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한국 신학’이라는 것은 과연 존재하는가? 또한 ‘한국’ 신학은 필연적으로 존재해야만 하는 것인가?커뮤니케이션 할 필요가 없는 커뮤니케이션이 있을 때, 단지 누군가가 커뮤니케이션의 전도사라는 사회적이고 지적인 지위를 얻기 위해 그러한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난다면, 그 메시지의 질적이고 커뮤니케이션적인 가치는 무거운 추처럼 급속히 추락하게 된다. 한국 신학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한국 신학이 스스로도 존재 이유를 잘 모르면서, 단지 서양의 것과 구별된 정체성과 문화적 바탕을 가지고 회자되는 뿌듯함을 위해 자신의 담론을 형성한다면 그 담론의 가치는 자기 만족에 불과할 것이라 본다. 

참 한국의 신학은 한국의 현실적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시사하는 방향으로 세워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수백, 수천 년 된 고대의 동양 종교사상이나 철학사상에 기독교 신학의 옷을 입히는 것을 가리켜 ‘한국신학’ 혹은 ‘한국적 신학’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신학자들의 탁상공론이 될 것이라고 본다. 한국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에 중심을 두고 현시점에서 가장 낮은 자들과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작업을 계속 하는 것이라고 보는데 이러한 신학에 변화가 생긴다면, 그것은 타자 구성 방식, 타자와의 관계성에 있어서의 변화일 것이라 생각한다. 본 글에서는 포스트휴먼 사회에서의 한국 신학의 방향에 대해, 타자성에 초점을 두고 글을 전개한다.

1.포스트휴먼, 그리고 타자성에 관하여

사이버네틱스의 논의를 적용하여 살펴본 타자는 그 속내를 알 수 없으며 예측이 어려운 존재다. 피드백이란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환경이나 미리 짐작할 수 없는 타자에 대한 정보를 읽어 파악하는 능력을 의미하는데, 쉽사리 파악되지 않는 타자의 존재란 시스템에 방해가 되는 요소가 아니라 시스템의 유지와 발전에 필요 불가결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 만일 타자가 없다면 피드백이 필요 없고 피드백이 없다면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하며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한 시스템은 진보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이버네틱스에 따르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타자와의 관계망이다. 그 ‘관계’속에서만 인간의 잠재적 능력이 실제로 구현되기 때문이다. 사이버네틱스는 주체가 타자와 맺는 관계를 통해서만 시스템이 유지되고 커뮤니케이션을 제어할 수 있음을 밝혔고, 타자와의 관계는 기능적 효율성이나 성공여부가 아니라 윤리적 태도에 기반하고 있어야 한다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해준다. 사이버네틱스에서 바라보는 시스템은 타자의 존재로 인해 더 발전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 타자와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높이려는 피드백이야말로 사이버네틱스가 말하는 정보의 본질이자 핵심인 셈이다.

그러나 테크노롤지에 입력된 타자는 ‘주체가 원하는 답’을 내어줄 준비가 되어있는 표준화된 정보가 되어버린다. 레비나스의 관점에서 기계화된 타자는 더 이상 타자의 역할을 하지 못 하는 또 다른 나에 불과하고, 사이버네틱스의 관점으로 보자면 기계화된 타자는 시스템 자체의 복잡성 관계에 따라 정의된 단순한 정보에 불과하다. 위너가 사이버네틱스를 논하면서 과학자와 지식인, 언어, 법률의 역할을 강조한 까닭은, 사이버네틱스가 타자에 대한 윤리적 태도 없이는 단순한 기계적 모델이 되어버리거나 인간에게 도리어 칼을 겨누는 흉기가 될 수 있음을 예견했기 때문인데 이때의 윤리적 태도란 레비나스가 말한 포용의 윤리학이라기보다는 타자의 알 수 없는 속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감응능력에 가깝다. 

