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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운전사>, 창조적 욕망과 불편함을 주는 친구최병학 목사의 <문화로 본 성서>
최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17.08.07 11:10
영화 포스터 (출처 : 네이버 영화)

1. 니체의 ‘도덕의 계보’로부터: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냥 무시해버려”

1980년 5월의 어느 날 서울 도심지, 터널을 벗어나는 초록 택시가 노래를 부른다. 원조 오빠, 조용필의 ‘단발머리’이다.

“그 언젠가 나를 위해 꽃다발을 전해주던 그 소녀 오늘따라 왜 이렇게 그 소녀가 보고 싶을까. 비에 젖은 풀잎처럼 단발머리 곱게 빗은 그 소녀 반짝이는 눈망울이 내 마음에 되 살아나나네. 내 마음 외로워 질 때면 그날을 생각하고 그날이 그리워질 때면 꿈길을 헤매는데 우~ 못 잊을 그리움 남기고 그 소녀 데려간 세월이 미워라.”

이윽고 택시는 시내의 데모 현장에서 차가 막히는 상황을 보여준다. “유신잔당, 비상계엄 해체하라.”는 피켓을 든 대학생들과 터지는 최루탄 연기 사이로 초록 택시의 운전기사 만섭(송강호 분)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오늘은 그냥 넘어가나 했다. 데모하러 대학 갔나. 배가 불러 저런다.” 혀를 차며 코에 치약을 짜 바른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좋은 나라인데. 사우디 가서 살아봐라.” 만섭에게 대학생들의 데모는 피땀으로 일군 나라에 반기를 드는, ‘군기 빠진’ 젊은이들의 배부른 소리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사글세 독촉하는 주인아주머니와 주인집 아들에게 얻어맞은 딸이 있는 집에 돌아와서도 딸의 하소연에 이렇게 말한다.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냥 무시해버려.” 넉살 좋게 이야기하는 만섭의 말은 그저 먹고살기 바쁜 80년대 우리들의 초상을 잘 보여준다. 친구 집에 얹혀살며 밀린 사글세 걱정, 어린 딸 걱정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소시민의 전형이다.  

영화 <택시 운전사(A Taxi Driver, 2017)>는 이처럼 지극히 평범한 80년대를 살아가던 보통의, 아니 속물 같은 택시운전사가 바라본 단 이틀간의 광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변해가는 한 인물의 감정선을 통해 당시 우리가 보지 못한 1980년 5월의 광주를 보여주며 그날의 뜨겁고 처절한 온기를 관객들에게, 혹은 우리 역사의 쓰라린 한 페이지로 기억되게끔 만들어준다.

알랭 바디우가 사건에서 진리가 발생한다고 했던가?(사실, 바디우에게 사건이란 간단히 말해 “상황·의견 및 제도화된 지식과는 ‘다른 것’을 도래시키는 것이다.”) 영화에서 사건은 “광주까지 다녀오면 10만원을 준다.”라는 외국인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그 외국인 손님을 가로채 광주로 향하는 만섭을 통해서 일어난다. 만섭이 태운 외국인 손님은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라는 독일 기자인데, 계엄령이 선포되고 모든 연락이 끊긴 광주에 사건이 있음을 짐작하고 취재를 하러 들어온 것이다. 이렇게 광주로 향했던 만섭은 자신을 몰랐다.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이렇게 말한다.1)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 우리는 필연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이방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혼동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먼 존재이다.’라는 명제는 우리에게 영원히 의미를 지닌다. 우리 자신에게 우리는 ‘인식하는 자’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왜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할까? 니체에 의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한 번도 자신을 탐구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을 탐구하려고 하면 ‘도덕’이라는 것이 우리를 가로 막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냥 무시해버려.”라는 만섭의 말은 어쩌면 상황의 억압, 그 이상으로 도덕적 가치의 내면화가 아닌가? 그저 하루를 소시민으로 살아가며, 하루 밥벌이에 만족하는, 따라서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도덕에, 지금까지 지상에서 도덕으로 찬양되어 온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 그리하여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감추고 있는 도덕적 편견을 걷어 내야 한다.”

