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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메시아 나라 (이사야 32:1~4)2017년 7월 30일 성령강림 아홉째주일 설교
이훈삼 목사(성남 주민교회) | 승인 2017.07.30 15:15

■ 주간 단상 : 성남 25회 통일 아리랑

1) 영상 : 통일 아리랑 주민교회 특별 출연 영상

2) 사실 통일 아리랑 출전 팀들의 수준이 많이 높아져서 참가하는데 의미를 두고 나갔다가는 민망할 상황이 될 것 같았다. 아무리 우리 교회가 즉흥성에 강해도 잘못하면 창피를 당할 수도 있어 염려가 되었다. 나는 그 때 평화협정 유럽 캠페인을 곧 떠나야하기에 이번 행사에 참가하려면 미리 성가대에 이야기 하고 준비를 잘 해야 한다고 주민교회 통일부에 당부했다. 

그러나 결국 유럽으로 떠날 때까지 교회는 준비하는 움직임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을 한 편에 간직한 채 평화협정 캠페인을 마치고 돌아온 7월 9일 주일에서야 첫 연습을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그동안 통일부장 이상락 권사님이 민요풍 복음성가 두 곡에 통일 가사로 바꾸는 작업을 하느라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 개사 곡을 넘겨받은 지휘자 이성준 집사님이 뭔가 부족함을 느끼고 노래 한 곡을 더해 세 곡으로 메들리를 만들고 편곡을 해서 새롭게 내 놓은 것 같다. 두 곡은 우리가 자주 부르는 찬송이었는데 마지막 곡은 낯선 것이었다. 그만큼 입에 가사가 달라붙지 않았고 노래 연습도 좀 힘에 겨워 보였다. 23일이 본 행사니, 우리가 아무리 찬조 출연이라 해도 잘 못하면 안 되는데 하는 걱정이 내 마음 속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첫 주 연습은 참여자도 많지 않았고, 저렇게 해서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 그리고는 16일 주일을 지나 마지막 23일에 식사 후 연습하고는 본 행사 리허설에 합류했다. 연습 시간이 얼마 안 되어 마음 속 불안이 가시질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 이상으로 잘했다. 노래 가사와 선곡이 좋았고 편곡도 아주 멋지게 이루어졌다. 민요풍이라 어렵지 않은데다가 흥까지 있어서 이다솜 피아노 반주자도 신나게 맞출 수 있었다. 더욱이 막판이었지만 김진솔 집사가 장구로 합류하여 노래의 본 성격을 되살려 주었다. 물론 장마철 장구 관리를 잘 못하여 습기 먹은 장구 치느라 고생이 많았지만, 결과는 우리 모두 감사했고, 그날 청중들의 반응도 무척이나 신나고 뜨거웠다. 감사한 결과다. 앞으로도 주민교회가 성남의 건강한 시민운동의 모체요 지역의 어른으로서 위상과 역할을 잘 해나갈 수 있도록 기도하고 준비하는 교회가 되면 좋겠다.

1. 이사야의 메시아 나라

1) 이사야서는 여러 시대와 배경을 포함하고 있어서 오늘 본문이 정확하게 어느 시대라고 말하기는 곤란한 점이 있다.

라파엘로, 예언자 이사야, 250*155cm, 1512년, 로마 성아우구스티노성당 (그림 출처 : wikiart)

그러나 몇 년도이건 예루살렘이 강대국의 침략과 무기력한 국내 정치로 위험이 치솟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럴 때 국민은 불안하여 안정감을 잃고, 미래에 대한 공포로 두려움에 사로잡히며, 그래서 당연히 진정한 쉼을 이루지 못하고 삶의 모든 부분에서 무척이나 피곤함을 느낀다. 그래서 오늘 이사야의 말씀은 삶의 불안, 위기, 두려움 속에서 지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교회는 모두가 두려워하고 불안해할 때 희망을 선언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 교회는 세상과 반대로 가는 경향이 있다. 모두가 현실에 만족하여 흥청망청 걱정 없이 생활할 때 다가올 두려운 미래를 선언하며 각성을 요구하고, 반대로 모두가 절망과 한숨에 갇혀 신음할 때는 새로운 용기와 비전을 선언하는 것이 교회다.

2) 교회가 선언하는 희망은 그냥 막연히 잘 될 거라는 바람이 아니다.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생명의 길을 정확하게 제시하는 것이다. 이 희망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위험을 야기한 죄의 삶을 청산하고 참회하며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려고 결단하면 하나님께서 살 길을 열어주신다는 것, 참회를 통한 인생과 역사의 전환을 의미한다. 교회는 우리 시대의 개인과 사회에 이 복음을 선언해야 한다. 이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다.

