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활동가)

지난 19일, 자유한국당 김태흠 의원을 비롯한 17명의 국회의원이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인권위법에 규정된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를 이루는 항목 중 하나인 ‘성적(性的)지향’의 삭제를 골자로 하고 있다.

인권위법, 성소수자 국민에 대한 유일한 존중의 표시인데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인권위법이 성적지향에 따른 배제‧구별‧불리대우를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로 명시해두고 있는 탓에 ‘동성애’가 적극 보호되고 있음은 물론, 사회 각 분야에서 ‘동성애’가 옹호‧조장되는 결과를 초래하며, 이에 대한 ‘건전한 비판 내지 반대’까지 ‘차별’로 간주되어 엄격한 금지를 받고 있다고 한다. 과연 이들의 주장은 사실일까. 현행 인권위법은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3.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종교, 나이, ⋯, 성적(性的)지향, 학력, 병력(病歷) 등을 이유로 한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말한다. (하략)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를 규정하는 문장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표현은 바로 ‘합리적인 이유 없이’라는 대목이다. 합리적인 이유 없이, 단지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배제 또는 구별당하거나 불리한 대우를 받는다면 그것은 명백한 차별이다. 이에 대해 개정안을 찬성하는 자들 중 일부는 ‘동성애 반대’에 따른 일련의 행위가 종교‧표현‧학문의 자유에 기해 행해지는 것으로, ‘합리적인 이유’라는 요건을 충족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권위법이 말하는 ‘합리적인 이유’라 함은 현존하는 차별을 없애기 위해 특정한 사람 또는 집단을 잠정적으로 우대하는 행위와 이를 내용으로 하는 법령의 제‧개정, 정책의 수립‧집행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개인(또는 집단)의 견해에 따라 성소수자에게 보장된 기본권을 부정하고 이를 억압하는 행위는 결코 ‘합리적인 이유’라 할 수 없다.

또한 “동성애에 대하여 양심‧종교‧표현‧학문의 자유에 기한 건전한 비판 내지 반대 행위 일체가 오히려 차별로 간주되어 엄격히 금지되어 왔다”는 이들의 주장과 달리, 성소수자에 대한 극렬한 혐오 선동은 성소수자의 존엄을 심각하게 해치는 수준에 이르렀다. 학교와 일터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 만연해진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는 성소수자의 존재를 삭제하고 있음은 물론, 우울과 폭력 그리고 자살이라는 끔찍한 결과까지 초래하고 있다.

갈 길 먼 인권위법인데

이처럼 끈질기게 이어져온 성소수자에 대한 일방적인 비방과 폄하는 ‘건전한 비판 내지 반대 행위’로서의 정당성을 상실한지 오래다. 애당초 개인의 고유한 영역인 성적지향에 대한 저열한 혐오선동은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성소수자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반민주적 행위로서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되는 패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성소수자 혐오 선동을 사실상 묵인해왔고, 심지어 때로는 (꽤 자주) 동조해왔다.

인권위법상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 요건 중 하나로 성적지향을 명시하고 있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권위법에 적힌 ‘합리적 이유 없이 성적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금지’는 성소수자 국민에 대한 유일한 존중의 표시다. 국가가 법률로서 성소수자 국민이 있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고, 그들에 대한 비합리적이고 반인권적인 인권침해를 근절하기 위해, 국가의 자원과 인력을 투입하겠다는 적확한 언어이고 선언이라는 함의를 가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소수자들이 인권위에 권리구제를 요청하기란 쉽지 않다.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밝힘으로써(혹은 타인에 의해 그것이 밝혀짐으로써) 얻은 피해를 구제받기 위하여, 생면부지의 조사관에게 또 다시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밝히고 권리구제를 요청해야 하는 상황에 성소수자들은 망설임을 거듭하게 되고, 결국 대부분은 진정을 포기한다. 성소수자들이 마주하는 일상적인 차별과 혐오, 그것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자화상을 떠올려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사실이다.

국회와 정부가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면, 성소수자의 인권과 존엄을 온전히 보장하기 위해 더 실질적이고 강력한 권리구제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다. 그러나 이와 같은 건설적 논의는 고사하고, 사실상 유일한 성소수자 권리구제 방안마저 짓밟기 위해 나선 일부 적폐 정치인들의 역겹고 두꺼운 낯짝만이 시선에 들어온다.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인권위법 개정안 개악이다

가장 큰 문제는 국회에서 이러한 내용의 인권위법 개정안이 가결될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한국 사회는 불과 며칠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국회의 인준을 받지 못해 고배를 마시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목격했다.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인준을 반대한 정치인들이 내건 이유 중 하나는 다름 아닌 “후보자가 동성애를 옹호 내지 찬성했다”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무지하고 편협하기 이를 데 없는 혐오 선동에 국회가 무력하게 흔들리는 장면을 한국 사회는 여과 없이 목격해야 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과연 어느 누가 인권위법이 평등과 차별금지라는 대원칙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겠는가.

분명한 것은 오직 하나다. 적폐 정치인들이 발의한 인권위법 개정안은 상임위와 본회의 의결은 물론, 논의조차 거칠 가치가 없는 인권침해와 차별을 조장하는 법률이라는 사실이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고 확언하는 헌법 아래 세울 법률에 차별과 낙인의 틈새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 요건에서 성적지향 삭제를 골자로 하는 인권위법 개정안은 ‘개악안’이며,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의 확립에 이바지”한다는 인권위법의 궁극적인 목적과 철저하게 배치된다. 아울러 인권보호와 차별시정을 주요 업무로 하는 인권위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법률에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주입하려 하는 것은 국가인권기구로서의 인권위에 대한 모독이자 차별시정기구로서의 인권위에 대한 직무유기 강요다. 

앞으로 인권위법에 대해 논하게 될 국회에 강력히 주장하고자 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인권위 위상 강화와 조직 수준의 회복은 단순한 ‘몸집 부풀리기’가 아닌, 지금까지 숱한 고통을 겪으며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고 있는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인권보호, 차별시정의 역할을 강화하는 작업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또한 ‘개악안’을 발의한 국회의원 모두는 인권위법에 명시된 ‘성적지향’이라는 단어를 하나 지운다고 해서, 성소수자의 존재와 존엄, 인권과 평등할 권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필히 주지해야 할 것이다. 촛불혁명으로 갖가지 적폐가 불타 사라지기 시작한지 오래임을 잊지 말라. 덩치 큰 쓰레기가 화염 앞에서 아무리 제 위용을 뽐낸들, 결국 재가 될 운명에 지나지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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