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 떠나온 지 10년. 자족 같지만 지금 이곳에서 나는 행복하다. 내 손으로 지은 흙집에서 새와 나무와 바람과 풀과 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은 저곳만이 아니라 이곳에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곳, 강원도 봉평. 해발 750고지 태기산 자락으로 들어온 후 나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인생을 두 번 사는 느낌이랄까. 진정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선 그 길 위에서 나는 나를 새롭게 발견했다. 내가 어떻게 변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자연이 나를 변화시켰다.”
  -   조화순 <낮추고 사는 즐거움> 중에서

“내 나이 일흔 하나. 일흔이면 인생을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시점이라고들 말할지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나는 늘 이제다시 시작이다 라고 생각한다.”

지난 해 조화순 목사가 <낮추고 사는 즐거움>이란 책으로 세상에 노크했을 때,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한 평생 온 몸으로 부딪치며 진리를 살아낸 분이니 책 한 권쯤은 진작 나왔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면서도, 한편으론 ‘내 자랑하는 책’이 판을 치는 세상에 편승하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하지만 책을 읽은 후 나의 생각은 기우가 되고 말았다. <낮추고 사는 즐거움>엔 온 몸으로 실천해 온 한 목사의 삶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년 후, 조화순 목사를 만났다. 원주의 한 시골에 살고 있는 그는 자연과 어우러져 사는 삶에 흠뻑 빠져 있다. 요즘 근황을 이야기하는 그의 얼굴이 환하게 빛난다.

“사람은 떠날 때를 아는 게 중요해”

조화순 목사는 노동자들과 동고동락하며 18년간 몸을 담았던 도시산업선교회를 어느 날 훌쩍 떠났다. 많은 노동자들이 그를 붙잡았지만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얼마 전 13년간 목회를 했던 달월교회를 훌쩍 떠나 산자락으로 들어갔다. 그 때도 역시 뒤돌아보지 않았다. 궁금했다. 그렇게 훌쩍 떠나온 이유가. 일말의 미련, 아쉬움도 없었을까.

“사람은 떠날 때를 아는 게 중요해.”

그는 짧게 대답한다. 떠날 때를 아는 것. 사랑과 애정이 식어서도 아니고 싫증이 나서도 아니다. 다만 떠날 때가 돼서 떠났다는 것이다. 6,70년대 노동운동을 개척하고 기반을 닦던 시기에 자신에게 주어졌던 역할을 다했기 때문에 노동운동판을 떠났고, 목회현장에서 할 일을 다했기 때문에 떠났다는 것이다. 일이 떠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일을 떠나는 것. 그것이 조화순 목사가 일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그리고 지금, 조화순 목사는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다. 도시의 각박한 삶이 아닌 농촌에서 자연과 어우러지는 삶을 꾸려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가 살아온 삶과의 단절된 것이 아니다. 이것 역시 조화순 목사가 하는 운동의 연장선상이다.

“항상 고민했지. 내 운동의 종착점은 어디일까.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하고 말야. 그게 다름 아닌 땅의 문제고 환경의 문제고 생명의 문제라 생각한 거야. 그래서 시골로 내려가기로 결심했어.”

그리고 땅과 함께 사는 것은 목사로서의 일이기도 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목사란 ‘남이 손대지 않고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 떠나는 농촌, 그 땅의 생명력을 되살리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조화순 목사는 말한다. 그래서 그는 꿈꾼다.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농촌공동체를. 노동운동이 한 시대를 풍미하고 그 의미가 컸듯이 이제 농촌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발견하고 그걸 터전으로 살아가자는 것이다.

“자연 속에 생명이 있어. 그걸 깨달아야 해”

조화순 지음/ 도솔 펴냄/ 231쪽/ 9,500원

조화순 목사가 땅과 함께 살기를 결심하고 처음 자리 잡았던 곳은 강원도 봉평이었다. 태기산 자락 아래서 손수 지은 흙집에 살면서 자연의 순리와 그 생명력을 배우며 지냈다. 하지만 얼마 전 그는 원주로 이사를 가야만 했다. 최근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펜션들 때문이었다. 그는 지금도 마음이 씁쓸하다고 말한다.

“인간들의 폭력이 대단해. 재개발 한답시고 펜션 들어서고 산 깎아내리고… 영, 살 수가 없었어. 그래서 이 곳으로 옮겼지. 씁쓸해.”

자연의 생명력을 맛보고 땅에 터를 박고 살기로 했기 때문일까. 태기산 아래 들어선 펜션 이야기를 하며 조화순 목사는 안타까운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그런 조화순 목사지만 처음부터 자연의 생명력을 깨달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봉평에서 생활하는 동안 자연의 호흡과 생명, 그걸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한번은 나무를 심다가 잘못해서 가지를 부러뜨렸어. 무의식중에 팔을 잘못 움직여 가지가 부러진 건데, 그 순간 내 팔이 부러지기라도 한 것처럼 아프더라고. 얼마나 아프던지 아야 하고 소리를 지르며 내 팔을 꼭 붙들었어. 통증이 가시면서 난 깜짝 놀랐지. 놀라웠어. 나무와 내가 하나가 되는 동질의 감정을 느끼면서 나는 나무도 하나의 생명체고 인격체라는 걸 실감했던 거야.”

“여성들이여, 새로 깨어나라”

“나는 순간순간에 충실하기로 했다.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물 마시고 졸리면 자고 잡념이 많아지면 무조건 걸었다. 그러면 차츰 마음이 가라앉고 차분해졌다. 순해졌다. 자연이 나를 바꿔놓고 있었다.”

목사 조화순, 그는 여성들에게도 한마디 던진다. 그가 여성들의 각성에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목회야말로 남성의 전유물이 아닌 여성들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한 분야기 때문이다. 그는 ‘보편적 여성성’이야 말로 목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돌봄과 치유, 이해와 관계로 대표되는 모성성은 이 시대의 목회에서 요구되는 것이기에 여성들 스스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를 떠나 시골에 기거하는 조화순 목사는 요즘에도 바쁘다. 수많은 인터뷰 요청과 강연이 밀려오고 그 대부분을 고사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부득이하게 가야만 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그곳은 대부분 교회고 여성목회자로서 해야 할 일이라면 어디든 간다. 지금껏 한 생애를 노동운동과 목회로 열심히 살았지만 여성으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서다.

“내가 해야 할 일인거야. 그래서 요즘 여성들을 위해 하는 일이면 마다않고 하고 있어. 내가 땅과 더불어 살려는 게 지금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라면, 여성으로서 해야 할 일 또한 그래. 여성들 스스로가 자부심과 노력, 그걸 잊지 않으면 좋겠어.”

조화순 목사는 올해, 일흔 둘이 됐다. 사람들에게 일흔이면 한 인생을 정리하는 시기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노동자의 어머니에서 목회자로, 그리고 다시 흙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곳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꾸리고 생명을 키우고자 한다.

“나이 일흔이 넘었다고 생을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거라 생각하지 않아. 나는 늘 이제 다시 시작, 이라고 생각해. 죽을 때도 그럴 거야. 내가 태어남으로 시작했듯이 죽음도 죽음으로서 시작이야. 늘 시작하는 것,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 나이에 상관없이 그것이 청춘이야.”

김진아 기자  nebo9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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