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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삼상 1:10~20)2017년 7월 16일 성령강림 일곱째 주일설교
이훈삼 목사 (성남 주민교회) | 승인 2017.07.17 16:55

1. 한나의 통곡 기도

1) 이스라엘은 출애굽 후 광야 40년 유랑을 마치고 가나안에 정착하여 12지파가 지방분권형 평등공동체를 유지하였다. 이것을 사사시대 또는 판관시대라고 한다. 사사시대는 약 2백 년 동안 지속되다가 왕정제도로 전환하게 되는데 그 중요한 시기에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지도자가 사무엘이었다. 사무엘은 태어날 때부터 범상치 않았고 그것은 전적으로 그의 어머니 한나의 눈물어린 기도의 결과였다. 사실 사무엘은 순전히 한나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심으로써 태어날 수 있었고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다.
 
2) 지금부터 3천 년 전, 이스라엘에 엘가나라는 사람이 한나와 브닌나라는 두 명의 부인을 두고 있었는데, 한나는 자식이 없었고 브닌나는 자식들이 있었다.
 
엘가나의 가정
가문의 대를 잇고 노후를 책임질 자식이 있는 여성과 없는 여성은 처지가 같을 수 없었고,
 
특히 브닌나는 자식이 없는 한나를 측은히 여기고 위로하기는커녕 무시하고 위세를 부렸다. 그럴 때마다 한나는 속상하고 억울하고 자신의 신세를 슬퍼하였다. 엘가나는 이러한 한나가 안쓰러워서 브닌나보다 한나를 더 사랑해주었지만 남편의 사랑이 자식 없는 한나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줄 수는 없는 것이었다.
 
3) 엘가나의 가족은 절기마다 성소가 있는 실로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지금으로 치면 주일예배에 온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 이 날은 모두가 즐겁고 감사하고 기쁜 날이어야 하지만 예배드리러 갈 때마다 브닌나는 자식들을 앞장세우며 당당한 반면, 한나는 괴롭고 우울하였다. 이 날도 브닌나는 예배드리면서 한껏 한나를 약 올리고 한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면서 고통스러워하였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10절)
 
한나는 예배를 마친 뒤에 너무 마음이 괴롭고 힘들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도이기에 그것은 거의 통곡에 가까웠다. 너무 힘들고 아플 때 부모님이나 사랑하는 사람 품에 안겨서 그냥 엉엉 울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통한다. 논리적으로 원인과 결과를 명료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한나가 얼마나 간절히 울면서 기도했는지 당시 제사장 엘 리가 성전 문 곁에 앉아 있다가 한나의 모습을 보고는 술 취해 주정하는 줄 알고 야단을 쳤다. 이제 그만 주정하고 집에 가라, 그리고 당장 술을 끊어라! 그러나 사실은 한나가 술 취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표현할 수 없는 신세를 하나님께 눈물로서 호소한 것이었다.
 
얀 빅토르스(Jan Victors/1620~1676년), 성전에서 기도하는 한나, 92x72cm, 1643년, 네델란드 도르트레흐트 미술관
잉태치 못한 여인의 비극을 지니고 살아가는 한나, 남편의 사랑과 배려도 별 효과가 없었다. 당대 여성으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과 이러한 한나를 시시때때로 격동시키는 브닌나의 행위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처였다. 한나는 생동감을 상실한 채로 억지로 하루하루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인생의 운명 앞에서 한나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존재하셨기 때문이다. 한나는 성전에서 기도했다. 사무엘서는 그의 기도를 통곡이라고 했다. 말로 할 수 없는 기도, 대성통곡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기도, 그 곡소리에 한나의 고통이 담겨있었다.
 
화가는 기도하는 한나를 캔버스에 담았다. 대개의 한나가 젊고 아리따운 처녀 같은 모습인데 반해 빅토로스의 한나는 거의 중년을 지난 여인의 모습이다. 젊고 예쁜 한나가 매력적이긴 하나 사실적이지는 않다. 중년의 한나는 별로 아름답진 않으나 보다 현실적이다. 한나의 나이를 올려 잡은 것은 그가 당한 고통의 시간이 짧지 않음을 내포하고 있다.
 
화가 당대 네델란드 여성의 복장을 한 한나의 기도는 꽉 껴잡은 손가락을 통해 그 간절함의 정도를 드러내고 있다. 오랫동안 속앓이를 해온 한나의 눈은 그동안 흘린 눈물과 한숨으로 지쳐있다. 그 눈으로 한나는 주님을 바라보고 있다.
 
