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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일이 묻고 현경이 답하다[인터뷰] 유니온 신학대학 현경 교수
편집부 | 승인 2017.08.04 13:18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인터뷰 ⓒ에큐메니안

여름이 막 시작 될 무렵, 한국에 돌아온 현경 박사(유니온 신학대학원)를 만났다. “친절한 재인씨와 유쾌한 정숙씨 덕분에 하늘이 더 파래진 것 같다”며 첫 인사를 건네며 자리에 앉는 그녀를 정경일 박사(새길교회)가 맞았다. 유니온 신학대학원 시절부터 쌓아온 둘의 우정은 깊다. 스승과 제자로 신학적 결이 비슷한 것도, 둘 다 ‘정씨’ 인 것도 둘을 묶어주는 연결고리가 됐다.

오랜만에 만난 오랜 친구를 만나 그동안 나누지 못한 밀린 이야기를 풀어내듯 자연스레 둘의 대화가 시작됐다. ‘페미니스트 즉문즉설’로 ‘살림’사역을 하고 있는 현경교수의 근황을 비롯해 기독교영성과 불교영성을 잇는 그녀의 신학이야기, 또 ‘페미니즘’ 열풍으로 성장통을 겪고 있는 한국사회에 던지는 그녀의 화두를 들어봤다.

정경일/ 유니온 강의 시작 첫 시간에 ‘지금 이 순간 네가 가장 열정적으로 붙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고 물으셨는데요, 그 질문을 선생님께 돌려보겠습니다. ‘요즘 선생님께서 가장 뜨거운 열정으로 하고 계신 일은 무엇인가요?’

현경 교수 (유니온신학대학교 종신교수) ⓒ에큐메니안

현경/ 페미니스트 즉문즉설을 최근에 시작했어요. 페미니즘 운동을 하면서 억압에 맞서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넘어갈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의 공간이 뭘까 늘 고민해 왔어요. 내 세대 페미니즘은 계속 남성을, 가부장제를 비판하는 페미니즘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가부장제 안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남성들까지 불쌍하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측은지심이라고 할까요. 여성이 자신의 통전성을 지키면서 남성과 상생, 발전, 화해하고 그것을 통해 가부장제를 몰락시키고 그걸 넘어서는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것. 그게 요즘의 가장 큰 화두인데, 이것을 계기로 시작한 게 ‘페미니즘 즉문즉설’이에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과는 또 다른 게, 페미니즘 즉문즉설은 여성끼리 모인 원형의 공간에서 내가 어떤 최종 답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고 공동의 지혜를 만들어가는 식이에요. 너무 크지 않게, 40명 미만으로요. 다양한 세대의 페미니스트들이 모여서 솔직하게 무엇이 문제인지 이야기하는 경험 자체가 참 아름다워요.

정경일/ 1세대, 2세대 페미니스트들과, 젊은 페미니스트들은 공통의 경험들이 있는 반면 차이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언니’ 페미니스트로서 젊은 남성, 여성 페미니스트들과 더 많이 소통해오고 계신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젊은 페미니스트들과 가까이 하면서 경험한 것, 배운 것이 있다면?

현경/ 제가 젊은 30대 초반의 페미니스트와 4년 동안 나눈 대화가 책으로 최근에 <서울, 뉴욕, 킬리만자로, 그리고 서울>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됐어요. ‘순진씨’라는 젊은 여성 페미니스트와 함께 서울, 제주도, 뉴욕, 킬리만자로를 여행하며 나눈 대화에요. 이 친구와 함께하면서 처음에는 갈등이 많았어요. 나는 불의를 보면 지적하고 투쟁해서 얻어내려는 반면, 이 친구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체제를 이탈하고 싶다고. 그 친구도 굉장히 자유롭고 예술적인 작가인데...그런데 순진씨는 ‘언니’세대의 폭력이 너무 싫다는 거예요. ‘기 센 언니들’의 페미니즘의 폭력이 너무 싫다는 거죠. 운동권 논리도 마찬가지구요. 이 친구와 제주도를 갔는데 내가 느끼는 강정과 이 친구가 느끼는 강정이 너무 달랐어요.

