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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장미[조헌정 목사 설교] 에스겔 37장 11-22절, 마태복음 14장 13-21절
조헌정 | 승인 2017.09.01 00:34

오늘의 성서 말씀은 에스겔서와 마태복음서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서의 급식 기적 말씀은 세계교회의 주일 공과에 따른 본문 말씀이지만, 에스겔서의 말씀은 오늘 한반도의 상황을 반영하여 선택한 말씀입니다.

5천명 급식 기적 이야기. 그래요 예수께서 여자와 어린이를 제외하고 남성만 오천 명리고 하니 넉넉잡아 2만 명 아니 3만명이라고 합시다. 아니 당시는 아이들을 많이 낳았으니 그래 오만 명이라고 합시다. 오만 명의 사람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먹였다는 이야기가 뭐 그리 중요한가요? 아무리 배부르게 먹었다 할지라도 하루가 지나면 또 다시 배가 고파 오는게 우리의 몸인데, 한 끼 해결하여 준 게 뭐 그렇게 대수인가요? 빌 게이트를 비롯한 세계갑부들은 사회 기부를 통해 수십만 명이 일 년치 먹을 양식도 주고 있는데 말입니다. 기적 이야기라 중요한가요? 성경에는 죽은 사람을 고친 얘기는 물론 해를 멈춘 기적도 있습니다.

4개의 복음서에 다 기록되어 있는 이야기는 몇 개가 되지 않는데, 오늘 오천명 먹인 이야기가 그중 하나입니다. 많은 이야기들 중에 이 이야기를 전하는 복음서 저자들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믿는 자에게는 불가능이 없다고 믿기만 하면 이런 기적이 계속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함일까요? 병 고침 기적은 오늘날도 일어날 수 있지만, 이 급식 기적은 그때 한번 만으로 끝났습니다. 또 다른 질문도 생깁니다. 먹고 남은 부스러기를 주워 모으니 열 두광주리에 가득 찼다고 하지만, 광주리가 얼마나 큰지 몰라도 열두 제자가 일주일 이상을 먹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부스러기가 남았으면 어떻고 안 남았으면 또 뭐가 달라지는 것일까요?

이보다 더 큰 질문은 얼마 전 예수께서 40일을 광야에서 금식할 때, 사탄이 와서 돌로 빵을 만들어 먹으라고 유혹했을 때에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말하면서 빵을 부정하는 듯한 얘기를 했는데, 왜 이제 와서는 먹을 것을 만들어 주었나요? 민중이 불쌍해서... 불쌍하면 평생 먹을 것을 해결해 주어야지 누구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달랑 한 끼만 해결해주면 어떡합니까? 물고기를 주기보다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주라는 말이 있듯이 단지 한 끼의 식사를 해결해주는 것은 일종의 사탄의 유혹이 아닌가요?

▲ 100여년 전 미국에서 일어난 여성공장노동자들의 인권을 찾기 위한 파업

‘빵과 장미’

1900년대 초반 번창하던 미국 의류산업계 여성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에서 18시간의 장시간의 노동을 하며 몸이 병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폭압적 상황을 견디다 못한 노동자 1만5000여명은 1908년 3월8일 뉴욕시 광장에 모여 13주 동안 대대적인 파업 시위를 벌이며 노동자의 현실을 전 세계에 알렸는데, 남성들과 달리 여성 노동자들은 생명의 담지자이자 가정 살림의 주체자로서 단지 빵만을 얻기 위한 노동자가 아님을 선포하였습니다. 이후 191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로렌스 직물공장 여성 노동자 파업에서 ‘우리는 빵을 원한다, 그리고 장미도’라는 손 팻말이 등장했는데, 이는 미국 시인 제임스 오펜하임이 여성 노동운동가를 위해 쓴 ‘빵과 장미’라는 시에서 따온 것으로 빵은 생존, 장미는 존엄을 의미하였습니다.

