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철 교수(서울대)

미국에서 포닥(박사후 과정)하던 시절, 동네의 한 미국 교회에 출석하곤 했다. 어느날 동부에서 방문한 어떤 목사가 설교를 했다. 주제는 창세기 1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형상’이었다.

흔히 기독교에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을 할 때 고대 그리스 방식의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대부분이기에 인간에게는 신이 정한 본질이 있고 죄된 상태에서 변화되어 신이 정한 창조질서의 형상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구원의 일부라는 믿음으로 연결되곤 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설파한 그 목사는 여성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여성은 온전한 형상에 이르지 못했기에 사람이 되려다 만 존재였다. 오늘날 보수적인 교회에서도 여전히 여성은 더 약한 자이고, 아담을 타락으로 이끈 존재이기에 목회자나 장로와 같은 인도자로서의 자격이 없다.

그 목사는 흑인이었다. 한 때, 미국 기독교에서 흑인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어진 이들이 아니라, 백인들의 지배하에서 노예로 살도록 정해진 이들이었다.

그 목사는 성소수자였다. 오늘날 보수적인 교회의 교리에 따르면, 성소수자는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정한 하나님의 창조질서에서 벗어난 사람이다.

미국 사회에서 가장 소외받고 외면받는 여성, 흑인, 성소수자였던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우리는 모두 아름답습니다!’라고 외치던 모습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녀의 모습은 내게 계시였다. 길들여지거나 규정되지 않은 날 것의 진리는 자유케한다는 것을 깨닫게한 계시.

자연과학에서 ‘법칙’으로 자연을 길들이던 방식대로 신의 형상이라는 말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교리로 길들여진 신의 모습 속에 갇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한 계시. 신의 뜻을 갈구하던 이들이 왜 예수를 죽였는지를 깨닫게 한 계시.

오늘 한국의 어떤 국회의원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성적 지향이 결코 법으로 보호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한다. 동성애 등 인간의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 ‘인간의 파괴, 파탄’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 국회의원이 생각하는 ‘인간’은 과연 무엇일까? 아마 대다수가 믿는 ‘형상’이라는 의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간에겐 자연의 질서에 따른 본질이 있다는 생각. 그 본질을 벗어나면 타락이자 파괴라는 생각.

정해진 질서와 운명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어질지 못하다. 일회적 창조를 믿든 진화적 창조를 믿든 유신론이든 무신론이든 뭐든지 간에 인간에게 정해진 질서와 본질이 있다는 생각은 우리를 속박하고 때로는 잔인하게 만든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인류의 생물학적 진화나 문화가 우리에게 그 어떤 패턴을 부여했을지라도, 역사가 보여주듯 우리는 그것을 바꾸어 나갈 수 있고 우리의 운명을 헤쳐 나갈 수 있다. 우리가 자연의 법칙뿐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다.

윤성철  yoon@astro.snu.ac.kr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