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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하는 주인과 쓰임을 받는 종<이옥희 선교사 칼럼>
이옥희 선교사 | 승인 2017.07.25 15:07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힘들게 맞이한 2017년이 어느덧 6개월이나 지났다. 새로운 정부 출발과 함께 새해가 시작될 때 가졌던 나라와 민족에 대한 염려와 걱정, 선교현장에 대한 염려들이 말끔히 가셔지고 새롭게 일어나고 있는 변화에 주시하며 깊은 감사를 드린다.

바야흐로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중국과 미국, 일본과 러시아 강대국 사이에 끼어서 고난을 겪고 있는 한국을 주시하고 계심에 대한 확신을 가지며 한국사회와 교회가 하나님의 진리와 정의로 거듭나서 세계 역사 속에서 아름답게 쓰임을 받길 간구한다.

현장을 떠난 비상사태 상황에서 2년이 지나고 햇수로 3년째를 맞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었다. 현장을 떠나 있는 나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무슨 일로 쓰실까? 라는 생각과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현장을 떠나있는 나에게 어떤 방법으로 공급하실까? 라는 것이었다.

현장에 있으면 일들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가슴으로 다가오지만 현장을 떠나 있으므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받지 못하니 하나님이 쓰시고자 해도 쓰시기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또한 내가 밖에 있으므로 현장의 소식도 실감나게 전할 수도 없어 교우님들이 감동을 받지 못하게 되므로 자동적으로 교우님들의 관심과 후원이 감소될 것이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과연 현장을 떠난 자가 현장이 필요로 하는 나눔과 섬김의 일, 구원과 해방의 역사, 치유와 회복의 역사, 사랑과 감사의 역사에 참여할 수 있을까? 참여할 수 있다면 그 일들이 어디서 어떻게 올 것인가? 그리고 나눔과 섬김에 필요한 물질과 손길들은 어디서 올 것 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눈앞에 근무할 일터가 없으니 기도와 간구의 시간이 늘어나고 스스로 서러워서 ‘눈을 들어 산을 보니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 지은 주 하나님 나를 도와주시네.’ 라는 찬송을 자주 불렀다.

비자를 받지 못하는 한 사역에 큰 변화가 있을 수 없고 한국 안에서 나 자신으로서는 할 일도, 갈 길도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에게 ‘마차가 말을 앞지를 수 없고 종이 주인을 앞지를 수 없으니 기다리자. 때가 되면 주인님이 알아서 일도 주실 것이고 일을 주시면 서 그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실 터이니 믿고 기다리자. 지금은 기다리는 것이 최상책이다.’ 말하면서 평정을 회복하였다. 그러나 불안이 오르르 밀려오면 이내 ‘주인님, 실컷 부리고 이제 나이 들어 쓸모없다고 명퇴시키는 것은 아닌가요? 아니면 아니라는 증거를 주십시오. 사람들이 좀 일찍 자원 은퇴하고 자유롭게 일하라고 하는데 저는 지금 그러고 싶지 않고 그럴 수도 없거든요.’ 라고 계속 간청을 하였다.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고 가난한 자들을 보살피고 병든 자들을 돌보는 일은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며 그에 필요한 공급 또한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현장을 벗어나게 되면 그뿐 모든 것은 끝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현장을 떠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보기를 원하였고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었다. ‘선교는 하나님께서 기획하고 주도하며 공급하며 이끌어 가신다’ 는 것과 ‘우리는 쓰임 받는 자에 불과하다’고. ‘종이 부재하여도 하나님 나라의 일이 계속되고 있다’고. ‘비록 비자를 받지 못해서 못 들어가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여전힌 당신의 종을 사랑하시며 써주신다’고.

과연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이 왔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며 양식을 나누어 주며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입히며 포도주와 젖을 나누어 먹어야 하는 일들을 인도에서, 미얀마에서, 네팔과 아프리카에서 보내 주셨다. 인도 현장에 있을 때 보다 더 다양하고 절박한 사역들이 나를 찾아 왔고 그에 필요한 모든 것 또한 하나님께서 가장 적합한 때에 가정 적합한 방법으로 아름답게 공급해주셨다.

첸나이에 수해가 났을 때 기천만원의 수해 구호금을 단기간에 걸쳐서 공급해주셨고 등록금을 내지 못해서 퇴학위기에 있는 치의대생의 밀린 등록금, 천만 원에 가까운 금액을 며칠 사이에 마련해주셨고 뉴델리 뿌렘담 애슈람 고아원의 재판비용을 1500여만 원 또한 순식간에 조달해주셨다. 카림나가의 가뭄에 시달리는 마을들을 위해 30개의 우물을 팠으며 여러 고아원 아동들과 성탄선물을 나누었고 네팔교회와 어린이집을 지원하였으며 몇 사람의 병환소식에 수술비를 긴급 조달하였다. 무엇보다 신기하고 놀라운 것은 내가 인도에 부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달리트 교회건축 후원이 계속 들어 와서 2년 사이에 10개의 건물을 완성하였으며 현재 고아원 건물을 건축하는 중에 있다는 사실이다.

