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예수 이야기에서 주인(지주)라는 인물을 더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예수의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주인의 특성을 한 곳에 모아보면 그가 어떤 인물인지 개괄적인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따라서 주인의 이야기를 계속해 보자. 다음은 마태복음 20:1-16 말씀이다.

이 비유에서는 포도원을 소유한 주인과 포도원에서 일하는 일일품군(μίσθιοι)이 주된 등장인물이다. 이 일일품군은 노예보다는 자유로웠지만 고용되지 않았을 때에는 이들보다 더 비참했다. 노동자(ἐργάτης)와 엄밀하게 개념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이들은 추수의 시기에는 동시에 추수꾼(θεριστάι)과도 동일한 인물들이었다.

예수 말씀 복음서(Q)에는 추수꾼의 일반적인 노동사정이 암시되어 있는 말씀이 있다. 예수는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이 적다.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이 사람 역시 지주였을 것이다)에게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Q10:2)고 말씀하신다. 정말로 추수노동자의 고통이 반영되어 있는 말씀이다.

노동과업은 많지만 노동자가 적어 일하는 노동자가 큰 고통을 겪는 상황을 유추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의 가르침은 추수의 주인에게 요청할 일은 추수할 노동자를 추가로 증원시켜 달라고 요청하라는 것이다. 또한 예수는 “일꾼이[즉 노동자가] 자기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ἄξιος γὰρ ὁ ἐργάτης τού μισθού αὐτού)(Q10:8)고 말씀하면서 일일품꾼 노동자들의 권리를 대변한다. 여기에서 삯은 일일품꾼의 하루 일당을 뜻한다. 하루 일당은 그의 고생의 대가이며 그의 노동이 집약되어 있는 결정체이다.

▲ 렘브란트, “포도원 일꾼 비유” ⓒ구글 이미지

이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관리인(ἐπίτροπος)은 공적인 재산이나 왕의 재산에 대한 관리인(οικονόμος)와 달리 개인의 재산에 대한 관리인이다. 이 관리인은 이 스토리에서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케네스 베일리의 말처럼 관리인의 등장은 충격적인데, 관리인이 있다면 주인이 왜 직접 이른 아침에 노동자들을 찾는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비유는 실업의 공포가 지배하는 시대의 생활상을 반영하고 있다.”(안병무) 주인은 이른 아침에 일일품군들과 한 데나리온의 임금을 계약했다. 한 데나리온의 계약은 당시의 “노동법”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평소에는 효율을 중시하여 최소노동으로 최대효과를 뽑으려던 주인의 성향을 감안할 때, 왜 한 시간을 남겨두고 노동자를 불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슈바이처(E. Schweizer)에 따르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수확이 많을 경우 밤에 서리가 내릴 위험이 있는 우기 직전에는 이것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이런 일은 매우 특별한 일이다.”

예레미아스(J. Jeremias)도 4-5시에 노동자를 모은 것은 ”우기“가 접어들기 전에 작업을 끝내기 위함인 것으로 추정했다. 키스터메이커(S. Kistemaker)는 일일품군들이 일하는 동안 원하는 만큼 포도를 먹을 수 있었던 것이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렇게 해서 수확량의 약 3%의 포도가 소비될 것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비유에서도 포도원을 소유한 지주가 등장한다. 주인과 함께 등장하는 주요한 등장인물은 품꾼인데, 일일품꾼 혹은 날품팔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일일품꾼은 노예들보다는 자유로웠지만 고용되지 않았을 때에는 노예보다 비참한 삶을 살았다.

일일품꾼은 추수 시기에는 추수꾼이라고도 불렸다. 이들의 임금은 하루 한 데나리온이었다. 이 금액은 당일 지급되어야 했다. 왜냐하면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레19:13; 신24:14-15). 소작농들이 오늘날의 공장노동자와 비슷하다면, 일일품꾼은 오늘날의 소위 말하는 이른 새벽 봉고를 타고 가서 ‘노가다’ 현장에서 일하시는 이들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이러한 힘겨운 상황에 고용마저도 불안했다. 안병무의 말처럼 이 이야기는 “실업의 공포”를 반영한다. 오후 다섯 시가 되어도 일거리를 찾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있었다.

