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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 전 한 인간의 죽음을 반추하며나의 작은 친절과 배려가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
박철 | 승인 2017.09.30 02:34
▲ 1989년 목사안수례를 기다리며 ⓒ박철

지금부터 28년 전 어느 봄 날 있었던 이야기다. 나는 강원도 강릉중앙교회에서 개최된 동부연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강원도 정선에서 경기도 화성군 남양 장덕교회로 임지를 옮긴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교회에선 내가 연회 마지막 날 목사 안수를 받는다고 하자, 장로님과 몇 분의 교우들이 강릉까지 오시겠다는 것을 내가 한사코 만류했다. 목사가 된다는 것이 축하 받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아내가 둘째 넝쿨이를 임신해서 배가 남산만 했을 때였는데, 아내에게도 오지 말라고 만류했지만 굳이 오겠다고 해서 내버려두었다. 목사 안수를 받는 날 아내와 서울에 사시는 어머니가 강릉까지 오셨다. 연회장은 아침부터 축하객들로 북적거렸다.

목사 안수를 받으려면 목사 가운을 입어야 하는데, 준비하지 못해 남양 수화교회 현재호 선배의 가운을 빌려 입었다. 내 머리에 손을 얹어주신 분은 당시 KNCC 김동완 목사님과 민들레교회 최완택 목사님, 강경제일교회 원형수 목사님 세 분이셨다. 세 분 모두 내가 존경하는 선배 목사님들이셨다. 나를 위해 강릉까지 와주셨다.

목사 안수를 받기 위해 앞자리에 대기하고 있었는데 기다리는 동안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손수건이 없어서 연신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단상에 무릎을 꿇었고 목사 안수례는 순식간에 끝났다.

목사 안수식이 끝나고 연회장(강릉중앙교회)앞에서 세 분 목사님과 어머니, 아내와 함께 기념사진을 한 차례 찍었다. 그리고 내가 활동하던 '감리교농촌선교목회자회' 소속 목사들과 함께 ‘타는 목마름으로’, ‘농민가’ 등 몇 곡의 노래를 목청껏 불렀다. 그것이 전부였다.

다음날 고속버스를 타고 남양으로 돌아왔다. 목사 안수를 받고 첫 번 맞은 주일이 부활절이었다. 온 산천 경계가 진달래로 붉게 물들었었다. 토요일 나는 앞산에 올라가 진달래를 한 다발 꺾어와 빈 고추장 항아리에 담아 교회 제단에 놓았다. 예배를 마치고 목사 축하잔치가 교회 사택에서 있었다. 교인들은 내가 전도사 딱지를 떼고 목사가 되었다는 것에 대해 고무된 분위기였다. 교인들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도 오셨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사택 마당에서 풍물을 하며 놀았다. 교인들이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고 두어 시간 신명난 춤판이 벌어졌다.

“나같이 불쌍한 사람 구제해 주이소”

그 잔치마당에서 꽹과리를 치며 가장 흥을 돋운 분은 고향이 경북 영주인 김 아무개라는 아저씨였다. 교회를 이따금 나오시는 분이었다. 경상북도 영주가 고향이신 분이 일찍 고향을 떠나 타관으로 떠돌다 남양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의지가지가 없는 분이었다. 부인하고 애들이 셋이 있었다. 성격이 호탕하고 동네 궂은일을 도맡아 하시는 분이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부인이 정신이 온전치 못하였다.

우리가 남양으로 이사 오던 날 그 아주머니가 양초와 성냥을 사 가지고 온 기억이 난다. 가끔 교회에 올라가 시도 때도 없이 종을 쳐서 사람을 놀라게 했다. 가출도 여러 번 했다고 한다. 남편되는 김씨 아저씨가 여기저기 갈만한 곳을 수소문해서 찾아다 놓으면 한동안 잠잠하다가 또 집을 나간다. 김씨 아저씨는 그 일로 속이 상해 약주를 많이 드셨다. 내 아내와 고향이 같다고 해서 각별하게 대해 주셨다.

