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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린돌이 머릿돌이 되는 역사(사 5:1-7; 마 21:33-46)교회존재이유, 사회의 소금과 빛의 역할
조헌정 | 승인 2017.10.10 23:21

미국은 문명국인가? 야만국인가?

요즘 세상 뉴스를 들으면 참으로 우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좋은 일도 많이 일어날 텐데 좋지 않은 일만 얘기해주니까요. 물론 사람들은 시기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좋은 이야기 보다는 좋지 않은 얘기에 더 많이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습니다.

911테러 이후로 지난 15년동안 중동에서의 전쟁이 그치지 않고 있으니 전쟁 뉴스가 그칠 수가 없고, 이 전쟁의 후유증으로 유럽에서의 테러 사건이 연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북한과 미국 간의 말 폭탄으로 인해 곧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습니다. 거의 연락이 없던 외국 친구들이 안부를 묻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70년을 유사 전쟁 상황에서 살아왔기에 이런 일이 일어나면 또 그런 모양이구나 하고 대수롭게 생각하지만, 외국인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엄청 높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미국 도박과 환락의 도시 라스베가스에서 한 돈 많은 백인 늙은이가 무슨 이유였는지 음악회에 모인 2만여 명의 청중을 향해 32층 호텔에서 무차별 총격을 가해 58명이 사망하고 500여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마른 날에 날벼락이라는 말이 있지만, 하루 밤을 즐기기 위해 간 청중들에게 묻지마 총질을 해되다니 정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미국을 기독교국가로 최대 부강한 나라로 알고 그곳에 가서 살기를 원하고 있지만, 미국에서 한해 총기로 죽어가는 사람의 숫자만 3만 명을 넘습니다. 거의 매일 백 명이 총기로 죽어간다고 보면 되는데, 현재 8년째 전쟁 중인 시리아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평균 5만명이니 전시상황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총기로 인해 죽어가는 3만명 가운데 약 20%는 아이들입니다. 왜 아이들이 이렇게 많이 총에 맞아 죽어갈까요? 그건 어른들이 쏜 총에 맞아서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아이가 쏜 총에 죽어가는 것입니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총기를 소유한 부모님들이 잠자는 사이에 강도가 들어오는 것을 대비해서 침대 옆에다 총을 두고 자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부모들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두고 자리를 비웠을 때, 아이들이 이를 장난감으로 생각하고 꺼내 놀다가 방아쇠가 당겨져 죽기도 하고 심지어는 tv의 한 장면처럼 자신의 동생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일이 발생하는데, 한해 이렇게 죽는 아이들이 5천명이 넘습니다.  

그런데도 총기 규제가 안 됩니다. 헌법에 총기 소유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인데, 그건 미국이란 나라가 애당초 천만 명의 인디안 원주민을 죽이고 건설한 나라로서 애시 당초 건달 총잡이들의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 너도나도 자신들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총을 제각기 소유하고 있는데, 결국은 자신들의 생명을 빼앗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기 자식들을 말입니다. 총기협회가 워낙 선거 자금이 많고 회원이 많아 총기규제를 꺼냈다하면 국회의원 당선이 안 되는 겁니다.  

인구의 3분지 2가 1정 이상의 총기를 소유하고 있는데, 어떤 집은 우리가 난이나 도자기를 취미삼아 수집하고 전시하여 놓았듯이 총기를 종류별로 전시해 놓고 있습니다. 이번 총질을 한 그 친구도 33여종의 총기가 발견되었다고  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사람이 상당수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문명국이 아닌 야만국입니다.

미국이 2002년 911 이래 대테러전쟁을 시작한지 15년이 되었습니다. 국토방위부를 신설하고 공항터미날에 값비싼 X선 투시기를 갖다 놓고 기내 탑승 시에 물병은 물론 화장품, 손톱깍기까지 다 금지를 시켰습니다. 이렇게 테러공포분위기를 엄청 조성한 결과 총이 더 많이 팔리고 있고, 부모들은 우리가 수영이나 피아노를 연습시키듯이 어렸을 때부터 총을 쏘는 연습을 시키고 있습니다.