저는 순진씨를 통해서 1세대 여성학을 배운 사람으로서 알게 모르게 다른 젊은 세대들에게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면서 폭력을 가할 수 있겠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제가 그 친구의 감성으로 책을 쓰자고 제안했어요. 그런데 너무 재미있는 건, 여행 이후 남자를 싫어하던 순진씨는 연애를 하기 시작했고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입기 시작했어요. 또 운동권의 논리를 싫어했는데 매주 촛불집회에 나가는 사람이 됐구요.

정경일/ 선생님도 그렇고 순진씨도 그렇고, 같은 여성 페미니스트지만 선생님도 선생님 세대의 페미니스트 가운데 독특하시고, 순진씨도 그런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세대와 세대를 연결해 내는 역할을 하실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경/ ‘페미니즘 즉문즉설’을 시작한 것도 순진씨 한테 너무 배운 게 많아서 에요. 아주 섬세하게 여러 ‘다름’을 인내하면서 조율하는 것. 저는 그것이 세계평화를 만들 것이라고 생각해요. ‘여혐’이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위해서는 가부장제가 극복되어야 하는데 결국 여혐 하는 남자들은 가부장제 안에서 상처받은 이들이에요. 상처받은 이들이 상처, 트라우마를 재생산하는데 자기가 보기에 더 약한 여자들에게 트라우마를 재생산 하는 거죠. 그래서 ‘페미니즘 즉문즉설’을 통해 함께 조율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남성도 얼마든지 올 수 있어요.

정경일 / 그것이 바로 여성의 방식인 것 같아요. 그럼 종교 쪽으로 넘어가 봅시다. 올해가 종교개혁 500주년이잖아요,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왜 종교적 타락이 가장 극심했던 로마 바티칸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덜 타락했을 수 있는 독일에서 일어났을까, 이런 고민이 드는데요. 알프스 이남은 너무 타락해서 개혁을 바랄 수 없는 자포자기의 상태였다면, 상대적으로 알프스 이북에서는 그래도 개혁이 가능한 상태여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의 한국교회, 종교는 알프스 이남의 상태일까요, 알프스 이북의 상태일까요?

현경 / 저는 끊임없이 긍정이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성경의 요나 이야기처럼 의인이 단 몇 명만 있어도 니느웨가 구해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일반적인 제도 안에는 항상 소수자와 적폐가 있어요. 이번에 조계종 비구니들이 투표권이 없다는 것에 너무 놀랐어요. 대형 교회의 세습 문제도 마찬가지구요. 이것을 바꿔 갈 사람들은 평신도들 그리고 여성들이에요. 이들이 깨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르틴 루터의 개혁도 얼마나 미완의 개혁이었나요?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혜’라는 말은 루터 시대에는 정말 맞는 말이었지만 래디컬한 개혁 없이 성경과 설교에 집중하게 된 오늘날의 교회를 보면 정말 미완의 개혁인 것 같아요. 처음 즉문즉설을 했을 때도 너무 많은 여성들이 울면서 이야기 했어요. 이 교회에 남아있어야 하는지. 이교회에서 개혁해야 하는지. 가부장적인 교회에서 여성신학을 공부하다 도저히 안되겠다 면서 신앙까지 버린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더 근본적인 종교 개혁이 기독교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불교도 마찬가지구요.

한지수 기자/ 젊으셨을 때부터 페미니즘을 공부하시면서 좌절의 경험들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현경 / 그런 질문 굉장히 많이 들어봤어요. 특히 강간당하고 운동권 안에서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을 많이 봤어요. 일단 그들에게 저는 먼저 성폭력 당한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요. 그리고 절대로 숨기면 안된다고 말해요. 숨겨진 상처는 오픈하고, 고소하고, ‘언니들 서클’ 안에서 치유 받아야 해요.

