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뜨는 공부방에서 눈에 띄는 아이가 아니었다. 성실하게 출석하는 것도 아니었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아니어서 누구도 눈 여겨 보지 않았다. 게다가 건강이 좋지 않아서 친구들과 함께 활발하게 어울리지 않아서 우리 공부방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작년 정초에 공부방에 참여하는 아이들의 생활과 환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가정방문을 실시하였다. 그런 중에 바라뜨가 우리 눈 안으로 들어 왔다. 

그는 신우염으로 전신이 고무풍선처럼 터질 듯이 부어있었다. 그를 병원으로 보내고 회복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우리 안에 있는 아이가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것을 제때 파악하지 못했음을 반성하였다. 몸이 정상으로 돌아온 온 바라뜨가 하루도 빠짐없이 공부방에 나와서 공부를 의욕적으로 하고 있으며 기타 등등의 일에도 성실하게 임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눈물이 났다. 

바라뜨네는 한 칸의 방에 여러 식구가 함께 살고 있으며 집주인이 집을 지으면서 전기 가설을 하지 않아서 밤에 양초와 호롱불로 켜고 지낸다고 하였다. 바라뜨는 어둠 속에 살그머니 들오는 코브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잠 못 이룬 적이 많다고 하였다.

ⓒ 이옥희 선교사 제공

그 말을 듣고 우리는 전기가설을 해주고자 집주인에게 허락받고자 하였으나 일언지하에 거절을 당하였다. 무료로 가설하겠다고 했지만 주인은 자기 집에 손을 대는 것 자체를 싫어하였다. 바라뜨 안에 있는 코브라에 대한 공포를 함께 해결하며 극복하고자 했던 우리의 생각을 내려놓으면서 집주인에게 화가 났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바라뜨는 우리의 기대 이상으로 명랑해졌고 매사에 적극적이 되었으며 공부도 스스로 열심히 하였다. 우리는 그의 장학금 후원자를 찾았고 공부방 선생님이 상담하는 중에 그를 영어학교로 전학시키게 되었다.

달리트 신분으로 빈민가에서 사진 아이가 영어학교에 다니는 일은 그 아이가 꿈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간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다른 신분의 아이들 속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부대껴야 한다는 고통을 뜻하기도 하므로 영어학교로 전학을 시키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

영어학교로의 전학은 가난한 달리트 아이들에게 일종의 모험이다.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는 확률이 낮은 모험이다. 우리가 우려를 하면서도 그를 영어학교로 전학시킨 것은 1년 동안 지켜보면서 스트레스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신우염에 시달릴 때 찍은 사진과 회복되고 난 후에 찍은 사진을 옆에 두고 자주 드려다 보며 축복을 하였다. 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기대하며 감사와 찬미를 돌렸다.   

며칠 전에 천둥 벼락 치는 듯한 소식이 왔다. 바라뜨가 신우염으로 다시 온 몸이 뚱뚱 부었다는 것이다. 영어학교가 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신우염이 재발한 것 같아서 가슴이 철렁하였다. 신우염이 낫지 않으면 만성질환이 된다는 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병원에 다니면서 치료를 받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를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감이 오지 않았다. 영어학교를 자퇴시키는 것이 바람직한지? 아니면 그대로 다니도록 격려하며 용기를 주는 것이 바람직한지? 그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할 뿐 나는 아무런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바라뜨 일로 막막해하는 나에게 사진과 함께 기쁜 소식이 왔다. 희망공동체 공부방의 20여명의 아이들이 위문금 1,000루피를 바라뜨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아이들이 자진해서 모금을 했다는 것이다. 1,000루피는 한국 돈으로 2만 원 정도이지만 한국의 2만원과 비교될 수 없는 아주 큰돈이다.

우리 공부방의 아동들의 부모님들의 직업은 하루살이, 날품팔이 농업 노동자나 건축 현장의 노동자가 90%이다. 직업을 가진 분이라 해도 ‘오토릭샤 운전사’다. 사진을 보는 순간 친구의 고통을 생각할 수 있는 아이들의 따스한 가슴이 느껴졌다. 친구들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한 바라뜨의 밝은 얼굴이 보였다. 나는 공부방에서 아이들이 사랑의 관계를 형성했다는 사실과 사랑할 수 있는 마음과 믿음의 성장에 감동하고 감격하였다. 

희망공동체 공부방의 아이들이 누군가! 사는 환경이 모두 다 바라뜨네와 비슷하게 가난하고 소위 희망이 없는 로칼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아무리 노력을 해도 불가촉천민의 신분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 아닌가! 그런 아이들이 ‘하나님 나라’를 살고 있다니!

한 없이 작고 초라한 우리 아이들이 하나님의 정원에서 아름답게 핀 백합꽃이라니! 지금은 어리고 부족하니 우리가 열심히 섬기고 사랑하면 그들이 서서히 변화되어 언젠가 사랑의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이 얼마나 교만한 것인지! 

하나님 나라의 희망인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눈물이 난다. 
하나님 나라의 겨자씨인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지 눈물이 난다. 
하나님께서 우리 아이들을 통해서 이루어 가실 ‘하나님 나라’ 일에 가슴이 뛴다.

바라뜨는 아파서 고통을 겪었지만 그의 고통으로 피어난 백합꽃 향기가 향그럽다. 
아! 아! “아름답다!”고 감탄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

이옥희  yiso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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