▲ 총기의 구입과 소지가 자유로운 나라, 미국

그런데 문제는 대테러소탕을 선포하고 엄청난 돈과 인력을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2005년부터 2015년까지 테러로 인한 미국 내 사망자는 71명에 불과하지만, 자기들끼리 총을 쏴서 죽은 사람의 숫자는 무려 30만 명이 넘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고 보면 미국이 다른 나라를 악의 축이니 테러국가니 말하지만, 사실 진짜 테러는 미국 밖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미국 내에서 자기네 특히 백인들끼리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유색인종 특히 중동사람들과 멕시코 사람들이 미국 내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으로 계속 몰아가고 국경선에 장벽을 쌓고 있습니다. 후안무치(厚顔無恥)는 이 경우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미국은 개인으로도 총기를 소지하고 있지만, 나라 전체로 보더라도 세계 무기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고 있고, 이를 수출하여 먹고 사는 나라입니다. 과거 로마가 침략 전쟁을 통한 약탈로 나라의 국력을 유지하여 왔듯이, 미국 또한 끊임없는 전쟁과 긴장 고조를 통한 무기 판매로 국력을 유지하고 있는데, 로마의 말로가 그러했듯이 미국의 말로 또한 그러할 것입니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역사의 진리입니다.

쓸모없다 버리는 돌?

오늘 이사야서와 마태복음서의 말씀도 이와 같은 맥락의 말씀입니다. 이사야서나 마태복음서 모두 포도밭을 주제로 한 비유의 말씀입니다. 무화과나무나 포도밭은 성서에서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이사야 말씀은 주인이 포도밭을 만들고 정성스레 가꾸었는데, 참포도가 열리지 않고 먹지 못할 들포도가 열렸다는 것인데, 이는 야훼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고통 받던 히브리노예들을 이끌어내어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고 하느님의 율법을 주어 정성스레 돌보아 왔는데, 결국은 거기서 나온 열매인 예루살렘 도성과 유다 사회를 보니 공평 대신 유혈이 낭자하고 정의 대신 약자들의 아우성 소리만 가득한 악인들의 소굴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심판 외에 다른 길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서의 포도밭을 주제로 한 예수님의 비유 말씀은 이러합니다. 어떤 지주가 포도밭을 만들고 이를 소작인들에게 주어 경영을 맡겼고, 추수 때가 되어 주인이 소작료를 받기 위해 사람을 보냈더니 이 소작인들이 욕심에 사로잡혀 이 사람들을 죽이고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을 보냈더니 그들도 죽이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냈더니 아들마저 죽이니 참극이 벌어진다면 주인이 결국 이들을 다 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일을 맡기지 않겠느냐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덧붙인 예수님의 시편 말씀 인용 구절이 우리의 주의를 끕니다. 그건 “집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돌이 되었다.”우리네 초가집이나 기와집은 가운데 대들보를 중심으로 세우기에 정 중앙에 주춧돌이 놓입니다. 반면 팔레스틴의 집은 사각형의 돌집입니다. 따라서 사각형의 모퉁이돌은 다름 아닌 집의 주춧돌이 되는 것이고 우리말로 하면 머릿돌이 됩니다. 집짓는 자의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는 역사란 과연 무엇을 두고 하는 말씀일까요?

오늘 우리 사회에서 쓸모없다고 버린 돌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입니까? 냄새나는 더러운 옷을 입고 거리에 쓰러져 자는 노숙자, 몸 파는 여인들, 불법체류자들, 동성애자들이 아닐까요? 예수님의 말씀은 이들이 다가오는 새로운 사회에서는 주춧돌이 되고 머릿돌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앞서 마태복음 20장에서의 포도원 일꾼 비유에서 하신 결론의 말씀과 같습니다.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될 것이다.”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고 꼴찌가 첫째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요? 이는 세상이 뒤집히는 혁명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합니다. 

