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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등불[박철 목사의 아름다운 순간] 어머니의 호롱불
박철 | 승인 2017.09.10 01:08

강원도 화천군 논미리. 내 어릴 적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동네입니다. 그 시절 우리집은 매우 가난했고 단출했습니다. 처음에는 개울 근처에 살다가 장마 통에 집이 떠내려가 높은 지대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는데, 남이 살던 집이었는지, 다시 지은 집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초가지붕에 방 두 칸, 가운데 부엌이 있는 일자집이었습니다. 그때 우리 아버지는 경찰 공무원 퇴임 후, 아무것도 할 일이 없으셨습니다. 그러니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살던 동네에 의무중대가 있었습니다. 군대에 와서 다친 군인들을 치료하거나 요양하는 작은 군인병원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병원에 운영되고 있다는 소식을 달포 전쯤 친구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우리집은 의무중대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시집 올 때 가지고 온 재봉틀로 군인들 군복을 수선해주는 일을 하셨습니다. 바짓단을 줄여 준다거나 허리춤을 넓혀준다거나 간단한 일이었지만 제법 일거리가 많아서 쉴 짬이 없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구실을 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처지가 얼마나 어정쩡했을까 짐작이 갑니다. 어머니가 우리집 여섯 식구의 생계를 떠맡다시피 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동네에 초등학교 분교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누나와 나를 화천읍내에 있는 화천초등학교에 입학을 시켰습니다. 그 덕분에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5학년 때까지 장장 30리 길을 걸어 다녀야 했습니다. 공부에는 취미가 없었지만 결석을 하거나 지각을 한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한 겨울,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학교에 갈 준비를 합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손바닥만한 차돌멩이 두 개를 화롯불 재에 파묻어 두었다가 누나와 내게 주곤 했습니다. 그걸 주머니에 넣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 차돌멩이가 식을 때까지 주머니에 넣고 만지작거리면서 학교에 갔습니다.

수업은 언제나 내가 먼저 끝났습니다. 누나는 저보다 세 살이 위였지요. 수업을 마치고 누나 교실 앞에서 어정거리면 누나는 나를 매섭게 쏘아보면서 먼저 가라고 눈짓을 하곤 했습니다. 누나가 나를 왜 그리 싫어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콧물을 많이 흘려서 창피해서 그랬을까요? 집으로 돌아올 때도 읍내를 벗어날 때까지 서너 걸음으로 뒤쳐져서 걸어야만 했습니다.

바람이 쇳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하얀 눈이 쉬지 않고 내렸습니다. 그러면 온 몸이 꽁꽁 얼어붙을 것이 추웠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쯤 걷다보면 동네 어귀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러면 갑자기 마음이 쓸쓸해집니다. 어머니가 막 보고 싶어집니다.

“누나야! 니는 안 춥나?”
“나도 무자게 춥다.”

그러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나는 “아이구 귀 시려!” 하고 울고, 누나는 “아이구 발 시려!” 하고 우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어려서 귀가 컸고 누나는 발이 컸습니다. 그렇게 “아이구 귀 시려!”, “아이구 발 시려!” 하고 울면서 걷다 보면 어둠이 금방 산골마을에 찾아옵니다. 그러면 집집마다 호롱불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따뜻해지지요.

이제 집 근처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면 나의 어머니는 호롱불을 들고 집 마당에 나와 계셨습니다. 어머니의 호롱불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절 나의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호롱불을 들고 마당에 서 계셨을까요?

그 시절 작은 소년이 60 초반을 지난 중늙은이가 되었고, 이제 어머니는 80세의 일기로 5년전 세상과 작별하셨습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 시절이 그립고, 어머니가 구워주신 차돌멩이와 호롱불이 자꾸 생각납니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 모양입니다.
 
그대 마음에 찬바람이 불어오고
모질고 험한 시련의 언덕을 넘을 때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을 걸어갈 때
누군가 그대를 위하여 등불이 되어 준다면
그대의 꽁꽁 언 손을 붙잡아 준다면
얼마나 큰 기쁨과 위로가 될 것인가

갈 길은 멀기만 하고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하늘도 땅도 산도 나무도 아득히 잠든 밤
홀로 살아온 날들을 반추하며 밤길을 걸어갈 때
누군가 그대를 위하여 노래를 불러 준다면
그대의 외로움과 눈물을 닦아준다면
얼마나 마음이 환해지겠는가

겨울나무 사이로 쇳소리를 내며 바람이 지나가고
멀리서 개짓는 소리 컹컹 짓는 외로운 밤
아무런 희망도 꿈도 없는 첩첩 산길
지친 발걸음으로 뚜벅뚜벅 밤길을 걸어갈 때
누군가 그대를 위하여 등불이 되어 기다려준다면
왈칵 눈물이라도 쏟을 만큼
반가움으로 그리움으로 가득하지 않겠는가
아, 그리운 등불이여

- 박철. ‘등불’

덧붙이는 글 | 위 시는 그 시절 어머니의 호롱불을 생각하며 지은 시(詩)입니다. 이 시를 나의 어머니 고(故) 장옥선 권사님께 바칩니다.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는 이순(耳順)의 나이가 지났는데도 아직도 철이 덜난 아들입니다.

박철  pakcho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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