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불교 및 가톨릭 등 종교단체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12년째 투쟁을 이어가고 있던 KTX 여승무원 문제에 다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지난 5월29일 오전11시 서울역광장에서 ‘KTX해고 여승무원 문제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승무원들의 직접고용과 원직복직을 주장했던 것이다. KTX 여승무원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던 2005년 당시 취재와 인터뷰 등을 통해 제법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던 기자에게 약간은 당황스러운 소식이었다.

기자라는 신분을 떠난지도 오래 되었기도 했지만, 그간 여승무원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소식도 종종 전해 들었던 터라 당황스러웠던 것이고, 또 몇 년 사이에 상황이 어떻게 되었길래 종교계까지 나서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종교계에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은 거의 최후의 수단처럼 여겨지는 분위기가 여전하니 말이다. 그렇게 취재에 열을 올렸던 기자로서는 당황스러움과 궁증즘을 해결하기 위해 그간의 상황을 정리하게 되었다.

꿈의 고속철도, 거기에 꿈을 실었던 여승무원들, 그러나...

2004년 4월1일 KTX가 개통했다. 1기 KTX 여승무원 모집 공고가 났고, 350여명 모집에 4600여 명이 지원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렇게 지원한 사람들 중에는 항공사 스튜어디스 경력자, 석사 학위 소지자, 해외 유학파 출신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철도청 방침에 따라 계약직 사원으로 모집하지만, 1년 계약 후에는 여러 직급 체계를 조정해서 향후 정규직으로 전환, 약 5단계의 진급 단계를 계획한다.’는 것이 채용 조건이었다.

▲ KTX 해고 여승무원들의 문제를 알리는 포스터가 지하철 역사마다 붙어 있다. ⓒ이정훈

채용 조건처럼 일단 KTX 1기 여승무원들은 철도청 유관단체인 ‘홍익회’에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철도청이 2004년 3월 KTX 고객서비스 업무를 홍익회에 위탁하면서 여승무원들은 홍익회와 9개월짜리 근로계약을 맺은 것이다. 2004년 말 홍익회에서 분리된 철도청 자회사 철도유통이 KTX 고객서비스 업무와 여승무원들의 고용을 넘겨받았고, 이 역시 1년 계약직이었다.

이 당시 여승무원들은 2005년 철도청이 공기업인 한국철도공사(이하 코레일)로 전환되면 여승무원들도 같은 코레일 소속이 될 거라는 설명을 교육과정에서 수차례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규직 전환은 없었다. 철도청 관계자들의 약속과 달리 코레일이 출범한 2005년 이후에도 여승무원들은 여전히 위탁 계약직 신분으로 남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해 2005년 12월 1기 KTX 여승무원 390여명은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에 가입했다. 코레일은 위탁업체를 다시 철도유통에서 KTX관광레저라는 자회사로 바꾸려 했고 여승무원들은 계약을 거부했다(아래 기사 참조, “아무도 이탈한 사람은 없다”). 여승무원 370여 명은 2006년 3월1일,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부산과 서울에서 동시 파업에 들어갔다.

2006년 4월, 파업 한 달만에 국회 헌정기념관 농성을 시작했다. 그러나 농성 이틀만에 경찰 진압으로 모두 해산되었다. 그해 5월, 코레일은 새 자회사인 KTX관광레저에 복귀하지 않고 직접고용을 요구한 여승무원 280여 명을 해고했다.

이에 맞서 여승무원들은 점거·삭발·단식·쇠사슬 투쟁을 이어갔다. 여승무원들은 서울 용산역사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사무실 한쪽에서 합숙 생활을 이어갔다.(아래 기사 참조, “KTX 여승무원들의 농성장을 찾아서”) 파업이 길어지면서 동참했던 이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2007년 11월 여승무원들이 코레일 소속 역무계약직으로 입사하는 합의안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이철 코레일 사장이 이듬해 1월 사장직을 사퇴하면서 이 합의안은 무산됐다. 상황이 악화되자 당시 노조 총무와 지부장 직무대행이 서울역 내 30m 조명탑 위에 올라 고공 농성을 시작했다.