불교에서 부처님은 ‘첫 번째 화살은 맞아도 두 번째 화살은 맞지 말라’고 하셨어요. 첫 번째 화살은 어쩔 수 없는 폭력성에 당하는 것이지만, 두 번 째 화살은 그것을 계속 재생산 하면서 거기에 노예가 되어서 사는 거예요.

또 유럽인들이 와서 땅을 발견했다는 이유로 땅을 빼앗기고 동족이 몰살된 경험이 있는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이 지금껏 평화롭게 싸우는 이유는 ‘정체성의 공동체’가 있기 때문이에요. 모든 폭력 속에서도 없어지지 않는 ‘나’라는 정체성의 공동체. 그들은 너무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면 그에 상쇄하는 아름다운 일을 하나 만드는 거예요. 예를 들어, 누가 죽임을 당하면 너무 아름다운 나무를 하나 심고, 마을이 쑥대밭이 되면 마을을 아름답게 만들고...하나의 폭력에 대항하는 하나의 아름다움을 계속해서 만들어 온거죠. 저는 페미니스트들이 그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어떤 아름다움이 당신을 구원하는지 그것을 찾아가는 거예요. 자신의 영혼을 움직이는 아름다움을 적극적으로 찾는 거예요. 트라우마 때문에 우울증에 빠지고 움직이기 싫지만 그럴수록 약을 먹든지 공동체의 도움을 받아서 몸을 움직여서 영혼의 상처를 달랠 수 있는 그 아름다움을 찾아가야 해요. 약을 먹거나 도움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요.

정경일 / 사회에도 마음이 있다고 한다면 한국사회의 마음은 깊이 병들어 있는 것 같아요. 불안, 분노조절 장애, 탈진, 소진 등이 사회적 현상처럼 일어나고 있어요. 종교적 메타포로 이야기하면 악령 들린 사회 같아요. 보통 악령이 아니라 성경에 나온 ‘군대귀신’같이 악령 군대의 협공을 당하고 있는 기분인데...사회의 병든 마음, 악령 들린 사회가 어떻게 치유의 길로 갈 수 있을까요?

현경 / 저는 점점 작은 만남, 작은 모임들을 믿게 되요. 구조변화 참 중요해요. 친절한 재인씨와 유쾌한 정숙씨가 부암동 우리 동네 근처로 이사를 오시니 하늘이 파래지고 북한산이 다 보이는 것 같아요. 정말 천지개벽이 일어났다고 사람들이 말하죠. 뭔가가 달라지는 게 있어요. 민주적 입장을 가진 지도자가 나온 다는 것, 그런 내각이 구성된 다는 것은 우리가 같이 축하해야 할 일이에요. 반면에 그동안 너무 오래된 억압과 말할 수 없는 말도 안되는 일이 이루어진 것 때문에 집단적 트라우마가 생겼어요.

정말 요새 가장 마음이 아픈 것은 ‘묻지마 살인’이에요. 유리창 닦는 사람 줄을 자르고, A/S 기사를 죽이고, 강남역에서 여성이 살해되고...이것은 결국 인정받지 못한 사람의 분노, 자기가 의미있게 삶을 사는 기본적인 것을 찾지 못한 사람의 분노, 사랑받지 못한 사람의 분노가 원인이에요. 너무 오래된 부정의가 많은 사람들에게 구조적으로, 체계적으로 사랑받지 못한 경험을 하게 한 거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다시 ‘인간이 되는 것’을 연습할 수 있을까, 인간이란 뭘까,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다시 물어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요.

이번에 참여연대와 함께 아름다운 남성프로그램을 시작하려고 해요. 왜 하는가 하면, 우리는 폭력성을 비난하는데 익숙하지만 다른 대안적인 것을 발견해야 싸움을 할 힘을 얻을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 삶은 아수라 일 뿐이에요. 어떤 사람도 전쟁 같은 삶이 지속되는 환경에서 온전하게 살 수 없어요. 제가 미국에서 젊은 세대에게 배운 것은 ‘의식적인 공동체 만들기’에요.