▲ 목사 안수를 축하해주기 위해 열린 마을잔치. ⓒ박철

술에 취하면 한밤중에 가끔 전화를 하셨다. 전화 내용은 부평초같이 살아온 당신의 삶의 내력과 부인의 정신질환으로 겪는 갈등에 대한 내용이었다. 전화를 하는 도중에 꺼이꺼이 운다. 김씨 아저씨의 전화를 받고 나면 내 마음도 짠한 게 혼란스러웠다. 특별히 도울 만한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잔치마당에서 꽹과리를 치면서 김씨 아저씨는 나에게 “박 목사님, 좋은 목사님 되어서 나 같이 불쌍한 사람 구제해 주이소.” 하고 몇 번을 당부한다. 그날 저녁예배를 마치고 사택에 들어와 평소보다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밤 11시경 전화벨이 울린다. 김씨 아저씨였다. 술을 얼마나 많이 자셨는지 말을 못하고 우신다. 내가 잘 구슬려 얼른 주무시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김씨 아저씨의 장례

다음 날이었다.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사택에 돌아와 부엌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고 있었다. 옆집 이 장로님이 오셔서 큰 일 났다고 말씀하신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가슴이 방망이질을 한다. 김씨 아저씨가 농약을 마셨다는 것이다. 곧바로 김씨 아저씨 집으로 달려갔다. 입에서 농약 냄새가 심하게 풍겼다. 동공이 풀려 있었다. 가슴에 귀를 갖다 대었더니 숨이 안 뛴다. 몸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이미 숨을 거둔 것이었다. 정신이 몽롱해진다. ‘이 일을 도대체 어떻게 수습한단 말인가?’ 그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또 한 가지, 한 인간의 불행한 삶에 대해 내가 너무 무관심했다는 자괴감이 몰려왔다.

동네 사람들과 교인들이 달려왔다. 당장 ‘김씨 아저씨의 죽음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가 제일 큰 문제였다. 나는 김씨 아저씨가 교회에 열심히 나오지는 않았지만 모든 장례를 교회에서 주관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씨 아저씨가 남겨 놓은 삼남매도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으니 딱히 누구와 의논할 사람이 없었다.

▲ 풍물에 흥이 난 신도들. 두건을 쓰고 춤을 추시는 분이 김씨 아저씨이다. 그 다음 날 새벽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 ⓒ박철

교회 중직들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안 된다”’고 제동을 걸었다. 농약 먹고 죽은 사람을 기독교식으로 장례를 치른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남양 장덕교회로 부임해간 지 몇 달이 채 안된 때였다. 첫 번째 부딪힌 시험대였다. 나는 목회자의 양심으로 물러설 수가 없었다. 나는 단호하게 교인들이 협조를 안 해주면 나 혼자라도 장례를 치르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교회 중직들이 그러면 그런 전례가 없었으므로 지방회 감리사에게 문의해 본 다음 결정하자고 한다. 나는 지방회 감리사께 물어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고 강경하게 맞섰다. 김씨 아저씨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은 것은, 우리가 그의 불행한 삶을 깊이 관심 갖거나 나누지 못해 생긴 일이므로 우리 자신부터 속죄하고 하느님께 이 분의 영혼을 의탁하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라고 했다. 내가 워낙 강경하게 나오자 장로님 두 분을 비롯해서 교인들이 선선히 내 말을 따라 주었다.

목사가 할 일이 무엇인가?

일단 모든 장례예식을 교회에서 주관하기로 결정하자 교인들 전체가 합심해서 장례를 도왔다. 내가 7년 6개월 장덕교회에서 목회하는 동안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례식이었다. 참 고마웠다. 모든 장례예식을 마치기까지 수차례 예배를 드린다. 최선을 다해 예배를 인도했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 그렇게 서러웠던 적이 없었다. 얼마나 많이 울었던지 눈이 퉁퉁 부었고, 목소리까지 쉬었다. 슬픔이 오랫동안 가시지 않았다. ‘내가 조금 더 다정하게 대해 주었으면, 전화를 받고 한밤중이라도 달려가 김씨 아저씨의 말을 들어주었더라면 목숨을 끊지는 않았을 텐데’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괴로워했다.

28년 전에 있었던 일인데 요즘도 생각이 난다. 한 인간의 삶에 대하여 더 깊은 애정과 관심이 필요할 때가 있다. 우리 주변에 그런 아픔을 겪고 있는 분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 가끔 목사가 할 일이 무엇인가 생각해 볼 때가 있다. 내 작은 친절과 배려가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 반대로 나의 무관심과 불친절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지금 나의 삶의 시선과 발길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인가? 시나브로 계절은 가을 한 복판에 들어섰다. 시방 우리는 깊은 성찰과 사유가 필요한 계절을 살아가고 있다.

박철  pakcho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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