따라서 니체의 도덕의 계보는 당시의 도덕이 과연 누구에게 가치 있는 것인지, 그 기원을 따져 들어간 책이다. 곧, 도덕적 가치의 기원에 관한 니체의 사유를 담은 것이다. 우리가 무심히 좋다고 받아들이고 추구하는 ‘가치’가 과연 누구에게 좋은 것인지를 따져 보고, 나아가 ‘나’에게 좋은 가치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광주에서 광주의 역사적 진실을 두 눈으로 확인한 소시민 만섭은 이렇게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딸아이의 구두를 사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광주를 등 뒤로 하고 떠나오는 길, 손님을 버려두고 역사의 아픔을 그저 가슴 속에 묻어버리고 도망쳐 오는 길,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위안하며 돌아오는 길, 만섭은 혜은이의 ‘제 3한강교’를 불렀다. 만섭의 이 노래는 니체의 도덕의 계보를 노래한 것이나 다름없다. 소쉬르의 표현을 빌어 도덕의 계보는 기의이고, 제 3한강교는 기표이다. 무시하지 않고 자신을 발견한, 그리고 동시에 도덕의 계보를 뒤집어 버린 분기점이었다. 거기에 창조적 욕망이 있다.  

2. 창조적 욕망을 발견하며: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

욕망은 어떤 것이 부족한 상태여서 그 ‘부족한 것을 메우기 위한 욕망’이 있고, 부족함과는 관계없이 어떤 것이 ‘그 자체로 좋고 가치 있게 느껴져서 원하는 욕망’이 있다. 전자는 ‘부족함의 관점에서 바라본 욕망’이고, 후자는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고 이전에는 없었던, 혹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고 새로운 삶을 낳는다는 뜻에서 ‘생산의 관점에서 본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니체는 자신에게 진짜 좋은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렇게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인생을 걸 만한 것인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 자신에게 두 번 물어볼 것을 권한다. 한 번은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진정 그것이 네게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를 묻는 것이고, 또 한 번은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았던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를 묻는 것이다. 이러한 두 번의 물음에 모두 ‘예’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진정 그에게 좋은 것이고 그가 추구해도 되는 가치라고 한다. 광주로 다시 핸들을 돌리는 만섭은 니체의 이 두 물음을 노래로 물었다.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 3 한강교 밑을. 당신과 나의 꿈을 싣고서 마음을 싣고서.

젊음은 피어나는 꽃처럼 이 밤을 맴돌다가 새처럼 바람처럼 물처럼 흘러만 갑니다.

어제 다시 만나서 다짐을 하고 우리들은 맹세를 하였습니다.

이 밤이 새면은 첫차를 타고 행복 어린 거리로 떠나갈 거예요”

‘당신과 나의 꿈을 싣고서 마음을 싣고서 행복 어린 거리로 떠나갈 거예요.’ 광주의 고난의 현장이 행복 어린 거리로 대체되며 당신과 나의 꿈을 이룰 맹세로 딸아이와 자신의 소시민적 행복을 대체한 것이다. 따라서 딸아이에게 전화했던 말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는 니체의 진정한 삶의 물음에 만섭의 기의를 감춘 답이 되는 것이다.

3. 신화적 폭력: “모르겠어라, 우덜도 우덜한테 와 그라는지…”

보통 폭력이라고 하면 ‘법’과 대립하여 ‘법’에서 벗어난 행위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폭력을 법으로 단속한다. 그러나 독일의 문예비평가 발터 벤야민(W. Benjamin)은 ‘법’ 안에 ‘폭력’이 잠재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폭력을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폭력 비판을 위하여」 (1920)에서 “폭력에는 ‘신화적(mythisch) 폭력’과 ‘신적(gottlich) 폭력’이 있다. 신화적 폭력의 ‘신화’는 그리스 신화를 가리키고, 신적 폭력의 ‘신’은 유대교의 신, 곧 야훼를 가리킨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신화적 폭력에는 다시 ‘법 보존적 폭력’과 ‘법 정립적 폭력’이 있다고 한다.

