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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과 조계사[이수호 칼럼] 적페가 되어버린 종교들
이수호 | 승인 2017.08.29 01:31

노태우 정권 말기, 1991년 그해 여름도 몹시 더웠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나는 강경대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아 천신만고 끝에 강경대를 광주 망월동 민주열사 묘역으로 보내고 어쩔 수 없이 명동성당으로 들어갔지요. 경찰에 쫓기던 내가 갈 곳은 거기밖에 없었으니까요.

명동성당, 국가권력에게 쫓기는 사람들의 보호처였다. 그러나,

당시의 명동성당은 부당한 국가권력에게 쫓기는 자가 보호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습니다. 우리 집행 간부 10여 명은 명동성당 경내에 천막을 치고 단식을 하며 최후의 항전에 들어갔습니다. 경찰은 명동성당을 겹겹이 에워싸고 바깥과의 통로를 차단하고 검문검색을 강화하여 아무도 드나들지 못하게 하는 한 편, 수시로 체포조를 경내로 들여보내 위협하곤 했지요.

▲ 명동성당

더 안타까운 것은 신도들이라 자처하는 동원된 듯한 연세 드신 분들이었습니다. 이 분들은 막무가내로 빨갱이 운운하면서 천막의 줄을 끊는 등 온갖 횡포를 부렸습니다. 그러나 경찰도 신도들도 더 이상 어쩌지는 못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천주교의 최고 지도자인 김수환 추기경이 경찰 진입을 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이었지요. 김수환 추기경의 논리는 간단했습니다. 약하고 억울한데 갈 곳 없는 사람이 성당으로 피해 들어왔으면, 성당은 당연이 그 약한 자를 보호해 주며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명동성당 주임신부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나는 당시 함께 단식투쟁을 하고 있던 상임대표인 한상열 목사와 함께 주임신부를 만났지요. 예상대로 경찰이 성당을 에워싸서 신도들의 성당 출입이 불편해, 종교활동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나가 줬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한상열 목사와 나만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고, 다른 분들은 모두 자유롭게 성당을 나갈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경찰과도 합의된 사항이니 모두를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며, 은근히 회유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강경대 장례까지 무사히 치렀기 때문에 일단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으로 주임 신부와 거듭 약속을 확인하며, 단식 20여 일만에 자진해서 성당을 나가기로 했지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바로 성당 경내까지 들어온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앰뷸런스에 실려 경찰서로 연행되었지요. 더 안타까운 것은 무사 귀가를 약속했던 다른 동지들도 모두 연행되었다는 것입니다. 경찰에서 검찰로, 검찰에서 법원으로, 그리고 감옥으로 끌려 다니면서도 가장 억울하고 안타까웠던 것은, 당시 주임신부가 우리를 속이고 경찰에 넘겨준 사실이었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 명동성당이 그 동안 담당했던 소도 역할도 끝나버렸지요. 87년 6월 항쟁의 근거지로 우리 사회를 민주화시킨 성지가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조계사, 흉내만 내다 말았다

명동성당이 변질되어 버리자 고맙게도 조계사가 그 역할을 대신해 주었습니다. 이명박 초기 광우병 촛불이 타올랐다가 엄청난 반격에 의해 지도부가 탄압 받을 때, 기꺼이 피난처가 되어 준 곳이 조계사였습니다. 전교조 등 노동자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도 법당 뒤에 천막을 치고, 부처님의 가피로 사회 정의를 외칠 수 있었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길게 가지 못했습니다.

▲ 조계사

박근혜 정권이 포악해지며 민중총궐기대회의 책임을 물어 민주노총 위원장을 수배하게 되자, 한상균은 조계사로 숨어들었습니다. 엄청난 경찰 병력이 조계사를 에워싸고 교통을 방해하며 시민을 겁박하자, 총무원장, 주지 등은 한상균 위원장이 조계사에서 나가도록 종용하고, 결국은 자진하여 경찰에 잡혀가게 했지요. 갈 곳 없는 자 재워주고 굶주린 자 먹여주는 부처님 자비를, 악업에 발목 잡힌 큰 스님들이 스스로 외면해 버린 것입니다.

적폐가 되어버린 종교들

촛불에 의해 정권이 바뀌고 촛불혁명의 기운이 이어지며, 각 부문에서 적폐 청산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기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달게 여기며 MBC, KBS 중심으로 방송계가 몸부림을 치는 가운데, MBC 출신 해고자 최승호는 <공범자들>이란 기록영화를 만들어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법부도 젊은 판사들 중심으로 판사 블랙리스트 문제의 해결을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형교회 등 종교 집단의 적폐가 심한데, 종교인의 세금 문제 등에서 오히려 퇴행적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도 불교는 한 가닥 희망이 있어, 그 동안의 잘못을 스스로 뉘우치고 참회하며 바로잡아 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명진 스님의 단식 투쟁이지요. 부디 다른 종교까지 영향을 미쳐, 돈과 권력에 찌들어 본분을 잃어버리고 있는 우리나라 종단들이 거듭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수호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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