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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진보와 보수의 뇌는 다르다기억과 은총: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③
최병학 기자 | 승인 2017.10.09 01:12

현대 과학의 최전선인 뇌과학 분야에서 선도적인 연구를 이끌고 있는 세계적인 포르투갈 출신의 유태계 뇌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osio)는 ‘느낌과 감정, 정서’가 우리 마음의 토대를 이루고 있으며, 이들 또한 마음과 마찬가지로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뇌, 신체화된 마음

다마지오의 이론은 한마디로 ‘신체화된 마음(embodied mind)’라고 할 수 있다. 신체는 단순히 정신을 담는 그릇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일차적 내용이자 참고자료이다. ‘탈신체화된 마음(disembodied mind)’으로 상징되는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을 비판하고 스피노자의 심신일원론을 새롭게 조명한 것이다. 느낌을 중심으로 인간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병수가 살인의 ‘느낌’으로 비록 치매에 걸렸지만 자신을 살인자로 존재 증명했듯이.

▲ 자극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는 뇌의 모습 ⓒNational Geographic 제공

사실 데카르트는 마음이란 공간을 차지하지도 않고, 물질적 실체도 없는 것이므로, 마음과 몸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신 이원론, 혹은 실체 이원론적 관점이다. 그러나 데카르트와 동시대를 산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마음과 몸이 동일한 실체의 평행하는 속성들(표현들)이라고 주장한다. 데카르트의 심신 이원론에 반대하는 것이다. 따라서 스피노자는 심신 동일론의 입장에서 느낌과 정서, 감정이 인간성의 중심이라 봄으로써 이미 300여 년 전에 현대 뇌과학을 예견한 인물이 되는 것이다.

『에티카』에서 스피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덕의 일차적 기반은 자기 자신을 보존하고자 하는 노력(코나투스, conatus)이며, 행복은 자신의 존재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 다마지오는 이 명제를 이렇게 변경한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고 안녕을 추구하고자 하는 경향을 갖도록 창조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자기 보존이라는 생물학적 현실이 덕에 이르게 된다.” 비록 스피노자가 오늘날의 신경생물학적 용어를 들어 설명하고 있진 않지만, 윤리적 행동 시스템에서 ‘생명의 존재’, 즉 ‘생명의 자기 보존 욕구’가 기반하고 있음을 말함으로써 생물학적 사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다마지오는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다마지오의 이론 가운데, ‘신체표지 가설(somatic marker hypothesis)’이 있다. 쉽게 말하면 ‘뇌의 즐겨찾기’ 가설이다. 가령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최선의 합리적 판단을 내리려 들다가는 시간과 에너지를 너무 많이 잡아먹어서 오히려 최악의 결과를 낼 수 있다.

따라서 손해를 보거나 보상을 받는 등 과거의 경험에 따라 뇌에 ‘즐겨찾기’가 새겨지면, 이제는 모든 정보를 심사숙고하는 대신 특정 신호에 특정 반응을 함으로 곧바로 꺼내 쓴다(판단)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뇌는 옳고 그름보다는 좋고 나쁨에, 좋고 나쁨보다는 이득이 있고 없음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조차도, 직관이 심사숙고를 앞서는 것이다. 따라서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의 뇌는 다르다.

뇌, 두려움과 개방성에 따라 다르게 반응

바이오 및 뇌공학자 정재승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똑같은 자극에도 보수주의자의 편도체(amygdala)가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여기는 공포 반응을 관장합니다. 보수주의자가 공포에 더 민감하죠. 반대로 진보주의자는 뇌섬(insula)이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여기는 역겨움을 관장하는데, 사회적 불공정을 볼 때도 반응하지요. 이들은 강자의 특권이나 약자의 부당한 고통에 뇌가 더 민감합니다.”

따라서 ‘불확실성과 두려움을 해소하고 싶은 인간의 깊은 욕구’는 보수주의의 뿌리가 되고, ‘개방성과 지적 유연성, 호기심, 새로운 경험에 열린 마음, 위험 감수 성향 등’은 진보주의의 경향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두려움’과 ‘개방성’을 가진 두 종류의 뇌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세상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며, 병수와 태주라는 두 연쇄살인범의 뇌 구조도 이렇게 진보와 보수로도 나눠지는 것이다. 병수의 자식을 지키려는 ‘두려움’, 태주의 여성혐오에 대한 ‘개방성’으로!

여기서 박주태(영화에는 민태주, 김남길 분)는 머리에 두개골이 없다. 엄마를 때리던 아버지를 식칼로 쑤시려 했는데(이것은 병수와 동일한 가족 상황이다. 물론 시대적 상황도 여전히 군부 통치시대였다), 엄마가 뒤에서 다리미로 주태의 머리를 친 것이다. 주태는 절규한다. “아빠가 아니라 엄마가! 여자들은 다 똑같아.” 연쇄살인범의 시작은 이렇게 소설과 다르게 시작된다. 여혐(여성혐오)의 발생사적 근원이랄까? 아무튼 여기서 뇌의 문제는 시작된다. 단순한 기억을 넘어 뇌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요구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뇌 구분은 진화생물학적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은 잡식동물이다. 잡식동물에게는 특유의 딜레마가 있는데, 새로운 음식에 얼마든지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과 정보가 없는 음식에서 독과 기생충과 미생물의 위험을 받아야 하는 가능성, 둘 다가 존재한다. ‘새로운 음식에 개방적인 전략’이 ‘더 많은 영양분과 더 많은 위험’을 동시에 제공하는 반면, ‘새로운 음식을 두려워하는 전략’은 ‘더 안전하고 더 배고픈 현실’을 제공한다. 나이든 연쇄살인범의 두려움과 젊은 연쇄살인범의 진취성은 시간의 무상함도 보여주지만 이렇게 뇌구조가 달랐던 것이다.

최병학 기자  hak99@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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