벤야민은 신화적 폭력의 일례로 그리스 신화 속의 ‘니오베 이야기’를 사례로 든다. 테베의 왕비 니오베는 아들 일곱과 딸 일곱 명을 두었는데, 그들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니오베는 불경죄를 저질렀는데, 자신이 레토(Leto) 여신보다 더 훌륭하다고 뽐냈던 것이다. 레토에게는 아들 아폴론과 딸 아르테미스 한 명씩 밖에 없었다. 따라서 화가 난 레토는 아폴론으로 하여금 니오베의 아들들을 죽이게 하고, 아르테미스는 딸들을 죽이게 하였다. 자식을 모두 잃은 니오베는 울며 세월을 보내다 돌이 되고 말았다. 여기서 레토의 분노가 바로 신화적 폭력이라는 것이다.

광주 시민들은 공수부대가 광주 시민들을 학살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모르겠어라, 우덜도 우덜한테 와 그라는지…” 그러나 전두환은 지금 법 정립적 폭력과 법 보존적 폭력을 법이라는 이름으로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법 안에 폭력에 내재되어 있고, ‘법 보존적 폭력’으로 계엄이라는 법을 유지하기 위해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법 정립적 폭력’으로 박정희 암살 이후의 혼란기에 쿠데타로 군사력을 의지하여 폭력적으로 정부를 전복시켜서 법을 새로 설정한다. 5공화국의 탄생과 민정당, 이후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의 신화적 폭력의 터전을 마련한다. 따라서 법 정립적 폭력과 법 보존적 폭력, 두 가지는 모두 ‘신화적 폭력’으로 상호 의존하며 끊임없이 계속되고 끝나지 않는다. 가령, 혁명(영화에서는 군사쿠데타)에서는 ‘법 정립적 폭력’이 요구되고, 일단 혁명이 완성되면 ‘법 보존적 폭력’이 필요한 것이다. 계엄령 선포와 광주 시민 학살이 바로 그것이다.

벤야민은 이러한 온갖 신화적 폭력을 종식시키는 폭력을 ‘신적 폭력’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벤야민의 ‘메시아주의’가 깃들어 있는데, 그에 따르면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적 유물론(유물사관)은 ‘신학적인 메시아주의’에 따라 보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적 폭력의 사례를 구약 민수기의 ‘고라의 반역’에서 찾는데, 고라는 모세의 사촌이었으나, 지휘관 이백오십 명과 함께 모세의 지도력에 반기를 들었다. 모세가 교만하고 독선적이라는 것이 반기의 명분이었으나, 사실은 같은 레위지파 후손으로서 모세에게만 영광이 돌아가는 데 대한 질투가 숨어 있었다. 그러나 모세에 대한 반역은 모세에게 권위를 준 야훼에 대한 반역이다. 따라서 모세가 야훼의 공정한 심판을 요청하자, 땅이 갈라지고 불길이 솟아 고라의 무리는 한꺼번에 소멸 당했다.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들의 집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들의 재물을 삼키매 그들과 그의 모든 재물이 산 채로 스올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덮이니 그들이 회중 가운데서 망하니라. 그 주위에 있는 온 이스라엘이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도망하며 이르되 땅이 우리도 삼킬까 두렵다 하였고 여호와께로부터 불이 나와서 분향하는 이백오십 명을 불살랐더라(민수기 16:32-35).”

