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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을 주었는데 그들은 태산을 만들었다<이옥희 선교사 칼럼>
이옥희 선교사 | 승인 2017.06.28 10:57

내 가슴에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참 많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름다운 줄도 모르고 내 가슴에 담겨서 별이 된지도 모른다. 나는 그 별의 이름을 부르며 따로 꺼내서 보기도 하고 전체를 바라보며 인생의 신비와 경이감에 도취하기도 한다. 나는 그 분들 덕분에 나그네살이에 지치 않았고 어려운 일을 많이 겪고 앞뒤를 분별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뒤통수를 맞기도 했지만 아직도 사람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가지고 산다.

3월 중에 둥북인도 추르찬드푸르에 교단 본부가 있는 독립교단의 여신도회 총무 다르 모이에게 이메일을 받았다.

그동안 우리가 지원해준 복돼지 프로젝의 수혜를 받은 자들이 100명이 넘어섰으며 그 수혜자들의 뜻을 모아서 2박 3일로 교육 프로그램을 가졌다는 내용이었다. 수혜자들이 돼지를 키워서 자기 재산을 조금 불리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받은 사랑을 가난한 이웃과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나누기를 원해서 이루어진 수련회였다는 것이었다.

겨자씨가 자라서 새가 둥지를 트는 나무가 되는 모습이 보였다.

누룩이 밀가루 서 말을 부풀리는 것이 보였다.

편지를 읽는 중에 뜨거운 것이 가슴에서 울컥 울컥 올라왔다.

미얀마 국경과 조금 가까운 마니푸르주 추르찬드푸르에 가면 우리와 같은 몽고리안들이 살고 있다. 아기들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있고 아기를 등에 업는 것이 우리와 같다. 밥도 우리와 같은 차진 밥을 좋아하며 순대, 인절미 등이 있고 개고기도 먹는다. 집집마다 낮은 울타리를 치며 울안에 무, 당근, 마늘, 파, 가지 등등의 채소를 텃밭에 가꾸며 울타리 아래 봉숭아와 맨드라미, 백일홍을 심는다.

나는 ‘마을’이라 불리는 이 종족을 만난 것을 내 생애의 큰 축복으로 여긴다.

나는 1994년 그 지역을 방문한 이래로 여신도회와 관련을 맺고 살아왔지만 신학교 일에 집중하노라 여신도회 일에는 정성을 제대로 쏟지 못하였고 항상 인사치레 정도만 하였다.

한 번은 그 곳을 방문한 중에 20대 후반의 젊은 목회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여신도임원들을 따라서 함께 그 집을 방문을 하였다.

장례식이 끝나고 며칠 지난 뒤라고 하였다. 젊은 사모는 심신을 가누지 못하고 울었다. 그의 곁에는 3살짜리 아이와 젖먹이가 있었다. 여신도회 임원들은 그가 곧 교회 사택을 비워주어야 하므로 집을 구할 수 있는 문제와 살길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개 교회와 교단 총회가 힘껏 돕고 자신들이 협력해서 집은 구한다 치더라도 앞으로 살 길이 막연하다고 하였다. 어려운 일을 당한 사모를 마치 자기 동생의 일처럼, 딸의 일처럼 생각하며 함께 살 길을 궁리하는 모습이 내 마음에 큰 위로와 감사가 되었다. 감동받은 나는 그가 두세 달 정도 살 수 있는 돈을 손에 쥐어 주고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임원들이 긴급 구호와 그의 취업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지만 서로 도와서 젊은 사모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돕자고 하는 것 같았다.

그 기억이 자주 떠올라서 나는 그들의 일에 협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어떻게 나누며 섬길까를 고민하였다. 어느 날 라열라시마지역에서 하는 염소나누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연락을 했더니 그 지역은 염소 키우기가 적당하지 않고 사람들이 염소 고기를 먹지 않으므로 자립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회신을 받았다. 그래서 닭도 생각하고 소도 생각하고 많은 생각을 하다가 결국은 돼지를 나누기로 결정하였다.

2011년 2월, 처음으로 돼지 10마리 분을 첸나이 희망발전소를 방문한 자야목사 편에 전달하였다. 이렇게 하여 시작된 작은 일이 어느덧 세월이 흘러서 100여 명 이상이 수혜를 받았으며 수혜자들이 자진해서 나눔을 실천하겠다고 모여서 결의를 했다니 나로서는 감격과 감동의 도가니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돼지 프로젝을 시작하면서 한 가지 약속을 수혜자들에게 받았다. 돼지가 자라서 새끼를 낳을 경우 새끼 한 마리는 반드시 이웃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총무는 그 동안 수혜자들 스스로 나누도록 만들어서 간접 수혜자들이 엄청 많이 늘어났다고 하였다.