타자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타자를 전유해야 하지만 그 전유의 과정 속에 숨어있는, 나의 인식으로 환원될 수 없는 독특성에 주목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전적인 타자를 말하는 것이 불가능하면서도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 이러한 맥락에서 책임은 우리가 (불)가능한 방식으로 타자에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이며, 이러한 타자의 부름에 응답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리처드 세넷은 타자의 피드백에 민감하게 반응할수록 우리 스스로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펴는데, 이는 주체성의 뿌리를 존재 내부가 아니라 바깥환경과의 관계성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사이버네틱스와 일맥상통한다. 그는 애덤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인용하면서 타인과의 동일시에서 일어나는 간극을 넘어서게 해주는 것은 결국 상상력의 힘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타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거기에 귀를 기울이는 일뿐이다.

포스트휴먼은 기계, 기술과 융합된 인간으로, 포스트휴먼담론은 ‘주체는 하나의 구성물’이라는 탈근대적 인식 틀을 과학적 담론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새로운 인간주체의 양상을 조명한다고 볼 수 있다. 근대 자유주의의 휴머니즘에 대한 비판적 해체는 인간 주체의 범주 바깥으로 배제되었던 타자들(비인간, 인간-이하)에 대한 전면적인 재성찰을 제기했고 이 타자들과 공존-공생-공진화할 수 있는 새로운 주체성의 발명을 촉구했다. 포스트휴먼은 인간의 범주에 속하지 못한 차원들 즉 ‘인간-아님, 비인간, 반(反)인간, 비인도적인’등의 차원들을 포괄하여 인간과 더불어 사유하자는 운동을 의미한다.

타자로서 사이보그를 ‘우리들 중 하나’로 삼는 것은 “여성, 유색인종, 자연, 노동자를 지배해온 이분법적 사고”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일에 동참한다는 것이고, 이런 맥락에서 포스트휴먼 담론의 사이보그로서 인간 담론은 탈식민주의 담론이나 페미니즘 담론과 접점을 갖고 있다. 특별히 근대 이래 자본주의적 생산구조에서 노동자들은 기계나 로봇으로 취급 받았고, 미래사회에서 사이보그들도 근대의 노동자들처럼 일하는 기계로 간주된다는 점에서 사이보그 존재론은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하위계급을 조명하는 담론이 되기도 한다.

테크놀로지는 새로운 인간상을 구축하기 위한 단순한 도구 개념을 넘어서 하나의 이질적이며 독립적인 요소로 인간과 결합하여 인간의 순수성에 대한 신화를 해체한다. 사이보그 신체는 자아와 타자가 상호 감염된 신체이며 다중적 정체성이 증식하는 신체를 상징한다. 이들은 범주와 위계의 구분으로부터 자유로울 뿐 아니라 고정적인 기존의 주체개념을 파편적이고 유동적이고, 변동적인 것으로 대체한다. 사이보그는 특정한 정의에 의해 고정적으로 개념화되었던 인간들의 자아 정체감을 혼돈시키는 특성을 가졌기 때문에 소외되었던 것들의 특성과도 연결된다.

그러나 사이보그가 포스트휴먼 시대의 존재방식이라면 거기에는 테크놀로지와 자본이라는 요소가 필수적으로 개입된다. 결국 자본과 테크놀로지에 소외된 타자들은 사이보그 혁명에서도 주동자가 될 수 없고, 새로운 시대에서도 소외는 유지되거나 규모를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소외를 발생시킬 것임을 알 수 있다. 위너는 사이버네틱스가 기계의 정보처리능력과 사고능력을 인간사회에 적용하여 커뮤니케이션을 더 낫게 만들 수는 있지만 이러한 시도가 더욱 어두운 미래를 가져다 줄 수도 있다는 점을 함께 경고하는데, 대규모 사회일수록 사이버네틱스에 언급된 기본 개념 외에도 권력의 문제를 함께 고려해야 함을 분명히 한다. 위너는 사이버네틱스를 실제사회에 적용하기 어려운 이유는 인간이 살고 있는 사회의 모순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특히 자본주의 사회의 탐욕과 권력이 인간사회의 항상성을 방해하는 주된 요소라고 보았다. 항상성이 없는 인간사회에서는 자율통제에 의한 피드백이 일어날 수 없고, 자율통제가 되지 않다 보니 권력관계에 따라 커뮤니케이션이 좌우되는 것이다. 