각자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주말에 농장에 모여서 긴 테이블에 꽃과 음식, 와인과 물을 놓고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자기 이름을 알리면서 모임이 시작돼요. 자기 스스로 “I’m 현경”이라고 소개하면 다른 사람들이 “Yes, 현경. You are here”라고 대답해 주면서요.

그 다음날은 건강한 재료로 브런치를 만들어 먹어요. 그리고 오후에는 산책을 하면서 깊은 이야기를 나눠요. 100% 살아있음을 함께 연습하는 거예요. 함께 명상도 하고 요가도 하면서. 이런 모임, 수행과 축제와 나눔이 함께 가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더라구요.

정경일/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작은 운동, 작은 경험은 바로 사회, 경제적 구조 변화만이 아니라 대안을 살아 보는 것이네요. 가부장제에 맞서 싸우는 가장 좋은 길은 ‘탈 가부장제적 삶의 경험’을 만드는 것이군요.

현경 / 그렇게 이미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들을 발견해서 나누는 것이죠. 이번에 우리가 하려고 하는 ‘아름다운 남성 프로그램’도 그런 거예요. 여성들이 남성 한명씩을 초대해서 그 남자가 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지 함께 말하는 거예요. 그 남자가 100% 퍼펙트하게 아름다운 남자라서가 아니에요. 왜곡된 가부장적 남성성이 아니라 우리의 여성성과 만나서 온전한 화해가 이뤄질 남성성의 모델을 찾아보는 거예요. 그 사람들을 하나씩 데려오라고 했어요. 근데 남편이나 형제나 아들이나 이런 가족은 안된다고 했어요. 약간은 거리가 있는 사람을 데려오라고 했어요. 굉장히 아름다운 공간에서 하려고 해요. 꽃과 초를 꼽고 정성스레 음식을 나누면서.

정경일 / 악과 싸우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선을 드러내는 전략을 취하시는 것 같아요. 방금 선생님 말씀 중에 아름다운 남자들을 초대하는데 그분들이 완전하기 때문은 아니라고 하셨잖아요. 우리 사회가 상호 불신의 시대인데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마치 100% 선한 인간과 100% 악한 인간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데 인간은 평생 선과 악의 긴장 속에서 선의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것이 종신수행의 길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여성으로서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에게도 무한한 신뢰를, 인간에 대한 근원적 신뢰를 갖고 계신 것 같아요. 그 신뢰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현경 / 이것은 굉장히 조심스러운 말인데 스트레스가 없었던 행복한 어린 시절 덕분인 것 같아요. 미국에서 발표된 심리학 논문에도 나왔는데, 건강한 아버지에게 전폭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았던 딸들은 가부장제를 무서워하지 않는대요. 그리고 그것을 헤쳐나 갈 수 있고 남자를 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거예요. 제가 페미니스트로서 젊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받은 비판이 ‘선생님은 남자를 너무 좋아한다’ 였어요. 왜 그럴까 생각해 봤더니 아버지가 저의 플레이메이트였던 거예요. 인형이 10개가 있었는데 그게 모두 아버지가 한땀 한땀 솜을 넣고 얼굴을 그려 만들어준 인형이었어요. 계절마다 아버지와 인형 옷을 디자인하고 새로 입혀보고...이게 무의식적으로 큰 신뢰로 작용한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행복한 어린 시절을 말하는 것은 굉장히 조심스럽기도 해요. ‘그럼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한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라는 질문을 들으면 너무 가슴이 아픈데, 결국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가 다 다르고 이 세상에서 졸업해야 하는 과목이 다르고, 숙제가 다른 것 같아요.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다면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숙제겠죠. 하지만 나의 숙제는 아마도 남성에 대한 적대감이 별로 없기 때문에 남자, 여자가 하나 될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하는 것, 다리를 놓는 일이겠죠.

또 하나는 신앙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참 좋은 교회를 다녔잖아요. 경동교회를 다녔어요. 저는 교회에서 억압을 당한 적이 없어요. 교회는 제겐 너무나 안전하고 재미있는 공간이었지요.