교회건축을 후원하시는 분에게 ‘무엇을 믿고 건축비를 후원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이 내 심금을 울렸다. 그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나와 함께 일하심을 보았기 때문이다’고 대답하였다. 과연 그의 말대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보여주셨다. 나는 후원금만 현장으로 보내고 교회 건물이 지어지는 동안 기도만 하였다. 그러나 교회들은 내가 인도에 있을 때 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단장되고 완성되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던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상설로 운영되고 있는 희망발전소와 희망공동체, 두 개의 고아원과 뽀르다투르 어린이 집을 책임져 주셨고 자매결연도 계속 유지시켰을 뿐만 아니라 장학금을 받는 아이들도 배가시켜 주었다.

현장에 있을 때보다 더 긍휼을 베푸시며 계속 사용하며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서 내가 주님에게 쓰임을 받는 ‘주의 종’이라는 것을 다시 확신하게 되었으며 종에 대한 묵상으로 ‘종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더 깊이 깨달았다. 종의 본분과 종의 임무와 책임이 은총이었다, 종의 자유와 권세가 특총이었다. 종의 축복을 가슴에 새기며 날마다 큰 소리로 외쳤다.

종은 주인을 위한 존재다. 종은 결코 자기를 위해서 사는 존재가 아니다.

종은 주인의 뜻을 자기의 뜻으로 삼는다.

종은 주인의 뜻에 순종하고 충성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종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맡겨주는 일을 한다.

종은 어떤 상황에서도 주인에게 묻고 주인의 뜻에 순종한다.

종은 주인을 능가할 수 없다. 주인을 능가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종들에 대하여 경계해야 한다.

종이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은 탐욕이나 매사의 주인의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종은 범사에 사람들의 뜻이 아니라 주인의 뜻을 우선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충성스러운 종은 오직 은혜로 일하고 은혜로 산다.

충성스러운 종은 주인의 명예와 영광을 탐하지 않는다.

충성스러운 종은 자신의 삶과 생활, 사역의 공급에 있어서 철저하게 주인을 의존한다.

종이 먹고 입고 마시고 자고 놀며 쓰는 모든 것을 공급하는 것이 주인의 의무요, 권리요, 정의요, 책임이요, 사랑이요 축복이다.

주인과 종의 관계는 창조주와 피조물로서 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나 주인의 은혜로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 소명과 순종의 관계가 되었으며 결코 상하고위의 관계가 아니다. 높은 자리에 앉아서 명령하고 군림하는 주인이 아니고 임마누엘로, 성령으로 함께 하는 주인이시다. 심지어는 십자가를 지시는 주인이시다. 종과 주인의 관계는 자발적인 사랑의 관계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서로 동역, 동행하는 인격적인 관계다.

‘종’이 주인의 뜻을 자기의 뜻으로 삼으면서 주인의 손발이 되는 은혜롭고 자유롭고 행복한 삶에 대한 감사와 감격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게 되는 진리와 은혜로 살기를 다시 다짐하며 일단 한국을 떠나기로 결정하였다. 그런데 막상 떠날 것을 결정하고 나니 여러 걱정이 오르르 밀려왔다.

내가 다른 현장으로 가면 인도사역을 접었다고 소문이 날 수 있고, 사람들이 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내가 사역을 그만두었다고 소문을 낼 수도 있고, 그렇게 될 경우 후원이 중단되는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데 희망공동체와 고아원, 어린이집, 신학교 운영비 등등을 어떻게 공급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계속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라서 나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은퇴를 준비해야 하는 나이에 새로운 곳으로 가서 과연 언어적응을 잘 할 수 있을까? 후원이 일체 중단될 경우 과연 새로운 장소에서 무엇으로 섬기며 나눌 수 있을까?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지역이 과연 주인님이 파송하는 곳일까? 꼭 떠나야만 하는 것일까? 한국에서도 마음먹고 찾으면 할 일이 많은데 꼭 가야만 하는 것일까? 한국에 있으면서 인도의 일을 계속하는 것도 큰일인데 굳이 고생스럽게 나가야할 이유가 있을까? 내가 지나치게 후원자들을 의식하여 나를 강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부름 받아서 간다고 하지만 과연 한 몸으로 여러 지역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자원 공급을 받을 수 있을까? 등등의 생각이 나를 잡았다. 나 자신도 모르게 저울질을 시작하였으며 가능하면 떠나지 않는 방향으로 돌리고 싶었다.