이것이 신적 폭력이다. 그렇다면 ‘신화적 폭력’과 ‘신적 폭력’의 차이는 무엇인가? 벤야민은 “신화적 폭력이 법 정립적이라면, 신적 폭력은 법 파괴적이고, 신화적 폭력이 경계들을 설정한다면, 신적 폭력은 경계를 파괴한다.”라고 말한다. 곧, 신화적 폭력이 법을 정립하고 보존하는 폭력, 다시 말해 지배를 구축하고 유지하려는 폭력인 데 반해, 신적 폭력은 그런 법을 파괴하고 해체하는 폭력인 것이다. 벤야민은 이 신적 폭력을 ‘순수한 폭력’이라고 옹호하였다. ‘신화적 폭력이 생명체를 희생시킴으로 자족(레토 여신의 경우를 보라)하지만, 신적 폭력은 폭력의 종식으로 전혀 새로운 상황을 설정하는 것이다(고라 사건 이후의 출애굽 공동체의 모습을 보라). 영화에서는 주인공 만섭의 변화가 벤야민의 메시아니즘의 흔적을 아주 살짝 보여준다. 메시야는 미래에 오는 것이 아니라, 현재 그 어떤 때(성서에서는 ‘카이로스’라고 한다)에 도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전태일이 자신의 목숨에 불을 붙였을 때, 그것은 1970년대 모든 ‘생명’을 구원하는 것이었으며, 광주도청의 마지막 총성이 울렸을 때 그것은 1980년대의 전체 ‘생명’을 구원하는 폭력이 그곳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따라서 벤야민의 신적 폭력을 통한 구원은 시간이 지나 역사를 되새길 때 이해되는 그런 폭력이다. 그리고 메시아는 언제나 신화적 폭력을 행사하는 ‘적그리스도들’의 극복자로서 도래한다.2)

4. 불편함을 주는 친구: “형씨가 뭐가 미안해. 나쁜 놈들 저기 따로 있구만”

니체는 욕망이 작동하는 특정한 방향을 ‘의지’라는 개념으로, 욕망의 능력을 ‘힘 혹은 권력’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한다. 따라서 욕망은 의지와 힘 혹은 권력이라는 두 요소로 이루어져 있고, 이 두 요소가 짝이 되어 움직일 때 욕망에 따른 삶이라 할 수 있다. 의지는 있는데 능력이 없는 경우, 능력 자체를 기르는데 의지를 집중하는 것을 ‘힘에의 의지’라고 한다. 곧 자기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드는 것에 의지를 쏟는 것이 힘에의 의지이다.

따라서 니체는 욕망을 따라 살아가기 위해서 첫째,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가치나 정서들과 맞설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만섭은 물론, 광주의 택시 운전사 황태술(유해진 분)이 이를 잘 보여준다. 만섭이 광주를 벗어나도록 도와주며 마지막 순간 쫓아오는 군용 지프차로 후진하는 장면이 너무 눈물겹게 아름답다. 화면에 황태술의 후진하는 택시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지나가고, 도로가에 펼쳐진 초록의 풀들을 카메라가 비춰준다. 도로는 고요했고, 차바퀴 소리가 고즈넉하고, 그리고 브레이크 밟는 소리와 “쾅”하는 소리...

만섭이 핸들을 돌렸듯이, 태술이 후진하는 것은 모두 군부독재의 질서에 맞서는 행위였다. 그러나 대부분은 후진하지 못한다. 핸들을 꺽지 못한다. 만섭은 광주를 벗어나 순천에 와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대학생들이 데모해서 군인들이 죽었다. 깡패, 빨갱이들. 뉴스에 나왔다. 신문에도 나왔다 아이가.”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보여주지만,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와 정서, 그 질서에 맞서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잘 보여준다.

둘째 “자기에 대한 오만, 연민, 집착 등을 버려야 한다.” 미안해하는 만섭에게 태술은 이렇게 말한다. “형씨가 뭐가 미안해. 나쁜 놈들 저기 따로 있구만. 날씨 지랄 맞게 좋구만. 나중에 딸과 함께 놀러오소. 아기랑 소풍가게.” 욕망을 따라 살기 위해서는 이러한 연민을 벗어버려야 한다. 만섭이 ‘제 3한강교’를 부르며 광주를 벗어나다 핸들을 꺽은 것은 바로 연민에서 벗어나는 행위였다. 오만과 집착을 벗어버리고, 자기 결정적 창조적 욕망의 분출이었던 것이다.