꼴찌가 첫째 되는 사회를 꿈꾸며

우리는 지금 촛불혁명을 통해 조금이나마 우리 사회가 전복되는 혁명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박근혜와 최순실과 김기춘과 원세훈 등이 감옥에 갇히고, 이제는 이명박과 김관진 우병우 등등이 그 뒤를 잇는 첫째가 꼴찌가 되는 역사 뒤집힘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꼴찌가 첫째되는 역사는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이전 정부에서 버린 돌 취급을 받던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과 위안부할머님들이 현 정부에서는 위로를 받는 일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바 꼴찌가 첫째되는 뒤집힘의 전복(顚覆)이란 진정한 민중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요원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을 오늘의 국제사회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 첫째가는 나라는 미국이고 꼴찌가는 나라는 이 미국이 박멸하고자 하는 악의 축 북한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얘기를 더 이상 진행하게 되면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나 대제사장들 마냥 저를 돌로 칠 경우가 일어날 수도 있어 여기서 그치겠습니다. 

다만 나라 이야기 대신 교회 이야기를 예로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올해가 루터의 혁명 50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10월 31일이 그 날입니다. 영어로는 Reformation 우리말로는 종교개혁이라고 부르는데, 저는 이 용어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선은 기독교 한 종단에서 일어난 사건을 종교라는 일반명사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지 않고, 둘째는 루터로 인한 그 결과는 교회 개혁만 일어났던 것이 아니라 수백 년간 유럽 사회를 떠받들어온 교황을 중심한 세속권력이 무너지며 정치사회경제 모든 분야에 걸쳐서 엄청난 변화들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개혁이라는 말보다는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고 여깁니다.

하여간 올해 독일 종교청 산하의 역사박물관에서 루터의 혁명 500주년을 맞아 세계 개신교회 역사를 조명하는 특별전시회와 ‘The Luther Effect’(루터의 영향)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처음 3분지 1은 초기 유럽 개신교회 역사를 서술하고 있고, 나머지 3분지 2는 오늘의 세계개신교회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 모든 나라를 일일이 열거할 수 없으니, 대륙별로 4개의 나라, 스웨덴, 미국, 탄자니아, 남한을 선택했습니다. 남한교회의 소개는 선교 초기의 역사와 예수가 전통 도포를 입고 갓을 쓰는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한국교회의 토착화신학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오늘의 남한 교회를 설명하는 데 그 장의 제목은 이러합니다. ‘한반도의 분단, 교회의 분단’ 나라가 남북으로 나뉘었듯이 교회 또한 둘로 나뉘어져 있다. 그러면서 딱 두 교회만을 언급하는데, 교회성장을 대표하여 세계에서 제일 큰 50만 등록교인의 여의도 순복음교회 그리고 정의와 평화의 가치를 추구하는 향린교회입니다. 향린교회는 등록숫자로 말하면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천분지 일에 해당하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전연 딴판입니다. 올 5월부터 11월말까지 베를린 역사박물관에서 이 네 나라의 여러 물건과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저는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다녀온 교인들의 얘기에 의하면 한국관에 들어서면 커다란 스크린이 있고 거기에 순복음교회 목사가 설교하는 동영상과 함께 독일어와 영어 자막이 나오는데, 쉽게 말해 예수 믿어 이 땅에서 부자되고 장수하며 죽어서는 천당간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이어 향린교회의 국악을 소개하는 큰 현수막이 걸려 있고, 이어 향린교회 외벽에 20년 넘게 걸려 있던 커다란 현수막 3개가 놓여 있습니다. 향린교회에 오셔서 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그 세 현수막 문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정의를 심어 평화의 열매를’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작년 12월경 전시담당자가 교회를 방문하였는데, 현수막을 보더니 빌려달라고 해서 그냥 가지라고 하고 저희들은 새것으로 갈아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제 사무실에 들어왔는데, 벽에 여러 그림들이 걸려 있었는데, 그중 홍근수 목사님께서 국가보안법으로 투옥 당했을 때, 커다란 보라색 천에 ‘통일목사 석방하라’는 큰 글씨 밑에 교회들이 서명을 하였는데, 제가 이를 사무실에 걸어놓았는데, 그걸 보더니 이를 또 달라고 하고 그리고 그 옆에 제가 평화통일 주일 때마다 행하던 통일예식에서 쓰던 큰 십자가, 가로판대기에는 ‘대한민국’ 세로판대기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쓰여진 이것도 달라고 해서 지금 전시 중에 있습니다.