인터페이스(interface)는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이나 객체 사이, 두 가지 이상의 시스템, 또는 기계장치의 사이(inter-) 의사소통을 매개하는 경계면(face)으로 설명되는데, 인터페이스는 그것을 통해 소통하게 하는 과정에서 재현의 도구로서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재현과정 자체에 영향을 미친다. 사이버 공간에서도 재현의 문제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사물들이 알려지고 이해되는 재현이라는 투명한 체계는 사람들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체계이다. 스피박은 지식인이 서발턴을 재현하려고 하는 순간 서발턴의 목소리는 상실되어 사라지고 지식인 자신의 입장으로 환원되어 드러나기 때문에 서발턴의 목소리를 재현하는 것이 현재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그러므로 지식인은 ‘대신 말하기’가 아닌 서발턴에게 ‘말을 거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역설한다. 

스피박은 타자의 재현 불가능성은 지식이 아닌 윤리적 관계로써 실현 가능해질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불가능이 가능해질 때까지, 멈추지 않는 노력을 요구한다. 서구철학은 이성과 합리성, 혹은 총체성의 범주에 포섭되지 않는 모든 것을 “타자”라는, 서구주체를 위한 의식의 대상으로 정의함으로써 타자의 독특한 정체성을 거부하였다. 레비나스는 동일성의 사유를 깨뜨리는 초월적 타자의 얼굴에서, 그 얼굴에 응답하는 무조건적 환대에서 윤리적 개방성의 지평을 찾았는데 우리가 사이보그로서 정체성을 갖는다는 것은 곧 외부의 타자를 우리의 존재 안으로 환대한다는 의미에서 이와 연결되는 점이 있다. 사이버 시대에서도 재현이 불가피하다면, 재현의 도구인 인터페이스는 타자를 단순한 정보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독자성, 즉 타자의 얼굴(face)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이(inter-)가 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윤리는 자아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타자의 낯섦-차이와 이질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2.포스트휴먼 시대, 한국 신학의 방향은?

인공지능이 컴퓨팅과 디지털 정보기술에 내재한 구조적 속성에 기인한 것이라는 점에서, 변화는 전면적이고 불가피하고 불가역적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기반한 변화는 본질적으로 변화의 구조와 지향, 진행 상황에 대한 다중의 이해와 접근을 어렵게 하는데, 블랙박스 속에 감춰져 있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은 기본적으로 프로그램을 설계한 소수의 개발자들과 이를 소유한 초국적 거대기업들, 일부 국가권력 등이다. 권력, 정보의 비대칭성이 또 생성되면서 새로운 규모의 ‘소외’, 그리고 새로운 유형의 ‘서벌턴’이 형성될 수 있음을 예상할 수 있다. 또한 통제 불능의 오류 발생이라는 새로운 위험도 등장한다. 기계가 스스로 데이터를 학습해 연산 처리하는 숨겨진 구조인 은닉층에서 판단하기에 개발업체도 어떤 알고리즘 때문에 오류가 발생했는지 알 수 없고, 잘못된 결과를 바로잡을 수도 없다. 이는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직면할 새로운 차원의 위험이 어떤 의미와 영향을 지니는지를 알려준다. 한스 요나스는 이러한 기술의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새로운, 책임의 윤리를 요구하고 있지만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사악한 종말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사이버스페이스와 가상현실이 당면하게 되는 많은 문제점 가운데에서 특히 기독교와 관련되어 심각하게 부각되는 것은 ‘비물질적 현존’의 문제이다. 플라톤적 이데아를 닮은 사이버스페이스의 세계는 정신이 찬양되고 물질과 육체가 천시되는 세계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니라”는 성경구절이 이제 “육체가 가상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니라”라는 새 구절로 변한다. 이원론적 인간이해의 가장 큰 문제는 영혼과 육체를 분리시킨 후, 양자를 상호의존적이 아니라 상호대립적으로 설정하고 마침내 육체를 영혼에 의하여 극복되어야 할 어떤 것으로 보게 한다는 것이다. 이원론이 지배하는 문화 아래에서는 무엇보다 육체가 철저히 소외됨으로써 결국 정신과 육체 모두가 파괴된다. 

