 나서 함께 동참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날도 수도인 딜리는 물론이고 라멜라우를 향해 가는 모든 도시마다 온 국민이 어우러져 축제를 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나도 덩달아 즐거웠고 축하의 마음을 그들에게 가득 보내고 싶었다.

독립기념일, 수많은 동티모르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희생으로 이루어 낸 일이다. 그들의 희생으로 21세기에 최초로 독립국가가 되어 이제 네 번째 대통령을 직접 선출한 것이다. 그러니 이들에게 주어진 그날은 참으로 감사하고 뜻 깊은 날이었을 것이다. 그날, 라멜라우로 떠나는 나에게도 나름 뜻 깊은 여행이었다. 동티모르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는 여행이었고, 2년 동안 주어진 임무를 무사히 마친 나 자신에게 주는 상으로 감사하며 떠나는 여행이었다.

딜리에서 라멜라우 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70KM의 거리다. 하지만 라멜라우를 다녀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여섯 시간은 족히 걸린다고 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자동차로 한 시간이면 족히 다다를 거리를 아무리 열대밀림 산악지대라 하여도 4륜 구동차로 6시간이나 걸린다니 다가올 험한 여정이 짐작되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2년여를 지내는 동안 나도 제법 느긋해졌는지 걱정은 되지 않았다.

시간을 내려놓고 가는 길이다. 굽이굽이마다 새롭게 펼쳐지는 대자연의 풍경에‘우와, 우와 ’감탄이 절로 나왔다. 한 고개를 넘으면 또 다른 모습을 한 산이 나왔고, 다시 한 고개를 넘으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게다가 하늘빛은 또 얼마나 맑고 곱던지 시선이 닿는 곳마다 한 장의 엽서 같았다. 그렇게 얼마를 갔을까. 드디어 라멜라우 산 아래 있는 마을에 도착하니, 길가에 하얗게 핀 데이지 꽃이 낯 선 길손을 먼저 반겨 주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데이지 꽃의 환영을 받으며 마을길을 걸었다.

이곳 라멜라우 주민들도 중학교 운동장에 모여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북과 꽹과리 같은 전통 악기 ‘바바독’과 ‘타라’가락을 들으니 내 안의 흥이 꿈틀거렸다. 함께 춤도 추고, 달뜬 목소리로 이야기도 나누고, 환한 얼굴로 사진도 찍었다. 이른 새벽, 아니 한밤중이다. 라멜라우 정상은 해발 2963m. 엄청나게 춥다는 말을 듣고 얇은 옷이지만 여러 겹 껴입으며 나름 무장을 하고 숙소를 나섰다.

캄캄한 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은하수가 밤하늘을 황홀하게 수놓고 있었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별들이 있는 걸까.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그중에 어느 별은 유난히 반짝이고 순간순간 별똥별이 나를 향해 쏜살같이 내려오고 있었다. 거기에 초승달은 청초한 모습으로 내 머리위에서 나와 발걸음을 함께 해 주었다. 어쩌면 그날의 밤하늘은 나를 위한 우주쇼처럼 아름다움으로 무한천공 어디론가 나를 끌어들이는 기분이었다.

라멜라우 정상까지는 네 시간은 족히 걸어야 한다. 캄캄한 밤길 의지할 것은 렌턴의 불빛이 전부인데 밤하늘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어쩌자고 저리 곱단 말인가. 접어둔 꽁지깃을 활짝 핀 공작처럼 숨어있던 밤하늘이 입을 다물 수 없게 했다.한 발짝 한 발짝 산에 들면서 동티모르에서의 시간들이 스쳐간다. 낯선 땅에서 마음을 열게 했던 순박한 얼굴들이 스쳐간다.

라멜라우 산행은 동티모르를 떠나기 전 한번은 꼭 다녀가고픈 여행이었다. 땀이 나고 숨이 턱에 차오른다. 거친 숨소리만 내품다가 드디어 정상에 섰다. 환호성이 터진 것도 잠시 순식간에 추위가 엄습해온다. 그동안 내 몸은 더위에 익숙해져 추위에 무방비 상태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덜덜덜 떨면서 바람 피할 곳을 찾다 요새처럼 움푹한 공간에 새끼 새들처럼 몸을 웅크렸다.

한기로 온몸이 얼어붙어 움직일 수 없었다.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것이 추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꼼짝도 못하고 추위에 떨면서 얼마나 기다렸을까. 그 많던 별들이 사라지면서 저편 어둠속 세상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숭고하고 장엄하게 신비로운 빛을 띤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 장면이 주님이 재림하실 때 광경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주께서 태초에 천지를 만드신 후 첫날 저 광경으로 해가 떠올랐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시간 나는 변덕스럽게도 떠오르는 해를 기다리던 한 시간 동안 몸이 꽁꽁 얼어있었던 것이 차라리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건하기 까지 한 그 귀한 광경을 거저 보아서는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웃나라도 아닌 인도양 끝자락에 있는 강원도 크기의 동티모르, 거기에서도 라멜라우라는 산골에서 평생 보기 힘든 일출을 보았으니 그러한 생각도 무리는 아니다.

해가 떠오르면서 어둠이 걷히고 서서히 세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라멜라우산은 우리나라 한라산과 지리산을 합쳐 놓은 것 같다고 하더니 과연 지리산의 웅장함과 한라산의 아름다움이 겹쳐있었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끔은 침묵이 더 많은 것을 담기도 한다. 나는 그곳에서 조용히 2년여의 시간에 마침표를 찍었다.

동티모르여 안녕!

나는 이제 한국으로 돌아간다. 동티모르의 산과 바다, 하늘과 땅, 푸른 나무와 초원은 눈 속에, 마음속에 담아두었다. 테툼어에는‘고민’이라는 단어가 없을 만큼 주어진 삶에 순응하며 여유로운 마음으로 소박하게 살아가는 동티모르 사람들도 가슴속에 곱게 담아두었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해맑게 웃던 제자들은 가슴에서 내려놓았다. 비워야만 채울 수 있는 마음자리이기에 사랑하는 제자들의 앞길이 라멜라우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반짝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만 남겨 놓은 채 나는 이제 담담하게 우리나라 한국으로 돌아간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임정훈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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