정경일 / 가부장제가 제일 심한 곳이 가정이고 교회인데...

현경 / 지금 참 감사한 게, 제가 다닌 교회가 에큐메니컬한 교회였어요. 법정스님이 왔다 갔다 하시는 교회 였고 너무 재미있는 곳이었어요. 우리교회는 합창, 연극 이런 걸 참 많이 했어요. 다른 데 보다 교회에서 더 재미있게 놀았어요. 그 때 함께 했던 중고등부 친구들이 참 많은 힘이 돼서 지금도 만나요. 공동체가 주는 안정감이 있어요.

정경일 / 인간의 근원적 선함을 경험하신 복을 받으신 건데, 그래도 선생님 말씀대로 10살 이후에 많은 고통과 모멸감을 받으셨잖아요.

현경 / 신앙 경험이 있었어요. 예수님의 사랑.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심판을 가르친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친 교회였어요. 어린아이에 대한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잖아요. ‘하나님은 좋은 분이고 하나님은 너를 사랑해.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셔. 현경아, 진짜 신앙인에게는 나쁜 일이라는 게 없는 거야. 합하여 모두 선을 이루기 때문에.’ 이런 말을 툭툭 던져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참 고마웠어요.

진지하게 질문하는 정경일 박사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원장) ⓒ에큐메니안

정경일 / 종교적 신앙이 인간에 대한 신뢰를 계속하게 하는 힘이 되었다고 한다면, 그런 신앙은 선생님에게 기독교뿐만이 아니잖아요. 예수와 붓다의 길을 걸어오면서 배워 오신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생생한 표정과 마음을 담아 대답하는 현경 교수 ⓒ에큐메니안

현경 / 먼저 기독교에서 배운 것은 ‘가장 작은 자도 가치 없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내가 너무 작아졌을 때, 내 주변인물이 너무 작아졌을 때도 그것이 그들을 폄하하게 되는 근거가 되지 않아요. 도로시 죌레는 우리가 하나님의 2가지 능력을 갖고 있다고 말해요. 창조하는 능력, 사랑하는 능력.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새것을 만들어 내는 창조적인 능력,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하는 능력이 있어요. 그리고 예수의 혁명적인 삶이 어떤 종교도 줄 수 없는 혁명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종교의 위선과 로마의 폭력에 대항했듯이 우리도 작은 예수가 돼서 그것을 해야 한다는 게 우리에게 박혀있어요. ‘하나님의 왕국에 동참하는 것은 주어진 것이다’라는 예언자적 감각을 갖게 된 것, 불의를 보면 말해야하고 일어나야 하는 것을 배웠죠. 그것은 용기이자 훈련이지만요.

그런데 기독교의 그 혁명적인 힘이, 세상적으로 봤을 때 패배한자가 메시아라는 고백이 너무나 기가 막힌 승리의 영성이라고 생각해요. 완전히 망했지만, 그 죽은 그 자가 바로 메시아고 그 부활이 어떤 부활이던 어떤 죽음도 생명보다는 강하지 않고 어떤 미움도 사랑보다는 강하지 않다는 원형적이 믿음을 준 것. 저는 점점 갈수록 ‘나는 성령파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성령님의 임재하심을 나이가 들수록 더 느끼는 거예요. 페미니즘 즉문즉설도 기독교모임이 아니었지만 ‘거기서 성령이 임재 하셨어. 우리가 성령님의 임재 안에서 치유 받은 거야.’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불교에서 배운 것은 고통에 대한 거예요. 불교에서는 고통을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고통’, 또 하나는 ‘다 가져보니 그것도 아니더라는 고통’, 이렇게 두 가지로 말해요. 저는 이게 정말 깊은 인간에 대한 통찰이라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그 고통을 견디는 힘이에요.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케이티라는 스승이 있어요. 어떤 종교에도 속해 있지 않아요. 그녀의 주된 가르침은 ‘Love, what is’에요. 그런데 굉장히 위험한 말이죠. 그럼 독재자를 사랑해도 되나요? 가부장제를 사랑해야 하나요? 그런데 그녀는 ‘Yes’라고 대답해요. 어떤 의미의 ‘Yes’인가 하면, 가부장제 안에서 상처 받은 너 그대로를 사랑하라는 말이에요. 그 자체를 사랑할 때 진정한 해결책이 나오지, 그걸 저주하고 그러면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요.