작은(자) 교회 운동

지난 5월 제가 향린교회를 퇴임하던 때, 이 책을 보면서 크게 놀랐습니다. 사실 기장 안에서조차 향린교회는 특수교회로 인정받고 있지 일반 교회로 보지를 않습니다. 대부분의 기장 교회들도 여의도순복음교회처럼 교회성장이 목표이지 이 사회를 보다 정의롭고 평화가 넘치는 사회로 바꾸어가는 현장 참여에는 소극적입니다.

그런데 천년 이상의 기독교역사를 갖고 있고, 개신교의 발상지이자 오늘날 세계 평화의 선두주자인 독일에서 오늘의 남한 교회를 이렇게 평가하였다는 사실에서 오늘의 교회가 나아갈 방향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성찰할 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채찍을 휘두르시며 예배하러 모인 사람들을 내어 쫓으시며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호통을 치셨던 예수님의 뜻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유럽 교회에서는 교회성장이라는게 별 의미가 없습니다. 과거 나라 전체 왕으로부터 백성 모두가 기독교 나라였고 모든 백성은 일요일이 되면 한명 빠짐없이 교회를 다 나갔던 오랜 역사가 있습니다. 지금도 그들은 태어나면 자동으로 세례를 받고 결혼식은 교회에서 죽으면 목사가 장례를 치룹니다. 정기적인 교회 출석은 약하지만, 여전히 기독교 국가들이고 수입의 일부를 헌금으로 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 교회에 모인 숫자를 보고 죽었다고 말하지만, 그들에게는 숫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교회가 크다작다 무의미한 말입니다. 오히려 모든 백성들이 한 사람 빠짐없이 교회에 출석했던 그 시대를 ‘암흑시대’라고 부릅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가 사회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작은 자 예수 정신을 따라 ‘전국예수살기’가 있고, 거리 현장에서 드려지는 ‘목요촛불교회’가 있고, 내일 감리교신학대학에서 열리는 ‘작은 교회 한마당’이 진행되는 것입니다. 이런 운동들은 숫자로 보면 나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세상의 주목도 잘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 길이 예수께서 외치신 바,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는 역사로 나아가는 길인 것입니다.

이제 끝으로 시인 목사님 교회에 왔으니 시로 오늘의 저의 하늘뜻펴기를 마치겠습니다. 성찬경 시인의 ‘보석밭’입니다.

가만히 응시하니
모든 돌이 보석이었다
모래알도 모두가 보석이었다
반쯤 투명한 것도
불투명한 것도 있었지만
빛깔도 미묘했고
그 형태도 하나하나가 완벽이었다
모두가 이름이 붙어 있지 않은 
보석들이었다
이러한 보석이
발아래 무수히 깔려 있는 광경은
그야말로 하늘의 성좌를 축소해놓은 듯
일대 장관이었다
또 가만히 응시하는 그 무수한 보석들은 서로 빛으로
사방팔방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 빛은 생명의 빛이었다
이러한 돌밭을 나는 걷고 있었다
그것은 기적의 밭이었다
홀연 보석밭으로 변한 돌밭을 걸으면서
원래는 이것이 보석밭인데
우리가 돌밭으로 볼 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있는 것 모두가 빛을 발하는
영원한 생명의 밭이
우리가 걷고 있는 곳이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조헌정  choshalom@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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