저울질하는 나를 보다 못한 하나님께서 물어 오셨다.

“누가 주인이냐?”

“당연히 주님이시지요.”

“종에게 누가 일을 주며 누가 종의 삶을 책임 지냐?”

“그야 당연히 주님께서 써주시고 주님께서 책임을 지시지요.”

나는 넙죽 엎드려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겠으니 염려, 걱정하는 종이 편안히 떠나갈 수 있도록 표징을 보여주시라고 말씀드렸다. 나의 인간적인 계산과 생각은 지난 20년 동안 나의 주변 사람들이 거의 다 동원되었으므로 새로운 일터에서 새 일을 할 때는 더 이상 후원이 나올 곳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책임을 지려고 하시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 새로운 장에서 종으로 쓰시려는 약속의 증거를 보여주시라고 요구하면서 한 편으로는 하나님의 부담을 생각하면서 물질적인 후원이 그리 필요하지 않는 사역, 기도 사역, 직접 가르치는 사역, 보조적인 사역을 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나는 그 옛날처럼 용감하게 무식하게 떠나야 했는데 자꾸 머뭇거렸다. 떠나기 전에 무엇보다 인도사역 공급에 대한 차질이 빚어지는 잘못된 루머가 만들어지는 일이 없도록 나를 위해 기도하며 염려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송별 인사를 드리며 기도를 요청하기로 하였다.

출발 일정이 잡히고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고 나니 시간도 부족하고 왠지 계면쩍은 생각이 들어서 인사할 시간을 놓쳐버렸다. 급한 마음에 기발하게 궁리한 것이 지난 2년 동안 나의 생각과 신앙고백이 담긴 시집을 출판해서 송별 인사를 대신하자는 것이었다.

시집 출판 예상비용이 300만원 정도였으나 손에 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인쇄소에서 원고를 넘기고 시안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익산 터미널에서 제자를 만났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그는 그 자리에서 시집 발행비로 100만원 헌금을 작정해주었다. 그 뒤로 어느 장로님께서 내 생각이 자주 떠올라서 전화를 걸었다며 별일이 없는지를 물어 오셨다. 나는 새로운 출발과 시집발행에 관한 이야기를 해드렸다. 그러자 그분이 반가워하시며 나머지 비용을 다 내시겠다고 하셨다. 그 무렵에 친구 또한 은퇴 감사헌금을 주면서 준비하는 일에 사용하라고 하였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오는가를 보여주시라는 나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계속되었다.

아프리카에 갈 때 의약품을 챙겨주었던 친구가 나의 떠남을 환호하였다. 그는 나의 용기에 박수를 쳐주었고 새 출발을 축복해주었다. 그리고 어려울 때 어려워하지 말고 연락을 하라는 부탁과 최선을 다해 돕겠다는 약속을 해주었다. 나는 이미 그 친구가 성령의 감동을 따라 움직이는 친구라는 것을 경험하였기 그 때문에 그의 말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었다. 중학교 시절의 친구로서 나의 현장을 가장 먼저 방문하였고 두 번이나 방문했던 친구, 비자 문제로 당하고 있는 어려움을 가장 많이 알고 나를 교회와 지인들에게 소개하며 격려해준 친구도 대환영을 하며 축복해주었다. 그는 내가 언어를 익히며 적응하는 기간 동안 나를 돌보겠다고 약속하였다.

어느 날 독일에 있는 비전아카데미 1기생 제자가 생각이 나서 보낸다며 감사헌금을 보내왔다. 그가 일하고 있는 상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엿보았다.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감동감화는 신비 중의 신비이고 예술 중의 예술이다.

1980년에 만난 이래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어느 분이 갑자기 소식을 주셨다. 그는 오랜만에 만난 기념으로 헌금을 보내주었다. 그 헌금은 신학생 3~5명의 1년 장학금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어느 분이 나에게 전화로 ‘700만원 있으면 무엇을 하실래요.’ 라는 말을 툭 던졌다. 당시 나는 동북인도 과부들과 빈민세대를 위한 돼지 나눔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비는 마음으로 ‘돼지 나눔을 가장 먼저 소개하여 주었다. 그리고 ‘염소 나눔’, ‘직업훈련원 컴퓨터 후원’ ‘장학금 지급’ ‘한글교실’, ‘무료급식 프로그램’ 등등을 소개해주었다. 며칠 후 연락이 왔다. 그 헌금은 구순이 넘은 어느 가난한 어르신의 것인데 자녀들에게 주지 않고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하나님께 바치고 싶어서 바칠 곳을 찾고 있어서 우리의 사역을 소개해 드렸다는 것이었다. 마리아의 옥합에 담긴 향유 같은 그 헌금이 어느 날 우리에게 왔다. 지금 그 헌금은 그 분의 사랑이 담긴 돼지가 되어서 몇 십 명의 가난한 분들에게 전달되었다.