이와 같은 기술환경은 우리들이 육체의 이동을 전제로 한 생활양식으로부터 탈-육체적 삶의 세계에 편입하도록 닦아세우고 있다.- 즉, 사이버 인간이 되어야 사회문화적 존재가 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새로 등장한 사이버 영지주의자들은 육체의 감옥을 벗어나기 원했던 옛 영지주의자들의 가르침을 따라 물질을 벗어나는 탈-육신화를 열망한다. 자신을 ‘테크노 이교도’라 부르는 사이버-영지주의자들은 그 이름을 통하여 기독교에 적극적으로 반대한다는 의미를 분명히 천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환각적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 테크노 이교도들이 꿈꾸는 것은 육체와 죽음을 벗어난 신 인류의 도래와 ‘실재를 조작할 수 있는 힘’이다. 나아가 이들은 바벨탑을 다시 하늘 끝까지 높이 건설하기 원한다.

기독교는 언제나 당시 문화와의 접촉을 통해 복음을 선포하여 오고 있고, 따라서 기독교가 계속되는 한 “복음과 문화”의 변증법은 계속될 것이며 사이버스페이스 문화도 계속 왕성할 것이기 때문에 기독교와 사이버스페이스의 만남은 더욱 가속화되고 더욱 심화될 것이 분명하다. 소외된 현대인들은 오히려 디지털적 가상현실의 종교세계 속에서 종교적 욕구를 충족시키려 할 가능성이 있다. 육체 이탈은 인터페이스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과 기계가 점차 연합되어 결국 인간이 육체를 버리고 기계 속으로 들어가버리는 것을 말한다. - 육체를 이탈한 ‘정신’ 만의 인간이 된 후 결과적으로 초인간적 가상육체를 가진 사이보그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가상현실 가운데 있는 ‘나’는 더 이상 육체에 의하여 제약을 받는 인격적 실재로서의 내가 아니고 오히려 육체와 정신의 인격적 원형이 해체되면서 극사실적 자아의 의식적 차원만이 입체영상적인 분신으로 나타난다.

