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 나라를 구했는지, 제 삶의 실체에 비해 과분한 복을 받으며 살고 있다. 

그 가운데 문동환 박사님과 김창국 변호사님과 같은 큰 어른을 가까이서 모시고 일한 것은 내 일생에 가장 빛나는 행운이다. 내가 경험한 이 두 어른은 자신의 삶에서 늘 공의를 앞세우는 대신, 자신의 사사로운 것은 비웠다. 언제나 굵고 맑으며 곧았다. 무엇보다 사람을 귀히 여겼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따뜻했지만, 불의한 권력 앞엔 서릿발 처럼 단호했다. 이 두 분 옆에서 겪은 에피소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지만 여기에 한 가지씩만 소개한다.

▲ 교회와 신학, 사회의 스승, 문동환 목사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제공

문동환 목사님, 사사로움을 버리셨던 분

문동환 박사님은 어느 날 내게 "김 선생, 이거 해직기간 교수월급 정산된 건데 어디 좋은 데 쓸 일 있을 지 알아 봐"하며 두툼한 봉투를 건네셨다. 그 모습이 하도 무심해서 나는 처음에 무슨 서류봉투쯤이나 되는 줄 알았다. 들여다보니 수표로 수백만원이나 되는 거액이었다. 지금으로치면 수천만원 쯤 될 것이다.

결국 이 돈은 당시 어려움을 겪던 민중교회에 전달됐는데, 그 과정에서 어떻게, 누구에게, 왜, 언제 따위의 일체 물음이나 확인도 없으셨다. 아마 내가 중간에서 그냥 가로 챘어도 묻지 않으셨을 것이다. 나중에 결과를 들으시고 "잘했다" 딱 한 마디 하셨을 뿐이다.

오늘 가까운 지인 몇사람과 문동환 박사님을 찾아 뵙고 나오면서 내내 마음이 울적했다. 그는 이미 노환으로 요즘 침대에 누워 지내신다. "생각은 많은데 몸이 자유롭지 못하니 당신들과 이렇게 얘기라도 나눠 좋다"는 말씀에 그만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래 우리 곁에 계셨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 인권을 위한 한 평생 올곧게 살아오셨던 김창국 변호사 ⓒ참여연대 제공

김창국 변호사, 정의로운 원칙에 충실하셨던 분

김창국 변호사님은 국가인권위원장 시절 외부로부터 적잖이 인사청탁을 받으셨다. 그러나 그분의 철칙은 "내게 청탁하면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다"였기에, 알만한 사람들은 아예 엄두를 낼 생각조차 갖질 못했다.

그런데 한번은 이른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재야의 어른으로부터 정말 거절키 어려운 부탁을 받으셨는지, 이만저만한 일이 있었으나 그래도 원칙대로 선발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당부가 있었다.

워낙 곧은 분이어서 평소 이런 말씀조차 일체 안 하시는 분인데 이런 말씀을 들으니 나라도 헤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이 선발되었다. 그것도 내가 강력히 주장한 사람이 선발된 것이다. 선발심사위원으로 송구한 마음에 결과보고를 통해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는데, 다 들으시곤 "그래? 수고했어" 딱 한마디 하셨다.

김창국 변호사님은 두 해 전 이미 우리 곁을 떠나셨다. 말년에 하루에 수십알에 달하는 약을 복용하며 병마에 시달리시면서도, 이따금씩 점심식사 자리를 마련하시기도 하고, 전화로 안부도 묻고 하셨다. "내가 요즘 몸이 불편해 바깥 출입이 어렵다. 미안하다"가 내가 생전의 고인과 나눈 마지막 통화였다. 김창국 변호사님은 그런 분이셨다.

주변을 보면 권력을 향해, 사사로움을 채우기 위해 아귀처럼 들고 뛰는 세상에 이런 분을 옆에 모시고 일했다는 건 암만 생각해도 큰 축복이다. 과연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또 나는 내 주변의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두 어른의 삶에 견주어 부끄럼은 없는지 명징한 거울처럼 들여다보게 된다.

김형완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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