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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에 기초해 인간과 세계를 다시 해석한 책[서평] 김재인의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
문용식 | 승인 2017.10.09 01:21

연휴 동안 정말 정성 들인 책을 한권 읽었다. 들뢰즈 철학 전공으로 유명한 김재인 박사의 신작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 우선 책 제목에 ‘4차 산업혁명’ 운운 하지 않아서 좋았다. 이 책을 쓰느라 치과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이가 많이 상했다는 포스팅을 올렸던데, 책을 읽어보면 그럴 만하다는 걸 금방 알게 된다. 이제 보니 김재인 박사 이름이 ‘재인’이다.

1.

우리에게도 이제 이런 책 한 권 있을 때가 됐다. 진화 생물학, 물리학, 뇌과학, 언어분석학, 인공지능 연구 최신동향에 이르기까지 주제와 관련된 자연과학의 최근 연구 성과를 두루 섭렵하고 있다. 자연과학적 앎에 기초하여 인간과 세계를 통합적으로 해석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 김재인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

그런데 저자의 이런 태도는 철학의 본령에 대한 소신에서 비롯되었다는 게 중요하다. 저자는 모든 철학은 당대의 자연과학과 나란히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철학은 구식이고, 실재 세계를 모른 채로 철학하는 셈이라고 얘기한다. 

“데카르트를 비롯한 17-18세기 철학자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당대의 자연과학과 동시대적으로 작업했다는 점이다... 17세기 과학혁명으로 새로운 세계가 생겨났다...”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정보통신기술, 인공지능, 로봇공학 등은 지난 과학혁명의 시기의 연장이 아닌 단절일 수 있다. 선배 철학자들이 했듯이 새로운 철학이 있어야 한다...”

대단한 포부이고, 과감한 도전이다. 무조건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2.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7장 ‘무엇을 어떻게 학습할까’에 요약되어 있다. 저자는 생명과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대비를 통해 ‘초인공지능의 불가능성’을 철학적으로 논증한다. 

“인공지능은 자의식을 가질 수 없다. 자기가 자기를  점검하고 평가하고 수정할 수 없다.그런 일을 수학적으로 프로그래밍할 수 없다. 예측불가능한 시스템, 앞으로 일어날 일이 무작위적인 것은 수학적으로 기술 불가능하고,함수를 만들 수 없으며, 알고리즘으로 구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물은 이게 가능하다...오히려 변화야말로 생명의 본질이다. 일정한 변화가 함께 하지 않으면 안정적이지도 않다... 생물은 버그, 고장 (변이)을 통해 작동하지만, 알고리즘은 버그가 존재하면 작동하지 않아... 모든 생물은 물질대사를 통해 세포수준에서 변하면서도 자신을 유지하는 안정성을 갖지만 프로그램은 고정된 동일성을 유지할 뿐이다. 이 차이가 핵심이다...”

3.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진화론의 여러 주장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진화는 진보가 아니고, 어떤 변화가 해당 환경에 적합했더라는 사후 확인일 뿐이라는 주장도 간명했다. 논증중에 도킨스의 자연선택에 대한 오해를 지적한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자연선택은 결과적으로 남겨지는 것일 뿐인데, 도킨스는 무언가를 선택하는 걸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킨스의 권위에 과감히 도전하는 용기가 느껴졌다.

아무래도 나의 관심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혁신 방안에 있다보니 관련 대목을 눈여겨 보게 된다. 저자의 주장은 한마디로 자연에서 경쟁이란 환경변화에 대처할 수 있도록 자기안에 최대한 많은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다양성은 진화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고의 전략이다!

“급변의 와중에 어떤 성분이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될지 미리 알 수 없다. 환경 변화도 무작위적이기  때문이다. 생명, 종, 개체의 관점에서 중요한 건 그 안에 얼마나 무작위성, 차이를 확보하고 있는가이다..  혁신과 창조가 가능하려면 예측 불가능한 다양한 실험을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이게 진화가 주는 교훈..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중요한 문제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라는, 개인들이 숨쉬는 대기와 자양분을 얻는 토양이 중요해...”

4.

저자는 연구의 결론, 오랜 학습의 결론을 직접 실행한다는 차원에서 이 책을 집필하였다. 창작이 학습의 핵심활동이고, 인공지능의 시대에 창조성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남들이 안 가본 길을 가는 게 중요하고, 이를 위해 직접 과감히 도전하여 세상에 없는 작품을 창작하는 작업에 나섰다는 것이다.

“우주에 없었던 생각을 담은 새롭고 아름다운 한권의 책을 만들려고 실험해보았습니다..”

아름다운 도전에 무한 응원을 보낸다. 나의 최고의 찬사는 “우리에게도 이제 이런 책 한 권 있을 때가 됐다”는 것이다.

문용식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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