나는 티끌을 주었는데 그들은 태산을 만들었다. 나는 겨자씨 하나를 주었는데 그들은 겨자나무 숲은 만들었다. 나는 누룩 한 줌을 주었는데 그들은 맛있는 빵을 만들었다. 나는 나무 조각 하나를 주었는데 그들은 그것으로 집을 지었다.

부끄러운 전율과 감동으로 하루 종일 아니 편지를 받은 이후로 지금까지 기적을 만들어준 그 그들과 힘과 정성을 다한 여신도회 총무에게 깊은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그들에게 선한 열매를 풍성히 맺도록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영광과 찬미를 돌렸다.

총무는 이제 수혜자를 여성을 넘어서 남성에게 까지 확장을 시키겠다고 하였다. 가난한 가정과 실직한 가정에도 나눔의 손길을 펴서 돌보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뜻이 너무 가상하여 올해도 20마리 분의 돈을 보내기로 하였다.

그 사랑의 나눔은 연세가 90세에 이른 어느 권사님께서 소천하기 전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작은 돈을 어디엔가 기증하고 싶은데 어디가 좋은지 모르겠다며 어느 분에게 추천을 해달라고 하였는데 그 분이 마침 우리 프로젝을 소개하여 준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다르 모이총무의 마음을 아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 지역 남성들을 위한 종자돈도 마련해주도록 축복해주셨다.

그들은 동북인도에서 본토 인도로 나가는 관문에 땅을 사고 그 곳에 ‘축복의 집’을 지어서 그 지역에 복음을 전하며 그야말로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방인이라고 할 수 있는 본토인들을 섬기기를 원하였다.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 작은 여신회가 감당하기 힘든 프로젝이라고 생각하며 생색을 내는 정도에서 조금씩 후원금을 주었다. 그런데 그들이 여러 해 동안 수고를 해서 원하는 땅을 샀다. 그들은 받은 비전으로 다른 종족을 품고 섬기기를 사모하였고 열정을 가지고 끈기 있게 모험을 하였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에 응답을 해주셨다.

그들은 대지를 구하기 위해서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은 1년에 1달분의 월급을 헌금하기로 결의를 하였고 주부들은 날 연보를 해서 최소한 1달에 사흘 분을 헌금하기로 하였다. 임원들은 맡은 구역대로 가서 여성들을 교육시키며 함께 기도를 하였고 교회들은 바자회를 열어서 수익금의 일부를 바쳤다. 나는 한 번 ‘축복의 집’에 대한 안내와 교육을 하는 팀을 따라서 독가촌에 간적이 있다. 그들은 외딴 곳에 사는 주부를 위로하고 ‘축복의 집’를 소개하고 헌신을 하도록 잘 지도하였다. 그 날 건축 건을 소개를 받은 여성은 카드에 자기 이름을 적었고 날 연보를 약속하였다. 그들은 개별적으로 모금을 했을 뿐 만 아니라 가정별로, 교회별로, 지구별로, 노회별로 기념실을 하도록 권장하였고 드디어 기공예배를 2012년 초에 드렸다.

총무가 10여 년 동안 방문할 때마다 조금씩 바친 우리 헌금이 기념실을 만들 정도의 후원금이 되었다며 감사의 인사와 함께 기공예배에 초청을 하였다. 나는 송구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며 기공예배에 가서 마음껏 축복을 하고 왔다. 그리고 오늘까지도 해마다 조금씩 기념실 헌금을 보내며 완성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교단신학교 졸업식에는 거의 모든 여신도 임원들이 참석을 하며 개 교회 여신도들도 꽃다발과 선물을 사기지고 와서 졸업생들에게 앞을 다투어 선물을 한다. 나는 신학교 졸업식에 참석해서 강연과 설교를 몇 차례 하였다.

졸업식이 다 끝나면 졸업생들이 식장 밖으로 나와서 도열을 한다. 그러면 식장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졸업생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선물을 주고 축복의 말을 나눈다.

나는 꽃과 선물을 들고 서있는 여신도회원들에게 “자녀가 졸업합니까?” “조카가 졸업을 합니까?” “교회 청년이 졸업을 합니까?” “마을 청년이 졸업을 합니까?” 라고 순서대로 물었다. 그들은 다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무엇 하려고 오셨어요?” 라는 나의 질문에 평생을 산골짜기에서 전도사로 섬기다가 몇 년 전에 은퇴하셨다고 하는 전도사님께서 검으로 찌르는 대답을 해주셨다.

“졸업생 들 중에는 집이 너무 멀어서 가족이나 목회자들이 아무도 오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어요. 그 학생들도 이 기쁜 날에 축복과 축하를 받아야 하는데, 우리가 부모를 대신해서 그 학생을 축하해주고 같이 기뻐해주려고 온 거지요.”