성서는 영혼을 위한 양식서이지 육신을 위한 경제 요령서가 아닙니다. 오늘의 급식 기적 이야기 또한 빵의 관점에서 접근해서는 안 되고 장미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것입니다. 4복음서 가운데 가장 늦게 쓰여진 요한복음서는 당시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빵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하자, 5천명 급식 기적 이야기 결론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는 양식을 얻도록 하여라.”

만나?

우리가 성서를 이해함에 있어 가장 큰 오해가 하나 있는데, 그건 성서에 등장하는 옛날 사람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보다 무식하다는 전제입니다. 3천년 전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리보다 무식하다 말할 수 있나요? 공자나 맹자나 석가를 지금도 사람들은 인생의 위대한 스승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예수 시대 혹은 예수 이전의 성서 안에 기록된 사람들은 우리보다 과학적 지식에 있어서는 떨어질지 몰라도 삶의 지혜나 영성적인 면에 있어서는 결코 떨어지지 않을뿐더러, 제가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깨닫는 것은 우리들 보다 훨씬 더 깨어 있는 지성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린이들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고 단순하지만, 그 안에 담겨진 내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크고 깊습니다.

우선 성서를 읽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시의 사람들은 어떻게 이를 받아들였을까?’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오늘의 급식 이야기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이천년 전 유대인들의 전 이해를 가져야 합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께서 광야에서 5천명의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곧 바로 자기 조상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만나’ 그러면 우리는 그저 하늘에서 떨어진 공짜 음식으로 이해하는데, 이거야 말로 정말 성서를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우선 만나라는 히브리 단어에 어떤 뜻이 담겨 있습니다. 처음 이를 본 사람마다 물었습니다. ‘이게 뭐지?’ 만나의 뜻이 바로 ‘이게 뭐지?’입니다.

모든 인간이 처음으로 묻는 질문은 ‘이것이 무엇인가?’입니다. 말문을 뜬 아이들이 계속해서 던지는 질문이 ‘이게 뭐야?’입니다. 보이는 세계에 대해 이 질문을 던지면 철학이 되고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 신학이 됩니다. ‘만나’는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던 히브리 노예들에게 처음으로 내려주신 양식을 보고 했던 반응이지만, 우리가 새롭게 만나는 ‘만나’는 육체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양식이 아니라 영혼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보이지 않는 양식의 상징입니다.

