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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캄보디아를 이해하는 키워드다양한 상징과 깊은 깨달음
이성욱 | 승인 2017.09.10 01:29

성철스님이 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는 책을 보고 어떤 목사가 ‘평생 면벽수행해서 알아낸 게 고작 그거냐’면서 설교시간에 불교를 까대는 것을 직접 들은 적이 있다. 소크라테스 말대로 지가 멀 모르고 있는지도 모르는거지! 무식이 죄다.

아마도 바가바드 기타, 또는 앙코르와트의 쿠르크셰트라의 전쟁 장면을 보고 힌두교를 호전적이고 전쟁을 부추기는 종교라고 우기는 기독교인들이 있을까봐 지레 겁부터 난다.

▲ 앙코르와트 사원 벽면에 있는 “쿠르크셰트라 전투 장면” 조각

모든 종교의 경전은 문자적으로 읽게 되면 그 경전이 가진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건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도 마찬가지다. 창세기를 과학적 사실로 믿는 것만큼 미련하고, 천박한 일이 어디에 있으랴! 경전을 과학적 사실, 문자적 사실로 믿어버리면, 그 안에 들어있는 다양한 상징과 깊은 깨달음을 얻기는 요원하다.

사설이 길었다. 뉴라이트 창조과학자를 정부에 기용한 일 때문에 열 받아서 그랬다. 본론으로 넘어가면…

힌두교와 남방불교를 이해할 때 중요한 개념이 다르마와 카르마이다. 바가바드 기타의 중요한 주제가 바로 다르마와 카르마이다.

다르마는 흔히 법으로 번역이 되고, 카르마는 행위 또는 업으로 번역이 된다. 다르마는 세상 만사의 법칙(?) 또는 진리라고 해도 좋지만, 서양철학적 개념으로는 존재나 본질 등에 가까운 말이다.

카르마는 그 법칙 또는 존재의 완성, 진리 등을 이루기 위해 행하는 구체적인 행위를 의미한다. 그런데 모든 행위는 결과를 낳게 마련이기에 그 구체적인 행위는 업을 쌓게 마련이라 업으로도 번역이 될 수 있다.

카르마를 행위로 번역하느냐 또는 업으로 번역하느냐에 따라 세상을 살아가는 가치관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행위로 이해하면 윤리학으로 전개가 될테고, 업으로 이해하면 숙명론적 세계관으로 빠지기 쉽다.

캄보디아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카르마가 키워드가 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해본다.

이것은 십자가를 사영리에서 이야기하는 구원의 표징으로 이해하느냐 아니면 우리가 따라살아야 할 삶의 표본으로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기독교 신앙이 완전히 상반된 실천 방향으로 나가는 것과도 비슷하다.

이성욱  scapir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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