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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아의 예수, 유럽의 예수, 변선환 찍고, 안병무의 전태일-예수예수의 아래로부터의 장소성과 기독론의 가능성
김진호 | 승인 2005.09.08 00:00

16세기 이후 본격화된 이른바 ‘지리상의 발견’과 그 직접적인 효과인 식민지 확장은 근대적 유럽인의 ‘공간적 인식’의 질서를 구성하였습니다. 그러나 18세기 말 즈음, 이러한 공간적 확장이 거의 정체됩니다. 공간 확장에 대한 인식의 관성은 지속되는데, 공간의 확장은 더 이상 경험적 현실이 아닌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라인하르트 코젤렉은 이렇게 기대지평과 경험공간의 괴리를 유럽인들은 ‘시간의 확장’을 통해서 돌파하였다고 봅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유토피아적 시간’에 대한 열망으로 드러납니다. 진보에 대한 믿음입니다. 곧 진보된 미래 지평인 ‘상상의 공간’ 유토피아는 현실의 규범이자 실천 원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계몽’으로서의 시간 인식은 바로 이렇게 유럽인에게 다가온 것입니다.

독일의 낭만주의 비평가인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과거’의 사실을 재현하려는 역사가를 “뒤로 몸을 돌리고 있는 예언자”라고 묘사합니다. 그가 향하고 있는 ‘뒤’는 ‘과거’이며,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미래입니다. 즉 과거 사실에 대한 탐구인 역사학조차도 미래의 유토피아를 상상하기 위한 예언자적 시간 순례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에 관한 역사적 연구가 시작된 시기는 바로 이러한 유럽인의 인식의 사투가 한참 벌어지는 때였다는 점을 주지해야 합니다. 그것은 ‘역사의 예수’ 탐구가 유토피아로서의 상상적 미래를 구성하기 위한 유럽적인 열망과 맥을 같이 한다는 것이고, 또한 ‘지체된 근대’ 혹은 전근대적 표상으로서 실재하는 교회의 ‘회고주의’(과거 지향성)에 대한 도전이었던 것입니다.

역사의 예수 연구는 상상적 미래를 위한 유럽적인 열망과 맥을 같이한다

그러나 ‘역사의 예수’ 탐구라는 역사학적 운동은 교회 제도 내의 신학적 공간 내부에서 벌어집니다. 그것은 초기의 ‘예수 역사학’이 슐레겔이 말한바 ‘미래 지향적 역사’이라는 변수 외에, ‘과거 지향적인 신앙’이라는 변수를 포기할 수 없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역사의 예수’ 연구의 궤적은 처음부터 줄곧 역사와 신앙이라는 두 주요 변수에 의해 규정된 이차원 공간상의 좌표점 위에서 움직여 왔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역사’라는 변수는 ‘유럽적인 근대성의 범주’이고, ‘신앙’은 ‘유럽적인 전통의 범주’입니다. 전자는 ‘미래 지향적 진보’의 관점과 맞물려 있다면, 후자는 ‘과거 회고적인 전통’의 관점을 반영합니다.

지나친 단순화의 오류를 감안하면서 연구사를 양분하자면, 두 변수 가운데 ‘역사’를 좀 더 중요하게 보면서 교회 전통과의 차이를 강조하려는 계열(차이의 전략)과, ‘신앙’에 초점을 두면서 교회 전통과의 화해를 모색하려는 계열(동일성의 전략)로 예수 연구사는 양분할 수 있습니다.

초기의 연구의 선구자였던 르낭과 슈트라우쓰, 그리고 최근 북미를 풍미하는 예수 연구 집단 ‘예수 세미나’의 코디네이터 로버트 펑크 등이 전자의 대표격이라면, 불트만은 후자의 대표자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데 여기서 불트만에 대해 이야기를 좀 더 해야 합니다.

유럽인에게 19세기 후반, 그리고 20세기는 진보의 거울이 깨지는 ‘참혹함의 시대’였습니다. 진보의 가치에 의해 구성된 상상의 미래라는 거울에 비추어서 자신을 보려는 것은 더 이상 가치 있는 것도, 가능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계몽으로서의 역사’의 파국을 체험한 유럽인에게 계몽의 예언자들이 재현한 예수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불트만은 하이데거로부터 이 질문 속에 내포된 역사학의 딜레마를 넘어서는 실마리를 배워옵니다. 그가 추구한 실존주의적 신앙의 물음은 실존 인식을 통해 예수를 묻습니다. 역사가 ‘시간 속의 게임’이라면 실존 인식은 그 ‘외부’에 있는 존재론적 체험입니다.

