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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의 반은 이미 쓰여 있다<김서정의 하루 3분 글쓰기 교실>
김서정 작가 | 승인 2017.06.30 10:25

이야기는 언어 차원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언제든지 새로 쓸 수 있지만 문제는 내 이야기를 내 마음대로 바꾸지 못한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내가 이야기를 쓰기도 전에 그 이야기의 반 이상이 이미 쓰여 있거나 그 내용이 거의 결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상과 신념들 중 하나를 내 마음대로 선택하고 내 마음대로 행동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주어진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일 뿐이다. 그중 어떤 하나를 선택하면 그다음 선택은 앞의 선택에 의해 거의 대부분 결정되기 때문에 새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이야기를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자신의 이야기가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다른 사람과 함께 쓰는 더 큰 이야기, 즉 담론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더 큰 이야기가 어떻게 쓰여 있는지, 그것이 내 이야기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물결은 저절로 방향을 바꾸듯이 거대서사가 달라지면 내 이야기도 달라진다. 우리 모두의 이이야기가 바뀔 때 나의 이야기도 바뀌기 시작한다. 치유의 핵심은 자신의 이야기에서 역할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은유와 마음>에서

[단숨에 쓰는 나의 한마디]

다음 문장만 언급해보자.
“내가 이야기를 쓰기도 전에 그 이야기의 반 이상이 이미 쓰여 있거나 그 내용이 거의 결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온전한 나의 이야기는 없다는 말인가? 나를 표현하고, 나의 이야기가 진짜 이야기라고 하는데, 그것은 절반은 있고, 절반은 없다는 것인가? 저자의 말에 따르면 그렇다. 그렇다면 이 부분을 어떻게 생각해볼 것인가?
이 이야기는 다양한 문화의 비교에서 온 것 같다. 대한민국에 사는 나의 이야기에 아프리카나 남미의 자연생물과 문화가 등장하기 어렵고, 우주의 일부분에 일어나는 물리현상이 적용될 수도 없다. 좁혀서 말하면, 나는 대한민국의 문화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인 생물학적인 존재로서의 서술이 절반을 잡아먹고, 나머지 절반은 그 틀에서의 재편집된 나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만일 경험이 주를 이룬 것에서 벗어나 쓰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판타지이면서 거짓이라는 것이다. 자신을 직시하지 못하고 허황된 자아를 그려놓고 달려가기에 헛수고만 한다는 것이다. 지치고 힘들고 계속 아파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쓰다 보니 이렇게 생각해보면 간단할 것 같다. 우리는 주어진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고, 그것을 회피하지 말고 직시하면 치유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이다. 나의 절반은 이미 타자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렵다!

김서정 작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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