사이버공간에서 형성되는 자아를 가상자아라고 명명한다면, 현실적 자아는 그가 관계를 맺는 다양한 매체에 따라 상이한 방식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매개된 자아’라고 할 수 있다. - 그러나 구체적 현실과 가상현실이 인터페이스를 통해 연결되어있듯이 이 두 개념은 모순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 성격을 띠고 있다. 중요한 것은 구체적 현실과 가상현실의 결합이다. 미디어의 시대에 우리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몸의 의미가 더욱더 중요해지는 이유는, 몸이 구체적 현실세계와 사이버 공간을 연결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캐서린 헤일스는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구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생명체의 체현과 체화를 강조하며, 포스트 휴먼은 탈-신체화된 사이보그가 아니라 새로운 기술 환경 속에서 휴먼과 다른 방식으로 체현되고 체화된 주체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신체는 컴퓨터에는 없는 진화의 역사에 의해 한계와 가능성이 형성된 물리적 구조이며, 의식은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형성된 이런 체현에 의존하여 창발된 속성이지 감각운동 경험과 독립적인 논리작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 사이보그 모델이 인간 주체성을 의식과 동일시하고 의식을 논리작용으로서의 인지와 동일시하면서 결국 인간을 컴퓨터와 동일시한다면, 헤일스는 정보 패턴으로 추상화될 수 없는 체현의 구체적 차이성을 고려하면서 인간과 지능형 기계의 동일화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 헤일스는 포스트휴먼의 결정적인 특징을 주체성이 구성되는 방식에서 찾는데, 그녀는 탈-신체화된 자율적 의식의 자유주의적 휴머니즘의 주체가 아니라 체현의 물리적 구조에 의거하여 인간 행위자와 비-인간 행위자가 함께 작동하는 “분산 인지 시스템”을 포스트휴먼 주체의 모델로 제시한다.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1985)은 기술을 새로운 사회적 변화를 위해 차용하고 합병하라는 제안인데, 해러웨이의 사이보그는 모호한 혼성적 융합과 차이의 지속에 의해 동요하는 ‘미래의 인격화’라고 할 수 있다. 사이보그는 허구의 문제이면서도 동시에 실제적 경험의 문제로, 문화적 독해의 바탕을 이루는 지배의 관계들을 드러냄으로써 그 어떤 텍스트화의 확실성도 전복한다. 그럼으로써 사이보그는 ‘물질적 몸’을 다시 긍정하고 포스트모더니즘 내에서의 ‘몸의 사라짐’을 비판한다. 이는 사이보그에서 ‘담론적 몸’을 ‘물질적 몸’과 접속시킴으로써 기존의 페미니즘에 도전하기 위함이지만 자신의 몸과 도구를 설명해 온 이원론의 미궁으로부터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문성원은 우리의 제한된 시야를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이 어떻게 주변으로서의 몸에 주목하게 되는가를 해명한다. 우리의 제한된 시야를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 바깥을 보고자 하는 시도의 한 가닥은 제한된 사유에 묶이지 않고 바깥과 관계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다.그럴 때 우리가 닿게 되는 주요한 지점 가운데 하나가 몸이다. 몸은 바깥과 연결되어 있으며 바깥과 교호적인 관계에 있는데, 메를로-퐁티는 이런 면을 천착하여 몸을 매개로 바깥과 안의 구분을 넘어서는 살의 철학을 구상한다. 

그에 따르면 이 살은 주체와 대상, 물질과 관념 따위의 대립에 걷히지 않은 세계의 근원적인 차원으로서 우리의 지각과 사유가 성립하는 바탕을 이루고, 이렇게 구별을 넘어서는 데서 나오는 특징이 모호함과 유동성이다.- 몸의 주변성이 지니는 적극적인 의미 가운데 하나는 몸을 통한 바깥과의 접촉과 그것이 수반하는 애매모함을 통해 중심적인 사고방식과 질서를 유동화하는 데 있다. 몸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의식의 자립이 낳은 폐쇄의 여지를 바깥을 향해 다시 개방하며 바깥과 접촉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가변적인 주변이 주어진 틀과 중심에 변화를 주는 통로 역할을 하는 것인데, 우리가 다룬 유동적인 몸은 그와 같은 주변의 한 예인 셈이다. 

문성원은 몸에 국한하지 않고 바깥과의 관계를 고찰할 때 일반적으로 타자의 문제를 거론할 수 있다고 말하며 ‘바깥과 같은 특성을 지니지만 바깥 자체와 구별되는’ 타자를 받아들일 수 있기 위해서는 육체적인 차원에 한정되지 않으면서 인식 중심의 사유에 지배되지 않는 다른 길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런 점에서 레비나스가 제시하는 윤리적인 방향과 타자 이해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언급하는데, 레비나스가 내세우는 윤리적 관계(내게 응답을 요구하고 그래서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타자’, 이 타자는 ‘중심’으로 행세하던 어떠한 동일자도 열어젖힐 수 있지만 그것을 대체할 만한 다른 중심을 형성하지 않는다.)속에서 중심이 해체되어버리고 중심과 쌍을 이루는 주변 또한 사라지고 만다면 마침내 여기서 중심-주변의 구도는 극복되는 셈이라고 보았다. 