근대 계몽주의의 파국 속에서 불트만은 실존을 통해 역사를 우회한다

불트만의 연구는 바로 이 ‘실존 인식’을 통해 예수를 묻는 것이 유의미하며 가능하다는 것을 보이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요컨대 불트만의 의의는 유럽 근대성의 위기와 그것의 한 양상인 역사주의의 위기를 역사의 우회로인 실존을 통해 극복하고자 한 데 있습니다. 

이후 그의 반역사주의적 태도에 대해 그의 일단의 제자들을 비롯한 많은 예수 연구자들의 문제제기는 신앙 전통과 불화하지 않으면서도 역사주의를 포기하지도 않는 ‘역사의 예수’에 대한 가능성을 찾으려는 교회의 열망과 맥을 같이 합니다. 문제는 그들 중 누구도 근대성의 위기를 돌파할 만한 역사학적 수단을 갖추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근대성의 위기도, 역사학의 위기도 체감되지 않는 진공포장된 공간 안에서 그들이 역사의 예수를 물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20세기 예수 연구는 일부 예수 연구자들의 연구실과 그 담론이 소통되는 유일한 공간인 유폐된 신학 아카데미즘 내부에서만 진행됩니다. 하여 20세기는 예수 연구의 파행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에서 ‘역사의 예수’ 논쟁은 대체로 1970, 80년대에, 그 시기에 신학계에서 이 연구가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비교적 적극적으로 소개된 편입니다. 하지만 유럽 근대성의 위기와 역사학의 위기라는 맥락에서 역사와 신앙의 변수가 충실히 고려되지는 못했습니다. 그것은 타지에서 생산된 이론을 수입하는 데 따른 흔한 부조리의 하나에 속할 것입니다.(번역의 위기)

   
1980년 중반부터 신학적 탐색을 시작했고, 예수에 대한 역사적 논의에 관심을 가졌던 제게 이러한 이론 번역 상의 부조리함을 읽을 안목을 준 이는 변선환 선생이었습니다. 선생의 방대한 지식과 예리한 문제의식은 위에서 제가 대략적으로 정리한 연구사적 이해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수입 이론 번역 상의 부조리함을 읽을 안목을 준 변선환 선생

민중신학에 주된 관심이 있던 터라 선생의 더 나아간 논의에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이상의 논의를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유럽적 예수 역사학의 문제 인식을 넘어서기 위해 그가 주목한 것은 동양적, 특히 불교적 인식론과의 대화였던 것 같습니다. 양자의 대화에 대한 유럽과 북미의 지식인들의 인식틀에 빠지지 않으면서 양자 간의 대화의 지점을 찾고자 했고, 거기에서 역사와 신앙의 모순에 관한 서양적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가능성을 읽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것은 과거-현재-미래를 분절적인 것으로 인식했던 진보론적 서양적 ‘시간’ 이해의 틀, 그래서 동양은 덜 근대화된 서양, 과거적 서양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는 식의 단선적 시간성을 넘어서는 사유의 가능성에 대한 탐색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선생이 야기 셰이이찌의 ‘장소적 기독론’을 주목했던 것도,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이러한 단선적인 서양적 시간과는 다른 공통 감각의 장소적 신앙의 가능성을 묻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되고, 야기의 장소성의 반역사적 실존성을 문제제기하고 ‘아래로부터’라는 새로운 장소성을 역사와 신앙의 조우 지점으로 보고자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불트만과 반역사성을 공유하면서도 불트만과는 다른 공간적 예수 신앙의 가능성을 말한 야기에 대해 문제제기하면서, 선생이 ‘아래로부터의’라는 장소성에 기초한 다른 기독론의 가능성을 논하는 것이 선생의 논리 안에서 과연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저의 부족한 독해는 절정에 이릅니다.

저의 혼돈은 예수의 역사성에 대한 불트만의 회의를 선생은 어떻게 돌파할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없다는 데서 유래합니다. 예수의 과거 텍스트를 독해할 수 있다는 믿음의 붕괴가 알버트 슈바이처에 의해 결정적으로 선언된 이후, 불트만은 실존하지 않는 텍스트인 구술을 통해 예수를 독해하고자 했습니다. 양식비평은 바로 그 구술적 가상의 텍스트를 통한 독해 가능성의 모색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새로운 방법론적 탐색은 역사학의 위기를 넘어서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의 실존론적 독해는 역사학적 독해의 불가능성에 대한 반역사적 대안이었습니다. 그와 반목했던 그의 후계자들 누구도 예수의 역사적 독해 불가능성을 반전시키는 역사학적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곧 20세기 예수 연구사는 역사학의 위기를 넘어서서 예수를 탐구할 수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변선환은 '아래로부터의'라는 수사로 역사의 예수와 신앙 간의 화해를 시도

그런데 불트만과 야기처럼 역사를 우회하지도 않으면서 역사의 예수와 신앙 간의 화해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선생의 ‘아래로부터의’라는 수사어는 어떤 점에서 그러한 화해의 실마리일 수 있을까요? 예수의 장소와 서구의 예수 독해의 장소의 역사학적 불연속성이 문제된 상황에서, 불트만적 신앙의 장소처럼 실존론적 장소의 연속성을 반역사적 실존의 체험이 아닌 역사적 사건의 연속성으로 읽어낼 수 있는 가능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나요?

