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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으리라! (시편 25:1~3)2017년 7월 23일 성령강림 여덟째 설교
이훈삼 목사 (성남 주민교회) | 승인 2017.07.24 13:00

1. 2017 평화조약 유럽 캠페인 보고 영상

1) 지난 7월 20일, 회원 9개 교단 대표들이 참여하는 제 3/4 분기 NCCK  실행위원회가 열렸고, 그 자리에서 평화조약 유럽캠페인에 대한 보고 영상을 시청하였다고 한다.
 
NCCK 실행위원회(2017.7.20./기독교회관)
지난 번 캠페인에 CBS 기자가 동행 취재하여 뉴스에 여러 차례 내보냈던 것을 요약 정리한 것이니 함께 보면 이번 캠페인의 전체 흐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운동이든지 정책 결정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외교적 활동과 대중을 상대로 확산하는 활동이 있다. NCCK의 평화협정 캠페인은 세계 교회와 정부를 향한 외교적 활동과 국내 교회들을 향해 벌이는 대중 캠페인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둘 다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아주 소중한 방법들이다.
 
2) 4시의 은총
 
보통 해외 출장 갔다 오면 시차 적응하느라 애를 먹는다. 낮에 졸리고 밤에 잠이 안와서 고생을 한다. 특히 미국이나 유럽은 시차가 많이 나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다. 그래서 나는 돌아오는 비행기 타면서 한국 시간에 맞춰놓고 한국 시간으로 밤이면 자려 하고 낮이면 깨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단체 여행이나 중간에 환승해야하는 경우는 내 마음대로 하기가 어렵다. 이번에도 단체로 움직이다 보니 미리 시차적응 준비하기가 어려웠고, 또 억지로 하는 것보다는 그냥 자연스럽게 조금씩 나아지겠지 하고 귀국해서 시차 적응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척이나 힘들게 적응하고 있다. 12시가 넘어 자도 꼭 2시에는 깨서 잠이 안 온다. 억지로 자보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 안 되어 4시쯤엔 포기하고 사무실 내려와 이런저런 일을 하고 그러면 낮에는 또 졸리고…, 이런 생활이 1주일 동안 지속되었다.
 
지난주일 밤에 자다가 또 퍼뜩 깼다. 순간적으로 지금 몇 시일까, 또 2시면 안 되는데, 그러면 이게 언제까지 갈지 모르는데… 이런 걱정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떨리는 마음으로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다.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이제 4시간 정도 잤다는 건 꽤 적응이 되었다는 것이다. 5시에 교회 와서 기도하고 6시부터 기도실 뒤에 엎드려서 팟 캐스트 강의 하나 들으면서 허리 운동하다가 그냥 엎드려서 잠이 들었다. 그러니까 월요일 아침이었는데 세상모르고 잠이 들었다가 전화가 와서 퍼뜩 깼다. 시간을 보니 9시가 넘었다. 그러니까 지난밤에 7시간을 잤으니 이제 거의 회복이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내가 계획했듯이 11시에 자고 5시에 일어나는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온 줄 알았지만 사실은 그 뒤로도 3시에 깨서 잠이 안 오는 날들이 며칠 이어졌다. 그래도 서서히 한국 시간에 맞춰가더니 2주 지난 지금은 거의 완벽하게 회복되었다.
 
몸이나 마음이나 정신이나 환경에 적응하고 또 새로워지는 것은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서서히 여러 단계를 거쳐 적응하고 변화하고 새로워지는 것이다. 문제는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조급한 마음을 다스리고, 좀 지루한 과정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견디는 것이다. 혁명은 매력적이나 우리 개인이나 역사의 변혁은 점진적 개혁이 더 현실적이다.

2. 수치스러운 삶

1) 이스라엘 사람들의 수치

이스라엘은 오랜 옛날부터 나라는 작지만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하시고 보호하시는 공동체라는 자부심을 굳건히 간직하고 살았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모세를 통해 내려오는 신앙의 전통을 보전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였고,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절망하지 않는 힘을 간직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자부심이 지나쳐서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않고 죄를 지으면서도 우리는 결코 망하지 않으며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잘못된 신앙에 빠지기도 했다. 특히 이스라엘이 왕으로부터 일반 시민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아니라 물질과 쾌락의 우상숭배에 빠져 죄악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하나님은 예언자들을 통해 회개하고 올바른 신앙과 생활을 회복하라고 눈물로 외쳤지만 사람들은 귀담아 듣지 않았다.
 