공동체와 평등사상

애굽제국으로부터 해방을 받은 히브리인들은 광야생활을 시작하면서 아침이 되면 주변에 널려진 하얀 떡을 거두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지만, 젊은이들은 식욕도 넘치고 활동반경이 넓으니까 많이 거둡니다. 반면 늙은이들은 적게 거둡니다. 그런데 성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들이) 집에 돌아와 보니 많이 거둔 자나 적게 거둔 자나 똑같아졌다.’ 젊은이가 먹는 양과 늙은이가 먹는 양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물량적으로 똑같이 나누는 일은 일종의 차별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똑같아졌다는 말은 각자가 모두 배불리 먹었다는 말을 의미합니다. 나눔의 방식은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나누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많이 거둔 자나 적게 거둔 자가 같아지는 방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만나 이야기는 우선 나눔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만나 이야기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혹 누군가가 내일을 염려하여 오늘 먹을 양에서 일부를 남겨 두었다 하더라도 다음 날이 되면 이 음식물은 썩어버렸습니다. 과학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지만, 영적인 의미는 분명합니다. 내일을 걱정하지 말라는 것과 축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에 있는 만나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분명합니다. 첫째,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재물을 쌓아두지 말라는 것이고 일용할 양식에 만족하라는 말입니다. 광야의 삶은 이동(순례)하는 삶입니다. 뭔가를 축적하기 시작하면 이동이 불편해지기 시작합니다. 집마저도 접었다 폈다 하는 천막의 형태입니다. 가진 것이 많아지면 이동을 포기하고 정착을 하게 되는데, 정착을 하게 되면 얼마가지 않아 많이 가진 자와 적게 가진 자로 나눠지게 마련입니다. 힘이 약하거나 병든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가진 것들을 내놓아야 합니다. 옷도 한 벌만 제외하고 모두 내다 팔아야 하고, 그러다 끝내는 자식도 노예로 팝니다. 희년제도가 생긴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천년 후나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의 법칙은 깨어지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물질 소유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집은 자기가 살 집 한 채만 소유하면 되는데, 두 채, 열 채는 백 채 이상을 소유하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그래 83부동산투기금지정책이 시행되었습니다. 공정위원회가 갑질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고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거두어들이는 방식을 도입하지 않고서는 부자와 빈자 사이의 간격은 한없이 넓어집니다. 그러다 보면 흙수저들의 불만이 커지고 이 불만이 커지면, 묻지 마 살인과 같은 사회 불안으로 이어져 끝내는 폭동으로 번진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일입니다. 저들은 이미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이런 불평등의 부조리를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그래 야훼 하느님께서는 히브리 노예들을 해방을 시켜 새로운 세계의 건설자로 불러낸 것입니다. 다시는 그러한 부익부빈익빈의 구조악을 저지르지 않도록 처음부터 제대로 훈련을 시켜야 했습니다. 그것이 출애굽기의 만나 이야기의 핵심이며 예수 급식기적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물어야 합니다. 만나! ‘이것은 무엇인가?’ 왜 야훼 하느님은 하루치의 음식만을 주는 것일까? 남기면 썩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많이 거둔 자와 적게 거둔 자가 똑같아지기 위해서 오늘 나는 무엇을 하여야 할까? 어느 부자가 그간 모아놓은 재산이 너무 아까워 죽음의 천사가 찾아왔을 때, 이렇게 하소연합니다. 천사님, 저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세요. 황금덩어리 하나만이라도 들고 가게 해주세요. 하도 애처롭게 하소연하니까, 허락을 합니다. 그래 보자기에 싸아 어깨에 둘러매고 끙끙대며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하늘 문을 들어가자 베드로가 서서 묻습니다. 보자기 속에 들어 있는게 뭔가? 황금덩어리입니다. “아니, 이곳 도로에 까는 돌멩이는 왜 들고 왔는가?”

남과 북

다음 주는 남과 북의 교회들이 평화통일주일로 지키자고 약속한 주일입니다. 1995년 분단 50년째인 희년주일을 맞아 약속을 하였으니 벌써 22년이 되었습니다만, 오늘 한반도의 현실은 평화가 아닌 전쟁으로, 화해가 아닌 미움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북은 70년 넘어 계속되는 경제봉쇄와 자신들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미국의 지배체제를 끊어내기 위해 핵을 개발하고 미사일을 쏘아대고 있습니다. 미국 주도의 세계 언론과 남한에서는 도발이라고 하지만, 미국은 실험발사 없이 수천발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소유하고 실험폭발없이 수천발의 핵무기를 갖게 되었나요? 자기들이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하는 얘기와 똑같은 얘기입니다. 어느 나라나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소유할 권리가 있고 무기를 개발하고 실험할 권리가 다 있습니다.