문성원은 ‘외부를 향한 시선이 기존의 체제나 지배적 질서를 벗어나려는 갈망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시선 자체가 중심과 연계된 사고방식이나 패러다임에 의해 규정 받고 있다면 이 틀을 벗어나는 바깥이 우리에게 어떻게 제대로 인식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스피박을 언급하는데, 스피박은 ”공모에 대한 생산적인 인식”을 중심-주변과 관련하여 꽤 명시적 형태로 제기한 바 있고 데리다의 방식을 쫓아, 객관적이고 자명한 척하는 서구적 시각, 주변에까지 뻗어 있는 중심의 시각을 해체하려 한다며 자신의 주장의 주요한 전거로 스피박의 견해를 들고 있다.

지금까지 몸에 관련된 담론을 살펴본 것은, 기독교적 신앙의 핵심을 성육신에 방점을 두는 것이 기술의 발전으로 도래하는 새로운 형태의 테크노-영지주의적 사조에 대한 적절한 성찰방식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결코 가상현실 매트릭스에 투입된 신의 디지털화된 원격현존이나 아바타가 아니고, 그야말로 실재인 지구의 역사 속으로 하느님이 내려오셔서 몸과 숨의 육체를 가진 인간예수로 성육신 하신 것이다. 정신이 육화 된다는 성육신은 몸으로서 고통과 절망을 끌어 담는 것으로 하나님 나라는 이미, 그리고 언제나 우리 안에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을 이끌어내기에 기독교의 중요한 핵심이다. 

한국 사회의 병폐들이 대부분 해결된 상태가 아니고 오히려 심화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앞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현실 도피 욕망이 더 증가할 수 있다. 가상현실 기술이 발달했을 때 가상과 현실의 구분을 의도적으로 소거하여 가상 세계에서만 머무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 예상되고, 또한 발전된 기술에 흥분한 환각적 상태에서 몸을 천시하는 풍조가 생길 가능성도 우려된다. 기존의 것이 모두 ‘탈(脫)하는’ 시대가 왔을 때 가상현실로 ‘증발’하는 사람들을 붙잡아 두기 위해 신학은 현실에서의 현존에 단단히 중심을 둔, ‘몸의 중심적 통제력’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살아있는 신체와 지속적인 상응 관계에 있었던 자아와 나의 정체성이 가상현실에서 파열되면서 육체는 그에 제한을 가했던 중심적 통제력을 잃게 되고, 탈-육체화한 자아가 무절제한 희열의 방임 속으로 빠져들어 현실로 돌아올 이유를 굳이 찾지 않는다고 할 때, 신학은 그 이유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삶과 고난에 동참하시는 하나님이 현존하심과 그로 인한 탁월한 기쁨을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마치며    

본 글에서는 타자성을 중심으로 포스트휴먼, 스피박의 논의를 연관하여 전개했고, 다음으로 포스트휴먼 시대에 기독교가 맞이할 위험과 한국 신학이 지향할 방향을 서술해보았다. 현시점에서 한국 신학은 한국의 전통이나 고유성을 신학과 연결시켜 ‘끼워 맞춘’ 한국 신학을 형성하려 하기보다는 앞으로 인간의 기본 전제가 무너지고 기존의 것이 모두 ‘탈’하는 시대가 왔을 때, 기독교의 핵심을 지키며 신학 자체의 의미에 대한 깊은 회의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현 시점에서의 약자, 가장 소외된 자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노력을 그대로 하면서 말이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존재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는 숙고적 사유가 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숙고의 사유능력을 포기하고 기계-인간으로 만족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고유한 본질을 포기해버리는 가장 위험한 직무유기에 해당할 것이다. 기술의 문제를 기술적 방식으로 풀 것이 아니라 다른 사유의 방식으로 풀어가는 해법을 모색해야 하는데, 기술 시대의 사유과제 역시 존재의 말 건넴에 경청하는 ‘숙고적 사유’일 것이다.

현보경(연세대학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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