그런데 조금 더 젊었을 때는 그런 이야기를 못 받아들였을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비판하고 지적하는 것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지 않아요. 예언자적인 말도 너는 틀렸고 나만 살아나는 게 아니라 나도 살고 너도 사는 공동의 선이 살아나는 게 예언자적 통찰이라고 생각해요.

정경일 / 선생님이 예수와 붓다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눈물을 글썽거리시니까 저도 울컥하네요. 현경 선생님은 정말 예수와 붓다를 정말 깊이 사랑하시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레이먼 파니카가 ‘나는 100% 부디스트고, 100% 크리스찬이다, 50-50 섞어서가 아니다’라고 했던 말의 뜻을 알 것도 같습니다.

현경 / 처음에 불교 공부할 때 스승이신 숭산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저는 제 자궁은 가장 깊은 한국의 샤머니즘인 것 같고 가슴은 부처님의 자비심에 열리는 것 같고 내 언어를 규정하는 좌뇌는 크리스챤 랭귀지로 자란 것 같다. 또 우뇌는 동양의 도교, 문화로 자란 것 같고. 전체적인 나의 에너지는 페미니즘 에너지 인 것 같다고 했더니 숭산스님이 그렇게 하면 안된대요.

불교 커뮤니티에 있을때는 100% 부디스트, 크리스천 커뮤니티에 있을 때는 100% 크리스천, 샤머니즘 커뮤니티에 있을 때는 100% 샤먼이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는 그게 되는 것 같아요.

인생의 힐링 툴박스가 있어요. 기독교라는 툴 박스, 불교라는 툴 박스, 페미니즘 이라는 툴 박스, 샤먼이라는 툴 박스. 아메리카 원주민은 자연의 지혜라는 툴박스가 있는 것처럼. 상황에 따라 다른 툴을 가지고 쓰는 거예요. 다 다른 약장인데, 이렇게 아플 때는 이약을 꺼내 쓰고 저렇게 아플 때는 저 약을 꺼내 쓰는 거죠. 그런 것 같아요. 21세기 영성은 그런 것이 아닐까요? 종교의 경계도 많이 약해지고 있어요. 신동엽 시인이 ‘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남고’라고 이야기했는데, 껍데기만이 아니라 알맹이도 붕괴할 수 있어요. 종교 밖의 대안이 훨씬 더 진정성이 있기 때문에 제도 종교를 거부할 수도 있구요.

정경일 / 마지막 질문입니다. 선생님이 삶을 살아오시면서 많은 고통을 겪어오셨잖아요. 저 또한 ‘고통에 맞서는 삶의 투쟁’이 신학과 삶의 화두인데, 저는 고통 받는 이들 곁에 다가갈수록 힘든 거예요. 고통에 다가가고 고통을 없애기 위해 싸우지만 그것에 압도되고 파괴당할 까봐 두려운 마음이 들어요. 그런데 선생님을 보면 늘 고통 곁에서, 고통 속에서 사시는데 기쁨이 있단 말이에요. 그 기쁨의 원천이 뭘까요? 고통과 함께 연대하면서 고통 받는 자로 연대하는 삶의 원천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현경 / 사람마다 기본적인 패러다임이 있잖아요.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패러다임을 저는 어린 시절에 받아들였기 때문에 삶에 항상 십자가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게 신앙의 길이라는 것을, 삶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최종이 아니잖아요? 우린 해피엔딩이에요. 나는 해피엔딩을 믿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불교에서는 모든 게 공(空)하고 변하잖아요. 지금은 이렇지만 이것은 또 새로운 것이 오겠지? 라는 믿음이 있어요. 그런데 그게요, 명리학 선생님을 만났더니 제 사주가 춘삼월, 새벽에 태어난 원숭이래요. 너무 존재의 별자리가 희망적이라는 거예요. 죽을 때도 죽음 후의 세계에 대해 너무 궁금해 하며 희망에 차서 죽을 거라고요.(웃음) 정말 그럴 것 같아요.