이렇게 저렇게 해도 해결의 길이 보이지 않는 내 인생의 문제 앞에서 우리는 어찌할 것인가? 운명이려니 하고 끌어안고 살 것인가? 아니면 고통의 현실을 극복할 대안을 마련할 것인가? 한나 스토리는 다행스럽게도 드디어 자식을 낳는 것으로 행복하게 결말 짓는다. 그것도 보통 인물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부족공동체에서 왕정체제로 이행하는 시대의 전환기에 예언자로, 제사장으로, 재판관으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사무엘을 낳은 것이다. 인생 역전이다.
 
이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 개인의 문제든, 가정의 문제든, 직장의 문제든, 사회의 문제든, 문제는 다양하나 해결 방법은 같다. 하나님께 통곡으로 기도하여 주님의 은총을 입는 것이다. 오늘, 한나의 기도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4) 한나 스토리는 극적인 해피엔딩이다. 하나님께서 한나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그토록 원했던 아이를 갖게 되었는데, 그 아이가 바로 사무엘 이었고,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적 전환기를 지도한 훌륭한 인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행복하다. 한나 이야기는 하나의 사건이지만 그 속에 흐르는 신앙의 원리는 지금 우리의 삶에서도 여전히 똑같다.

2. 누구나 만나는 인생 위기

1) 이전에 한나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아이를 낳지 못하는 생활이 지속되는 현실은 한나에게 있어서 인생 최대의 위기였고 더군다나 브닌나의 위세와 핍박은 한나의 삶에 위협적이면서 고통스러운 채찍이었다. 그렇다고 임신이 내 마음대로 되나? 그러니 더욱 절망했을 것이다. 내가 노력해서 되는 것이라면 지금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면 가능성이 있지만 불임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어찌해볼 수가 없다. 현실을 전환시킬 수 있는 반전 카드가 없는 삶이 한나의 인생이었다. 그런데 최종 결과는 대 반전이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한나 이야기는 유효하며 중요하다.
 
2) 오늘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모두 몇 개씩 가시를 안고 산다. 그 가시 때문에 삶이 건조해지고 파산의 위험을 겪기도 한다. 건강, 부부 관계, 자녀 양육, 부모 봉양, 경제와 직장, 노후, 사회적 문제 등으로 불안해하며 고통을 경험하고 있다. 이 중에 나는 별로 해당 사항이 없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정말 하나님께 날마다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그럴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건강은 너무나 중요하여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정말 그렇다. 그래서 몸에 좋은 것 먹고 열심히 운동해야 한다. 그러면 건강한 삶이 보장되고 강건하게 장수할 수 있는가?
 
사랑하는 부부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갈등이 불거지고 평생 해로하는 부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행복한 부부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현실은 원만한 부부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순간순간 경험하고 있다.
 
아이를 낳는 것도 힘들지만 키우는 것은 정말 어렵다. 옛날에는 낳기만 하면 알아서 큰 것 같은데, 요즘은 많이 낳지도 않으면서 왜 이리 양육이 어려운지 모르겠다. 부모 마음은 자식에게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데 아이들의 관심과 마음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자꾸만 자식과 충돌한다. 어느 순간 내가 낳은 자식이 낯 설어 지기도 한다.
 
부모님들 오래 사시는 것은 기쁜 일인데 마음만큼 잘 돌보아드릴 수가 없다. 옛날에는 무조건 온 식구가 한 집에 살았지만 이제는 대개 부모와 자식이 따로 산다. 내 몸 하나 내 가정 하나 추스르기도 벅찬데 늙으신 부모님까지 챙기려하니 때로 삶이 지친다. 다행히 부모님께 잘하는 자식은 그 정도 하느라고 힘들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식은 효도하지 못해서 힘들다.
 
먹고 사는 일이 왜 이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무슨 갑부가 되겠다는 것도 아니고 놀고먹겠다는 것도 아닌데, 기업은 많고 일자리는 넘치는 것 같은데 막상 내가 일할 기회나 자리는 바늘구멍처럼 보인다. 사회 전체는 부유해졌지만 동시에 비정해졌다. 가난할 때 콩 한쪽이라도 나눠먹는 인심은 이제 박물관에나 있지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우리 사회에 실업자와 노숙인이 줄지 않는다. 서구사회도 마찬가지다. 세계에서 가장 잘 살고 사회복지가 잘 되어 있는 독일에도 길거리에서 노숙인들을 발견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서 이전보다는 훨씬 희망적이고 나아지고 있지만, 하루아침에 정의나 평화가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들 마음은 급하고 요구사항은 넘쳐나는데 성취는 더디고 멀기만 하다.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부정적 요소들을 정리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하다.
 
3)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모두 인생의 길에서 위험을 만나고 있다. 한나가 인생 최대의 난관을 만나 아픔의 인생을 오래 살 수밖에 없었는데 우리도 내용은 다르지만 본질은 비슷한 고난의 현실을 사고 있다. 어떡할 것인가!