또 엄격히 말해 한반도는 지금 전쟁이 끝난 종전상태가 아닌 휴전상태입니다. 곧 전쟁을 하다 지쳐서 서로가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시간입니다. 축구경기는 심판의 호르라기 소리에 따라, 음악회는 종소리에 따라 후반부가 시작함을 알리지만, 전쟁을 다시 시작하는 일에는 정해진 규칙이 따로 없으니, 어느 쪽이든 먼저 총과 포를 쏘아대면 그때부터 휴식시간이 끝났음을 쌍방이 인식하는 것입니다. 깡패 세계에서 도발이라는 말이 성립합니까? 물론 휴전협정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휴전협정에 따르면 90일 이내에 모든 외국군은 한반도에서 철수하고 이어 평화협상을 시작하도록 되어 있는데, 미군이 나가지 않았으니 도발은 이미 미국에서 한 것이지요. 북을 향해 도발이라고 하는 말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흉보는 일과 같습니다. 오늘 아침 미국이 주도한 대북경제제재안이 통과가 되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또한 북의 ICBM 미사일 실험발사를 도발이라 부르고 남은 4기의 사드배치를 명령했는데 이는 분명한 잘못입니다. 사드는 고고도방어미사일체제로서 북이 남한을 향해 쏠 때는 거리가 짧으니 고고도로 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입장에서 본다면 이는 무용지물입니다. 이는 미국본토를 향해가는 미사일에만 효능이 있을 뿐입니다. 사드무기의 핵심은 미사일이 아니라 X 밴드라고 하는 레이다 장치입니다. 중국 내륙을 감시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중국이 남한에 대해 지속적인 무역제재를 가하고 있습니다. 자동차는 이미 반토막났고, 롯데는 이미 95%가 날아갔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그렇습니다. 남한의 제1의 수출국가인 중국이 이런 식으로 계속 나간다면 우리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은 대단할 것입니다.

문재인 씨는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에는 사드배치에 관련하여 반대 입장을 갖고 있었고, 미국에 대해 할 말을 하겠다는 주권 국가의 수장으로서의 바른 입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미국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알아서 기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습니다. 옛말에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615 남측위원회 공동대표로 일하고 있지만, 지금의 북의 기조로 보아서는 남북대화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문재인대통령이 미국 트럼프의 입김으로부터 우선 벗어나야만 남북대화가 가능합니다.

평화통일 문제에 있어서는 임기 5년이 아닌 50년 미래를 바라보는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데, 현재의 지지율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드무기도입 끝나면 그걸로 무기 수입 끝날까요? 남한은 지난 십년 가까이 미국 무기 수입국 세계 제1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상태로 간다면 최소한 10년은 1위 자리를 유지할 것입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기 수입인가요? 무기라는 것 철 지난 옷과 마찬가지로 십년 이십년 지나면 다 고철로 분해되어 사라집니다.

이 땅의 횃불 교회

오늘 우리는 암담한 국내정치 현실, 대결양상으로만 치닫는 국제정치사회 현실 속에서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묻고 싶습니다.

여기 올해 루터 개혁 500주년을 맞아 독일 종교청 소속 역사박물관에서 발간한 세계 개신교 500년을 정리한 [The Luther Effect]라는 책을 들고 나왔습니다. 석 달 전에 출간이 되었고 남한 전체에 아마 너댓권 있을 것입니다. 판매용이 아니니 구입할 수도 없습니다.

이 책은 루터 이후의 유럽 개신교의 여러 분파 운동을 얘기하고 나서 세계개신교회를 설명함에 있어 4 나라를 선정했습니다. 스웨덴, 미국, 탄자니아, 그리고 남한. 남한의 선정된 이유는 교회성장 때문입니다. 현재 세계 50대 대형교회 중 절반이 서울에 있습니다. 그런데 6만개가 넘는 오늘의 한국교회를 다 설명할 수 없어 ‘분단된 땅의 횃불’이란 장에서 두 교회만을 상징적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여의도 순복음교회와 가장 진보적인 교회로 알려진 향린교회입니다. 순복음교회는 큰 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향린교회를 소개하는 사진은 모두 4장이 실렸습니다. 한 장은 교회 외벽에 걸려 있는 현수막 사진입니다. ‘정의를 심어 평화의 열매를’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사드배치 절대반대’

박물관 전시 담당자가 지난 1월에 교회를 방문하여 전시를 위해 이 현수막을 빌려줄 수 있느냐고 해서 그냥 가지라고 주었습니다. 이외 91년도 홍근수목사님께서 KBS 심야토론에서 북한공산당원들도 휴머니스트라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죄를 걸어 1년 반 감옥살이를 할 때, 교인들이 커다란 보라색 천에다 ‘통일목사 홍근수를 석방하라’는 구호 밑에 수백 명의 교인들이 서명한 것을 액자로 만들어 방에 걸어 놓았는데, 이 또한 달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제 방에 커다란 크기의 십자가가 놓여 있었는데, 이 또한 달라고 해서 가져가 지금 전시 중입니다.