여기서 저는 최근 북미에서 범람하는 예수 연구의 폭발 현상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연구 추세의 어떤 신학적이거나 역사학적 특징을 찾아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다만 연구의 가능성과 필요성에 대한 북미 연구자 사이의 어떤 기조를 읽는 것은 가능합니다. 특히 로버트 펑크의 ‘예수 세미나’의 의의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과정된 것이고 그 자신의 의제화를 위해 동원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음에도, 이 연구 집단이 수적으로 소수임에도 최근 연구들 가운데 과거와는 다른 질적인 위상을 확보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교회적 신앙 전통을 지체된 근대성의 잔여물로 보면서, 그것이 최근 북미의 중요한 의제 집단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데 주목합니다. 그에겐 탈기독교시대의 시대착오에 불과한 이 현상은 ‘빗나간 미래의 불길함을 예고합니다. 결국 예수 세미나는 예수 연구의 미완의 ‘계몽 프로젝트’를 완성하려는 데 그 중심 취지가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인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학적 낙관론의 배경에는 예수 텍스트의 독해 가능성에 대한 재확신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편에선 교회에 의해 규제되었던 고전 텍스트들이 대대적으로 독서 가능한 상태인 영문 번역본으로 시장에 출시될 수 있게 된 탈기독교 시대의 문화 맥락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적 인식틀을 넘어서서 다르게 독해할 수 있는 학제적 성과물들이 그 텍스트들을 새롭게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는 탈기독교 시대의 간학문적(interdisciplinary)인 학제사적 맥락이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과연 얼마나 가능할까요? 펑크의 역사관은 과거의 재현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구상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빗나간 현재를 교정할 수 있다는 주장은 과연 누구에게 가능한 것일까요? 하나의 역사적 상상물을 과거-현재-미래를 구성하는 대안적 길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시선의 주체는 누구일까요? 그들의 이 계몽적 프로젝트가, 게르트 타이쎈의 비아냥처럼, 갈릴래아의 예수가 아니라 캘리포니아의 예수라고 한다면, 그 특수한 해석, 그 특정 시공간적 이해의 산물을 보편적이고 총체적인 견해로 탈바꿈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존재는 과연 누구일까요?

여기서 다시 변선환의 아래로부터의 장소적 기독론을 주목하게 됩니다. 남은 과제는 ‘아래라는 장소, 신앙적 사건의 장소이자 역사적 경험의 장소를 가능하게 하는 현장(locales)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안병무는 예수의 현장과 예수를 기억하는 삶과 신앙의 현장을 사건적 계보로 연결

민중신학자 안병무는 그 하나의 가능성을 제안합니다. ‘예수의 현장’과, 예수를 기억하는 삶과 신앙의 한 현장인 마르코의 예수라는 두 역사성 사이에는 하나의 사건적 계보가 있다는 것입니다. 경험의 유사성이 기억의 유사성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이제 독해해야 할 역사의 텍스트는 예수도 아니고 마르코공동체도 아니라, 경험과 기억을 공유하는 예수와 마르코공동체 사이의 사건적 계보가 됩니다. 그리고 그는 이 계보를 ‘전태일-예수’라는 다른 시공간적 현장과 연계짓습니다.

하나의 의미론적 계보가 신앙과 역사를 묶어냅니다. 여기에는 현재와 분절된 과거도, 과거와 분절된 현재도 없습니다. 현재와 과거 사이의 상호침투와 대화가 있고, 거기에서 벌어지는 민중사건이라는 한 의미론적 계보가 있습니다. 다른 의미론적 계보를 배제하는 하나의 단선적 이해가 아니라, 수많은 예수 사건 가운데 하나의 민중사건으로서의 예수 사건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앙적 계보이면서, 동시에 역사적 경험이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교차하는 삶의 계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역사의 예수는 하나의 보편적인 개체가 아닙니다. 그 자체가 하나의 역사이고, 수많은 역사적 가능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것은 각각의 장소에서 예수의 의미론적 계보가 어떻게 실천되느냐의 문제이고, 그 실천을 어떻게 예수와 연관지어 이름짓느냐/언어화하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김진호  kjh55940@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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