3. 기도와 응답의 선순환

1) 한나는 이러한 우리들에게 정말 소중하고 값진 해결책을 보여주고 있다.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기도하는 것이다. 그 기도가 얼마나 간절한지 통곡이 될 정도로 기도하라는 것이다.
 

한나가 자신의 불행한 현실에서 신세한탄에 머물지 않고, 불평불만에 빠지거나 쓸데없이 브닌나와의 싸움에 휘말리지 않고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한나가 하나님께 모든 과제를 가지고 나와서 기도했다는 것이다. 대성통곡하면서 간절히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근본적으로 고통으로 몰아가던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는 것이다.
 
2) 평화협정 유럽 캠페인 동안 개인적으로는 교회의 발전을 위해 몇 가지를 생각했다.
 
가운데가 현재 원장인 알로이스 수사
1940년 개신교 출신의 로제 수사가 전쟁의 참담함을 극복하기 위하여 시작해서 지금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 떼제공동체에 들렸더니 그곳 알로이스 원장 수사님이 특별히 한국 방문단을 위해 대화의 시간을 갖고 기도회도 시간을 앞당겨서 드려주었다.
 
사실 물리적 공간보다 인간의 내면이 더 중요한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지만 그렇다고 외형적 분위기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단순한 찬양과 묵상과 성경 봉독으로 이루어지는 떼제 공동체의 기도회가 열리는 공간 자체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요즘 나는 우리교회에 대화의 공간과 기도의 공간을 잘 만드는 것에 관심하고 있다. 식당을 대화 공간으로, 그리고 명상예배실을 언제든지 기도할 수 있고 기도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기도 공간으로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여러분의 좋은 지혜를 구한다.
 
3) 신앙생활의 구조는 ‘위험-기도-응답’의 선순환이다.
 
다행히 내 인생에 위험은 없다고 하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아도 좋다. 그냥 감사하면서 그렇게 유지하고 살면 되겠다. 그러나 어떤 문제든지 나를 아프게 하고 우울하게 하고 슬프게 하고 밤잠을 설치게 하는 문제가 있다면  기도하라. 기도하지 않고, 내 힘으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면 된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도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고 행복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라. 그러나 그렇게 해보았는데 잘 안 되는 사람은 기도하라. 나 좀 살려달라고,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고, 사람들이 조언해준 것 다 해보았는데 해결이 안 된다고, 이 일은 오직 주님만이 해결해주실 수 있다고, 내 인생을 만드신 분이 주님이시니 해결해주실 분도 주님이시라고 좀 떼를 쓰고 통곡도 하고 하나님께 매 달리라.
 
평생 교회를 다녀도 한나의 통곡이 담긴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이 어찌 온전한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지금 나를 힘들게 하고 내 삶의 초점을 모으고 있는 문제가 건강이든 부부관계든 자식 문제든 부모님 봉양이든 직장 문제든 사회 개혁이든 그 무엇이든지 최종 해결사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그 하나님께 기도하고 통곡하고 매달리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고 응답해주신다. 주님은 이미 우리 기도에 응답해주시려고 잔뜩 기다리고 계신데 생전 기도하고 통곡하지 않으니 어떻게 응답하시겠나?
 
4) 이번 유럽 캠페인에서 첫 번째 방문한 곳은 영국 감리교회 총회였다. 영국은 성공회가 국교이지만 유럽 대륙에 새로운 신앙의 부흥을 일으킨 운동이 웨슬레 형제의 부흥운동이다. 감리교는 한국에서는 두 번째로 큰 교단이고 미국 감리교도 굉장히 큰 규모와 사회적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존 웨슬리 기념관
영국 런던의 웨슬레 기념교회와 기념관을 방문하니 한국의 어느 감리교회가 아주 많은 헌금을 했다는 것을 보았고, 무엇보다도 내가 감동받은 것은 기독교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존 웨슬레는 키가 작았다는 것이었다.
 
그의 침대는 그의 체격이 아주 작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웨슬레의 부흥 운동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가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이다.
 
그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기도 의자에 무릎을 꿇고 진정한 신앙과 영국 교회의 개혁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은 웨슬레의 이 뜨거운 기도에 응답하셔서 교회의 개혁과 신앙 회복을 가능하게 하셨다.
 
5) 자식이 없어 인생의 고난과 위험 속에 살던 한나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냥 대충 한 것이 아니라 통곡하며 온 삶으로 기도했다.
 
무엇을 기도했나?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그를 주셨다. 사무엘을 주셨다. 한나의 인생을 근본적으로 괴롭히던 쓴 뿌리를 단물로 바꾸어 주셨다. 주님은 오늘도 한나의 기도를 기다리고 계신다. 오늘 우리들 각 자가 기도하는 한나가 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기도가 만사를 변화시킨다. 기도가 나 자신과 내가 씨름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다.
 

이훈삼 목사 (성남 주민교회)  webam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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