셋째 “습관을 버려야 한다.” 욕망에 따라 사는 사람은 낯선 것과의 만남을 통해 기존의 자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자기로 나가려 한다. 이에 반해 독단적인 사람은 낯선 것을 배격하며 이미 결정된 것이 변하는 것을 경계한다. 낯선 사유, 낯선 상황, 낯선 세계, 이런 것들과 자신을 부딪치게 하는 중요한 계기 중 하나를 니체는 친구라고 한다. “야전 침대처럼 불편함을 주는 존재가 친구”라는 것이다. 낯선 것, 즉 익숙하지 않은 것에 맞닥뜨렸을 때 느끼는 불편함을 주는 존재가 바로 친구인 것이다. 따라서 니체에게 친구란 죽이 잘 맞아서 놀기에 좋은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사유와 감각, 생활을 좀 더 넓어지게 하는 계기가 되어 주는 존재이다.

만섭에게 기자가, 기자에게 만섭은 서로의 사유와 감각, 생활(게다가 언어까지)을 넓어지게 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서문에서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창조하는 자가 찾고 있는 것은 친구다. 무리나 추종자가 아니다. 창조하는 자는 더불어 창조할 자, 새로운 가치를 새로운 판에 써넣을 친구를 찾는다.”

따라서 영화는 창조적 욕망을 넘어 친구에 관한 이야기도 된다. 장훈 감독의 작품 대부분은 ‘두 남자’에 집중한다. ‘두 남자’의 갈등을 통해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장훈 감독은 브로맨스(Bromance)3)의 장인이라 불린다. <영화는 영화다>(2008)의 소지섭-강지환, <의형제>(2010)의 송강호-강동원, <고지전>(2011)의 신하균-고수, <택시운전사>의 송강호-토마스 크레취만 등.4) 특히 <택시운전사>는 새로운 가치를 서로에게 써 넣어 주었던 진정한, 불편한 친구에 관한 영화이다.

5. “아저씨 광화문 가요”: 미국(美國)은 결코 아름다운 나라가 아니다.

그렇다면 주인공 송강호가 영화 <택시운전사>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아픈 역사를 다루는 영화지만 그 당시 사람들이 비극적인 현실을 어떻게 극복했고 어떤 희망을 노래했는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영화의 주인공인 김만섭은 거창한 정치적 구조나 사상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할 뿐이죠.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역사를 바꾸는 모습을 보면서 관객들도 희망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희망은 절망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지할 때 가능한 것이다. 송강호는 몰랐지만, 장훈 감독은 알았을까? 영화의 마지막 2003년 12월 택시 운전사 김만섭(김사복)은 손님을 태우고 광화문으로 간다. 그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03년을 자주와 평화의 새해로! 미군재판 무효! 살인미군 처벌! 부시공개 사과! SOFA 전면개정! 100만 촛불 평화 대행진>이 있었던 날이다. 주최는 ‘미군 장갑차 고 신효순, 심미선 양 범국민대책위원회’였다. 광주 대학살 뒤에, 전두환 뒤에, 미군이 있었음을 마지막에 보여준 감독의 센스가 고맙다.5) 진정한 창조적 욕망은 이처럼 말미에 살짝 고개를 내밀고, 우리를 불편한 야전침대로 초대한다.

 

*각주

1)이하 니체에 관한 통찰과 니체 작품 인용은 이미라, 「나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방법이 있을까?」, 수유너머N, 『욕망: 고전으로 생각하다』 (너머학교, 2016)을 참조.

2)김강기명, “신적 폭력에 대하여: 발터 벤야민, 「폭력 비판을 위하여」(1920) 후반부에 대한 한 메모”, <CAIROS: 비평루트Root/Route> (http://cairos.tistory.com/69) 참조.

3)형제를 뜻하는 브라더(brother)와 로맨스(romance)를 조합한 신조어이다. 남자와 남자 간의 애정을 뜻하는 단어로 우정에 가까운 사랑을 의미 한다.