예수의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아침 일찍 주인과 계약해서 불볕더위에 12시간 동안 그야말로 고생하며 일한 노동자들의 고통일 깊게 묵상해야 한다. 주인은 이들과 한 데나리온의 계약을 했고, 나머지 9시, 12시, 3시, 5시에 일한 노동자들에게는 적당한 품삯을 주겠다고만 약속했었다. 예수 이야기의 청중들인 농민들은 아침 일찍부터 와서 땀흘려 일한 이들에게 공감과 연민을 느꼈을 것이다.

다음으로 주인에게 초점을 맞추어 보자. 예수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주인을 비웃는다. 고대 지중해에서 주인이 이른 아침부터 직접 노동자를 모으는 일은 품위 없는 일로 비춰졌다. 베일리는 다음과 말한다.

전통적인 토지 소유자는 아침에 청지기에게 꼼꼼히 지시 사항을 알려주고 날이 저물 때 보고를 요구한다. 그러나 토지 소유자가 직접 농장에서 장터로 하루에 다섯 번이나 왕복하는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 일은 관리인이 할 일이다.

관리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열심을 내어 체통없이 스스로 나서는 주인의 모습은 그의 탐욕을 반영한다. 농민들은 추수 때가 되어 돈벌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지주 이야기를 들을 때 슬며시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예수의 이야기에서 언뜻 보면 주인이 5시에 노동자들을 모으는 일은 은혜로운 일로 비쳐진다.

그러나 포도원 농사는 매우 고가의 농업품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그의 행위가 전적으로 은혜로운 행위였는지 의문이 생긴다. 왜냐하면 추수 기간에는 이러한 방식의 고용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수확이 많을 경우에는 밤에 서리가 내리거나 비가 많이 오는 우기 직전에는 이런 긴급한 고용이 가능했다. 포도가 5년만에 투자자금을 회수하는 고가품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런 고용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주인이 노동자들에게 하는 꼴을 보라! 주인은 계약으로 성립되어 있는 한 데나리온을 지급하면서 의도적으로 순서를 바꾼다. 만약 주인이 일한 순서대로 임금을 지급했다면 큰 문제 없이 하루 노동이 끝났을 것이다. 12시간이나 일한 노동자의 마음을 다시금 아프게 하는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도대체 주인은 왜 임금 지급 순서를 바꾸었는가? 이렇게 하는 것이 놀라운 은혜이며 반시장적 가르침이라고 진정 주장할 수 있을까? 이는 주인을 긍정적으로 보려는 의도적인 시각이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허조그(W. R. Herzog)는 주인의 이러한 행동이 노동자를 우롱하는 태도라고 해석한다. 주인은 계약되어 있는 내용대로 한 데나리온을 지급하지만 순서를 뒤집는다. 그는 일일품꾼을 인격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는 한 데나리온의 계약만 지켰을 뿐이다. 그는 온 종일을 불볕더위에서 일한 노동자의 고통과 아픔을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기대하게 만든 후 그 기대를 무참하게 깨트리는 것을 즐겼다.

노동자들이 분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그들은 주인에게 항의했다. 어떤 해석자들은 이른 아침에 온 노동자들이 속이 좁은 사람들이라고 비판한다. 그러자 이 주인은 노동자들의 불만에 비웃듯 대답한다.

“친구여, 내가 그대에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그가 정말로 노동자들의 친구였을까? 결코 아니다. “친구여”라는 말은 “이 친구야!”라는 뜻의 부드러운 조롱을 의미한다. 일일품꾼의 노동자의 생계를 담보로 한 자존심을 사정없이 무너뜨리고 난 후에 그는 조롱하듯이 말한다.

“내 것을 가지고 내 뜻 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기 때문에 네가 악하게 보느냐?”

그는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자신의 행위가 선하다고 외친다. 생계가 달린 문제로 노동자를 우롱하며 길들이기를 하는 주인에 대해 분노하는 노동자의 눈을 주인은 “악한 눈”이라고 비난한다. 주인의 주장은 엄청난 가치전도를 뜻한다.

비아(D. O. Via)는 주인의 마지막 말인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라는 말은 해고(dismissal)의 선고를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이 노동자는 주인에게 불만을 표시했다가 다시 해고당한 것이다. 그는 실업자로 되돌아갔다. 

김재현  verticalk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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