하지만 고공 농성도 물거품이 되었다. 이에 코레일은 또 다른 자회사 정규직을 제안했지만, 여승무원들은 논의 끝에 이를 거부했다. 이와 더불어 끝까지 남은 34명이 법정 투쟁을 시작했다. 2008년 11월, 코레일을 상대로 근로자 지위보전 및 임금지급 소송을 냈다.

첫 번째 승리, 또 그러나...

첫 법정 투쟁의 결과가 2010년 8월 서울중앙지법에서 나왔다. KTX 여승무원들이 코레일 노동자이라는 판결이었고, 여승무원들이 승리한 것이다. 코레일의 여승무원 해고는 부당해고이므로 복직 때까지 밀린 임금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은, 형식적으로는 철도유통이 여승무원들을 고용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코레일이 여승무원들에게서 노동을 제공받고 임금을 포함한 노동조건을 결정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코레일과 여승무원들 사이에 ‘묵시적 근로계약관계’ 성립을 인정한 것이다. 코레일은 승복하지 않았고 항소했지만 2011년 서울고등법원 역시 같은 판결이 나왔다.

그러나 코레일은 또 다시 상고했고 대법원 판결은 이유도 없이 길어졌다. 결국 4년 뒤, 2015년 2월26일 대법원의 최종 판결은 ‘파기환송’이었다. 대법원은 여승무원들이 코레일 노동자라고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코레일 소속 열차팀장의 업무와 KTX 여승무원의 업무가 각각 안전 관련 업무와 고객서비스 업무로 구분되어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화재 등 이례적인 상황에서는 여승무원이 열차팀장 지시하에 안전 업무를 하지만 전체 업무에서 비중은 낮다고 지적했다. 또한 홍익회가 독립적으로 KTX 승객서비스업을 하며 여승무원들을 독자적으로 관리·감독하고 인사권을 행사했기에 코레일과 여승무원들 사이에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1·2심과 전혀 다른 판단이 나온 것이다.

어두움이 더 짙어졌다

대법원 판결 직후 여승무원들에게 몰아닥친 것은 당장 돈 문제였다. 1·2심 소송에서 이긴 KTX 여승무원들은 과거 4년간 고용된 것으로 인정돼 코레일로부터 임금과 소송비용을 받았다. 1인당 8640만원이었다. 재판에서 패소했으니 이 돈을 반환해야 하는 문제가 남은 것이다.

고등법원으로 돌아간 파기환송된 사건은 2015년 11월 최종 패소했다. 재판이 마치자 코레일은 지난 4년간 여승무원들이 지급받은 임금이 부당이득이니 반환하라는 내용증명을 2016년 4월12일과 5월11일 두 차례에 걸쳐 발송했다. 또한 지난 1월3일 대전지방법원은 임금 반환을 독촉하는 지급명령서를 여승무원들에게 보냈다. 이자와 지연손해금 등을 합해 여승무원 1인당 빚이 1억원이 넘는다.

코레일은 여승무원들에게 지난 4년간 지급한 임금과 소송비용을 반환하라고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재판부는 원만히 합의하라는 조정 기간을 지시했다. 그러나 지난 1차 조정은 결렬됐다. 2차 조정은 6월 29일 예정되어 있었지만, 의견 차가 커서 연기되었다. 미뤄진 날짜가 9월25일이다. 조정에 실패할 경우 재판에 들어간다. 이와 같은 환수 소송은 보통 1심 선고까지 기간이 짧고, 선고가 끝나면 강제집행도 가능하다는 것이 법률계의 이야기다.

한국기독교회협의회 한 관계자는 “코레일은 대법원 판결 때문에 환수가 불피하다고 주장한다”고 귀뜸했다. 그리고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은 코레일이 철회하면 종료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배임이 될 수 있고 사장이 공석 중이라 어떻게 결과가 나올지 예측이 어렵다.”는 말도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 과연

하여간 KTX 여승무원들과 종교단체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다시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된다고 한다. 이들의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말 한마디 때문이다. 대통령 후보 시절, 철도노조와의 정책협약을 통해 “KTX 승무원 문제를 전향적으로 해결한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정훈 기자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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