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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세상(미가 4장 1-5절)주님 주시는 풍요 안에서 평화를 누리는 삶
이성훈 | 승인 2017.09.23 02:41
1 끝날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2 곧 많은 이방 사람들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니라 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3 그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 사람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4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라 
5 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을 의지하여 행하되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

오늘은 미가의 말씀을 살펴보고 미가가 꿈꿨던 세상, 하나님으로부터 전해 듣고 그가 바라보았던 세상을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예언자 미가가 살았던 남왕국 유다

미가는 남왕국 유다 사람으로 아하스 왕 때부터 히스기야 왕 때까지 활동했던 예언자입니다. 아하스 왕 시기는 앗수르가 강성해져서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를  괴롭히던 때입니다. 그러다 남왕국 아하스 왕 때이자 북왕국 호세아 왕 때에 앗수르에 의해서 북왕국이 멸망합니다. 주변국들의 이런 상황 속에서 아하스는 앗수르의 강대함을 알았기에 미리 앗수르에 친교를 맺고, 속국을 자처하게 됩니다.

열왕기에 보면 아하스에 대한 평가가 나타나는데, 열왕기하 16장 2-4절을 보면 ‘하나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여러 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또 산당들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왕에 대한 이런 평가를 읽어보면 그저 왕이 악해서 이상한 행동들을 하고 우상에 빠져서 살고, 타락해서 향락을 즐긴 것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하지만 아하스가 이런 행동을 한 것은 그가 친앗수르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었습니다. 남왕국 유다 자신이 앗수르의 속국을 자처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앗수르의 우상을 받아들인 것이고, 앗수르의 모든 것을 적극 또는 강제적으로 수용했던 것입니다.

훗날 아하스가 죽고 히스기야가 왕이 되는데, 히스기야는 저희가 잘 알다시피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하나님 앞에 바르게 행했던 왕입니다. 그런데 저희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부분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종교적인 차원의 문제만을 다루기 때문에 우상을 섬기면 악한 왕이고 하나님을 섬기면 좋은 왕으로 표현되곤 합니다. 하지만 사실 ‘어떤 왕이 어떤 신을 섬겼는가?’의 문제에는 종교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국내외적인 여러 상황들이 고려된 결정이었다는 점입니다.

히스기야 같은 경우에는 깨달음을 얻고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자는 방책을 정한 것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그런 인물은 더 뒤에 나오는 요시야가 적당할 것입니다. 요시야는 성전 보수 공사 중에 율법책을 발견하여서 이를 바탕으로 종교개혁을 일으켰기 때문에 종교로부터 시작하여 종교개혁을 일으켰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만, 히스기야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이유는 앗수르로부터의 탈피와 독립이 우선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히스기야 때에는 남왕국 유다가 앗수르와 대적하기 시작합니다.

열왕기나 역대기를 읽어나갈 때에 단순히 종교적인 면만을 보면 우리가 놓치게 되는 당시의 역사적 상황들이 많이 있습니다. 열왕기나 역대기는 외교적인 상황과 국내의 파벌 싸움까지 고려하면서 읽어야, 이 왕들이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왜 우상을 섬겼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상을 섬겼던 왕들이 잘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그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었건 하나님을 버린 점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격변의 시기에 아하스를 비판하면서, 또한 히스기야를 통해 희망을 읽으면서 미가는 자신이 전해들은 말씀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주변국의 이야기도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서 상당히 많은 논란이 있었음에도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애니메이션이 있습니다. 진격의 거인이라는 애니메이션인데, 작가가 일본 우익 성향의 발언을 하면서 우익 애니메이션이라는 논란이 붉어졌습니다.