아시리아의 샬마네세르 3세에게 항복하는 이스라엘 왕 예후(검은 오벨리스크) 출처 : http://holylandstudies.eteacherbiblical.com
북 이스라엘 10대 왕 예후(재위 BC 842~815년)는 아합 왕을 제거하고 무력으로 왕권을 잡았지만, 외교 정책의 실패와 무리한 숙청을 통해 당시 팽창하던 아시리아의 침략을 받았다. 고대 아시리아 제국의 유물 중에는 정복한 업적을 기록해놓은 것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에 예후 왕이 샬마네세르 3세에게 납작 엎드려 절하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하나님의 사람들인 이스라엘은 이후에도 바빌론 포로, 그리스의 침략, 로마의 지배 등 수난을 겪어야 했다. 성경은 이러한 민족적이고 개인적인 치욕적 삶의 원인을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은 결과라고 단언하고 있다. 당연히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행복한 삶과 역사는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길 때 가능하다는 것이 성경의 일관된 선언이다. 이것을 믿는 자는 복이 있다. 주님은 믿음의 자녀들에게 부끄러움이 아니라 기쁨을 주실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더 이상 이스라엘의 죄를 내버려두었다가는 걷잡을 수 없다고 판단하시고 이스라엘을 심판하셨다.
 
바빌론으로 끌려가는 유다백성들
아시리아의 침략 이후에도 바빌론이 침략하여 유다는 멸망하고 예루살렘 성은 파괴되었으며 성전은 불타고 모든 귀중품들은 도난당했다. 더군다나 유다의 왕은 비참하게 항복하고 눈을 뽑히는 형벌과 자신이 보는 앞에서 아들들이 처형당하는 형벌을 당하였다. 예루살렘의 지도자들과 젊은 엘리트들은 바빌론으로 포로로 끌려가서 슬픔의 나날을 보내야 했고, 유다의 역사는 커다란 공백을 남겨야 했다. 이스라엘 역사의 아픈 수치였다. 구약 성경은 바로 유다의 이 수치스러운 역사가 곳곳에 배경으로 반영되어 있다.
 
2) 20세기 유대인들의 수치
 
수용소의 유대인들
인류 역사 최대의 비극 중 하나는 2차 세계 대전 중에 독일의 나치가 벌인 유대인 종족 학살이다. 그동안 인류는 수많은 전쟁을 해왔고 엄청난 비극과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나 어느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단지 혈연에 의한 구분으로 철저하게 멸절시키려 한 예는 흔하지 않다.
 
히틀러의 나치는 유대인, 집시, 공산주의자, 슬라브족 등을 1,000 만 명 이상 전쟁터가 아닌 수용소에서 학살했는데 그 중 유대인이 600만 명이나 되었다. 죽이는 것도 두렵고 무서운 일이지만, 독일의 나치는 유대인들을 철저하게 수치를 주려했다.
2차 대전 말기, 프리모 레비는 이태리 토리노에서 레지스탕스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어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1년을 견디다가 나치의 항복과 함께 가까스로 생환했다. 여기서 죽지 않고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왜냐하면 수용소 유대인들 중 살아 돌아간 이들은 5% 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프리모 레비는 수용소에서 돌아온 후 자신의 기억을 살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여러 권의 책을 썼고 그 첫 번째 증언이 ‘이것이 인간인가’이다. 그 참상은 말 할 수 없이 비참하고 끔찍하지만, 정말 가슴 아픈 것은 이태리에서 체포되어 아우슈비츠로 이동하던 이야기부터였다. 
 
아우슈비츠 유대인 수송 열차
나치는 프리모 레비와 함께 체포한 일반 유대인들 650명을 12량의 기차에 태워 폴란드에 만든 아우슈비츠로 이동시켰다. 그런데 이 유대인을 태운 기차는 말, 소, 돼지 등을 운반하는 화물열차였다. 1944년도 기차는 지금의 기차보다 시설도 훨씬 안 좋고 속도도 빠르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은 꼬박 5일 만에 아우슈비츠에 도착한다. 프리모 레비가 탄 화물칸은 45명의 남녀노소가 함께 태워졌는데, 물 한 모금도 주지 않았다. 1944년 2월이었으니 기차 안은 혹독하게 추웠고, 특히 갈증을 참는 것이 큰 고통이었다. 기차가 잠시 멈추는 역에서 문틈으로 밖을 보면 눈이 쌓여있었는데, 그 눈이라도 먹게 해 달라고 통 사정을 해도 독일 군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좁은 화물칸에서 45명의 남녀노소가 5일 동안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꼼짝 못한 채 생활해야 했다, 소변과 대변을 그냥 그 자리에 다 싸면서! 남자와 여자가 같은 공간에 있는데, 거기서 참다못해 그대로 소변보고 대변보고 그 자리에서 뒹굴고 자고 일어나고 5일을 그렇게 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말이나 돼지 등 짐승들이 그냥 자기 우리에서 먹고 싸고 노는 것과 똑같은 대우를 한 것이다. 그렇다. 나치는 유대인들을 사람이 아니라 짐승으로 취급했고 유대인 스스로도 인간이 아니라 짐승으로 생각하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죽이는 살인마들도 사람이 아니라 짐승을 도살하는 것이고 죽임 당하는 이들도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짐승으로 생각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특히 그 안에 있던 젊은 여성들은 얼마나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웠을까.
 