페미니즘 즉문즉설에서도 말했어요. 인생은 여행인 것 같다고. 여행은 고생 하나도 안하고 아름다운 것만 보면 여행의 깊이가 하나도 없고 재미가 없어요. 고생도 하는데 아름다운 것도 보고, 그러면 여행이 잊지 못할 여행이 되는 거예요. ‘나쁜 일이 오면 이다음 장면은 너무 아름답겠지?’하는 여행자의 마음이 있어요.

힌두교에서도 인생이 극장이라고 하잖아요. 내가 내 인생의 무대 감독이고 드라마를 쓰는 사람이라면 이 드라마에서 악인과 고통이 없는 드라마가 재미가 있을까요? 악인과 고통을 그냥 기본적으로 있는 것, 없을 수 없는 배역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나쁜 짓을 하는 사람도 이 사람이 나의 드라마를 너무 재미있게 해주는 사람인거에요. 그런 관점이 생겼어요.

정경일 / 악인은 결론에서 망해야죠.

현경 / 근데 모든 드라마에서 악인은 주로 망하잖아요. 안 망하는 것 같아도. 제가 심층심리에서 배운 게 그거에요. 악인의 위로 6대, 아래로 6대가 영향을 받는대요. 그렇다면 내 세대에 업보를 안 받아도 자식 세대로 내려가면서 폭력과 악의 DNA가 대물림 되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맘이 편해요.

물론 고통 받는 자와 함께 있는 것은 해결책을 제시 하는 게 아니라 일단은 같이 100% 울어 주고 있어 주는 거예요. 그런데 저도 너무 감당할 수 없는 것에서는 뒷걸음질을 쳐요. 그런데 그런 나를 용서하는 거예요. 옛날엔 그런 나를 받아들일 수 없었는데 내가 정말 못하고 나를 망가뜨리는 것은 나는 못하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못하는 나를 용서하자. 이것을 못해도 나는 목표로 가는 다른 길이 많으니까 다른 길로 가는 나를 축복해주고 이것 못하는 나를 용서해주자’, 이런 맘이 생기니까 너무 힘들 땐 좀 쉬어요. 나를 닦달하지 않고. 계속 흘러흘러 헐렁하게, 그렇게 계속 가는 거예요. (웃음)

정경일 / 미국에서 선생님과 함께 공부할 때, 마음이 아픈 신학생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명상, 신비주의 가르치실 때 현경선생님이 계셔야 할 곳은 뉴욕, 유니온신학교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한국에 제가 돌아와서 살면서 이전보다 더 많이 아프고 병든 것을 보니까 이곳도 선생님이 경험해 온 삶의 지혜와 자유의 힘을 이곳에서도 나누셔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교, 기독교뿐만 아니라 서양, 동양을 넘나들면서 치유의 길을 보여주시는 게 선생님의 운명이 인 것 같습니다.

'정경일이 묻고 현경이 답하다' 인터뷰 /장소 북촌 사과나무 ⓒ에큐메니안

살림이스트’ 현경 교수의 ‘살림’ 사역은 계속된다. 오는 8월 3일 (목) 저녁 7시, 은평구 혁신 파크에서 샨티 출판사 주최로 <서울, 뉴욕, 킬리만자로, 그리고 서울> 북 콘서트와 페미니스트 즉문즉설이 예정돼 있다. 페미니스트 즉문즉설은 페미니스트 세대간 대화의 장이다. 현경 교수와의 즉문즉설을 원하는 이는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참여 비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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