대형교회들의 꿈이 있습니다. 그건 이 나라 모든 국민들이 다 크리스챤이 되는 민족복음화입니다. 요즘 이에 관련하여 페이스북에 재미있는 글이 떠다니는데, 그건 지금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박찬주사령관이 한 말입니다. 우선 이 부부의 공관병들에 대한 갑질 학대가 문제가 되어 형사고발이 되어 있습니다. 24시간 전자 팔찌를 채워 버튼만 누르면 자기 앞에 뛰어오도록 했습니다. 이는 노예나 다름이 없습니다. 집에 냉장고가 10대나 있는데, 과일 선물이 많이 들어와 과일을 많이 깎아오면 많이 깎아 왔다고 욕을 하고 냉장고 안에서 썩어가면 썩게 만들었다고 이를 사병들에게 던졌습니다. 썩어가기 전에 나눠주면 좋으련만 먹지도 못하게 했다고 하니 이들이 인간 맞습니까? 그런데 이분이 군사령관일뿐더러 교회에서는 장로요 권사입니다. 이 분이 대구 모교회에서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매년 입대하는 20만 명의 사병들 가운데 14만 명에게 세례를 베풀고 있는데, 이렇게 가면 2035년이 되면 국민 75%인 3,700만명이 기독교인이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제가 90년대 훈련소에서 군종사병을 했던 후배에게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불교 기독교 가톨릭이 서로 자기 종단으로 끌어오기 위해 세례를 베풀면서 처음에는 초코파이를 한 개 주다가 경쟁이 붙으면서 두 개씩 주었고, 사병들이 초코파이에 질리자 피자를 비롯한 각종 선물을 주었다고 해요. 그래 재미를 붙인 군인들이 한 종단의 예배에만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 종단의 예배에 모두 다 참여하면서 각종 선물을 챙겼다고 하더군요. 이에 세 종단 대표들이 모여 선물의 가격 제한을 두었다고 합니다. 이 돈이 다 어디서 나왔을까요? 교인들이 낸 헌금에서 선교비 명목으로 나간 돈입니다. 이 박장로는 매년 14만 명이 개신교 세례를 받았다고 하지만, 불교나 가톨릭 세례자들을 다 합치면 20만명도 훨씬 넘는 숫자가 나왔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이 교회의 장로니 교회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이런 사람이 군 사령관이니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겠습니까? 쉽게 말해 지금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제 정신이 아닙니다. 그건 제 정신이 아닌 목사들이 그렇게 주입을 시켰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박장로의 얘기가 인터넷상에 떠다니면서 선교는커녕 선교에 막대한 지장을 주고 있습니다.

유럽은 천년이상 전 국민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일종의 천년왕국 당시 교회 지도자들은 이것을 하느님의 나라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 시대를 뭐라고 부르지요? the Dark Age(암흑시대)라 부르지요. 왜 그렇습니까? 인간의 이성을 제한했습니다. 교회의 천동설에 반대하여 지동설을 주장하면 화형을 시켰으며, 지금의 종북놀이마냥 마녀사냥을 했습니다. 대형교회를 짓고 땅을 크게 소유하며 부조리가 심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루터를 비롯한 개혁가들의 저항이 일어난 것입니다. 지금 남한 교회에는 이런 모습이 없지 않나요? 성주 주민들이 당하는 고통에는 아랑곳없이,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든지 말든지 나 혼자 잘 믿어 부자 되어 9988234하다 천당 가면 된다는 믿음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교회의 빛과 소금으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불렀습니다. 서울의 향린교회나 대구의 새민족교회는 비롯 수에 있어서는 작지만, 그러나 세상의 빛과 소금의 교회의 역할을 담당하는 세계에 빛나는 교회들입니다.