그들의 영적인 번지수는 나와 차원이 달랐다. 신학생 한 명을 축복하기 위해서 새벽에 집에서 출발하셨다고 하는 투박한 할머니의 내공, 여신도회 회원들의 대답이 나의 영적교만을 단칼로 베어버렸다. 한 없이 부끄러웠지만 입을 열어서 다 물었다.

“어떻게 그 학생들을 알아 봐요?”

“어떻게 알아보긴 손에 선물과 꽃다발이 없는 학생들이 다 그 학생이지.”

전도사님의 간단명료한 대답에 나는 순간 넋을 잃었다.

졸업생 한 명 한 명을 배려하는 큰 어머니들의 마음과 사랑이 그들의 가슴에서 흘러내리고 있음이 보였다.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여신도회원들은 차례대로 가서 꽃다발과 선물을 들고 있지 않은 학생들에게 꽃과 선물을 전하며 학생들과 시진을 찍었다. 참으로 아름답고 복된 장면이었다.

그 전도사님은 맨 마지막에 가셔서 가장 선물을 적게 받은 학생의 손을 잡고 위로와 격려를 하고 사진을 찍으셨다. 나는 그 아름다운 장면 앞에서 숨을 죽이고 입을 다물었다. 그는 내년에도 살아있으면 또 올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2012년 미조람의 수도 아이졸에 가서 과부로서 베를 짜서 5자녀들의 생계를 돌보는 여성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는 과로로 쓰러져서 두 달 동안 베를 짜지 못하고 누워서 지냈다고 하였다. 그런데 두 개의 베틀에 예쁜 천이 놓여있었고 이웃집 아주머니가 그것들을 베틀에서 내리고 있었다. 본인이 아파서 두 달 동안 누워계셨다고 했는데 베틀에 베가 있기로 “ 따님이 짠 것이냐?” 고 물었다. 아주머니는 베를 내리고 있는 분이 오셔서 틈틈이 짜주었으며 그 분 또한 베를 짜서 생계를 유지하는 분이라고 하였다. 베를 짜서 생계를 도모하시는 분이 이웃집에 와서 베를 짜준다는 것이었다. 자기 베틀 작업을 쉬고 와서 이웃의 베틀에 앉아서 작업을 하는 그의 사랑에 감동되었다. 그가 천사처럼 보였다. 하나님의 천사가 아니고 어찌 자기 일을 멈추고 와서 이웃의 일을 해줄 수 있단 말인가!

그분은 나의 칭찬에 멋쩍어 하면서 ‘가난해서 돈은 주고 싶어도 줄 수 없고 해줄 수 있는 것이 베를 짜주는 것 밖에 없어서 한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하였다. 그의 아름다움에 감동한 나와 안효현 선생은 그 자리에서 최고의 가격으로 그 천들을 샀다. 우리는 ‘마을’ 족 여성들의 전통치마인 그 천을 10만 원 정도를 지불하고 사면서 정말 행복하였다.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났는데 10만원이 대수인가!

그 보다 더 비싼 대가를 치루더라도 나는 그들을 격려하고 싶었고 축복하고 싶었다.

우리는 이야기를 멈추고 함께 각자의 말로 번갈아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사랑의 감동이 우리 안에 강하게 역사를 하였다. 2달 동안 누워계셨던 아주머니도 그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찬송하며 즐거워하였다.

후문으로 두 달 동안 병석에 누워계셨던 그 아주머니가 다음 날 교회의 새벽기도회에 참석을 해서 치유 받은 간증을 했다는 말을 우연히 들었다.

사랑은 아름다움을 낳고 아름다움은 감동을 낳고 감동은 사람을 치유하며 회복시킨다.

독립교단 여신도회원들은 한 명 한 명이 시골 할머니 복주머니에 들어 있는 진주알들이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의 아름다움을 보았고 그들에 도취하였으며 오늘도 그들을 사모하며 그들에게 감동과 위로를 받는다.

그들이 내 안에서 별이 되어 반짝거리며 나를 내려다본다. 아 보고 싶다! 그립다!

2017. 4. 2

우담 초라하니

<필자 소개>

한신대학교, 동대학원 졸업

영주중앙교회, 군산한일교회, 베다니집 등에서 시무.

1997년 전북서노회 파송 인도 선교사로 출발.

1999년 기장총회 파송 남인도 교단 선교동역자로 데칸고원 라열라씨마 일대에서 달리트 선교에 동참해 오늘에 이름.

2007년 7월 13일 전 인도 신학 협회로부터 명예신학박사 학쉬를 수여.

비전아시아미션 창립 이사(2005년 11월 30일)이자, 비전아카데미(지도자훈련원) 설립 이사(2006년 6월)

인도선교 10주년 기념시집 <비아돌로로사>, 선교 17주년 기념에세이 <선교사는 거지다>의 저자

<후원계좌>

국민은행 520702-01-176813 이옥희

이옥희 선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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