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이주활동가로 일을 시작한 곳은 남양주 마석에 위치한 이주노동자지원단체 ‘샬롬의 집’이었다. 그곳은 60년대 초에 영국성공회 선교사 천갈로 신부님이 한센인들과 함께 정착마을 ‘성생농장’을 마련하여 양계사업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면서부터 시작된 곳이다. 이후, 80년대 후반에는 산업화에 따라 양계사업은 사양화되어 축사를 개축하여 오늘의 마석가구단지를 조성하게 되었다.

이주노동자들의 삶속에 역사하시는 하느님

한편, 이로 인해 3D업종에 속하는 가구공장에 대거 이주노동자들이 유입되었다. 사실 당시에는 이주노동자의 제도가 ‘산업연수생’으로 노동권 침해가 심각해 산업연수생의 80%이상이 사업장을 이탈하여 소위 ‘불법’(이하에서는 ‘미등록’으로 공식 명칭을 씀)체류하는 이주노동자이 많았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이들의 애로사항과 고충을 해소해 주는 곳이 교회의 역할이기도 했다.

이런 배경 속에서 한센인들의 고난의 굴레는 대물림되어 낯선 이국땅의 이주노동자의 어깨에 놓이게 되었다. ‘샬롬의 집’은 90년대 초 이곳에 발령을 받은 한국성공회의 이정호 신부님에 의해 시작되었고, 나는 2003년 중순에 사무국장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나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출발하려고 한다. 이후, 나는 이주노동자의 삶속에서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함께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땅에서 파라오의 핍박과 학대에 못 이겨 신음하던 ‘히브리인’이 단지 구약성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땅에서도 있음을 깨달게 되었다. 이주노동자의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이주노동해방’시켜 주신 것을 믿는다.

▲ 레벤과 같이 찍은 사진은 2014년 3월에 방글라데시를 방문하여 함께 찍은 사진 ⓒ이영 신부 제공

나는 일과가 끝난 저녁 무렵 가구공단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곳에 내려 가곤했다. 그러면 저녁을 마친 이주노동자 한 두 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슈퍼에서 물건을 사기도 하고, 공중전화를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친구들에게 잠시 “어느 나라에서 언제 왔냐?” 묻기고 하고, “어디 공장에서 일하냐?”고 물으며 친근감을 가지려고 했다.

그러기를 몇 주가 지나고 나와 나이가 같은 이주노동자와 친구하기로 했다. 그 친구는 비록, 미등록자이지만 성실했고 친절했다. 7년 넘게 일했지만 가족의 생계(6형제 중 맏형)를 위해 열심히 일을 했다. 뿐만 아니라 친구들이 아프거나 공장에서 불합리한 일이 있으면 나서서 친구들을 도와주었다. 그런 그 친구 주변에는 다른 이주노동자들도 많이 있어 나 역시 더 많은 친구들을 얻게 되었다.

이주노동자, 삶을 빼앗긴 사람들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가 공장에서 일을 끝마치고 와서는 자신이 ‘소와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이다. 난 농담처럼 한 이야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나는 이야기를 듣고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 말이 없이 헤어졌고 나는 그날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그 친구를 한 인격체로 생각을 했는데 이 친구는 자신의 존재감을 소와 동일시하고 있었다. 그 친구 역시 본국에는 사랑하는 엄마, 아빠, 형, 동생이 있다. 그 친구는 자랑스러운 아들이고 형, 동생이다. 그런 그를 ‘소’와 같이 만든 것은 누구일까! 우리 사회가 그들을 ‘소’로 만들었다. 소처럼 기계처럼 부려 먹기만 했다. 못사는 나라에서 돈 벌러 왔으니, 소처럼 일하라고...

하지만 그들 역시 가족이 있고,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그들 역시 ‘하느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이다. 내가 아직 이 일을 놓지 못한 이유이다. 오늘도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 지금도 그 친구가 그립고, 마음이 아픈 것은 아직도 우리사회가 변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이주현장에서 활동하면서 소와 이야기를 나눈 친구를 잊을 수가 없다. 오늘도 고된 노동 속에서 지쳐 쓰러진 이주노동자들이 우리와 함께 두 다리 편히 펴고 잘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 방글레데시에서 왔던 카일 레벤 ⓒ이영 신부 제공

이영  eotjdek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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