▲ 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 포스터 ⓒ구글 이미지

거대한 벽안에 갇힌 남유다

이 애니메이션은 어느 날 갑자기 사람을 잡아먹는 거인이 나타났다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거인을 피해서 거대한 벽을 만들고 그 안에서 100년의 평화를 누립니다. 하지만 어느 날 원래 있던 거인보다 더 크고 지능적인 거인들이 나타나게 되고, 그 거인들이 벽을 부수면서 벽 안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다시 거인의 위협에 노출되게 됩니다. 이 애니메이션의 주요 내용은 이런 거인을 잡는 특수부대윈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벽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일본을 의미합니다. 거인은 미국을 위시한 거대 제국들입니다. 사실 일본은 자신들이 거대 제국이 되려고 했지만, 어디선가 나타난 더 큰 제국들, 일본을 잡아먹으려고 안달난 제국들에 의해서 벽 안에 갇힌 신세가 되었고, 그 안에서 거인들을 잡기 위한 특수부대, 실제적으로는 자위대를 의미하겠지만, 그런 특수부대를 양성해나간다는 의미입니다.

단편적인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일본의 극우 단체들은 외부의 세력에 의해서 자신들의 힘을 키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힘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서 다시금 자신들이 대제국이 되려는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거대 국가에는 무조건 머리 숙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우익 단체들이 보고 배웠으면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만, 세계적인 관점으로 보았을 때에, 일본의 이런 제국주의적인 사상은 잘못된 사상이기도 합니다.

뜬금없는 일본이야기인 것 같지만, 하나님 안에서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예언자들의 외침이나 그러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외부를 차단한 자신들만의 제국을 만들려는 이스라엘의 모습은 결국 일본 우익의 방침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다만 일본의 경우는 총과 칼에 의한 힘을 중심으로 나라를 세워가려고 했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나라를 세우려고 했다는 점이 다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총과 칼에 있지 않았고, 세상과는 다른 힘에 놓여 있었습니다.

예언자의 미가의 평화

오늘 저희가 읽은 말씀은 미가가 보았던 평화의 세상입니다. 본문 2절에 보면 미가가 추구하였던 힘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전에서 그의 도를 배우고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오며,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오리라. 미가가 추구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율법, 법도입니다. 즉 하나님의 법이야 말로 진정한 힘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기에 그 직후에 미가는 당연하게도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라는 말을 외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법이 온 세상에 퍼지게 되면, 더 이상 총과 칼에 의한, 전쟁에 의한 힘은 무의미하게 됩니다. 서로를 죽이려는, 서로의 것을 빼앗으려는 행동들은 이제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바라보았던 이상적인 세상, 4절 말씀인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

자기가 심고 가꾼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그 열매를 먹으며 때로는 쉬기도 하며 살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미가가 바라본 세상이 농경사회의 모습이라고 해서 그저 과거에만 적용 가능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자신의 나무를 심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각각의 사람이 나무를 심을만한, 또는 살아갈 수 있는, 자신의 터전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살아갈 장소, 집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고 자신의 땅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은 자신의 쉴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성경의 여러 곳에서 이 표현이 사용되었습니다. 이 표현을 단순하게 농사 잘 짓고 살자는 의미로 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 문장 속에서 자신을 위해서 할 일이 있다는 의미를 봅니다.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의 삶을 위해서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 무화과나무

성경이 쓰인 시대, 성경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도 그렇게 살지 못하던 사람은 무수히 많았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남의 포도원을 가꾸고 그곳에서 품삯을 받아서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 룻기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남의 농장에서 땅에 떨어지는 낱가리나 주우며 살아가야만 했던 사람들, 더 심하게는 노예가 되어서 자신의 모든 삶을 주인을 위해서만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 이런 삶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또한 자신의 가정을 위해서 일하고, 먹을 것을 만들고 그것으로 즐기며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미가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빼앗길 걱정, 잃을 걱정, 수확을 하지 못할 걱정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내가 온전히 취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평화의 세상입니다.

제가 복잡한 사회 현상의 문제들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여러분들께서 이 말씀을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저 하루하루를 세상의 노예가 되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잃을까에 대한 두려움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근심 걱정 모두 사라지고 오직 주님 주시는 풍요 안에서 평화를 누리는 삶. 그것이 미가가 꿈꿨던 세상이고 하나님께서 미가에게 보여주신 환상이었으며, 지금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하는 세상입니다.

그 시작점은 말씀,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데 있습니다. 미가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온 세상이 자신들의 신을 섬긴다 할지라도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살아가신다면, 분명 이런 평화의 나라를 만나게 되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이런 평화의 나라를 만들어 가시는 성도님들 되실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성훈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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