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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참기름 이야기세상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
박철 | 승인 2017.09.18 02:00

예전에 강원도 정선에서 목회할 때이다. 정선은 나의 첫 목회지였다. 교회는 작지만 재밌게 지냈다. 한 1년쯤 지났을까 이상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 이 아무개라는 여 집사가 있었는데 농한기에는 기름 장사를 하는 분이었다.

겉으로 보아서는 성격이 활달하고 싹싹하다. 이 분이 여러 해 전부터 농한기에는 기름 장사를 했는데 ‘이 아무개가 파는 기름은 전부 가짜’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어쩌다 정선 읍내에 나가던지, 다른 교회 신도들을 만나면 넌지시 그 얘길 나한테 전해주는 것이다.

“전도사님요. 이 아무개 집사 있잖아요. 참기름이고, 들기름이고 전부 가짜래요. 절반 이상이 콩기름이고 거기에다 고소한 냄새 나라고 뭘 섞는대요.”

그 얘기를 듣고 기분은 안 좋았지만 어떡하겠는가? 다 먹고 살겠다고 하는 일이니 불러다가 나무랄 수도 없고…. 그런데 소문은 그치지 않고 계속 되었다. 이 아무개 집사가 정선 읍내에 있는 다른 교회 신도 집을 찾아다니면서 아쉬운 소리를 하며 기름을 파는데 반드시 내 얘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힘들지만 기름 장사해서 새로 부임해온 박 전도사 내외를 먹여 살린다고, 박 전도사 내외가 너무 불쌍하다고, 그래서 자기가 기름 장사해서 번 돈으로 십일조도 하고 생활비를 대 준다고’ 그러면서 그 얘기가 사실이냐고 사람들이 묻는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처음에는 못 들은 척하고 지나쳤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연거푸 듣자 속이 거북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정선 읍내에 나간 김에 기름집엘 들렸다. 기름집 주인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이 아무개 집사가 기름을 짜면서 콩기름을 섞느냐고, 어쩌다 그렇게 하는 일이 아니고 매번 그렇게 하냐고 물어 보았다. 처음에는 기름집 주인이 웃기만 하고 대답을 안 해준다. 내가 몇 번 되풀이해서 묻자 그제서 사실대로 말해준다.

“그 아주머니 말도 마세요. 그 아주머니 때문에 죽겠어요. 식용유를 섞어도 적당하게 섞어야지 절반 이상이 식용유라고 보면 돼요. 내가 너무 하지 않느냐고 그러면 기름 장사가 이렇게 안 해서 어떻게 먹고 살겠냐고 우기는 통에….”

참담한 심정이었다. 혼자 속앓이를 했다. 그 다음부터 이 아무개 집사 얼굴을 정면으로 볼 수 없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고민하면서 기도했다. 하느님께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다.

어느 날 기도하던 중에 “야 이놈아, 고민할 것을 가지고 고민해야지…”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뿐이었다. 평소 새벽기도회 잘 안 나오던 분이 새벽기도회엘 나온 적이 있었다. 기도를 마치고 문 밖에서 기다렸다 잠깐 좀 보자고 이 아무개 집사를 불렀다. 이 아무개 집사는 영문을 모르고 웃으면서 따라온다.

“이 집사님, 집사님은 하느님을 믿는 분이 하느님을 속이고, 사람을 속이고, 자기 양심을 속이는 일을 하시면 어떡하십니까? 가짜 기름을 팔아서 얼마나 부자가 되려고 그러세요. 가짜 기름 팔아서 하느님께 바치면 하느님이 기뻐하시겠어요? 그리고 언제 기름 팔아서 저희집 생활비를 대주셨어요?”

이 아무개 집사 얼굴이 새까매진다. 그랬더니 폭언을 퍼붓는다. 차마 그녀가 한 말을 여기에 옮겨 적지는 못하겠다. 그로부터 이 아무개 집사는 교회로부터 발길을 뚝 끊고 말았다. 시골 목회자의 심정을 아시는가? 몇 명 안 되는 신도가 감기라도 걸려서 예배에 빠지면 가슴이 덜컥하고 주저앉는다.

반대로 평소 예배 출석을 잘 안하던 사람이 나오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그래서 비유하길 생선을 먹을 때 도시 목회는 살코기만 발라먹어도 되지만, 시골목회는 생선뼈나 가시를 하나도 남김없이 먹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골목회는 하나도 버릴 게 없다는 말이다. 몇 번이고, 이 아무개 집사 집을 찾아갔지만 눈길 한번 안 주고 길거리에서 만나도 못 본 척 외면하고 만다.

우리집 식구들은 비벼 먹는 것을 좋아한다. 밥상에 나물이 두어 가지만 있어도 비벼 먹는다. 참기름이 귀해 주로 들기름 넣고 비벼먹는다. 밥을 비벼먹다가 가끔 강원도 정선 이 아무개 집사를 생각한다. 좀 더 따뜻하게 권면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온갖 가짜가 판을 치고, 가짜가 진짜인양 행세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무엇이 진짜인가를 판단하기 어려운 고약한 세상이다. 참기름 한 방울이라도 가짜가 발을 들여 놓을 수 없는 그런 세상은 없는가?

우상(가짜)은 사람을 허망하게 한다. 가짜는 썩은 고기 덩어리 같아서 아무리 보자기로 싸서 덧칠을 해도 결국 썩은 냄새를 풍긴다. 속을 들여다보면 이미 썩어버린 인간일수록 사람들 앞에서는 자기 참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천하에 좋은 말만 골라서 하고 남을 위하여 봉사하는 일꾼처럼 떠벌리지만 뒤로는 온갖 잡 질을 일삼으면서 오직 들통 나지 않기만을 바라고 턱없이 사기를 친다.

그러나 이러한 사기 행각은 오래가지 못한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고 긴 꼬리는 아무리 감추어도 그 끝이 보이게 마련이다. 그 꼬리 끝에서 믿음이 배신으로 돌변하는 흉한 꼴을 당할 때까지 탈을 쓰고 버티어 본 들 결국 들통이 나고 만다.

세상을 속여 넘길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그것은 마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렸다고 장담하는 짓과 같은 까닭이다. 가짜 참기름 앞에 아무리 긴 수식어를 붙여도 가짜는 어디까지나 가짜일 뿐이다. 가짜가 판친다고 가짜를 따라 가서도 안 되고, 가짜와 진짜를 분간할 수 없다고 어정쩡하게 처신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박철  pakcho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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