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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느릿” 헐겁고 굼뜨게[박철 목사의 아름다운 순간] 후회와 회한이 없는 삶을 위해
박철 | 승인 2017.09.02 23:20

“전도사님요. 빨랑 건너요. 기차 와요!”

철교 밑에는 시퍼런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비둘기호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시간을 알 수 있지만, 석탄차는 예고 없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릅니다. 열차가 동네를 지나가면 "빠~앙!" 하고 기적소리를 냅니다. 나는 마치 곡마단에서 외줄을 타는 사람의 심정으로 철교를 건넙니다. 마을과 마을을 공중에서 잇댄 철교를 처음 건너게 되었을 때는, 오줌이라도 질금질금 나올 것 같고 머리가 어지러워 구역질이 났습니다.

밑을 보지 말고 45도 각도로 앞만 보고 걸으라고 해도, 그러면 발을 헛디뎌 철길 갱목 사이로 발이 빠질 것 같아 등줄기에 진땀이 나고, 앞으로 가지도 못하고, 다시 뒤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진퇴양난이었습니다. 교각과 교각 사이가 300미터쯤 되었을까요? 열차와 사람이 부딪히는 사고가 많이 나서 50미터간격으로 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았지만 안심할 수 없습니다. 굳이 철길을 건너는 이유는 정선읍내까지 가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입니다.

산모퉁이를 돌아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서 읍내까지 가려면 한 시간, 거기다 기차를 타기 위해 정선 역까지 가려면 1시간 반이 걸리는데, 지름길인 철교를 건너 역까지 가면 2-30분이 족합니다. 그러니 애들이고 어른이고 노인이고 웬만하면 다 철길을 건넙니다. 달이라도 뜨면 동네사람들은 밤중에도 건넙니다. 묘기입니다.

나는 고3때 교회 종탑 공사를 도우러 올라갔다가 떨어져 척추를 다친 이후로 2층 옥상에만 올라가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사람입니다. 나는 등산을 좋아해서 암벽등반을 배우고 싶었는데도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포기했었습니다. 그런 내가 철길 갱목을 밟고 300미터나 되는 철교를 건너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석탄을 실은 화차가 언제 들이닥칠지도 모릅니다. 동네 입구 터널에서 화차가 빠져 나오면서 혹시 선로위에 누가 있을까봐 ‘빨리 피하라’고 기적소리를 크게 울리는데, 철길 위를 걷다가 그 소리를 들으면 심장이 멎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얼른 50미터 간격으로 있는 1평 남짓한 대피소로 몸을 숨겨야 합니다.

처음 우리 부부는 정선에 이사 가서 1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도전을 못했습니다. 1년이 지난 뒤 아내가 지금의 아딧줄을 임신하고 처음으로 철교를 건넜습니다. 처음 성공했을 때 기분은 마치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기분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요령이 생겨서 조금 수월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초보딱지를 떼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아내는 나보다 너 나은 편이었습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장보러 갈 때 머리에는 한말짜리 옥수수나 콩 자루를 이고 양손에는 또 다른 걸 들고 철교를 건너는데 내가 절반쯤 가면 벌써 다 건너가서 “전도사님요. 빨랑 건너요. 기차 와요!”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번지점프’인가 뭔가를 한다고 합니다. 생명단축이 되는 걸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중학교를 다니는 애들은 자전거를 끌고 철교를 건너기도 합니다. 이 녀석들은 사람을 실어 나르는 증산에서 구절리행 비둘기호와, 석탄을 실어 나르는 탄차의 시간표를 꿰고 있습니다. 나는 어쩌다 건너기 때문에 그걸 잘 모릅니다.

한번은 철교를 건너다 기차와 마주쳤는데 너무 놀라서 당황한 나머지 일촉즉발, 하마터면 정면충돌할 뻔 했습니다. 부딪혔으면 완전 콩가루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가까스로 대피소로 피했는데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었고, 힘이 쭉 빠졌습니다. 다리를 다 건넌 다음 완전 녹초가 되었습니다. 그런 일이 두 번 있었습니다.

이 사실이 믿기 어려운 분들은, 혹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분들은 한번 현장에 가서 실습을 해보면 내 말이 믿어질 것이고, 또 살고 싶은 의욕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가끔 강원도 정선 덕송리 철교를 조심스럽게 건넜던 그 순간이 생각납니다. 인생을 그렇게 조심스럽게 건넌다면 무사할 텐데, 빨리 가고 싶어도 무서워서 진을 다 빼고, 먼저 한발을 내딛고 다른 발을 갖다 모으고, 또 다시 한발을 내딛고, 다시 모으고….

“느릿느릿” 헐겁고 굼뜨게, 그렇게 인생을 산다면 적어도 삶의 후회나 회한은 없을 텐데 말입니다.

박철  pakchol@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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