오늘 이사야 예언자가 선언한 참회와 희망은 한 마디로 메시아의 시대가 곧 도래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어렵고 힘들지만 메시아가 오시면 고통의 날들은 종료하고 새로운 인생과 시대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오늘 이사야는 그 메시아의 나라를 이렇게 표현했다.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32:1~2)

이사야가 보여주는 메시아 시대는 공의로운 세상이다. 정의가 실현되고 광풍과 폭우를 피할 수 있는 안전한 세상, 그리고 곤비한 땅에서 큰 바위 그늘 같이 쉼과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이다. 우리 모두가 꿈꾸는 세상이다.

2. 메시아 시대 : 의로운 나라

1) 메시아 : 하나님 나라는 사람 통해 실현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아 나라가 저 천국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강대국의 침략으로 초토화된 땅, 불안과 피곤으로 힘겨운 인생 속에서 성취된다고 기대하고 기도하고 기다렸다. 당연히 메시아는 구름타고 오는 초월적인 인물이 아니라 이러한 세상과 인생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정치 지도자의 모습이다.

예로부터 여기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 다윗 왕이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믿음으로 용감하게 적을 제압하고 이스라엘 역사의 절정을 이루어낸 인물이야말로 메시아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위기와 불안의 시대마다 다윗과 같은 메시아가 그의 혈통을 통해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바벨론 포로를 끝내고 귀향하던 이스라엘 공동체의 지도자였던 스룹바벨도 한 때 메시아로 기대되었고 예수님도 다윗과 같은 메시아로 영접되었다. 메시아가 꼭 정치지도자란 말은 아니지만 그 메시아가 이룩할 거룩한 사역은 정치·경제적 문제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2) 의로운 통치를 행할 메시아를 지금 우리시대에 표현한다면 메시아는 분명 민주적 지도자의 성격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큰 틀에서 민주주의, 생명존중, 평화공존, 평등사회 등의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이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사회를 그렇게 만들어가는 것이 메시아시대의 한 부분이다. 우리 사회 전체가 추구하는 거대한 방향과 큰 틀이 중요하다.

민주정부가 들어서니 우리의 수많은 기업들 중에서 탐욕적인 기업은 수그러지고 노동자를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어떻게 하든 함께 잘 살아보려는 자세로 기업하는 이들이 인정받고 있다.

오뚜기 식품은 대형 마트에 파견한 시식 코너 직원들이 모두 정규직이라고 한다. 노동자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경영을 이루고 있는 오뚜기 기업을 요즘 신의 기업이라는 뜻으로 갓뚜기라고 부른다.

권력이 민주적이지 않을 때는 명령, 성과, 이익 등이 대세였다. 그 자리에 인정이나 나눔이 들어설 공간은 그리 넓지 않다. 지금의 정부가 곧 메시아 정부인 것은 아니지만 출범 후 현재까지는 메시아 시대의 중요한 특성들을 지향하고 있다고 보인다. 이 큰 방향이 중요하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을 방문할 때마다 의아하면서도 부러운 것은 이들의 삶엔 정말 저녁이 있다는 것이다. 5시면 웬만한 가게는 다 문을 닫는다. 이번에 가니 대형 슈퍼들이나 큰 맘 먹고 8시까지 문을 연다. 베를린에서 뒤늦게 발견하고 8시 5분에 갔는데 이미 문은 굳게 잠겨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그렇게 집에 일찍 가서 뭐한대? 24시 편의점과 유흥 가게들이 즐비한 우리들 눈에는 참 심심한 인생들 같다.

이들은 퇴근 후 집에 가서 가족과 함께 요리하고 TV 보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일찍 잔다. 40일 간의 여름휴가에는 대부분 캠핑, 독서, 자전거 타기, 운동 등을 하면서 그냥 편안한 일상을 지낸다. 모든 삶에 조바심은 없고 여유가 있다. 이것이 민주정부를 지속한 선진국들의 힘이다.

3) 정부가 지향하는 큰 틀이 중요하다.

우리의 촛불 혁명은 위대하며 외국인들이 놀라는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주었지만, 만약 지금도 매주 광화문 촛불 집회 가야 한다면 어떨까? 아마 지금까지도 가긴 갈 거다. 그러나 우리가 메시아 나라와 비슷한 민주정부를 세운다면 우리의 관심과 열정과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을 것이다. 건강을 돌보고 부모님을 찾아뵙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못 읽은 책도 읽고, 산에도 가고 하이킹도 하고…

이제는 우리가 이러한 일상이 가능해졌지만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황금 같은 주말에는 모든 일을 중지하고 온 국민이 한 곳에 모여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촛불을 들어야 했다. 그 자체는 아름답지만 다시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을 만들기 위해 애써야 한다.