어느 분이 인도 의대생 한 명을 지원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며 학생을 소개해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인도에서 달리트들이 의대에 합격한다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려운 일이어서 여러 형제자매들에게 부탁하여 두루 찾았지만 의대생을 끝내 찾지 못하였다. 별 수가 없어서 의대생 찾는 일을 뒤로 미루었는데 뜻 밖에 미안먀에서 장학금 요청이 들어왔다. 소수민족 출신의 청년이 의대에 합격했으나 등록금이없어서 입학할 수 없는 상황을 되자 지인이 그 사실을 내게 알리며 절박하게 도움을 요청해온 것이다. 나는 여호와 이레의 탄성을 발하며 미얀마 학생을 그분과 연결시켜 주었다.

미얀마 의대생을 연결한 후에 밀린 이메일을 정리하다가 라열라씨마 시골에서 함께 일했던 성실의 대명사인 데으 목사의 편지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둘째 아들 라지브가 의대에 들어갔는데 등록금이 없으니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그의 요청을 외면할 수 없어 기도하며 연구를 시작하였다. 좀 더 일찍 알았으면 미얀마 청년은 그 분의 장학금을 받지 못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라지브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다.

지금 20세가 된 라지브를 만난 것은 2000년 봄날이었다. 생일날이라며 그릇에 사탕을 담아가지고 와서 내게 주었다. 나는 당시 인도 어린이들의 생일 습관을 모르기 때문에 사탕을 집지 않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고맙다’는 말만 하고 아이를 그냥 돌려보냈다. 나중에야 안일이지만 아이가 나에게 올 때는 선물을 기대했던 것인데 나는 현지의 풍습을 알지 못해서 냉정한 선교사가 되었다. 나에게 사탕을 가지고 왔던 많은 아이들의 서운한 마음을 알게된 것은 세월이 좀 흐른 후였다.

사탕 그릇을 들고 한참 서 있다가 돌아가던 아이의 모습으로 남은 아이가 자라서 벌써 의대 시험에 합격을 했다니 나로서는 참으로 기쁜 소식이었다. 올해 최고의 과제는 나에게 맡겨진 학생들 50여명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이었다. 중고생들을 포함한 20명 정도는 장학 결연이 되어 있지만 나머지 30여 명은 모금으로 후원을 해야 하므로 정초부터 기도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인님, 올해는 장학금을 어떻게 마련할까요?”

“주인님, 재작년에 장학금 마련을 위해서 전화질을 많이 했잖아요.”

“작년에는 힘든 전화질이 싫어서 책을 만들어 팔았고요.”

“그런데 주인님, 올해는 전화질도 하기 싫고 책도 만들 수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아요?” 라고 틈만 나면 주인님께 자원하는 분들을 통해서 장학금을 공급해주시라고 아뢰었다.

지금도 장학금을 모금하면서 학생들의 학비를 내준다고 생각하면 어깨가 무거워지고 학생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며 그들의 미래에 동참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힘이 난다. 아직도 전화를 걸어서 거두절미하고 곧 바로 장학금을 요청하는 것은 쉽지 않다. 4개월 째 계속 시간만 나면 하나님께 말씀을 드리고 장학금이 어디서 오나 목을 길게 빼고 기다렸다. 과연 5월 초까지 대구, 한산, 김천, 서천, 전주, 미국 등지에서 자발적인 참여로 10여명 분의 장학금이 왔다. 나머지 20여명의 장학금이 어디서 올 것인가? 전화를 걸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걸지 않기로 다짐을 했으니 전화질은 하지 않을 것이다.

5월 말에는 견디다 못해 몇 분에게 카톡으로 장학금 후원 요청을 부탁드렸다. 하나님은 그분들을 통해서 가장 많은 액수의 장학금인 의대생 장학금을 비롯하여 100만 원 대의 장학금은 다 공급해 주셨다. 이제 남은 것은 그리 부담스러운 액수가 아니기에 여유를 가지고 기다린다.

주인이신 하나님은 기획하시고 공급하신다.

주인이신 하나님은 종을 부르시고 써주시며 공급하신다.

아! 얼마나 희망스러운가!

주인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오늘도 주어진 길을 기쁨으로 걷는다.

 

이옥희 선교사  webam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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