Primo Levi(1919~1987, 이태리)
그래서 프리모 레비는 핏빛 눈으로 시대를 향해 반문하고 있다 ; 이것이 인간인가!

3. 부끄럽지 않은 삶을 위하여!
 
1) 오늘 시인은 인생과 역사를 아는 사람이다.

우리의 삶에 어떤 수치스러운 상황이 도래할지, 나 개인적으로 아무리 바르고 안전한 길을 가려해도 역사의 거대한 격랑에서 끔찍하게도 수치스러운 경험을 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아는 사람이다. 적어도 철이 든 사람이다.
 
그는 이렇게 요청한다 ; 나의 하나님이여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25:2)
 
사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도 부끄러운 일을 당할까 걱정하고 수치를 당할까 걱정하면서 산다. 급하게 집에서 나와서 버스를 올라탔는데 지갑을 빼놓고 와서 카드도 없고 현금도 없을 때, 아~ 창피하다. 그래서 집을 나서기 전 몇 번씩 지갑과 카드를 확인한다. 여성들은 하이 힐 신고 뛰어갈 때 조심조심한다, 혹시라도 넘어지거나 구두 뒤축이 빠질까봐, 그러면 망신이니까!
 
2017 경기노회 어린이찬양제 참가 교회 어린이들

지난주일 경기노회 어린이 찬양축제가 열렸다. 준비 과정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8월에 있을 전국대회에 나갈 한 교회를 선정하기 위함이었다. 그냥 적당히 한 교회 정해서 내보내려했는데, 그런데 신청한 교회가 3교회여서 할 수 없이 공개경쟁을 해야 했고, 제목은 찬양축제로 하고 가장 잘 한 교회 어린이 한 팀을 선정하여 보내기로 했다. 기왕 하는 것 3교회는 너무 적어서 우리교회 어린이부도 참여할까 고민했었다.

그런데 여기 신청한 교회들이 다 대형 교회였고 이런 교회 어린이들은 정식 성가대가 있어서, 매주 항상 연습도 하고, 꽤 체계적으로 준비를 해 올 것이 분명했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아직 연습도 안 되어 있고, 그런 무대에 서기 위한 훈련이 안 되어 있어서 고민스러웠다. 내 입장에서야 좀 잘 못해도, 또 큰 교회를 제치고 상을 타지 못해도 그냥 찬양하고 즐겁게 참여하는 것 가체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정작 우리 어린이들이 비교되어 혹시라도 부끄러움을 당하고 상처를 받으면 어쩔까 하는 걱정에 결국 참가를 포기하고 말았다. 결과로는 총 4교회가 참여했고, 역시 큰 교회들은 준비를 굉장히 잘했고, 노래도 율동도 연습을 많이 한 것이 한 눈에 보였다.

그럼에도 실제로 해 보니까 우리교회 어린이들도 그냥 해도 되는 건데 괜히 너무 걱정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우리는 이런저런 걱정을 하고 그 중에는 혹시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실제로 많다.

2) 우리는 각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또 우리 역사가 수치스럽지 않도록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여 대비해야만 한다. 오늘 시인은 이러한 인간적인 노력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만 가지고 부끄러움 없는 삶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정신대로 끌려가서 온갖 수모를 당하고 죽임당한 조선의 누이들, 강제 징용되어 동남아시아 이름 모를 섬에서 하찮게 죽어간 조선의 형제들이 개인이 조심 안 해서 그리 된 것이 아니다.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역사에 휩쓸린 것이다. 우리의 책임은 그 거대한 흐름을 불행하고 수치스러운 모양으로 만들지 말자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신실한 신앙을 지녔으면 인생과 역사의 비극적 요소들을 잘 알고 있는 시인은 간절한 마음으로 이렇게 기도한다.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리이다.
 
내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신뢰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해주신다는 고백이다. 이것을 믿는가? 오늘 시인이 이렇게 감동적으로 또 간절히 고백하는 기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께 내 인생과 역사의 모든 것을 맡기고 믿음으로 당당하게 나아가는 우리들을 책임져주시고 결코 부끄러움 당하지 않도록 인도해주실 것이다.
 

이훈삼 목사 (성남 주민교회)  webam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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