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6일 부산 형제복지원 터에서 출발한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을 위한 국토대장정”이 27일 500km의 여정을 마치고 청와대로 향합니다.

민주화가 외면한 그들

1987년 1월 어느 용기 있는 검사에 의해 형제복지원에서 12년 간 513명(복지원이 스스로 밝힌 숫자)이 사망했다는 사실이 세상에 밝혀졌지만 그 뒤로 만 30년이 흐르는 시간 동안 진상규명과 관계자 처벌, 피해자 보상은 외면돼 왔습니다.

그것은 부차적인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민주화라는 당면과제가 있었고 6월 항쟁으로 형식적 민주화가 이뤄진 뒤에도 더욱 중요한 일이 항상 우리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30년 전 외면당했던 감금과 폭행, 그리고 죽음은 30년이 지나서도 그 진상규명이 외면당하고 말았습니다.

▲ 형제복지원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피해 당사자들과 장애인들이 부산을 출발해 서울까지 향하는 순례를 시작했고 경기도에 도착했다. ⓒ임미리

그들의 죽음은 군사독재에 항거한 의로운 죽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국가폭력에 저항한 죽음을 ‘열사’로 호명해 추모하고 있지만 그들의 죽음에서는 저항의 의로움도 숭고한 희생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달랐기 때문에 외면당한 그들

그들은 ‘우리’와 다른 ‘비정상’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정상인 우리를 억압한 국가폭력은 다함께 저항해야 마땅한 것이었지만 비정상의 그들을 감금한 수용소는 우리와는 무관한 곳이었고 어쩌면 우리를 위한 곳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그들을 외면한 까닭은 우리와 달라서였습니다. 그들은 사회안전을 위해 걸러진 자들이었고 우리는 그들이 없는 안전한 사회를 누려 마땅한 문명인이자 근대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걸러진 그들 중에는 출판사에서 밤샘 하고 나온 직장인도, 결혼 2주 앞둔 선박회사 직원도, 밀린 고물값 요구하다 파출소 끌려간 엿장수도, 심지어 세상이 뭔지도 모르는 코흘리개 철부지도 많았습니다.(지금 국토대장정에 참여한 피해자 대부분이 1967년생인 저보다 나이가 적습니다.)

걸러진 사람들이 걸러져도 되는 사람들인지 의문을 가져보지 않은 까닭은 더럽고 불결한 일에 연루되기 싫었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그 이전에 사회가 사람을 걸러도 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로 인해 나와 같은 문명인의 안전이 보장된다면, 쾌적하고 안전한 사회를 위해서라면, 사람이 사람을 걸러내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 아닐까요?

지금 당사자들이 나섰습니다. 복지원을 나와서도 위험인물로 간주돼 또 다시 감금되거나,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위험한 세상에 내던져져 여전히 경계밖에 살던 피해자들이 나섰습니다. 누구도 약자인 자신들을 대신해 나서주지 않자 스스로 나설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이제 누가 문명인이고 근대인인지 자문해봐야 합니다. 인간을 짐승으로 만든 일에 눈감은 자와 여전히 사회 최약자이지만 스스로 굴레를 벗겠다고 나선 자, 둘 중 누가 더 인간다운가 자문해봐야 합니다.

가장 약한 자들의 연대

27일 간의 여정 속에 연대의 걸음을 함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산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중증장애인 몇 분이 휠체어에 몸을 의지해 형제복지원 피해자들과 동행하셨습니다. 또 쌍차 김정욱 사무국장도 평택 인근에서 이들을 마중하고 배웅하셨답니다.

함께한 많은 분들 중에 유독 이분들을 언급하는 이유를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가장 힘든 사람들이 가장 약한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깊은 절망을 가까이 했기에 깊은 이해와 공감, 그것에서 비롯한 연대도 가능한 것 같습니다.

누구보다 깊은 슬픔과 절망을 겪은, 아직까지도 진행형일 그 슬픔과 절망을 딛고 형제복지원 피해당사자들이 500km를 걸어 27일 서울에 도착합니다. 오후 3시 광화문에서 출발해 청와대까지 가는 그 길에 많은 분들의 동참을 호소합니다. 1987년부터 30년에 걸친 기나긴 외면을 접고 이제 그들의 도움에 힘입어 우리 스스로의 인간다움을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임미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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