4) 중요한 과제는 민주주의 기반한 정의로운 사회의 틀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우리는 사상 유례 없는 민주적 발전을 이루었다. 그리고 우리들 대부분은 이제 10년 동안 민주사회 기초를 마련했으니 혹여 권력의 구조가 바뀐다 해도 민주적 사회 구조는 파괴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민주 정부 10년의 업적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었으나, 그것이 우리가 바란 만큼 강고한 것은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권력이 바뀌자 이렇게도 역주행이 가능한가 의문을 가질 정도로 우리 사회는 또 지난 9년 동안 정반대로 진행하면서, 숱한 희생 위에서 어렵게 일구어놓은 10년 동안 민주사회의 기초를 대부분 파헤쳐 놓았다.

한국의 민주진영이 스스로 자기 업적에 도취되어 미래를 예견하는 힘을 상실했을 때, 재일조선인으로서 조금 더 냉철하게 객관적으로 한국사회를 바라보았던 서경식 선생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에 이미 불길한 예언을 하고 있다.

“ 일본에서는 최근 10년간 급격하게 반동화가 진행되어 과거의 침략이나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려는 우파세력이 정권을 잡기에 이르렀다. 일반 일본 국민의 대부분이 어떤 이유에서든 그들 우파를 지지했던 것이다. 일본이 반동화의 길을 걷던 시기에 한국에서는 문민정부의 시대가 이어져 사회 민주화가 달성되었다. 일본의 현상을 우려하는 한 일본인은 ‘우리나라에는 희망이 없지만 한국에는 있다’고 말한다. 그랬으면 좋겠건만 과연 그럴까? 나는 조선반도의 근대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 평화와 민주주의의 시대에 벌써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음을 느낀다. ”

3. 메시아 시대 : 인간의 얼굴을 가진 

1) 메시아 나라의 큰 틀이란 결국 정의, 평등, 자유 등이 제도화 되었다는 뜻이다. 제도는 개인적 상황보다는 형평성을 지향하고 예외 없는 일괄적 적용을 추구한다. 그러다보니 냉철하고 객관적일 수밖에 없고 인간의 얼굴을 상실하기 까지 한다.

룻(Ruth)

사실 구약 성경의 룻기 같은 것은 이러한 제도적 사회가 지닌 비인간성에 대해 저항하는 내용이다. 신앙의 순수함을 회복하고 유대인의 혈통을 복원한다는 대의명분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유대인 아닌 사람과 결혼한 가정은 이혼하고 헤어지라는 명령이 있었다. 명분은 옳다고 하지만, 아무리 이방인일지라도 갑자기 부부가 헤어지고, 부모와 자식이 생이별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이냐 하는 물음을 제기한 것이 룻기다. 메시아의 시대는 큰 틀에서 정의로운 세상인데, 정의가 확립되려면 가능한 예외를 없애야 하고 모두가 엄격하게 동등한 상벌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사실은 이게 좀 살벌하다는 것이다.

2) 메시아 시대의 두 얼굴 : 인간의 얼굴을 가진 

페이스 북에 재미있는 실제 재판정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올라왔다.

부인과 어린 아이들 둘을 차에 태운 저 남자는 분명 제한 속도 25마일 도로에서 35마일로 달려 재판을 받고 벌금을 내고 전과 기록이 남아야 한다. 벌금을 뜯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속하여 죄 없는 가족을 위험하게 했다는 것이 진짜 죄목이었다. 죄와 벌은 엄격하게 지켜져야 한다. 누구는 봐주고 누구는 안 봐주면 법 정신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들이 법정에 선 죄목이 중범죄가 아니라서 잘 못되어봐야 벌금 형 정도니까 좀 여유있어 보이지만, 사람이 법정에 선다는 것 자체가 엄청 긴장되고 두려운 일이다. 박노해의 시 ‘하늘’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죄인을 만들 수도 살릴 수도 있는 판검사님은 무서운 하늘이다”. 정말 그렇다. 판사의 힘은 법정에 섰을 때 정말 하늘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아무 죄 없어도 경찰서에 가는 것이 우리는 아직도 두렵고 싫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판사는 분명 유죄인 이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경고하는 선에서 판결을 내렸다. 그의 아내와 아이들이 있고 그가 자신의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 보이기에 다시는 이런 위험을 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기대하고 믿었기 때문이다.

렘브란트, 예수의 얼굴, 1652년

이런 점이 메시아의 시대가 전반적으로 큰 틀에서 정의를 추구하고 제도화하지만, 인간의 얼굴을 가진 제도화를 추구함으로써 그것이 가지고 있는 위험 요소들을 보완하는 것이다. 실제로 주님은 엄격한 법제화를 주장하는 바리새인들과 날카롭게 대립하면서 죄인인 세리나 창녀들을 하나님 나라의 주인으로 받아들였다.

메시아의 시대는 그래서 공평하고 정의로우면서도 사람 냄새가 사라지지 않은 행복한 나라다. 하나님께서 오늘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우리에게 이 세상을 약속해주셨다. 이 약속과 희망을 믿고 우리 개인의 삶과 사회 속에서 이 뜻이 이루어지도록 정신 바짝 차리고 실현해야 한다. 그 속에 메시아의 나라가 이미 도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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