4)사실 장훈 감독은 김기덕 감독 덕에 영화계에서 자리 잡았다. 서울대 재학 시절 학교에 특강을 온 김기덕 감독에 반해 그의 조연출이 됐고, 능력을 인정받아 2008년 김기덕 감독이 시나리오를 쓴 <영화는 영화다>로 데뷔했다. 저예산 영화임에도 130만 명의 관객을 끌어들이며 성공했다. 특히 관객의 호응이 적었던 ‘김기덕표’ 영화의 상업적 성공이라는 측면에서 호평이 많았다. 하지만 이후 두 사람은 결별했다. 장훈 감독이 김기덕 감독을 떠나 투자배급사 쇼박스와 손잡고 2010년 <의형제>를 연출하면서 둘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매해 영화를 만들던 김기덕 감독은 충격으로 한 동안 영화 연출을 중단하기 까지 했다. 하지만 2012년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에서 <피에타>로 작품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어쩌면 장훈 감독의 영화에 등장하는 ‘두 남자’는 김기덕 감독과 장훈 자신이 아닐까? 길항하며 하나가 되는, 두 사람의 화해를 <택시 운전사> 영화처럼 기대해본다. 그러나 영화처럼 다시 만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5)광주민주화 운동 이후 하나의 근원적인 물음을 제기됐다. “이 땅의 민주화를 가로막는 가장 커다란 장애물은 무엇인가?”, “과연 누가 민주주의, 민족 통일을 향한 우리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고 있는가?”, “우리 민중은 투쟁을 통해 이승만을 몰아냈고 박정희를 몰아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민주주의는 실현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우리에게 미국은 아름다운 나라, 은혜로운 나라로만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5·18을 계기로 대학생들과 지식인들에게 ‘미국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던져졌다. 충격적인 사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지금 미국의 항공모함이 부산항에 들어왔습니다. 시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미국이 전두환의 학살을 막고 광주시민을 도와주러 왔습니다.” 1980년 5월25일 부산에 미국의 항공모함 코럴시호가 들어왔다는 소식이 도청 궐기대회에서 발표되자, 순진한 시민들은 드디어 미국이 군부를 몰아내고 민주주의와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온 줄로 알고 함성을 질렀으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것은 시민들만의순진한 환상이었다는 것을 이틀 뒤에 알았다. 항공모함은 왜 왔을까? 미국은 신군부가 진압에 실패해 무장 항쟁이 전국적으로 번질 경우 주한미군을 직접 동원하려는 생각이었고, 아직 광주에서 대피하지 못한 자기 국민 130명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항공모함을 파견한 것이었다. 시민들은 믿는 도끼에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광주시민들은 죽어가면서 깨달았다. 전두환 뒤에는 미국이 있다는 것을. 2000년 4월 22일 미국에서 ‘20년 뒤 광주’라는 5.18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의 주한미국대사인 글라이스틴(William H. Gleysteen Jr.) 전 대사는 “당시 한미연합사의 미군사령관은 특전사에 대한 지휘권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당시 이 병력이 야만적으로 행동하도록 명령을 받으리라고 생각지 않았다. 군 이동은 전두환이 결정했고 최규하가 형식적으로 승인했다.”고 회고했다. 1996년 한국 관련 극비 문서 1,749건을 공개해 미국이 광주학살에 어떻게 개입했는가를 세상에 널리 알린 팀 셔록(Tim shorrock) 기자는 「미국과 광주-20년 뒤」라는 논문에서 “미국이 광주항쟁진압 과정을 알고 있었고, 87년 민중항쟁 때 전두환 정권의 군대 동원을 막은 점으로 볼 때 광주학살에 대한 책임을 벗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이 아직 5.18 항쟁 관련 중요 문건 20여 개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들 자료가 공개되면 미국의 개입 사실이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다.” 아마 여기에는 신군부가 진압에 실패했을 때 직접 미군을 동원하려 했던 22일 백악관 회의 문건도 있을 것이다. 5.18유족 청년봉사단 카페(http://cafe.daum.net/koko649593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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