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가 중학생 영어과외 지도를 하고 나서 받은 첫 번째 과외수업비 전액을 인도 희망공동체 헌금으로 바쳤다. 헌금을 마친 어린 그의 마음이 집혀져서 눈물이 났다.
정규는 부모님을 따라서 안드라푸라데쉬 데칸고원에 위치한 난달의 빈민가 희망공동체에서 4년을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고등학교에 편입하여 공부하는 것이 여의치 않아서 검정고시로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아이다. 그는 흔한 학원에도 다니지 않고 지역아동 센터에서 자원봉사자들의 지도를 받으며 공부하는 중에 틈틈이 영어 과외를 해서 자기 용돈을 쓰고 있다.
정규는 인도 아이들과 놀 때도 옷차림과 용모가 그들과 비슷해서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다. 수수한 용모에 햇볕에 탄 얼굴이 귀엽고 해맑은 영혼의 아이였다.
그는 안드라푸라데쉬 데칸고원에 위치한 난댤의 빈민지역에 세워진 ‘희망공동체’ 선교센터 안에 거주하면서 인도학교에 다녔다. 참으로 고맙고 감사하게도 그는 학교에서나 희망공동체 공부방에서나 낯을 가리지 않고 인도 아이들의 친구가 되었고 얼굴이 까맣고 더럽고 냄새가 나는 아이들에 대하여서도 친절하였다. 그는 토요일에는 공부방에서 영어 노래를 지도하였고 공부가 끝나면 아이들과 마당에서 뛰어 놀았다.
그가 가끔 나에게 말했다.
“사는 것이 거지와 다름없지만 아이들이 불평하지 않고 명랑한 것이 너무 고마워요. 저 같으면 불평하다 죽었을 거예요.”
 |
한국의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백인들에 대해서는 열등감을, 아시아와 아프리카 흑인들에 대해서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정규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제가 차별을 받는 것을 싫어하는 만큼 여기 아이들도 차별당하는 것을 싫어해요. 제가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하면 안되지요. 제가 우리 희망공동체 아이들을 피부 색깔로 차별한다면 저는 여기 있어야할 이유가 없어요.”
나는 예수님 입에서 나옴직한 말을 어린 그를 통해서 들을 때 마다 ‘그가 예수의 영에 단단히 집혔다.’ 다는 생각을 하였고 그를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곤 하였다.
한국에 돌아와서 용감하지만 무식하게 혼자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독학을 선택한 그가 영어과외비에서 십일조를 내며 남은 돈으로 겨울 방학기간에 인도에 가서 자원 봉사할 준비를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찔하였다. 자기가 받은 사랑과 축복을 인도의 아이들과 나누어야 한다고 확신하는 그의 선택은 너무 당연한 것이었지만 나는 그가 대학 진학 준비에 치열하게 임하길 바랐기 때문에 만류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나에게 떠남의 이유를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대학교에 진학하고 갈 수도 있고 어른이 되어서 갈 수도 있지만 저는 지금 가고 싶어요. 아이들이 보고 싶고 제가 받은 사랑의 빚도 갚아야지요. 제가 한국에 와서 깨달은 것이 있어요. 제가 그들을 사랑한 것이 아니고 그들이 저를 사랑했더라고요.”
그는 희망공동체 속에서 섬겼던 아이들 속에서 하나님을 보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였으며 못 견디게 그리운 친구들을 보러 가기 위해서 과외수업비로 받은 돈을 쓰지 않고 절약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편하게 놀고먹고 마시며 즐겨도 부족할 나이에 더럽고 불편하고 시끄러운 인도로 자원봉사를 가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의 불편을 감수하며 경비를 모으는 아이의 심장의 온도와 무게는 과연 어떤 것인가? 나는 그가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혔음을 확신하며 전율하였다.
그는 겨울 방학동안 자원봉사를 다녀왔고 나에게 기회를 주어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 가서 잘 섬겼니?”
“섬기기는 요. 겉으로는 우리가 섬겼지만 속으로는 우리가 섬김 당하고 왔지요.”
그는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다시 헌금해주었다. 나는 헌금을 만류하지 않고 받으며 보물을 하늘 창고 쌓으며 주님과 동행하는 인생이 되라고 크게 축복해 주었다. 그리고 또 다시 겨울방학 자원봉사를 위해서 경비를 마련하느라고 내핍 생활을 하는 그를 목도하였다.
예수의 영에 집혀서 그러는 아이를 누가 말리겠는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쓰임을 받는다는 것은 무상의 영광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세상에 대하여 죽어야 하는 것이기에 어린 그가 하는 일이 너무 안쓰러웠지만 그 안에는 이미 하늘의 평화가 있으니 누구도 그를 말릴 수가 없었다.
그는 희망공동체에 흰개미가 많아서 대수리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또 다시 헌금을 했다. 나는 그 돈을 돌려주려고 그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모님, 먹고 살기도 빠듯하신 분이 그런 큰돈을 헌금하세요. 제가 부담스러워서 돌려주어야겠어요. 이제 기도로 해주셔도 충분해요.”
“힘들다고 헌금도 못하나요. 제가 보물을 하늘에 쌓는 일인데 방해하지 마세요. 칠십만 원은 어느 분이 제게 비상금으로 간직하라고 주신 것이고 이십만 원은 정규가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 이예요. 정규가 하늘에 보물을 쌓으며 살도록 축복해 주세요.”
안타까운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가 뒤통수를 맞았다.
이제 정규는 고 3학년에 해당되는데도 입시나 대학 진학에 대하여 태평하다. 염려가 되어서 훈수를 하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해요.”라고 대답한다. 노파심으로 다양한 사례를 들며 학과 선택에 대한 강조를 하면 그는 ‘자신이 재미있게 잘 할 수 있는 공부’와 ‘지식을 가지고 이웃을 잘 섬길 수 있는 공부’에 초점을 두고 학과를 선택하겠다고 말한다.
내년 초에는 대학입학 서류를 내는 일로 자원봉사를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추측이 틀렸다. 그는 만반의 준비를 다 해놓고 자원봉사를 하러 가겠다고 하였다. 가면 한국에서처럼 못 먹고 못 자고 목마르고 땀 흘리며 고생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 안 입고 안 쓰면서 준비를 해서 떠나는 정규는 나에게 한국을 계속해서 쓰시겠다는 하나님의 싸인처럼 보인다.
그가 인도에 있을 때 2015년 4월에 기고한 글이 있다. 다음은 그 글의 끝 부분이다.
“솔직히 이글을 쓰는 동안에도 부모님의 선교정신을 본받아 인도인들을 사량해야겠다는 다짐을 하지만 저는 아직 어려서 생각이 작심삼초로 끝납니다. 희망공동체에서 공부방 학생들에게 영어노래를 가르치면서 언젠가는 부모님처럼 인도인들을 사랑하며 포용할 날, 이곳 사람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를 드리는 날이 오기를 희망합니다.”
나는 정규가 그의 소원대로 희망공동체 아이들을 사랑하게 되었음에 감사드린다. 그의 기도대로 인도인들을 사랑하게 되었음에 감사드린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희망과 기쁨이 되었음이 기쁘다.
전 세계 나라와 민족 어디에나 하나님 나라의 사랑스런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마음이 맑아진다. 하늘이 밝아진다.
전쟁과 폭력과 테러, 빈익빈 부익부로 인한 기아가 사라지고 인종과 나라, 민족과 문화 차별로 인한 차별과 소외가 극복되고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통치하는 아름다운 세상이 오고 있다.
이옥희 yiso57@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0대300에 씁쓸해 하는 동료들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