세계 250개가 넘는 나라 가운데에서, 남한의 경제력은 세계 20위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겠다고 안간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남한은 10년 이상 세계 제1의 자살률 국가로 자리 잡았고, 최저 출산률 국가로 자리 잡았으며 노조가입률 또한 OECD 최저이며, 무기수입, 교통사고 치사율 또한 세계1위입니다.

통일조국의 비전

지금 세계는 매일같이 북한 관련 뉴스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해외에 가면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면 백이면 백 이렇게 묻습니다. 노스코리아? 사우스코리아? 몰라서 물을까요? 묻는 저의는 이런 것입니다. “야 이 어리석은 인간아! 자기 형제자매끼리 원수지간이 되어 70년 넘게 살아오는데 그게 나라냐? 네가 남한국적이라고 하는게 자랑스러운 일이냐?” 한 동네에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형제 둘이 맨날 티격태격입니다. 처음에는 이쪽편도 들고 저쪽편도 들다가 나중에 지치면 뭐라고 할까요? ‘야 느네 둘 다 우리 마을을 떠났으면 좋겠다. 너희들 때문에 우리까지 힘들다.’

물론 남북분단이 일어나게 된 직접 동기는 소련과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군사전략 때문입니다. 그래서 1945년 8월 일제가 항복하기 직전 소련에 38분단을 제안한 나라도 미국이고, 45년 8월 15일 조선총독부 국기게양대에 올라간 태극기를 다음 날 내리도록 하고 다시금 일장기를 올린 나라도 미국입니다. 그리고는 9월 8일 일제로부터 항복서명을 받고나서 자신들의 미국 국기를 올렸습니다. 왜냐하면 미군은 이 땅에 해방군으로 온 것이 아니라 점령군으로 왔기 때문입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정부 청사에는 태극기가 걸려있지만, 자기 국민의 생명을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군작전통제권을 미국에게 맡기고 살아가고 있으니 진정한 의미에서 자주독립국가가 아닙니다. 조선의 왕이 등극을 하기 전 필히 중국의 윤허를 받아야 했듯이, 대통령으로 당선 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미국 대통령을 알현하는 일입니다. 이 말은 아직 우리에게는 진정한 해방이 온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자주를 통해 나라의 존엄성을 되찾고 평화통일을 통해 민족 존엄성을 되찾아야 합니다. 빵이 아닌 장미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붙잡혀가 살던 남왕국 출신 에스겔 선지자에게 하느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골짜기에 널려진 수많은 마른 뼈들이 하느님의 입김에 의해 살이 붙고 뼈가 붙어 커다란 군사가 되는 환상을 봅니다. 민족 회복의 환상입니다. 그리고 이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막대기 두 개를 취하여 하나는 에브라임왕국 다른 하나는 유대왕국이라 쓰라 그리고 이 둘을 하나가 되게 하라. 이미 지구상에서 사라진 북왕국과 남왕국이 하나의 통일왕국으로 회복되는 비젼을 보여준 것입니다.

여기 작은 막대기 둘이 있습니다. 제가 긴 막대기에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 쓰고 다른 짧은 막대기에는 ‘대한민국’이라고 쓰겠습니다. 그리고 이 둘을 십자가 모양으로 겹쳐 하나가 되게 하겠습니다. 이 남북이 하나된 통일 십자가가 지금 베를린 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수백만 명의 세계 기독교인들이 이를 방문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선지자에게 내린 통일조국의 비전이 이시간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조헌정  choshalom@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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